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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유물전시관] 사라져버린 우리 배(韓船)의 흔적을 찾아서

Gijuzzang Dream 2008. 11. 8. 11:01

 

 

 

 

 

 

 

 

근대 한선(韓船)과 조선(造船) 도구!

 

 

 

- ‘사라져 버린 우리 배의 흔적을 찾아서’-

 

 

 

 

 

포스터의 사진은 <1871년 미국 주간지에 소개된 '조선의 범선'>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관장 성낙준)은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 배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2008년 11월 14일부터 2009년 2월 1일까지

“근대 한선과 조선 도구(Korean Ship and Shipbuilding Tools in the Modern Times)”

특별전을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근대화와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이중적인 현실에서

우리 조선 기술(造船技術)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살피고자 하였다.

 

전시 테마는

근대의 한선/ 한선의 구조/ 조선도구/ 일제강점기 근대 선박의 변화/

근대 개항도시와 한선/ 근대의 외래선박과 항해도구 등으로 구성하였다.

한선(韓船)이란 전통 방법으로 만든 우리 배[舟船]를 뜻한다.

그 중에서 근대 한선은 1876년(조일수호조규)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의 우리 배로서,

전통 선박은 물론 이 시기에 만들어진 개량 선박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한선의 구조와 형태[船型]는 고려시대까지는 실물로 남아있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해금정책에도 불구하고 거북선과 같은 세계적인 선박이 건조되었고,

특히 국가 유지에 필수적인 조운선(漕運船)과 전선(戰船) 관리는 매우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또한 풍부한 수산자원 때문에 전국적으로 커다란 어장을 형성하였으며,

지역마다 배짓는 장인[船工]이 있어 특색 있는 고기잡이배들이 발달하였다.

우리 조선기술은 선조들의 지혜와 기술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해금정책과 쇄국정책, 제국주의 침탈, 서양 기선의 등장 등에 의해

내적인 조선기술의 근대화는 어려운 역사를 맞이하였다.

근대 한선은 이러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격동기 속에서

전통과 신기술이 접목되고 오버랩 되는 현상을 잘 보여준다.

특히 전통 조선 도구는 근대화 과정에서 밀려오는 새로운 도구와 함께 사용되거나 개량되어

그 구분이 모호하다.


한선의 근대화는 제국주의와 함께 찾아들었다.

조선시대까지 국가에서 관리했던 조운제도가 폐지되고 수군이 해산됐다.

그나마 전통 선박의 맥을 유지한 것은 어선뿐이었다.

일본은 전통 한선을 비판했으며, 조선총독부에 수산시험장을 만들어 개량사업을 전국적으로 실시했다.

선박 건조와 운항 규정까지 정하여 조선인을 통제했다.

그러나 한선은 우리나라 풍토에 적합하여 계속 사용됐으며,

1960년대까지도 도서지역을 중심으로 원형을 유지했다.


세계적으로 19세기는 증기선이 실용화되고 목조 범선이 기선으로 교체되는 시기다.

기선의 등장은 조선의 해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였다.

증기력과 철강으로 건조한 기선은 근대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일반인들은 전통 배보다 빠르고 대량 수송이 가능한 근대식 기선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1886년 조선정부도 삼남지방의 세곡을 운송하기 위해 일본식 범선 ‘해룡호(海龍號, 335톤)'를 도입하였다.

개항장에는 화륜선과 군함 · 무역선 · 서양 범선들이 출입했으며,

일본의 기선은 물론 청나라, 독일, 노르웨이, 영국, 러시아 등의 대형 선박들도 입항했다.

각 나라들은 조선에서 해상교통과 무역권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번 특별전시를 통해 아련한 흑백 공간이 되어버린 ‘우리 배[韓船]’를

다시 만나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사라져버린 우리 배의 흔적과 배짓는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당두리배(唐道里船,  Dangduri-Bae)

SC 1/10, 137×46×16cm, 영공방 소장

 

야거리배(單帆船,  Yageori-Bae)

SC 1/10, 76×26.5×9cm, 영공방 소장

 

곳배(漁船,  Got-Bae)

SC 1/10, 152×52×24cm, 영공방 소장

 

 

개량형 어선(改良型漁船,  Improved Fishing Boat)

SC 1/10 ∣ 108×42×16cm, 인하대학교박물관 소장

 

안강망 어선(鮟鱇網漁船, Stow Net Fishing Boat)

SC 1/10, 127×42×17cm, 인하대학교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목공(木工) - 기산 풍속도 중에서

김준근(金俊根, 19세기 말), 숭실대학교박물관 소장

 

 

한선의 물항아리(壺,  Jar)

87×60cm, 전우홍 소장  

 

 

탕개톱(鋸,  Saw)

국립중앙과학관 소장

 

먹통(墨筒,  Black Inkpot)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붕어 톱(鋸,  Saw)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소장

 

초련 대패(鉋,  Plane)

국립중앙과학관 소장

 

 

개량 선박 교육 현장

경상남도 통영 지역 선공 전습소

임시은사금수산사업사진첩 중에서, 김민영 소장

 

 

개량 선박의 항해

제주도 은사 수산 전습선의 귀항

임시은사금수산사업사진첩 중에서, 김민영 소장

 

 

일제강점기 선박 개량화 사업 보고서

어선조사보고(漁船調査報告) 2책

1928년 /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 26×19cm, 국회도서관 소장



담당자 :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전시홍보과 김병근, 박예리, 박순홍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전시홍보과  : 061-270-2043, 2044
- 문화재청,  2008-11-07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고려시대 한선(韓船) 발굴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과 신안군은 2005년 8월 5일부터 9월 14일까지

전남 신안군 안좌면 금산리 해역에서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고선박(古船舶)을 발굴하였다.

