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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국가첩(桃菊佳帖》- 아회도(雅會圖) 속의 멋과 운치

Gijuzzang Dream 2010. 11. 2. 19:12

 

 

 

 

 

 

 

 아회도(雅會圖) 속의 멋과 운치 - 《도국가첩(桃菊佳帖》

 

 

 

 

1778년(정조 1) 12명의 선비들이 한적한 야외에 모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시주(詩酒)를 즐기며 친목을 나누는 자리였다.

사교와 인적 관계망을 중시한 선비들의 일상이자 여가문화의 일면이다.

참석자들은 즐거운 한 순간을 그림으로 남겨 화첩을 꾸몄다.

복숭아꽃과 국화가 만개한 봄, 가을에 한 번씩 가진 모임인 듯 《도국가첩(桃菊佳帖》이라 제목을 붙였다.

 

그런데 화첩에 주인공들의 신상 기록이 빠져 있어 인물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다.

다만 서문을 쓴 이득종(李得宗, 1718-?)의 이름만이 확인되는데

이 화첩을 소장한 해주오씨(海州吳氏) 가문과 인척인 인물이다.

한편 모임의 규약에 관직명이 적혀 있어 벼슬을 했거나 현직 관료들의 모임일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모임에는 으레 중국의 고사(故事)를 빌어 의미를 부여했다.

문사들의 풍격을 상징하는 ‘난정수계(蘭亭修禊, 그림 1)’나 ‘서원아집(西園雅集)’이 대표적 예이다.

그래서 모임을 기념한 화폭에는 주역들이 고결한 은자(隱者)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도국가첩(桃菊佳帖》속의 장면은 매우 현실적이다. 고사나 고상함에 대한 동경은 찾을 수 없다.

이러한 분위기는 서문에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수계와 비교해도 풍류의 절정(絶頂)만은 양보할 수 없다”

고 한 대목처럼 자긍심을 한껏 드러낸 것이다.

   

 

 

그림 1. <난정수계도>, 조선후기, 선문대학교 소장

 

 

《도국가첩(桃菊佳帖》에 실린 가을 장면의 그림 한 폭을 열어보자.

그림 속의 공간은 누군가의 집 후원(後園)인 듯한데, 주변 배경에는 울긋불긋 가을색이 완연하다(그림 2).

시를 써서 함께 감상하는 인물, 한담(閑談)을 나누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

한가로이 망중한을 즐기는 자태 등이 눈길을 끈다(그림 2-1).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도 보기 드문 선비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그림 한 쪽에는 시동(侍童)들이 만개한 국화꽃을 따 술동이와 술잔에 띠우고(그림 2-2) 있는데

술 한 잔에도 운치가 넘친다.

언뜻 산만해 보이기도 하지만 구성원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구애받음 없어 자유롭기만 하다.

중국의 ‘아집도(雅集圖)’나 ‘아회도(雅會圖)’에 보이던 이상한 요소들이

현실의 공간과 인물로 확연히 바뀐 모습이다.

 

그림 2.《도국가첩(桃菊佳帖》가을 장면

1778년, 한국학중앙연구원 기탁자료(해주오씨 추탄가문)

 

그림 2-1. 《도국가첩(桃菊佳帖》부분

 

 

그림 2-2. 《도국가첩(桃菊佳帖》부분

 

 

그런데 이 모임에는 독특한 규약(規約-帖憲)이 하나 있었다.

금전을 모아 이자를 늘리는 식리(殖利) 활동을 겸한 것이다.

화첩 뒤편의 규약(規約-帖憲)에는 계원들들이 일년에 두 번 돈을 내는 등 금전 관리에 대한 조항과

이를 어겼을 때의 벌칙 등을 적어 놓았다(그림 3).

조선후기 선비들의 아회(雅會)가 저변확대를 이룸에 따라

식리를 목적으로 한 일반 계(契)와 유사한 성격으로 변모해가는 현상이다.

한편으로 지위나 재력을 바탕으로 한 규약은

구성원들의 멤버십을 규정하고 지키기 위한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그림 3.《도국가첩(桃菊佳帖》의 규약(帖憲)

 

 

이들이 모임을 가진 사연을 속속들이 알 수 없지만

추색(秋色)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는 그윽한 국화향기만큼이나 여유와 멋스러움이 잘 드러나 있다.

빛바랜 화첩 속에 간직된 약 230여 년 전 어느 가을날의 정경이다.

- 윤진영, 장서각 선임연구원

-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AKS Vol. 22(2010. 11) ‘옛사람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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