(56) 대릉하성의 비극, 1 (56) 대릉하성의 비극, 1 2008-01-30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1631년(인조 9) 8월5일 밤, 후금군은 대릉하성을 포위했다. 당시 성안에는 사령관 조대수(祖大壽)를 비롯하여 1만 5000명 남짓한 명군이 있었다. 성의 치첩(雉堞)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라 미처 돌아가지 못한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55) 후금, 조선을 떠보다 (55) 후금, 조선을 떠보다 2008-01-23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후금군이 침략해 오고, 사신을 보내 배를 빌려달라고 요구하자 조선의 위기 의식은 높아졌다. 조정은 김시양(金時讓)을 도원수로, 이완(李浣)을 평안병사로 임명하여 서북으로 내려보내고 전국에 징병령을..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54) 후금, 조선에 배(船)를 요구하다 (54) 후금, 조선에 배(船)를 요구하다 2008-01-16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정묘호란이 끝난 뒤부터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까지 조선과 후금의 관계는 아슬아슬했다. 조선은 후금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바로 명과 가도라는 바깥 변수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53) 끝없는 가도의 風雲 (53) 끝없는 가도의 風雲 2008-01-09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인조가 원종 추숭을 위해 골몰하고 있을 때 가도의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반란을 일으켜 조선의 정벌 대상이 되었던 유흥치(劉興治)는 조선에 대한 물자 징색(徵色)을 멈추지 않았다. 유흥치를 토벌..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52) 인조의 생부 정원군 추승 논란 (52) 인조의 생부 정원군 추승 논란 2008-01-02 22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명 조정이 후금의 반간계에 넘어가 원숭환을 처형하는 등 자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던 무렵, 조선에서는 인조의 생부(生父) 정원군(定遠君)을 국왕으로 추숭(追崇: 돌아가신 분의 지위를 뒤 시기에..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51) 원숭환의 죽음과 그 영향 (51) 원숭환의 죽음과 그 영향 2007-12-26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홍타이지의 반간계에 휘둘리고, 엄당의 참소가 곁들여져 원숭환에 대한 반감과 증오가 높아 가던 분위기 속에서 엄당 계열의 온체인(溫體仁)은 다섯 차례나 상소를 통해 원숭환을 죽이라고 촉구했다.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50) 자멸의 길로 들어서다 (50) 자멸의 길로 들어서다 2007-12-19 28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우여곡절 속에 조선이 후금과의 관계를 힘겹게 이어가고 있을 무렵 명의 정세는 어떠했는가? 후금의 위협이라는 커다란 외환(外患)을 앞에 두고 명은 이런저런 내우(內憂)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극..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49) 우여곡절 속 후금과의 관계 (49) 우여곡절 속 후금과의 관계 2007-12-12 24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정묘호란 직후 조선은 후금에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모문룡을 비롯한 한인(漢人)들의 비방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후금 사자에 대한 접대나 그들과의 무역에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조선의 입장에서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48) 가도 정벌이 유야무야되다 (48) 가도 정벌이 유야무야되다 2007-12-05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가도 정벌 방침이 전격적으로 결정되자 신료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먼저 병조판서 이귀가 나섰다. 그는 ‘주장(主將) 진계성을 함부로 살해한 유흥치를 토벌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바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47) 친명의식(親明意識)의 고양과 가도 정벌 (47) 친명의식(親明意識)의 고양과 가도 정벌 2007-11-28 28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모문룡을 제거한 이후 원숭환은 가도( 島)에 대한 정비 작업에 나섰다. 부총병 진계성(陳繼盛)에게 임시로 가도의 군병들을 지휘토록 하는 한편, 유해(劉海)를 시켜 진계성을 보좌하도록..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