  

발굴은 선체와 주변유물의 인양을 통하여 전통한선의 구조와 발달사를 규명하는데

초점을 두고 실시하였다. 발견당시 선체는 선수를 북동방향, 선미를 남서방향으로 하여

우측방향으로 30° 정도 기울어져 갯벌에 매몰되어 있었다.

사진 1. 발굴 전 매몰선체

 

사진 2. 매몰선체 발굴상태(선수 → 선미)

   

발굴조사결과 잔존 선체는 우현외판 7단 · 좌현외판 2단 · 저판 3열 · 선미판재 · 대형멍에(횡강력 부재)

등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크기는 길이 14.5m, 너비 6.1m, 깊이 0.9m로 지금까지 발굴된 우리나라 고선박 중에서 최대규모였다.

또한 선체내부에서는 청자상감국화문잔을 비롯하여

가공된 목재편 · 원통목 · 밧줄 · 돌판 · 숫돌 · 옹기편 등을 수습하였다.

선체구조는 이전에 조사된 완도선(11-12세기) · 군산 십이동파도선(11세기) · 목포 달리도선(14세기)과

유사한 형태지만, 몇 가지 구조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지금까지 조사된 한선에서 돛대자리는

중앙저판을 편평하게 가공한 표면에 돛을 세운 구멍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안좌도 한선은 돛대를 더 견고하게 고정해주기 위해

돛대자리 부분을 길이 117cm, 높이 7cm, 폭 38cm 정도 높고 두껍게 만들었다(사진 3).  

 

 사진 3. 돛대구멍 및 대형 원통목

 

또한 돛대자리가 설치된 구간에는 좌・우2단 외판에 직사각형(약 32cm)의 대형멍에를 설치하여

돛대를 고정시킨 특징이 있다(사진 4).

 

사진 4. 돛대 고정용 대형멍에 수습

 

둘째, 이물비우(선박 선수부분)는 저판 3열의 30cm 지점에 경사진 모양으로

너비 15cm, 깊이 10cm 정도를 파고, 측면외판에 사선형태로 연결한 것으로 보인다(사진 5).

 

사진 5. 이물비우(선수) 노출상태

 

또한 좌·우현 1단 외판을 선수에서 130cm까지 윗단을 밑단보다 더 넓게 역삼각형 형태로 가공한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사진 6).  

이는 전통한선에서 처음 보이는 형식으로 선수부분의 보강을 위한 것으로 추정되며,

구조적인 조사가 필요하지만 호롱받침대(닻줄물레 받침대)를 고정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사진 6. 역삼각형의 선수 외판 보강구조

 

셋째, 선미의 고물비우는 외판 내면에 고정용 ‘凹’자형 홈을 만들어 고물판재를 끼웠고,

외판에서 연결되는 장삭(長槊, 긴 나무못)을 비우판재 상단에 결구하고 있으며,

외판 외면(外面)으로 나온 장삭부분은 다시 구멍을 뚫어 작은 산지(장삭을 고정시키는 나무못)로

고정하고 있다(사진 7).

 

사진 7. 고물비우(선미)저판외판 연결상태

 

넷째, 이전 선박에서 대형 저판재의 연결은

판재를 ‘凹凸’형태로 완전히 따내어 연결시킨 방법인데 반하여,

안좌도 한선의 경우는 반홈턱솔이음(윗부분만 ‘凹凸’형태로 이음, 삽도 2)의 연결구조를 보인다.

 

삽도 2. 반홈턱솔 이음

 

또한 저판재의 연결은 여러 개의 장삭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결구하고 있다.

이같은 특징은 대형목선을 견고하게 연결하기 위한 고대 조선기술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사과정에서 시대편년을 밝힐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로 청자상감국화문잔과 청자소접시가 수습했다.

(사진 8). 선체의 구조가 이전에 발굴된 목포 달리도선(14세기)과 유사한 점이 많고

청자가 상감청자 쇠퇴기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시대는 대략 13세기 말에서 14세기에 해당하는 고려시대 선박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정확한 시대편년은 선체내부의 밧줄과 원통목 등에 대한 방사선탄소연대측정(C14)과

연륜연대측정을 통하여 밝힐 예정이다.

 

 사진 8. 청자상감국화문잔 등 출토청자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전통한선의 발달과정을 밝히고,

발굴 도자기와 동반 유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우리나라 선박의 시대편년과 해양문화유산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며,

국내외 수중고고학 분야에서도 의미가 큰 학술 자료로 활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삽도 1. 신안 안좌도선 평면도 및 중앙단면도

 

 

- 담당자 : 국립해양유물전시관 문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