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석가탄생도 - 왕세자 연산군 탄생기념 불화

Gijuzzang Dream 2007. 11. 24. 20:21

 

 

 "왕세자 연산군 탄생기념 왕실불화 추정"

 

 



일본 사찰 소장 15세기 ‘석가탄생도’ 정우택 교수 ‘내력 해석’ 논문

조선시대 폭군으로 널리 알려진 연산군(1476~1506) 탄생을 기념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불화가 일본에서 확인됐다.

 

화제의 이 불화는

일본 규슈섬 후쿠오카의 절 혼가쿠지(본악사)에서 소장해온 15세기 불화 〈석가탄생도〉.

 

불화 연구자 정우택 동국대교수는 최근 한국미술사학회 학술지 〈미술사학연구〉 250호에 논문 ‘조선왕조시대 석가탄생도상 연구’를 싣고,

 

이 불화가 성종(1457~1494) 때인 1476년 왕세자 연산군이 태어난 경사를 맞아

세종 때 지은 한글 찬불가 〈월인천강지곡〉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특별 제작된 궁중 불화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석가탄생도〉는 1997년 일본의 한 기획전에 공개된 바 있으나 조선 불화 정도로 알려졌을 뿐 제작 내력, 의미에 대해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석가탄생도〉는 세로 145㎝, 가로 109㎝의 비단에 채색한 대형 불화다.

석가 탄생 당시 상황을 다섯 면에 나눠 표현하고

금물 입힌 화기(설명문)들을 주요 장면마다 붙였다.

 

인도 카필라성 영주 정반왕의 부인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석가가

‘세상에 나보다 존귀한 이는 없다’(천상천하 유아독존)고 외치는 장면,

하늘의 천룡, 천신과 궁중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금궤에 앉아 광채를 빛내는 장면 등의 신묘한 풍경들을 연극무대 같은 탄생단을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묘사하고 있다.

 

〈석가탄생도〉를 성종 때 궁중 불화로 보는 이유를 추적한 정 교수의 논고는 흥미진진한 역사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주목한 것은 탄생단 아래 전각에 앉아 석가 탄생 소식을 보고받는 아버지 정반왕과 그의 등 뒤에 걸린 산수화다.

암산 위 수목을 그린 이 산수화는 7.5㎝에 불과한 화면에 세밀하게 채워넣은 것인데,

구도나 필법 등에서 15세기 거장 화가 안견의 화풍과 일치한다.

 

전각 건물 기둥 장식(공포)은 1488년 중창한 남대문의 공포와 비슷해 그림은 늦어도 15세기 후반을 넘지 않는다는 견해다.

마야부인 등 일부 인물상들은 고려 불화 특유의 이중채색법이나 구름 윤곽에 금물을 살짝 덧입히는 채색 기법 등을 계승해 15세기 불화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칠보수레를 이끄는 하늘 신령, 새로 생긴 네개 우물, 숱한 동물들의 출산 등 석가 탄생의 이적들이 찬불가 〈월인천강지곡〉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내용도 눈길을 끈다.

 

나아가, 연산군 탄생을 기념해 그렸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불화에서 석가 탄생 과정은 여덟폭짜리 〈석가팔상도〉로 그리는 것이 보통이나 유례없이 한장짜리 탄생도를 그린 것은 왕세자 탄생이란 국가 경사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게 정교수 지론이다.

 

실제로 왕조실록을 보면 세조 아들인 덕종(즉위 전 병사)과 8대 임금 예종이 즉위 1년 남짓해 병사한 상황에서 성종이 12살에 즉위한 이래 왕실은 세자 출산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연산군 탄생은 조선왕조 재위 중 세자를 얻는 초유의 경사인데다,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나 할머니인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 등이 독실한 불교 후원자였음을 감안한다면 〈석가탄생도〉는 분명히 세자 탄생을 기리는 기념비적 궁중 발원도였다는 추론이다.

 

또 이 불화에서 정반왕은 면류관을 쓰고 면복을 입은 왕의 모습으로 나오는데, 조선초 왕의 실제 복식을 그대로 옮겼을 뿐 아니라, 옷에 들어가는 용 등의 12개 문양들은 미세한 화면인데도, 일체 생략 없이 묘사했다는 점 등에서 절대권력자의 지시에 따른 궁중 그림일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것이다.

 

 “〈석가탄생도〉가 연산군 탄생 기념도라면 당시 왕 복식을 한 그림 속 정반왕은 당연히 성종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석가탄생도〉는 급하게 세로로 접은 흔적이 남아 있어 임진왜란 때 왜군에 약탈된 것으로 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불화가 17~19세기 에도시대 도처의 사찰에서 다퉈 육필화나 판화로 베껴 그릴 만큼 명품 불화로 인기있었던 신앙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동아시아 불화 도상 가운데 〈석가탄생도〉만큼 일본에 많이 유포된 도상이 없다”며 고마쓰지본, 호넨지본 등 〈석가탄생도〉를 베껴 그린 7점의 사찰 육필화 목판본 등도 소개하고 있다.

 

조선 초 왕실 내부 사정과 우리 불화가 일본 불화와 불교신앙에 미친 영향 등 이야깃거리 풍성한 이 불화는 두고두고 한·일 미술사학계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동국대 박물관 제공

- 한겨레, 200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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