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은 문종의 넷째아들로 영통사로 출가하여 승통에 오른 대학승이다.
대장경 간행의 열망으로 왕이 불허함에도 불구하고 몰래 중국 송으로 들어가
화엄의 대가 정원법사(淨源法師, 1011-1088)를 비롯한 화엄, 천태, 선종 등 여러 종파의 고승들과 교유하고 경전을 비롯한 많은 불교전적을 수집하였다.
그는 정원이 머물던 항주 혜인선원(慧因禪院)에 재정지원을 하여 경전을 인쇄하여 두게 하는 등 기여하여 정원의 제자들이 선종사찰이던 혜인원을 화엄종 사찰로 바꾸었으며, 이는 속칭 '고려사(高麗寺)'로 불리웠다.
한편 의천은 1086년 귀국하여 흥왕사의 주지가 되었고
그곳에 교장사(敎藏司)를 설치하여 속장경 간행에 착수하였고,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3권을 간행하였다.
의천은 화엄학을 중심으로 불교학을 연구하였으나 불교에 머물지 않고
유교전적과 역사서 및 제자백가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었던 뛰어난 학승이었다.
그는 불교의 신비적 주술성을 배격하여 불교적 합리주의를 강조하는 한편,
선 수행도 중시하여 천태종(天台宗)을 개창하는 등 교리정립에 노력하였으며 대각국사문집 등 많은 저술도 남겼다.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 제41》은
청량법사(淸凉法師) 징관(澄觀 : 737~838)이 찬술한 《대방광불화엄경소》를
송의 정원이 주해한 120권본 중 41권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1.8㎝, 가로 10.7㎝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요사상으로 한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권의 첫머리에 있는 기록을 보면, 대각국사 의천이 정원과의 친분에 의해 가져온 송나라 목판을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찍어낸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여 그린 변상도(變相圖) 역시 같은 해(1372년)에 새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주인왕호국반야경』권1∼4 (보물 제890호),『대방광불화엄경소』권 42 (보물 제891호)와 판의 모든 조건이 비슷하여 이들의 간행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권의 첫머리에 화엄경 변상도가 처음 등장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대각국사 의천이 송에 갔을 때 정원법사가 자신이 저술한 이 책 1질을 의천에게 주었는데,
의천은 은 삼천량으로 당시 항주의 일류 각수에게 그 판각을 주문하고 귀국하였다.
이듬해(1087년) 송에서 경판을 갖고 와서 납품하였는데 그 수는 2,900여판에 이른다고 한다.
이 판에서 인쇄한 판본이 현재 국내에 12첩이 알려져 있으며
소장처는 다르지만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인쇄했던 판목은
이미 조선초 세종 6년(1424) 일본인들이 고려대장경판을 강력하게 요구하여
밀교대장경판과 함께 일본에 보내져 국내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