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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어보고(전시)

강운구 사진展 - 저녁에 Kangwoongu

Gijuzzang Dream 2008. 11. 19. 23:14

 

 

 

 

 

 

 

강운구 사진展 - 저녁에 Kangwoongu

 
2008년 9월27일-12월6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

 

 
 

40년간 우리나라의 흙과 땅을 찍어온 강운구.

그의 작품은 회귀본능을 일깨운다.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아늑한 자연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의 ‘저녁’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여러 겹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시간이다.

 

 

남해, 2007,

셀레늄 착색하여 영구 보존 처리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 11x14inch

 

김천, 2007, 14x11inch

셀레늄 착색하여 영구 보존 처리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

 

거제, 2008,

셀레늄 착색하여 영구 보존 처리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 11x14inch

 

 

문경, 2007,

셀레늄 착색하여 영구 보존 처리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 11x14inch

 

 

순창, 2008,

셀레늄 착색하여 영구 보존 처리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 11x14inch

 

 

담양, 1998,

셀레늄 착색하여 영구 보존 처리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 20x24inch

 

 

 

 

- 신동아 11월호

 

 

 

 

 

 

 

 

 

 

 

 

 

강운구는 호흡이 길다.

<저녁에>가 <마을 삼부작> 이후 칠 년 만에 하는 개인전이다.

더는 눌러 담을 수 없어 넘칠 때에라야 마지못해 展을 편다.

그래서 할 때마다 보통 개인전을 두 세 번은 할 만큼의 양을 쏟아 놓는다.

그러나 그는 횟수나 양 같은 것은 거의 염두에 두지 않고,

다만 깊이에 치중할 뿐이다.

 

강운구는 나이와 더불어 더 깊어져간다.

그는 종종 "쌀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는 밥이다"라고 했다.

"사진술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진은 기록성이 있는 사진이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의 기록은 이제 외면을 넘어서 내면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강운구는 스스로를 '내수(內需) 전용 사진가'라고 말한다.

그가 천착하는 내용은 과연 그러하며, 여기에는 '국제적' '세계적'이란 명분으로

정체성 없는 사진들이 범람하는 현상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담겨 있을 터이다.

 

<저녁에>는 '흙과 땅' '연속사진' 그리고 '그림자' 해서 삼부작인데,

모두 113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녁에>는 시간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여러 겹의 이미지가 교차하며 이루는 시간을 말한다.

 

강운구는 이전과는 달리, 흙과 땅에 각인된 사람 그리고 노동의 자취를 통한 간접화법으로

사람과 흙과의 관계에 밀도 짙게 접근한다.

한국의 토착문화가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되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 미미하게 존재를 연명해 나가거나

또는 사라져버리는 과정을 "의도적인 객관성"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더 정서적인 울림이 큰 작품들로 그이 '이름 값' 과 '나이 값'을 제대로 치르고 있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 면에서도, 디지털 사진이 범람하는 이때에,

강운구가 영구보존 처리하여 제작한 젤라틴 실버 프린트의 비교할 바 없는

아름다움과 기품을 보여주는 깊고 무게 있는 흑백 톤은 그가 뛰어난 장인이기도 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시인 이문재는 이번 사진집 <저녁에> 서문에서 강운구의 사진작업을

'강운구의 사진이 사십 년 넘게 천착해 온 대상이 흙과 땅, 농촌과 농부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단지 사라져가는 토착문화, 공동체문화에 대한 안타까운,

때로는 분노에 가득 찬 기록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동시에 인간의 지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사진가의 외침이다'고 했다.

 

모두가 농부의 후예인 이 땅의 현대인들에게,

회귀본능을 자극하는 서정적 이미지 속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읽어낼 것을

이번 전시회 <저녁에>는 묵시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 한미사진미술관 (02-418-1315) http://www.photomuseum.or.kr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강운구(67)의 사진이 더 깊어지고 있다.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저녁에’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그의 사진전은

부지런하기 짝이 없는 그의 활동에 비하면 발표가 너무 뜸하다는 생각이 들만도 한데,

그만큼 전시 내용이 충실하다는 반증일 터다.

