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구본웅 - 친구의 초상

Gijuzzang Dream 2007. 11. 22. 11:31

 

 

 

 

 

 

 구본웅 - '친구의 초상'의 파이프

 


자학과 조소에 찬 이상의 모습은 또한 자신의 자화상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62×50㎝, 1935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모델은 천재 시인 이상이다.

1935년 3월 3일, 서산 구본웅(1906~1953)이 작업실로 시인 이상(1910~1937)을 불렀다. 비록 5년 연하지만 초등학교 동창인 이상의 초상을 그리기 위해서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오래 전부터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이상이 졸랐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스로 초상화를 그리겠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는 왜 친구의 초상을 그리겠다고 한 것일까?

 

야수파와 '서울의 로트레크'

서산은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야수주의 계열의 화풍을 구사한 대표적인 화가다. 야수주의는 대담한 색채 구사와 격정적인 필치로 감성의 해방을 추구한 미술 사조.

강렬한 색채와 난폭한 붓질이 특징인 서산의 '야수적인 그림'은

시대의 어둠과 맞물려 감동을 준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일제 강점기와 혼란스러운 해방공간이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지성인으로서 시대의 어둠을 직시하는 것은

힘겨운 일일 수밖에 없다.

서산은 일명 '서울의 로트레크'로 불린다.

19세기 파리의 난쟁이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처럼 그 역시 불구다.

서산의 불행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두 살 때 생모를 여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척추마저 다친다.

가정부의 부주의로 마루에서 떨어졌다. 그 바람에 평생 곱사등이로 산다.

그가 야수주의 화풍에 끌린 것도 불편한 신체 조건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서산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47세에 급성폐렴으로 죽는 바람에, 작품 수가 적은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그가 보여준 야수주의 화풍은 독보적이어서,

'우리나라 최초의 야수파 화가'(김기림)라는 명예를 선사한다.

 

곱추 화가가 그린 시인의 초상

서산은 이상의 초상을 그리되, 우선 시인의 우울한 표정을 강조하기 위해

캔버스 바탕에 흑녹색을 어둡게 칠한다.

이어서 얼굴을 창백하게 그리고, 눈매를 날카롭게 세운다.

그리고 녹색 계열의 옷과 비딱한 모자, 까칠한 수염에

격렬한 터치와 어두운 색감을 더한다.

그 결과 초상은 괴기스럽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더욱이 흰색 파이프까지 물고 있다.

애당초 이상은 서산이 건네준 파이프를 받아들고 잠시 망설인다.

파이프 담배를 즐기기 않았기 때문이다. 정작 파이프를 물고 다닌 쪽은 서산이다.

그가 보기에 지성인의 내면세계를 표출하는 데는 파이프가 안성맞춤이었다.

비스듬히 늘어져 담뱃불이 타고 있는 파이프. 서산은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이상은 시 '오감도'와 소설 '날개' 등의 작품으로

한국근대문학을 황홀경에 빠트린 시인이자 소설가다.

건축기사이기도 한 그는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다.

1931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을 출품하여 입선까지 한다.

두 사람은 마음이 통해서 의기투합한다.

하지만 외모에는 차이가 있다.

서산은 키가 작은 곱사등이인 반면 이상은 상대적으로 키가 컸다.

그래서 "이상은 까치집 같은 머리에 얼굴이 희고 털북숭이 수염 천지인데

겨울에도 흰 구두를 신었고, 구본웅은 키가 작은 곱추인데

땅에 질질 끌리는 인버네스 외투를 입었다"(조용만)고 한다.

한마디로 키다리와 난쟁이의 동행을 연상하면 된다.

 


흰 파이프에 숨은 뜻

'친구의 초상'은 가학적이고 자조적인 이상의 고뇌와 군국주의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식민지 시기의 불안감을 극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서산은 이상의 외모를 통해

자학과 조소에 찬 예술가의 내면풍경을 극명하게 표출한다.

1930년대 인물의 전형으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말이다.

혹시 이 그림이 서산의 자화상이기도 한 것은 아닐까?

마치 복화술을 하듯이 이상의 초상에 자신을 겹쳐놓았다면 말이 된다.

서산이 사용한 기법은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만든다.

어두운 색감, 과장된 표정, 소품(파이프)의 활용 등이 그렇다.

이는 곧 서산의 내면이 고스란히 초상에 반영돼 있음을 알려준다.

결정적인 증거물은 파이프다. 파이프는 서산의 애용품이다.

냉소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파이프를 물렸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파이프는 서산이다.

따라서 이 초상화에서 서산의 체취를 발견하는 게 이상할까?

비록 자화상은 없지만, 이 자화상 같은 초상화만으로도 서산의 위상은 묵직하다.

이상은 서산의 초상화 제작 제의에 응하는 대신 조건을 붙인다.

초상화가 완성되면 달라는 것이다.

나중에 초상화를 건네받은 이상은 자신이 개업한 '제비다방'에

이 그림을 자랑하듯이 걸어둔다.

- 정민영(주)아트북스 대표

정민영의 그림 속 작은 탐닉,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 2008.04.30 ⓒ 국제신문(www.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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