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지켜(연재자료) 554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조선의 일본어 역관

(17) 조선의 일본어 역관 조선시대의 외교정책은 사대교린(事大交隣)이었으니, 큰 나라 중국은 섬기고, 동등한 나라 일본과는 이웃으로 지낸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정기적으로 외교 사신을 보냈으며, 사신을 보낼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그 나라 사람들과 말이 통할 수 있는 외국어 능력이었다. 따라..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이언진 - 한어 역관

(18) 한어 역관 이언진의 활약상 일본에서 문인들에게 환대를 받고 돌아온 역관 이언진(李彦진·1740∼1766)이 연암 박지원에게 자신이 지은 시를 보냈다. “오직 이 사람만은 나를 알아 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연암은 시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이건 오농세타(吳細唾)야. 너무 자질구레해서..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장교 최천종의 피살사건

(19) 장교 최천종 피살사건 18세기 일본에서 쇼군(將軍)이 정권을 세습하면서 가장 먼저 조선통신사를 맞을 준비를 했다. 박지원은 역관 이언진의 전기 ‘우상전’ 첫머리에서 도쿠가와 이에하루(德川家治)가 준비하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통신사 일행을 접대하기 위해)저축을 늘리고 건물을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마재인(馬才人)과 마상재(馬上才)

(20) 마재인(馬才人)과 마상재(馬上才) 연암 박지원이 ‘우상전’에서 소개한 통신사 수행원의 열댓가지 기예 가운데 하나가 마상재(馬上才)이다. 마상재란 말 위에서 하는 재주를 말한다. 달리는 말 위에서 총쏘기, 달리는 말의 좌우로 등을 넘기, 말 위에 누워 달리기, 말 다리 밑으로 몸을 감추기 등..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김명국 - '신필(神筆)'의 화원

(21) ‘신필(神筆)의 화원’ 김명국 조선통신사의 수행원으로 일본에서 인기 있었던 전문지식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화원이다. 시인들은 한자를 아는 일본 지식인에게만 관심을 끌었지만, 화원은 한자에 조예가 깊지 않은 부자 상인이나 무사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그림은 외국어의 벽이 없어, 누구..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화원 김명국의 일본 활약상

(22) 화원 김명국의 일본 활약상 조정에서는 통신사를 일본에 보내면서 조선의 문물을 과시하기 위해 솜씨가 뛰어난 사자관(寫字官)이나 화원을 선발하였다. 중국사행의 경우 사자관이 긴요한 인원이 아니라고 하여 감원시키거나, 무명의 화원들을 보냈던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세계 문화의 중심..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변박 - '동래부순절도'의 작가

(23) ‘동래부순절도’ 그린 장교, 변박(卞璞) 부산(동래)은 일본(쓰시마)과 맞닿아 있어, 국방상 중요한 곳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외교와 무역이 이뤄지던 왜관(倭館)이 부산에 있었고, 일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동래읍성과 부산진성도 역시 부산에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 왜..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서울에 중인은 얼마나 살았을까

(24) 서울에 중인은 얼마나 살았을까 조선후기 전문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증인들은 대부분 서울에 살았다. 지방에는 증인이 맡을 관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신분은 호적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데, 하버드대학의 와그너 교수가 1663년에 작성된 서울 북부 호적을 분석해 보니, 양반 신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이상적 - 중국에 12차례 오간 역관

(25) 열두차례나 중국 오간 역관 이상적 양반 관료들은 고유 업무가 있었으므로 일생에 한번 사신으로 가기 어려웠다. 두 차례 이상 나갔던 문인은 별로 없다. 그러나 역관들은 외국에 나가 통역하는 게 업무였으므로, 능력만 인정되면 몇 번이라도 나갔다. 외국에 많이 나갈수록 회화 솜씨가 느는 것이..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역관 오경석 - 개화파의 비조(鼻祖)

(26) 개화파의 비조(鼻祖) 오경석 우리나라 개화파의 비조(鼻祖)로 흔히 오경석 · 유대치 · 박규수 세 사람을 꼽는다. 역관 오경석(吳慶錫 · 1831∼1879)은 북경을 열세 차례나 드나들며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에 시달리는 청나라의 모습을 보고 자주적으로 개화해야 한다고 깨달았던 첫 번째 개화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