사진 인화와 배치, 전시장의 동선까지 본인이 직접 했다. 크게 인화한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줄여서 이야기해도 최소 2~3년씩 노력한 작업들인데

30초도 안 보고 지나가버리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작게 붙인 사진가까이 와서 정성껏 관람해 달라는 작가의 주문이 들어있는 것이다.”

 

사진은 연속사진, 그림자, 흙과 땅의 세 파트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그림자’에선 작가의 그림자나 반영이 들어 있는 사진일곱 장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예전엔 프레임에 내 그림자가 있으면 실수라고 생각하고 빼려고 노력했다.

그랬는데 이번엔 일부러 넣었다.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땐 안 보이더니 저녁이 되니까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을 기록하기 위해 바깥으로만 돌아다니다가 이제 내면을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전에 없이 사람이 들어 있지 않은 풍경 사진많아졌는데,

사진하지 않는 친구들이 “사진 많이 예뻐졌다. 편해졌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그는 아이같이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저녁에’는 작품 대부분이 늦은 오후 혹은 저녁에 찍은 것이라는 직접적 의미와 함께,

어느덧 작가의 인생이 저녁에 도달했다는 뜻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외형적인 면보다는 작가의 사진세계가 더 깊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곱게 갈아놓은 밭이나 논 위의 농부 발자국을 담은 사진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예전엔 들에서 일하는 모습을 직접 표현했었는데

어느 순간 발자국만으로도 농부의 땀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생활사진가들을 위한 그의 조언.

“정말 좋아하는 대상을 찍어라. 유행하는 스타일이나 사진 선생의 주문을 따라하지 말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상을 찍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그만 두는 것이 좋다.”

- 한겨레

 

 

 

 내면을 찍는 사진작가 강운구

“한발 물러서보니 세상이 아름답더라!”

 

 

 

사진에 내면의 심리를 담는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있는 그대로를 나타내는 사진에 실상이 아닌 그 어떤 게 담긴다는 얘기일까.

궁금하다면 서울 송파구 방이동 소재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강운구 사진전을 가 보아라.

 

마음이 담긴 사진,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남해 바다를 배경으로 모내기를 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을 담은 ‘남해’는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이면서도 애잔한 우리네 옛이야기를 그려냈다.

소금창고의 ‘염부꾼’은 밭고랑처럼 깊게 패인 주름투성이의 염부가

모나리자의 미소를 연상케 할 만큼 신비스런 미소를 머금고 막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하다.
사람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진흙탕에 깊이 새겨진 발자국들은 또 어떤가.

 

아무 말이 없지만 고단한 농부들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사진이 가능할까.
그 비밀을 알기 위해 ‘저녁에’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연 강운구 사진작가를

 

광화문 근처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많고 많은 제목들 가운데 하필이면 ‘저녁에’라는 제목으로 달았을까. 궁금해 이유를 물었다.

“‘저녁에’라는 제목은 저녁에 잘 보이는 장면을 주로 담아서이기도 하지만
내 나이에 맞게 담담하게 세상을 바라본다는 차원에서 달았다”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40년이 넘게 사진을 찍다보니 외부로만 향하던 작품경향이

이제는 내면의 세계로 향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embracing evening’이라고 단 영문 제목에 대해서도 설명을 곁들였다.
“‘엠브레이싱과 이브닝이 운도 맞을뿐더러 (인생의) 저녁을 즐겁게 맞는다,
기쁘게 능동적으로 맞는다는 등의 의미도 있다.”
그는 또 “사진은 꾸미는 게 아니라 (현장에)가서 대상을 찾아내고 있는 것을 발견한 뒤
자신의 생각을 이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원칙을 갖고 고단하지만 40년이 넘도록 돌아다녔고 경험도 많이 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 현장을 찾았으니 에피소드도 무수하다. 그 중 하나를 들어봤다.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동네가 있으면 차를 세워놓고 동네 주민들과 얘기도 하면서

몇 시간씩 지내기도 했다. 한 번은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다가 헤어져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손들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나서 돌아보니 경찰이 총을 겨누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정작 겁이 난 것은 그가 나보다 떠는 것이었다.

