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2. 장비의 주량은 얼마나 될까 ①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2) 장비의 주량은 얼마나 될까 ① 영웅호걸이 수없이 등장하는『삼국지』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장비의 술탐에 대한 설명이다. 유비 · 관우에 비해 명석하지는 않지만 용맹한 장비의 일화에는 술이 많이 나오는데 그와 술과의 관계는 명백하다. 장비가 술에 관한 한『삼국.. 지켜(연재자료) 2008.09.26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1. 삼국지를 다시 본다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1) ‘삼국지’를 다시 본다 삼국시대 형세도, 중앙 회색 부분이 삼국지의 격전장 형주이다. (자료 :『제갈량문화유산 답사기』) 『삼국지』 열기가 무섭다. 그동안 영화제작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되던 ‘삼국지’가 시리즈물로 제작되었고, L씨의 소설은 1,000만 부 이상 나.. 지켜(연재자료) 2008.09.26
[현대사 아리랑] 혁명가 이관술 - 끝없는 도주의 일생 [현대사 아리랑] ‘끝없는 도주’ 일생 이관술 땅불쑥하였던 수더분한 혁명가 옥중에서 이관술. <사회평론 제공> "나의 과거 생활 중 가장 유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체포되었을 때 박헌영 동지와 동생 순금의 주소를 말하라고 무서운 고문을 당할 때 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대 기로에 처했는.. 지켜(연재자료) 2008.09.26
[현대사 아리랑] 이재유(李載裕) - 30년대 사회주의운동의 신화적 존재 [현대사 아리랑] '경성트로이카’ 이재유 30년대 사회주의 운동의 신화적 존재 <푸른역사 제공> “이재유(李載裕) 동지. 1905년 함경도 삼수(三水)에서 출생하여 공부하러 도일하여 연수학관에서 1년간 수학하다. 그후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재일본노총위원이 되었으며 또 일본총국 당원이었다. 1928.. 지켜(연재자료) 2008.09.26
[현대사 아리랑] 김단야(金丹冶) [현대사 아리랑] 붉은 광장에 떨어진 붉은 꽃, 김단야(金丹冶) 약관의 스물, 독립운동계 맹장으로 우리나라의 초기 조선사회주의운동사에서 박헌영과 쌍벽을 이룬 김단야. <역사비평사 제공> "김단야(金丹冶 · 경북 김천 출생 · 46세)씨. 대구고보를 졸업하고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1920년에 체.. 지켜(연재자료) 2008.09.26
[현대사 아리랑] 무정(武亭) 장군 - 조선의용군 총사령관 [현대사 아리랑] 백발백중 조선의용군 총사령 무정 조선의용군 8만명 종로행진 계획 무정 장군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동무들! 오늘 아침에 말씀드릴 것은 금년에 있어서 우리가 응당 하여야 할 생산공장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문제다. 작년에 생산공장에 참가하여 본 여러 동무들은 다 아시.. 지켜(연재자료) 2008.09.26
[현대사 아리랑] 여류혁명가 김명시 [현대사 아리랑] '태중(胎中)에도 감옥살이' 여류혁명가 김명시 광막한 만주벌판 말달리던 ‘여장군’ 크지 않은 키. 검은 얼굴. 야무지고 끝을 매섭게 맺는 말씨. 항시 무엇을 주시하는 눈매. 온몸이 혁명에 젖었고 혁명 그것인 듯이 대담해 보였다. “투쟁하신 이야기를 좀 들을까요.” “열아홉 살 .. 지켜(연재자료) 2008.09.26
[현대사 아리랑] 김원봉 - 의열단 의백 [현대사 아리랑] 의열단 의백 김원봉 ① 암살대상자 ‘칠가살’ 명단 작성하다 미소공동위원회 환영 시민대회에서 연설하는 김원봉. <시대의창 제공> “아무래도 여기를 떠야 할 것 같구려.” “뜨시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 인민공화당 당직자들을 바라보던 김원봉 당수.. 지켜(연재자료) 2008.09.26
[현대사 아리랑] 여운형 ② '세계사적 개인'이었던 민주주의자 [현대사 아리랑] ‘세계사적 개인’이었던 민주주의자 - 여운형 ② 박헌영과 쌍벽 이룬 조선의 혁명가 몽양 여운형 몽양 선생은 돌아가실 때까지 수많은 살해 위협에 시달렸으니, 큰 것만 골라도 12번이다. 민족사의 큰 별이 떨어진 비극의 그날 하오 1시. 몽양이 탄 차가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렀을 때.. 지켜(연재자료) 2008.09.26
[현대사 아리랑] 여운형 ① - '세계사적 개인’이었던 민주주의자 [현대사 아리랑] ‘세계사적 개인’이었던 민주주의자 여운형 ① 22세에 스스로 노비 해방시키다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두물머리 거쳐 양서면 신원리로 갔는데, 묘꼴이었다. 몽양(夢陽) 선생 생가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원역 굴다리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고, 어욱새 더욱새 덕갈나무 메마른.. 지켜(연재자료) 2008.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