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은 대부분 한 가지 소재에 집착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는 부싯돌 같은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같은 화가가 동일한 소재를 그린 그림은 '그 그림이 그 그림 같다'. 하지만 그것은 '같은' 그림이 아니다. '같은-다른' 그림이다.
얼핏 봐서는 유사해도 그림들 간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에 눈 뜨는 것, 그것 또한 감상의 묘미다.
소재의 묘사에 충실한 아카데미즘 화풍을 대표하는 화가 도상봉(1902~1977).
그가 사랑한 소재는 유백색의 백자항아리였다.
일편단심, 평생 백자항아리를 끼고 살았다.
내 사랑 백자항아리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백자항아리' 하면,
떠오르는 화가는 수화 김환기(1913~1974)다.
도상봉은 수화의 유명세에 비해 대중적 명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그의 지독한 백자항아리 사랑도 덜 알려져 있다.
수화는 집안의 마루 밑까지 백자항아리가 가득 찼을 만큼,
유명한 백자항아리 애호가다.
뛰어난 '글쟁이'로서 백자항아리를 예찬하는 에세이도 여러 편 남겼다.
그런가 하면 도상봉에게 백자항아리는 평생 사귄 '가장 가까운 친우'였다.
그 역시 에세이로 백자항아리에 대한 애정을 토로했다.
당연히 이들의 그림에는 백자 항아리가 빠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림 스타일에서는 서로 달랐다.
수화의 백자항아리는 입체감이 거세된 단순한 형태를 띠었다.
반면에 도상봉의 백자항아리는 질감이 느껴질 만큼 묘사가 사실적이다.
흡사 진짜 백자항아리를 보는 듯하다.
또 후기로 갈수록 수화의 그림에서 백자항아리가 사라지지만
도상봉의 그림에서는 한결같이 사실성을 유지하며, 연륜과 더불어 무르익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친우인 이조백자들도 항상 그 속에 미소를 띠고 있다.
그리하여 아침저녁 광선이 변할 때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백색의 변화와
항아리 속에서 울려나오는 무성의 노래는 신비한 교훈과 기쁨을 던져준다."(1955)
백자항아리를 위한 정물화
정물화는 화가가 소재를 마음대로 배치해서 그린 그림이다.
그런 만큼 화가의 세계관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도상봉의 백자항아리도 무심하게 끌어들인 소재가 아니라
특별한 소재임을 알 수 있다.
그림을 보자. 제목이 '정물'이다.
소반 위의 검은 화병에는 노란 국화가 꽂혀 있고,
노란색 천과 흰색 천이 깔린 바닥에는 사과와 포도가 놓여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큰 백자항아리가 '꾸어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다.
그림의 화사한 색감은 오른쪽의 화병을 중심으로 과일을 따라 흐른다.
큰 덩치의 백자항아리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다. 보디가드 같다.
화려함과 수수함이 대조를 이룬다.
이런 분위기에서 시선은 소반 위의 화병에 먼저 쏠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음이 자꾸만 백자항아리로 기운다.
그 묵묵한 존재감이 만만치 않다.
이 그림의 중심소재는 무엇일까? 사과 포도 같은 과일일까?
노란 국화를 입에 문 화병일까? 아니면 말없는 백자항아리일까?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럼에도 이 그림은
백자항아리를 위해 계획된 정물화 같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곰곰이 보면 백자항아리를 중심으로 다른 소재들이 들러리 선 듯한 느낌이다.
백자항아리의 위치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시선의 중심인 오른쪽에 배치된 것도 그런 혐의를 짙게 한다.
또 정물을 그릴 때 소재의 크기에서도 조화를 꾀하는 법인데,
이 그림에서는 백자항아리가 기형적으로 보일만큼 언밸런스하다.
백자항아리에 그림의 무게가 실렸음을 증거한다.
화가의 백자항아리 사랑은 숨길 수가 없다.
백자항아리를 닮은 화가
도상봉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백자항아리는 크게 두 가지 형태다.
'쌩얼' 그대로의 백자항아리와 꽃을 꽂고 있는 백자항아리가 그것이다.
꽃도 국화 개나리 라일락 튤립 안개꽃 등 다양하다.
이런 화면은 구도가 극히 단조롭다. 하지만 안정감을 준다.
백자항아리 단독 출연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어 있으면서도 은은하게 차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소재를 향한 화가의 지극한 애정 때문이 아닐까.
그의 백자항아리가 주는 따뜻하고 중후한 느낌도
실은 화가가 그림에 비벼 넣은 애정의 온기일 수 있다.
그의 정물화는 이런 점을 고요히 웅변한다.
친한 친구는 세월과 더불어 서로 닮는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상봉의 오랜 '친우'인 백자항아리는 곧 그 자신인지도 모른다.
- 정민영 (주)아트북스 대표
- 2008.04.02 ⓒ 국제신문(www.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