이러다 사고가 날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까닭을 묻는데

골목에서 얼굴을 내밀었다가 재빨리 들이미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들이 신고를 한 거다.

배반감을 느꼈지만 당시 시대가 그랬다.”

“어떤 동네에선 여관방 창이 길 쪽으로 붙어 있었다.

안심이 안 돼 파출소에 카메라를 맡기고 와서 자기도 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좋아진 점도 있다고 했다.
“젊었을 때 나가면 경계를 하던 주민들이 이제는 “좋은 취미를 가지셨네요” 라며 경계를 푼다.

덕분에 사람들을 더 가까운 곳에서 편하게 찍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경험을 많이 한 것을 그는 스스로 핸디캡으로 생각한다.
“산전수전 겪으면서 가슴에 면역체계가 생겨 웬만하면 감동이 안 된다.

감정이입이 안 되니 대상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나이가 먹어 육체적으로 감수성이 무뎌졌을 가능성도 있다.”

감동이 없으니 흥이 나지 않고, 사진 찍기가 싫어지고 찍어도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약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조건을 가지고 사진을 찍겠다고 생각하니

 

그 다음엔 오히려 더 정적이며 아름다운 사진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비밀을 털어놨다.
전에는 농부가 일하는 것을 찍었는데 얼마 전부터 농부가 가버린 뒤 남은 발자국을 찍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다.
“간접적으로 노동의 고단함이나 땅의 의미를 표현하니

호소력이 커져 호응이 높아지고 느낌이 좋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진 속에 자신의 그림자를 담는 것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옛날엔 내 그림자를 피했으나 이제는 적극적으로 담고 있다.

 

자화상을 그리듯 그림자를 담는 것이다.”

 


기록성과 예술성이 조화된 사진

그런 사진 가운데 그가 무척이나 아끼는 게 있다.
김천에서 찍은 ‘민불(民佛) 사진이다.
“절에 있는 불상은 제도권에 있는 것이고,
절 밖에 개인이 자기 생각대로 조각한 민불은 제도권 밖 불상이다.

 

이 불상은 다른 것과 달리 손을 모으고 있는 게 특이하다.
불상처럼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파인더를 보지 않은 채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그림자의 내 손이 불상의 손과 합쳐졌다.

간접적인 자화상이 된 셈이다.”

농촌 풍경을 많이 찍었지만 그는

“고향과는 무관하다. 문경에서 태어났지만 일찍 나왔고
부친도 농업과는 무관한 직업을 가졌다”고 했다.

“초기에 사진공부하면서 우리나라의 모든 문화가

농업에서 나온 것을 알게 돼 전통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중에서도 농악이나 풍어제 등 이벤트는 하지 않고 보편적인 것을 주로 다뤘다”고 설명했다.

기자 출신이라서인지 그의 사진에는 ‘기록성’과 ‘예술성’이 함께 나타난다.
이에 대해 그는 “사진의 ‘기록성’을 중시한다.
사진의 기본 목표인 기록성이 없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사진이라고 힘이 없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농촌의 검불 태우기 장면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기록성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농촌에 가더라도 추수한 뒤 검불을 태우는 장면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록성만 앞서는 것에 대해선 경계한다.
“기록성만 앞서면 건조해서 아무도 안 본다. 사진은 보고 느끼고 정보를 가져가야 하는 것이다.

사실과 정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된 지금도 그는 필름을 고집한다.

 

그렇다고 디지털카메라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보면 테크놀로지가 사진의 조류를 바꿨지 사진작가가 트렌드를 연 경우는 없다.

디지털이 사진의 조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해하려고

공부도 많이 했고 관찰을 하고 있는데 아직은 바뀐 것이 없다.”
언젠가는 바뀌겠지만 지금까지 추이를 보아선 금방 바뀌지는 않을 것이고,

아직은 필름이 좋기 때문에 필름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디지털사진은 완성도는 높지만 차갑고 깊이가 떨어진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렇지만 디지털카메라의 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카메라는 (사진)기술의 민주화를 불러왔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누구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사진가로서의 부담감도 내비쳤다.

