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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불화 '감로도' 일본에서 400년만의 귀환

Gijuzzang Dream 2010. 11. 4. 17:20

 

  

 

 

 

 

 

 조선 불화 '감로도'

 

400년만의 귀환 , 日 주지 스님 자발적 기증


 

 

  

일본에서 돌아온 16세기의 감로도.

테두리의 장황은 일본으로 유출된 뒤 덧붙여진 것이다.

 

 

  

임진왜란 무렵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이는 보물급 조선 전기(16세기) 대형 불화 1점이

일본인의 기증으로 돌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본 교토의 사찰 류간지(龍岸寺) 주지 에지마 고도(江島孝導ㆍ63)씨가

겐로쿠(元祿ㆍ1688~1703) 시대부터 이 절에 소장되어 왔던

조선 전기의 감로도(甘露圖)를 최근 기증해왔다고 밝히고 공개했다.

 

 

감로도의 전체 크기는 322×281cm, 화면 크기는 240×245cm이다.

이 감로도는 지금까지 알려진 16세기 감로도 중 비교적 대형에 속하며,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最古) 감로도인 충남 금산군 보석사 감로도(1649년작)보다
제작시기가 앞선 것으로 추정되며, 문화재 지정이 유력하다고 박물관측은 밝혔다.
 

'감로도'는

부처의 수제자인 목련존자가 죽어서 아귀도에서 먹지 못하는 고통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의식을 베푸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동아시아의 불화 중 국이나 일본에는 없으며 효(孝)가 중시된 조선에서 16세기 무렵부터 제작된 불화다.

감로도는 불교 사상에 유교의 효 사상, 민간신앙을 조화시켜
인간의 삶과 죽음, 죽음 뒤의 세계를 묘사한 그림인데 남아 있는 그림이 많지 않아 가치가 높다.  
 
 

 
이 기증받은 감로도는

대형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일곱 화폭을 이었는데, 그림에 화폭을 이은 세로선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일본으로 건너간 뒤. 테두리의 장황(裝潢, 비단이나 종이로 화첩 등을 꾸미는 것)을 새로 했는데,

윗부분에 17세기 일본 천황과 쇼군들의 불교식이름인 '계명(戒名)'이 쓰여 있어

이들이 장황을 할 때 시주를 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감로도의 상태는 화면 일부에 긁힘과 일부 결손부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화면 중앙에 놓인 시식단과 상부에 그려진 일곱 부처의 모습

그림 상단에는 아미타여래 등 일곱 부처가 죽은 영혼을 구제하는 설법을 하고 있고,
화면 중앙에는 공양과 꽃 등 거대한 시식단(施食壇)이 차려져 있다.
칠기와 목기, 금속기로 추정되는 다양한 그릇의 묘사가 눈에 띈다.
좌측에는 역대 제왕․ 왕후․ 신하의 모습이 보이는데,
유교와 도교 선인들이 함께 등장하며 비중 또한 크게 도예된 것이 특징이다.

반대편에는 의식을 진행하는 승려들이 다수 눈에 띈다.
진행을 맡은 승려로 보이는 사람이
불교 의식에 쓰는 금강령을 들고 의식 메뉴얼로 보이는 종이를 바라보는 모습이 선명하다.
정명희 학예연구사는 "실제 있었던 일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라고 설명했다.
 

화면 우측의 승려들.

일본에서 새로 써넣은 우측의 이름들이 정확히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화면 하단에 있다.
하단에는 아귀(배고픔에 허덕이는 귀신) 세 명과 여러 비참한 죽음들이 고통스럽게 묘사돼 있다.
오른쪽에는 현실 인물이, 왼쪽에는 천계와 도교 선인 등 불교 제사의식인 수륙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빼곡하게 도상돼 있다.

탐욕의 대가로 아귀가 되는 벌을 받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뚜렷하다. 목련존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비참한 죽음을 맞은 여러 영혼이 의식에 참석해
부처의 가르침인 감로(甘露)를 받아 구제받는 과정이 한 화면에 그려져 있다.
'감로(甘露)'는 '단 이슬'로 부처님의 설법을 의미한다.
정명희 학예사는 "지옥에 빠진 중생은 어떤 음식으로도 구제가 되지 않으며
오로지 감로를 통해 구제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면 중앙 하단의 아귀(왼쪽) / 화면 우측 하단의 호랑이 (오른쪽)

 

오른쪽 아래 구석에는 호환을 맞아 죽음에 이르는 영혼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 장면의 호랑이와 나무 등에 아름다운 묵선과 묘법이 드러나 이 감로도의 예술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먹선으로 인물의 윤곽을 그려 영혼임을 표시하는 기법은 지금까지 18세기 양식인 줄로 알았는데
이번 감로도의 발견으로 16세기부터 있던 양식임이 밝혀졌다.  
박물관측은 이 같은 양식으로 미뤄 이 감로도가 16세기에 제작돼
수륙재(水陸齋ㆍ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에게 공양을 드리는 불교 의식) 등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감로도는 일본 교토에 있는 류간사(龍岸寺)에 전래되어 오던 것으로,

일본의 겐로쿠(元祿, 1688~1703) 시대부터 소장되어 온 것으로 전한다.

 

일본에서 이 감로도를 인수해온 박방룡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에 의하면,

이 감로도는 원래 존재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난 8월 말경 경주박물관과 일본 나라박물관의 학술교류로 일본을 방문한

경주박물관 김승희 학예실장에 의해 존재가 확인됐다고 한다.

기증자 에지마 고도(江島孝導) 주지스님

김승희 학예실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관서학원대학 문학부 니시야마 마사루 교수와 함께 일본 교토에 위치한 류간사(龍岸寺)를 방문해 감로도를 발견했다.

감로도가 귀중한 유물인지 잘 모르고 있던 주지스님 에지마 고도(江島孝導, 63세)는 "지난 8월말 에지마씨가 류간지를 방문한 한국인 연구자에게 '한국에서 아주 귀하게 여기는 불화이니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의사를 밝혀 이후 절차를 밟아 국내로 모셔왔다"고 말했다.

  

아무런 조건도 내걸지 않은 `아름다운 기증`이자 자발적인 문화재 반환 사례다.
한 달 뒤인 9월 3일 스님은 정식으로 박물관에 기증희망 서류를 제출했고

또 한 달 뒤인 10월 2일 이 불화가 고국 땅을 밟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기증이 일본으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가

일본인 소장자의 자발적 의사로 우리나라에 되돌아온 모범사례로 보고,

기증받은 감로도에 대한 응급 보존처리와 수입 등록(증7551)을 마쳤으며

본격적인 보존처리가 완료되는 내년 봄쯤 특별공개회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향후 조선시대 불교회화사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개관 이래 23명의 일본인으로부터 1,444점의 우리 문화재를 기증받았다.

이 중 최대 기증자는 1987년 기와 1,082점을 기증한 이우치 이사오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불화를 기증받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 2010/11/02  ⓒ 한국일보 ⓒ 유니온프레스 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