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다시 읽기]

병자호란 원인, 알고보면 날씨 탓?

Gijuzzang Dream 2010. 7. 29. 19:18

 

 

 

 

 

 병자호란 원인, 알고보면 날씨 탓?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은 국방을 튼튼히 하지 못해 일어난 것일까?
예전의 기후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그 원인을 '소빙기의 기근과 자연 재난'에서 찾는 국내 학자들이 늘고 있다.

소빙기(1450년∼1850년). 이 시기 들어 지구 기온은 중세 온난기(900년∼1450년)보다 1℃ 떨어졌다.
알프스, 캐나다 등 고산지대 어디서나 이 기간 동안 빙하가 확장됐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소빙기 때 전세계는 여름철 기온 급강하로 흉년과 극심한 기근에 시달렸다.
특히 소빙기 중 최저 기온을 기록했던 17세기 전반은 전세계적 혼돈의 시대였다.
유럽에서는 기근과 함께 30년 전쟁(1618∼1648년)이 계속돼 '17세기 위기설'까지 나왔다.
중국에서는 1628년에 최악의 '산시 기근'으로 농민반란이 일어나 명나라가 망했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우박, 때아닌 눈과 서리를 비롯해 자연재해와 천재지변이 많았다.
병자호란, 당쟁, 인조반정, 이괄의 난, 장길산의 봉기가 모두 17세기에 일어났다.

한일 공동연구팀이 한반도에서도 소빙기의 증거를 찾아내 지난달 대한지질학회지에 발표했다.
연세대 염종권 박사와 유강민 교수(지질학)는
일본 교토대, 시네마대 연구팀과 함께 7년 동안 화진포와 송지호에 쌓인 퇴적층을 분석해
동해의 해수면 변화를 추적해 왔다.

동해 바닷가의 이 자연호수 밑바닥에 쌓인 퇴적층 성분과 생물은 당시의 환경을 말해준다.
연구팀은 호수에 1만년 동안 10m 두께로 쌓인 퇴적층에 11개의 시추공을 뚫었다.

시추공 분석 결과
해수면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두 개의 호수는
최근 1만년 동안 바닷물이 됐다 민물이 됐다를 6번이나 반복했다.
이를 토대로 해수면 변화를 추정한 결과 마지막 빙하기였던 1만년 전에는
동해의 해수면이 18m 낮았으나, 빙하가 녹으면서 바닷물이 불어 5500년 전에는 현재보다 2m가 높았다.

그러나 소빙기였던 400년 전에는 현재보다 해수면이 오히려 50㎝∼1m 낮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세계의 빙하가 확장하면서 해수면이 낮아진 것이다.
 
연구팀은 바닷물이 현재의 해수면보다 높았을 때 육지를 침식해 만든
테라스식 해안 단구와 파식대, 동굴을 호수 주변과 동해안 일대에서 수없이 많이 찾아냈다.

이처럼 지구의 기온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 데 대해서는
태양 복사열의 변화, 지구 자전축의 변화, 화산 활동 등 다양한 원인이 제시되고 있다.
그 원인의 하나로 서울대 이태진 교수(한국사)는 '외계 충격설'을 내놓고 있다.

이 교수는 세계 최장의 연대기인 조선왕조실록(1392년∼1863)에 나타난 운석과 유성 충돌 기록을 분석해
 '천체역학지'에 발표한 바 있다.
이 분석에 따르면 큰 운석이 떨어질 때 나타나는 화구(火球)형 유성이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집중 낙하해 전체 관측 기록 3400여개 가운데 3330개를 차지했다.
특히 17세기 100년 동안에는 무려 1500여개의 유성이 떨어졌다.

이 교수는 "운석 충돌로 먼지가 대기를 덮으면서 태양광선을 차단해 기온 강하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만주족이 남하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한반도에 처들어온 것도
기온 강하로 남쪽의 곡창지대를 찾아 내려온 것으로 보이고,
일본이 16세기에 전란 상태에 빠져 왜구가 출몰한 것도 자연 재난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400년 전 절정에 달했던 소빙기가 끝나면서 서서히 온도와 해수면이 상승하는 국면이다.
문제는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이 마치 기름에 물을 부은 듯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1세기 동안 지구의 기온은 0.5℃ 상승했고, 해수면이 매년 5㎜씩 상승하고 있다.

- 2002년 05월 06일 동아
 
 

 

엘니뇨가 명-청나라 몰락 불렀다

 
 

역사의 주체로서 인간 행위에 초점을 맞춰 왔던 근대역사학에 대한 도전으로서
기후의 영향을 강조하는 연구들이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자연재해와 유교국가’(일조각)는 중
국 한대(漢代)의 자연재해가 유교를 국가 이념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인 김석우 박사의 2003년 서강대 박사학위논문을 발전시킨 이 책은
중국 한대 역사기록에 나타난 자연재해와
이에 대응하는 황정(荒政 · 기근 때 백성을 구하는 정책)을 분석했다.

“중국 24사 전체가 재황(災荒)사가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
양의 사서에는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에 대한 기록이 수두룩하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부덕한 정치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이해한 재이(災異)사상의 산물로 간주해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한대의 재해기록 중 70%는 신뢰할 만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중 전한(前漢)시대는 한대부터 당대까지 1000여 년 중국역사에서
황허(黃河) 강의 범람피해가 가장 컸고, 한시대는 청대 다음으로 지진피해가 컸다.
이렇게 점증하는 자연재해는 통일국가시대인 한대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됐다.
가의 안정적 유지가 국정운영의 첫 번째 목표가 됐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이 과정에서 ‘유교의 국교화’에서 ‘제국의 유교화’로 옮겨갔다고 주장한다.
전자가 황제통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유교를 적극 동원했다면
후자는 자연재해 증가로 인한 민심이반을 막기 위해
민본주의를 강조하는 유교를 수동적으로 채택했다는 설명이다.

‘엘니뇨: 역사와 기후의 충돌’(새물결)은
세계적 기상이변의 주범으로 꼽히는 엘니뇨가 인류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추적했다.
 
이 책은 1812년 나폴레옹 군대와 1941년 히틀러 군대의 러시아침공 실패가
엘니뇨로 인한 혹한의 결과이며
중국 명과 청의 몰락도 각각 1640∼41년과 1877∼78년 엘니뇨에 의한 대기근의 산물임을 주장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최근 열린 한림과학원 수요세미나에서
조선왕조실록 상의 기상이변의 83%가 1500∼1750년에 집중됐으며
이는 17세기 유성(운석)과 혜성 등의 지구 대기권 진입으로 인한 기상이변이 급증했다는
유럽의 ‘외계충격설’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런 기상이변은 종교와 연결돼 유럽에선
16세기 중반부터 나타난 ‘마녀사냥’과 종교개혁으로,
천재지변을 정치문제로 인식하는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선 사화와 당쟁으로 표출됐다”고 주장했다.
- 권재현 동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