“필름 사진은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가 뚜렷한데 디지털 사진은 원본과 사본의 차이가 없다.

원칙적으로는 차이가 없는 게 좋지만 다른 측면에선(사진가 입장에선) 문제가 있다.”
그는 기고나 책을 내기 위해 간혹 칼라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작품사진은 흑백 위주로 찍는다.

 

또 현상과 인화도 직접 한다.
“내 사진의 검정은 다른 사람의 검정보다 훨씬 더 검다. 그렇기에 더 깊이가 있고 톤이 다르다.

셀레늄을 착색하기 때문인데 셀레늄은 흰 곳에는 작용을 하지 않고 검은 곳에만 작용해

더 깊이가 있다. 내 사진의 톤을 느끼려면 꼭 원본을 보아야 한다.”

힘든 인화 작업을 직접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진의 톤을 조절하는 것은 작가로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내 감정을 내가 조절해야지 어떻게 남에게 맡길 수 있나.”

수공업을 하듯 작품을 만드는 그에게 사진을 잘 찍는 비결을 물었다.
“사진기나 사진 기술보다 찍을 대상을 공부하라. 대상을 잘 알아야 잘 찍을 수 있다.

기계는 수단일 뿐이다. 그 수단을 잘 부리려면 찍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공부부터 해야 한다.”

어느 시간대의 빛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아침 동틀 무렵이나 저녁노을이 질 무렵 빛이 좋기는 하지만

내용이 중요하면 빛은 무관하다고 했다.


“시간이 있으면 좋아하는 빛을 기다릴 수 있지만 대상이 좋으면 시간은 상관이 없다.

대상은 시시각각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다.”
결국 좋은 대상을 찾는 게 먼저고 그 다음은 조건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시회에 대해 그는 자신을 객관화하는 작업으로 생각한다.
“수중에 갖고 있을 때는 모든 작품이 아깝고 애착이 간다.

그렇지만 일단 전시회장에 걸어 놓으면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그 다음엔 후회하는 일만 남는다.

그렇게 반성한다. 젊었을 때는 생떼만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때는 그 입장이었고 이제는 이 나이에 맞게 선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강운구는]

한국의 작가주의 사진가 1세대로 꼽힌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불리는데 서정성이 짙은 농촌의 모습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고 애썼다.
그의 작품은 나이가 먹어갈수록 외면을 떠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신문사간 이동이 비교적 자유롭던 시절 조선일보 견습사진기자로
출발했고 4년 뒤 동아일보 출판국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자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70년대 중반 동아일보 사태 때 해직돼

본격적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고생은 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기에 고통을 참고 견뎠다”고 말했다.

1994년 ‘우연 또는 필연’이란 제목으로 첫 번째 사진전을 연 뒤 이번까지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사진집으로 ‘내설악 너와집’  ‘경주남산’  ‘우연 또는 필연’  ‘모든 앙금’  ‘마을 삼부작 ’  ‘강운구’ 등을

냈다. 사진 뿐 아니라 형용사를 많이 쓰지 않는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글도 일품이다.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시간의 빛’  ‘자연기행’ 등의 사진을 넣은 산문집을 냈다.

1941년 경북 문경 출생. 
- 매일경제 Citylife 제151호(2008.11.03일자)

 

 

 

 

 

《“내 사진은 하나 어려울 것 없는 사진입니다. 설명으로 괜히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시작된 사진강운구(67) 씨와 관객 100여 명의 만남은 예정된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마련한 그의 ‘저녁에’전에 맞물려

11월8일 오후 3시 세미나실에서 열린 작가와의 만남. 》

 

 

“생의 저녁에 서니 사진 좀 흔들려도 다 용서가 되네요”

 

스스로를 ‘한쪽 구석에서 얌전하게, 숨도 살살 쉬며, 제 일이나 겨우 하고 있는’ 작가라고 말하는

그를 향한 관심은 뜨거웠다. 쏟아지는 진지한 질문에 작가는 뿌듯한 표정이었다.

