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분류 전체보기 3137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정문부, 왕자를 팔아넘긴 국경인을 진압

왕자(임해군, 순화군)를 팔아넘긴 국경인과 그를 진압한 정문부 정문부 장군의 초상. 장군의 호는 농포(農圃), 시호는 충의(忠毅)다. 1588년(선조 21)생원이 되고 문과에 급제, 북평사(北評事)가 되었다. 1592년 회령의 국경인 등이 반란을 일으켜 임해군 등을 일본군에 넘겨주자 의병대장이 되어 반역자들..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남명 조식, 칼을 찬 유학자의 올곧은 기상

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의 올곧은 기상 조선 중기의 뛰어난 학자이자 교육자였던 남명 조식의 영정 사진. 경(敬)과 의(義)를 함양하고 실천할 것을 강조했던 그의 학풍과 교육관은 16세기 조선에서 아주 이채롭고도 소중한 것이었다. [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 제공] “전하의 국사(國事)는 이미 글러먹..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황수신과 이극돈, 사관의 사후 평가는 냉정했다

황수신과 이극돈 … 사관의 사후 평가는 냉정했다 명재상 황희와 아들 황수신을 모신 창계서원(創溪書院). 전북 장수군 장수읍 선창리에 있다. [출처=문화재청 홈페이지] 세종대의 명재상 황희에게는 아들 삼형제가 있었다. 치신(致身) · 보신(保身) · 수신(守身)이 그들로 모두 높은 벼슬을 지냈다. ..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홍순언과 석성, 명나라 기녀와의 기묘한 인연

명나라 기녀를 둘러싼 홍순언과 석성의 기묘한 인연 석성(石星)의 초상화. 그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병부상서로 조선에 원군을 파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빌미가 되어 강화 실패의 책임을 지고 처형되는 비운을 겪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홍순언(1530∼1598)은 역관(譯官)..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최부 - 구사일생 고국귀환,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

최부의 구사일생 고국 귀환,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 1487년(성종 18) 11월 교리 최부(崔溥 · 1454~1504)는 삼읍추쇄경차관(三邑推刷敬差官)이란 직함을 갖고 제주도에 도착한다. 육지에서 제주도로 도망쳐 들어간 죄인들을 색출하고 노비와 목장 행정을 살피라고 파견된 특별 어사였다. 그런데 이듬해 1월 30..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반체제’ 대자보 붙이고 내용을 전파한 사람들

‘반체제’ 대자보 붙이고 내용을 전파한 사람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왼쪽)와 통영시 문화동에 서 있는 장승. 장승은 마을이나 사찰 입구 등에 세워져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존재였다. 조선 후기에 부착된 괘서 가운데는 장승에 붙여진 것이 특히 많았다. 이진화..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김상용, 비흡연으로 명예회복한 병자호란 충신

비흡연으로 명예회복한 병자호란 충신 김상용 조선시대의 재떨이와 담뱃대(장죽 · 사진 위). 담배와 흡연 문화가 확산되면서 재떨이와 담뱃대(장죽)도 조선 중기 이후 사랑방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재떨이는 본래 목제가 주종을 이뤘는데 때로는 가죽, 도자기 등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담뱃대는..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박연과 하멜, 그리고 미우라 안진

박연, 하멜, 그리고 미우라 안진 제주도에 표착한 하멜 일행이 난파선에서 내려 상륙하는 장면. 하멜 일행은 애초 대만에서 일본의 나가사키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 이 장면은 하멜이 조선 탈출 이후에 썼던 『조선유수기』에 실려 있다. 1653년(효종 4) 8월 제주도에 표착(漂着)했던 하멜 일행은 제주목..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포로 안단, 38년만에 탈출했으나 청에 돌려보냈다

38년 만에 탈출한 포로 안단, 조선은 도로 청에 돌려보냈다 현재의 봉황성. 봉황성은 명·청 시대 단둥(丹東)에서 랴오양(遼陽)·선양(瀋陽)으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청 시절에는 봉황성 장군이 주차하면서 조선과의 교섭을 담당했던 곳이다. 안단은 천신만고 끝에 탈출, 귀국했지만 의주에서 붙잡혀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