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원인, 알고보면 날씨 탓? 병자호란 원인, 알고보면 날씨 탓?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은 국방을 튼튼히 하지 못해 일어난 것일까? 예전의 기후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그 원인을 '소빙기의 기근과 자연 재난'에서 찾는 국내 학자들이 늘고 있다. 소빙기(1450년∼1850년). 이 시기 들어 지구 기온은 중세 온난기(900..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10.07.29
삼전도비는 청나라의 강요에 의해서 세웠는가? 삼전도비(三田渡碑)는 청나라의 강요에 의해서 세웠는가? - 김기남 삼전도비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 289-3(당시 경기도 삼전도)에 있는 청나라의 전승비이다. 병자호란 때 승리한 청나라 태종이 자신의 공덕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요구해 1639년에 세워졌다고 역사교과서나 문화재청 홈페이지의 삼..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9.06.06
(104, 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인조가 강화도로 들어갔다면 전쟁 양상 달라졌을 것” 2008-12-31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조선이 병자호란을 맞아 일방적으로 몰리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청군이 조선이 상..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9.05.14
(103) 환향녀의 슬픔, 안추원과 안단의 비극 환향녀의 슬픔, 안추원과 안단의 비극 사대부 집안 환향 며느리들 대부분 버림받아 ‘두 번 눈물’ 속환이나 도망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조선으로 돌아온 여인들(還鄕女) 앞에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족(士族) 부녀자들은 ‘오랑캐에게 실절(失節)한 여자’라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고..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9.05.14
(102)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③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③ 속환은 ‘사람 장사’… 혈육 눈앞에 두고 돈 없어 눈물만 당시 포로들을 속환해 오는 방식은 몸값을 누가 마련하느냐에 따라 크게 사속(私贖)과 공속(公贖)으로 나눠지고 있었다. 사속이란 일반 사민(士民)들이 스스로 마련한 몸값을 갖고 심양에 들어가 혈육을 데려오는 방..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9.05.14
(101)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②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② 병자호란 직후 청으로 끌려간 수많은 포로들은 어떤 고통을 겪었을까? 한마디로 그들 피로인(被擄人)들은 시종일관 끔찍한 고난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들의 고통은 청군에게 사로잡히는 순간부터 시작되어, 심양으로 끌려가는 과정에서, 심양에 도착한 이후에도, 도망이..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9.04.17
(100)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① (100)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① 50만명 ‘포로 사냥’ 희생양… 사고 팔리는 노예로 2008-12-03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우리가 끌고 가는 조선인 포로들 가운데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탈출에 성공하는 자는 불문에 부친다. 하지만 일단 강을 건너 한 발짝이라도 청나..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99) 조선, 혼돈 속 청의 번국 되다 (99) 조선, 혼돈 속 청의 번국 되다 청나라 “인조를 국왕에 봉하니 충성하라” 칙서 2008-11-26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청군의 철수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조정에서는 또 다른 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전란을 불러온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놓고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98) 인조, 백성에 사죄하다 (98) 인조, 백성에 사죄하다 “나 때문에 죄없는 모든 백성에 화 끼쳐 책임 통감” 2008-11-19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전란은 끝났지만 인조 정권 앞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당장 도성 안팎에 버려져 있는 시신들을 치우고, 하나 둘씩 모여드는 생존..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97) 가도의 동강진 무너지다 (97) 가도의 동강진 무너지다 2008-11-12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청은 병자호란을 통해 여러 가지를 얻었다. 우선 자신들을 끝까지 인정하려 들지 않았던 조선을 굴복시킴으로써 대외적으로 ‘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다른 측면의 소득도 짭짤했다. 망해가..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