관객에겐 남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작가의 육성을 듣는 흔치 않은 소통의 시간이었다.

 

시대적 흐름에 개의치 않고 ‘사실적 기록성’이 사진의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강조하고 실천해온 작가.

7년 만의 개인전에서도 날것 그대로 현실에서 건져 올린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이

‘흙과 땅’  ‘연속사진’  ‘그림자’ 등 3부작 113점을 내놓았다.

현란한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화려하지만 어딘지 심심한 사진들과 달리,

세상의 가만가만한 소리에 귀 기울여가며 찍은 속이 꽉 차고, 간이 딱 맞는 작품들이다.

 

 

# 사진의 길을 묻다

 

논두렁을 태우는 연기도, 돌부처 위에 작가의 그림자가 겹쳐진 사진도 대부분 저녁에 찍었다.

‘저녁에’란 제목엔 경치로서의 저녁이자, 작가의 나이도 저녁에 이르렀다는 이중적 의미를 담았다.

내내 사진에 대해 묻고 대답했으나 말 속에 삶의 지혜가 배어 있다.

“나이 먹으니 포커스가 안 맞거나 흔들려도 용서가 되는 것 같다.(웃음)

옛날엔 벌벌 떨고 다시 찍었는데. 젊어서 용서 안 되던 것이 ‘저녁’ 때가 되니까 용서되더라.

실수한 것이 더러 보기도 좋더라. 흔들려도 좋을 때가 있더라.”

 

 

― 직접 걸음을 옮겨가며 ‘연속사진’을 찍는 이유는….

 

“나는 줌 렌즈가 없다. 내 몸이 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겐 ‘디카’도 없다. 세상의 본질은 아날로그라고 본다.

디지털로 찍어도 최종의 것은 아날로그로 재생한 사진을 보는 것 아닌가.

새 기술이 트렌드를 바꾼 건 없고 사진만 커졌다. 근데 ‘크다고 좋으냐’를 따져봐야 한다.”

 

 

― 흑백작업을 주로 하는 이유는….

 

“칼라의 울긋불긋한 잔소리가 싫다. 흑백은 잔소리가 없다.

흑백은 훨씬 추상적,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을 솔직하게 빨리 드러낸다.”

 

 

― 에디션은 몇 장까지 만드나.

 

“난 숫자를 안 매긴다. 나 스스로 양심을 걸고 많아야 스무 장을 넘지 않도록 한다.

근데 스무 장을 인화한 적은 없고 자동적으로 한 장에서 멈춘다.(웃음)

에디션을 따지는 것은 허풍이자 사치인 것 같다.(박수)”

 

 

# 11월에 보는 ‘저녁에’가 더 아름다운 이유

 

렌즈를 통해 노동과 농촌을 기록해온 작가는 벽에 부딪쳤다.

수없이 찍어온 사진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는 고민.

“마음이 움직여야 셔터가 눌러진다. 40년간 찍다 보니 온갖 면역체계가 막강하게 작동해

웬만한 것엔 마음이 안 움직였다. ‘저녁’의 나이가 되니 가슴이 무뎌진 탓도 있을 거다.

이 두 가지 악조건을 어느 순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더니 새것을 찾을 수 있게 됐다.

그 결실이 이번 전시다.”

 

 

농부의 노동을 간접화법으로, 더 심도 있게 담아낸 발자국 사진은 그렇게 탄생했다.

사진을 찍는 자신의 그림자를 담은 사진도 변화의 흔적이다.

발자국이든 그림자든 한때 존재했지만 이젠 잡을 수 없는,

스러지는 존재와 순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끝날 무렵, 한 여성 관객이 말했다.

 

“선생님의 ‘저녁에’는 다섯 시가 여섯 시에 양보하는 시간이자 훅과 백이 길항하는 시간,

노동을 종결하고 평화로운 관조와 휴식으로 들어가기 위해 더 많은 움직임이 있는 시간인 것 같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시인 정희성).

오랜만에 마음을 움직이는 서정과 기품이 스며든 사진을 만나기 좋을 때다.

 

- 동아일보,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