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지켜(연재자료) 554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최부 - 구사일생 고국귀환,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

최부의 구사일생 고국 귀환,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 1487년(성종 18) 11월 교리 최부(崔溥 · 1454~1504)는 삼읍추쇄경차관(三邑推刷敬差官)이란 직함을 갖고 제주도에 도착한다. 육지에서 제주도로 도망쳐 들어간 죄인들을 색출하고 노비와 목장 행정을 살피라고 파견된 특별 어사였다. 그런데 이듬해 1월 30..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반체제’ 대자보 붙이고 내용을 전파한 사람들

‘반체제’ 대자보 붙이고 내용을 전파한 사람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왼쪽)와 통영시 문화동에 서 있는 장승. 장승은 마을이나 사찰 입구 등에 세워져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존재였다. 조선 후기에 부착된 괘서 가운데는 장승에 붙여진 것이 특히 많았다. 이진화..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김상용, 비흡연으로 명예회복한 병자호란 충신

비흡연으로 명예회복한 병자호란 충신 김상용 조선시대의 재떨이와 담뱃대(장죽 · 사진 위). 담배와 흡연 문화가 확산되면서 재떨이와 담뱃대(장죽)도 조선 중기 이후 사랑방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재떨이는 본래 목제가 주종을 이뤘는데 때로는 가죽, 도자기 등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담뱃대는..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박연과 하멜, 그리고 미우라 안진

박연, 하멜, 그리고 미우라 안진 제주도에 표착한 하멜 일행이 난파선에서 내려 상륙하는 장면. 하멜 일행은 애초 대만에서 일본의 나가사키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 이 장면은 하멜이 조선 탈출 이후에 썼던 『조선유수기』에 실려 있다. 1653년(효종 4) 8월 제주도에 표착(漂着)했던 하멜 일행은 제주목..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포로 안단, 38년만에 탈출했으나 청에 돌려보냈다

38년 만에 탈출한 포로 안단, 조선은 도로 청에 돌려보냈다 현재의 봉황성. 봉황성은 명·청 시대 단둥(丹東)에서 랴오양(遼陽)·선양(瀋陽)으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청 시절에는 봉황성 장군이 주차하면서 조선과의 교섭을 담당했던 곳이다. 안단은 천신만고 끝에 탈출, 귀국했지만 의주에서 붙잡혀 도..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이순신 장군은 ‘대양 해군’의 선구자였다

이순신 장군은 ‘대양 해군’의 선구자였다 이순신은 국가적 추모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의 무속신앙에서도 화를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영험 있는 신(神)으로 숭배되었다. 과거 충남 홍성군에서 무당들이 신으로 모셨던 이순신의 모습. ‘사해(四海)대왕’이자 ‘장군신’으로 묘사돼 있..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이지란과 설장수, 조선에 업적 남긴 귀화외국인

조선에 큰 업적 남긴 귀화 외국인, 이지란과 설장수 고려 말 조선 초의 장군 이지란(1331~1402)의 초상화. 흔히 ‘퉁두란’으로 알려진 그는 여진족 출신으로 조선왕조 개국과 국방체제 정비 과정에서 커다란 공을 세웠다(경기도 박물관 소장).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 선조들의 행적은 이채롭다. 13세기 중..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류성룡, 일본과 명에서 첨단무기와 기술 빼내려..

일본 · 명에서 첨단 무기와 기술 빼내려 애썼던 류성룡 포르투갈을 통해 명나라에 들어간 불랑기포(사진 위)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조선에도 전해졌다. 15세기 말 유럽에서 처음 제작된 조총(사진 아래)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임진왜란 2년 전인 1590년 일본 사신이 선조에게 조..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임진왜란이 낳은 사연, ‘동래 할미’ 한평생

임진왜란이 낳은 사연 … ‘동래 할미’의 기막힌 한평생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이 일본군에 의해 포위된 모습을 담은 ‘동래부순절도’. 동래 할미도 성이 함락 되면서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육군박물관 소장) 이름 모를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원래 동래(東萊)의 창기였다. 1592년 임진왜..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남이흥장군, 사찰 때문에 군사훈련조차 못해 참패

사찰 때문에 군사훈련조차 못해 참패한 남이흥 장군 정묘호란 당시 안주성에서 장렬히 전사했던 평안도 병마절도사 남이흥 장군의 영정(의령 남씨 충장공파 대종중 소장). 1627년(인조 5) 1월 21일 새벽, 청천강을 건넌 후금 군대는 안주성(安州城)을 공격했다. 호각을 불며 북을 치고 깃발을 휘두르며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