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오딧세이]

[간도 오딧세이] 43. 백두산 정계비 ‘2008년판 사진’ 등장

Gijuzzang Dream 2008. 12. 20. 20:40

 

 

 

 

 

[간도오딧세이] 백두산 정계비 ‘2008년판 사진’ 등장 

 

 

 

 

 

 

 

닉네임 ‘초석’이 공개한 백두산 정계비 터(오른쪽 아래).

 

 

최근 한 인터넷 블로그에 백두산 정계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행 관련 블로그인 ‘이 땅에서 잘 놀기’(http://blog.ohmynews.com /cornerstone/)에

정계비 사진이 실렸다. ‘초석(kmdendo)’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블로그 관리자는

지난해 8월 말 북한 땅을 통해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이 관리자는 백두산을 오르면서 찍은 80여 장의 사진을 올렸다. 이중 한 장의 사진이 정계비를 담고 있다.

2005년 고구려연구재단(현재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통합)의 연구원들이 북한을 방문해 사진을 찍으면서

정계비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우리에게 공개된 적이 있다.

정계비는 1931년 7월 28일 없어졌으나 정계비를 세웠던 주춧돌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땅에서 잘 놀기’ 블로그의 관리자가 공개한 사진은 ‘2005년 사진’의 최신판인 셈이다.

닉네임 ‘초석’은 뒤늦게 이 사진의 오른쪽 귀퉁이에 찍힌 표석이 정계비임을 알게 됐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게 일제시대에 사라진 백두산 정계비의 자리란 말인가?”

“사진 속 돌덩이 하나와 흰 비석이 정녕 그 자리란 말인가?”라고 언급하면서

“북방 영토 분쟁의 중심에 서 있는 역사의 장소가 어떻게 저런 황량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의심이 갔다”고 덧붙였다.

 


추춧돌 주변 모습까지 알 수 있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수많은 남쪽 인사가 북한땅을 밟고 백두산으로 올랐다.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 있었지만 정계비는 이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장군봉 바로 밑의 새로운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서 차들은 더 아래에 있는 주차장을 그냥 지나쳤다.

이 주차장에 있는 경비초소의 왼쪽 편에 정계비터가 있다.

경비초소가 있어 잘 보이지 않을 뿐더러 군사 관련 시설이라 근처에 다가갈 수 없었다.

심지어 한 방송사가 백두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각 분야 전문가들과 백두산 인근을 샅샅이 촬영했지만 백두산 정계비의 모습은 찍지 못했다.

백두산 정계비가 분단 후 50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것은

한국과 중국의 영토 분쟁의 역사물이라는 이유로,

북한이 중국을 의식해 일부러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유는 백두산 정계비가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워지면서 관심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북쪽을 통해 백두산을 찾은 인사들은 북측의 안내대로 장군봉과 천지를 방문했지만,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길 옆의 정계비의 존재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

닉네임 ‘초석’이 공개한 2008년 8월의 정계비 사진은 2005년 7월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 두 사진을 그대로 제시해 비교했다.

다만 다르다면, 2005년 공개된 사진들이 정계비 주춧돌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면

닉네임 ‘초석’의 사진은 주춧돌 주변을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준다.

주차장을 경계짓는 돌기둥과 쇠고리가 보이고, 주춧돌 바로 밑에 낮은 석축이 쌓여 있다.

이 석축은 쌓은 지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2005년 초 정계비터의 위치를 추정하면서 그 근거로 보도한 1997년 KBS의 백두산 다큐에서는

정계비 밑의 석축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때 이후 돌기둥과 쇠고리로 주차장을 정비하면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정계비 사진을 실은 닉네임 ‘초석’의 블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초라한 모습의 백두산 정계비,

북측으로서야 가장 강력한 우방이고 영향력이 엄청난 중국과의 관계라

내놓고 치장하고 떠들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북방 영토와 동북공정 문제는

아무래도 북측보다는 중국에 자유로운 남측이 열심히 싸워줘야 한다.”

- 윤호우 기자

- 2009 02/10   위클리경향 8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