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오딧세이]

[간도 오딧세이] 44. '지리적 진실'은 조작할 수 없다

Gijuzzang Dream 2008. 12. 20. 20:41

 

 

 

 

[간도오딧세이] ‘지리적 진실’은 조작할 수 없다 

 

 

 

 

 

 


국회도서관에서 1975년 발행한

‘간도영유권 관계 발췌문서’에는

토문강 답사보고서의 원문(사진)과

번역본이 실려 있다.

1907년 간도 용정에 통감부 파출소를 설치한 일본은

곧바로 토문강 답사에 들어갔다.

당시 파출소장인 사이토(齊藤季治郞)가

10월 18일 통감공작인 이토 히로부미에게 보낸

토문강 답사보고서가 이 사실을 말해준다.


1975년 국회도서관에서 발행한

‘간도영유권 관계 발췌문서’

이 답사보고서의 번역본이 실려 있다.

이 답사보고서는 일본 외무성 육해군성 문서 중 하나다.

. . .
(9월) 18일 비로소 분계비가 있는 분수령에 달하다.

먼저 분계비가 있는 곳에 이르러 비면의 문자를 등사하고 또 비를 촬영한 후 곧 측도(測圖)에 착수하여 토문강을 따라 답사한 결과 다음 사실을 확인하였다.

 

분계비에서 동북으로 향해 하나의 곡지(谷地)가 있다.

이것이 바로 토문강의 본원이며 그 동측에는 높이 약 3척, 면적 약 1평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2~3m 내지 100m가 떨어지다.

100m의 곳은 비로 인해 갈라져 석퇴(石堆)가 붕괴한 것 같다)

석퇴(둥근 돌을 쌓은 것으로 그 형상은 흙만두와 같았다)가 점점으로 서로 이어졌고

그 연장은 약 7000m에 달하다.

그 종말점에 높이 약 100m의 단애가 있는데 소위 토문이라 칭하는 것이 이것인 것 같다.

이하 하천의 형상을 따라 울창한 대삼림 속으로 달려 약 4리 가니 방향을 북으로 돌린다.

. . .(중략) . . .

방향을 북으로 돌리고 나서는 약 18리 지나 곧 낭낭고(일명 연일고) 부근에 이르러

다시 방향을 서(西)로 돌려 소사하를 거쳐 드디어 송화강으로 들어간다.


일본 간도 파출소도 토문강 물줄기 확인

통감부 간도 파출소의 일행은 1907년 백두산 정계비를 직접 답사하고

정계비의 물줄기를 끝까지 추적했다. 만주땅을 차지하려는 일본의 야심이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답사보고서는 현지 답사에서 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당시 석퇴가 존재하고 있었던 점, 석퇴의 끝에 토문강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단애가 있었던 점,

정계비에서 시작한 토문강 물줄기가 결국 송화강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점은

그때 당시 간도 파출소에서 파견된 일행이 확인한 객관적 사실이다.

1885년 을유감계담판(국경회담)에서도 조선의 감계사였던 이중하는

청나라 측 관리들과 함께 정계비와 토문강 물줄기를 답사했다.

청나라 측 관리들이 이 객관적 사실 앞에 더 이상 말을 잃었음은 보지 않고도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청나라 측은 정계비가 옮겨졌느니,

백두산 정계비가 국경을 나타낸 것이 아니다라느니 억지 논리를 내세웠다.

 

역사적 사실이야 조작할 수 있지만 지리적인 사실은 조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백두산 정계비는 1712년 이후 줄곧 우리에게 무언으로 말하고 있다.
- 윤호우 기자

- 2009 02/17  위클리경향 8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