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골목이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그저 통과하는 공간이다. 익
명성의 사람들이 오가는 그런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김기찬의 골목은 닫힌 문 사이에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마치 주거의 확장된 공간인 마당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단순한 친교의 장소를 넘어 집의 연장된 공간으로 존재한다.
골목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돗자리에 배를 깔고 숙제를 하는 아이들,
전기 줄에 매달린 빨래, 동네 여자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우리는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다른 집을 거리낌 없이 들여다 볼 수 있음으로 해서 오는 불편함도 존재했다.
때로는 악다구니를 하며 싸우기도 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어울리기도 했던 곳,
한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가난하지만 삭막하지 않은 공간,
타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웃은 가족이며 형제자매였던 것이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골목 안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
김기찬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단지 연민이나 추억이 아니다.
그는 관찰자가 아니라 이들과 동화되어 있다.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클로즈업한 강렬한 사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마음이 약해서 그런지 코
앞에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그런 일은 잘 못하겠어요.
설사 몇 장 그렇게 찍었다 해도 그건 내 사진이 아닌 것 같아서 결국 고르지 않게 되더라구요.”
너무나 가난해서 카메라를 꺼내기도 미안했던 시절,
그는 골목안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기보다는 송구스런 마음에 조심조심 사진을 찍어갔다.
그렇게 찍은 사진에는 골목안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이 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뒤편으로 보이는 현대식 높은 빌딩은 현실의 벽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골목에 드리운 긴 그림자에서도 막막함이 전해진다.
비록 그들의 빈곤이 절망적이지 않을지라도 현실의 갭은 우울해 보인다.
“어느새 나는 긴 여름날 인적 없는 뙤약볕 밑에
볼품없는 내 그림자 하나만을 땅바닥에 떨어뜨린 채 골목 안을 들어선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골목 안 풍경에 이입시키고 있다.
아파트의 닫힌 공간, 너와 나만이 존재하고 ‘우리’가 없는 오늘날 도시정서와 대조적인 곳,
소박한 골목 안 풍경에서 김기찬은 ‘사람 사이(人間)’의 ‘삶’을 발견했다.
그에게 골목 안은 어떤 곳보다도 넓은 세계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