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임진왜란, 누르하치, 그리고 조선, Ⅲ (6) 임진왜란, 누르하치, 그리고 조선 Ⅲ 2007-02-15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1405년 퉁밍거티무르가 입조(入朝)해 건주위도지휘사에 임명된 이래 명의 여진족에 대한 포섭작업은 가속이 붙었다. 영락제(永樂帝)는 1409년 흑룡강, 우수리강 유역의 광활한 지역을 총괄적..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5) 임진왜란, 누르하치, 그리고 조선, Ⅱ (5) 임진왜란, 누르하치, 그리고 조선, Ⅱ 2007-02-08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임진왜란 초 일본군에 밀려 의주까지 쫓겨갔던 조선은 누르하치의 원병 제의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쟁 이전까지, 두만강 너머에 살고 있던 여진족들로부터 간헐적으로 침략을 받은..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4) 임진왜란, 누르하치, 그리고 조선, Ι (4) 임진왜란, 누르하치, 그리고 조선, Ι 조선이 中華에 빠진 틈타 누르하치 여진 통합 2007-02-01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1592년의 임진왜란은 병자호란보다 44년이나 먼저 일어났지만, 1583년 군사를 일으켜 주변의 여진족 정복에 나섰던 누르하치에게 임진왜란이 일..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3) 여진족과 만주, Ⅱ (3) 여진족과 만주, Ⅱ 2007-01-25 26면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자의 블로그 보기 --> 청나라의 시조 누르하치가 장차 동북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대격변의 첫걸음을 내디딘 해는 1583년이었다. 이 해부터 시작해 1626년 사망할 때까지 누르하치의 일생은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전쟁은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2) 여진족과 만주, 1 (2) 여진족과 만주,Ⅰ 조선 사회에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남긴 병자호란의 발발은 16세기 후반∼17세기 중반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이른바 명청교체(明淸交替)의 여파가 조선으로 밀어닥친 결과였다. 명청교체의 주역은 여진족(女眞族)이었다. 그들은 병자호란 7년 뒤인 1644년 베이징을 접수하고 마침..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
(1) 10만 포로의 눈물 10만 포로의 눈물 조선은 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비참한 환란을 겪어야 했을까. 한마디로 17세기초 명 · 청 교체기의 격랑 속에 조선 지배층이 국제정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370년이 되는 해이다. 북핵 문제를 놓고 6자 회담이 여전히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008.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