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한시
젊은 시절, 한시를 공부하던 어느 여름날의 일이다. 우전(雨田)선생님께서 물으셨다.
너는 여름 한낮의 정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시가 어떤 것인지 아느냐?
무어라 말씀을 올리지 못한 채, 사간동 선생님 댁의 툇마루를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그건 말이다. 느릅나무 위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노래한 시란다.
나중에야 알았다.
우전 선생님께서 남조 양나라(507-557) 때 왕적(王籍)이 지은 <약야계에 들어가서(入若耶溪)>에
나오는 경지를 말씀하셨다는 것을.
매미 시끄러우매 숲이 더욱 고요하고
새 울어대니 산이 더욱 그윽하여라
(蟬噪林逾靜 鳥鳴山更幽)
약야계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사오닝(紹興) 남쪽 약야산 기슭의 강으로,
월나라 미인 서시(西施)가 이곳에서 비단을 빨았다고 해서 완사계(浣紗溪)라고도 한다.
이백의 유명한 <채련곡(採蓮曲)>은 약야계에서 연밥 따는 여인을 소재로 한 시이다.
그밖에 맹호연(孟浩然), 최호(崔灝), 원진(元稹), 유장경(劉長卿), 왕안석(王安石), 소식(蘇軾),
육유(陸游), 왕수인(王守仁), 서위(徐渭) 등이 모두 이 강을 사랑했다. 지금 이름은 핑수이 강(平水江)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상북도 청도의 운문사 우측 계곡을 이 이름에서 따왔다.
왕적(王籍)은 명문가 출신으로 字가 문해(文海)로 낭야(琅琊) 임기(臨沂) 사람이다.
문학적 재능은 있었으나 벼슬길에서는 그리 뜻을 얻지 못했다.
제나라 말에 참군 벼슬을 얻고 양나라 천감(天監) 연간에 상동왕 자의참군(湘東王 諮議參軍)으로 있다가
중산대부가 되었다. 하지만 벼슬살이에 늘 불만을 지니고 있어서,
직무를 제대로 보지 않고 늘 술을 마셨으며, 소송을 하는 자가 있으면 채찍질하여 내쫓았다.
왕적은 저장성 지방의 낮은 벼슬로 있을 때 운문산(雲門山)이나 천주산(天柱山)을 유람하기를 좋아했는데
그 무렵에 약야계를 찾았다가 이 <약야계에 들어가서(入若耶溪)>를 지었다고 한다.
그보다 앞서 晉나라 때 왕희지(王羲之)라든가 사안(謝安)이라든가 하는 사람들이
난국을 피해 동산(東山)에 거처하면서 산수에 뜻을 두었던 유풍을 이은 것이다.
시는 5언8구이다.
여황하범범(艅艎何泛泛) 큰 배는 어이 이리 둥실 떠가는가.
공수공유유(空水共悠悠) 하늘도 강물도 모두 유유하여라.
음하생원수(陰霞生遠岫) 회색의 저녁노을은 먼 산봉우리에 생겨나고
양경축회류(陽景逐回流) 해의 빛살은 굽어 흐르는 물살을 쫓아가네.
선조임유정(蟬噪林逾靜) 매미 시끄러우매 숲이 더욱 고요하고
조명산갱유(鳥鳴山更幽) 새 울어대니 산이 더욱 그윽하여라.
차지동귀념(此地動歸念) 이 땅은 돌아가고픈 마음을 움직이기에
장년비권유(長年悲倦遊) 나는 오랜 세월 나그네살이를 슬퍼하노라.
***
여황(艅艎)은 아름답게 장식한 큰 배
음하(陰霞)는 회색빛 저녁노을
원수(遠岫)는 먼 산의 봉우리, 바위굴
양경(陽景)은 해의 빛살
귀념(歸念)은 고향에 돌아가고픈 마음, 혹은 은둔하고자 하는 마음
권유(倦游)는 나그네살이에서 느끼는 권태감
왕적의 이 시는 약야계에 배를 타고 가면서 눈에 들어온 풍경을 묘사하고,
오랜 객지생활에서 느낀 권태감을 토로했다.
첫 구는 강물의 광활함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산수자연 속에 노니는 장유로운 정신을 드러냈다.
둘째 구는 명랑한 하늘과 투명한 강물이 조화되어 있는 거대한 경치를 한 폭에 담아내어,
대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심리를 드러냈다. 이것은 후반에 객지생활의 권태감과 큰 대조를 이룬다.
셋째 구는 먼 산에 저녁노을이 일어나는 원경을 묘사하고
넷째 구는 남쪽 가까이 강물에 햇살이 비치는 근경을 묘사했다. 또한 청색과 금색의 명암을 대비시켰다.
‘회색의 저녁노을은 먼 산봉우리에 생겨나고’에서의 ‘生’과
‘해의 빛살은 굽어 흐르는 물살을 쫓아가네’의 ‘축(逐)’,
이는 바로 무정의 자연물을 생명 있는 것으로 살려낸 표현이다.
다섯째 구와 여섯째 구의 ‘선조임유정 조명산갱유(蟬噪林逾靜 鳥鳴山更幽)’는
‘매미 시끄러움’과 ‘새 울어댐’의 동(動)을 통해서 유정(幽靜_한 분위기를 극대화시키고
‘숲 고요함’과 ‘산 그윽함’의 정(靜) 속에 생명이 약동한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옛 사람들은 이 구절이 사영운(謝靈運)의 시풍이 지닌 신운(神韻)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시의 마지막 두 구절은 시상이 돌연하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함을 느낀 끝에 더욱 타향살이와 벼슬살이의 권태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영운 등의 시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표현방식이다.
현실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심사가 산수 속의 소요에서 더욱 촉발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상정일 것이다.
‘선조임유정 조명산갱유(蟬噪林逾靜 鳥鳴山更幽)’는 동양 산수화의 화제(畵題)로서 즐겨 이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종 10년(1873) 4월25일 궁중화원을 선발하는 시험에 화제로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서산대사는 ‘풍정화유락 조명산갱유(風定花猶落 鳥鳴山更幽)’라 했으니
‘새 울어대니 산이 더욱 그윽하여라’는 선취(禪趣)의 구로도 회자되어 왔다.
그런데 <가곡원류>에 전하는 조선 중기 임의직(任義直)의 다음 시조는
바로 이 경지를 이용하여 강 마을의 밤풍경을 노래했다.
강촌에 일모(日暮)하니 곳곳에 어화(漁火)로다
만강(滿江) 선자(船子)들은 북치며 고사(告祀)한다
밤중만 애내(欸乃) 일성(一聲)에 산갱유(山更幽)를 하더라
이 시조에서는 한밤중의 배따라기 소리에 산이 더욱 고요하다고 했다.
일본 에도 시대의 시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도 매미의 울음소리를 묘사하면서
<약야계에 들어가서>의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의 경지를 활용했다고 추정된다.
바쇼는 1689년에 동북지방의 여행에서 노래한 하이쿠들을 <오쿠노호소미치(おくのほそ道)>로 묶었는데,
그 가운데 음력 5월27일(양력 7월13일)에 야마가타(山形)의 류샤쿠 사(立石寺, 릿샤쿠사)에서
저 유명한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이라는 하이쿠를 남겼다.
류샤쿠 사는 야마데라(山寺)라고도 한다. 류샤쿠 사에는 바쇼와 소라의 상이 있고,
하이쿠를 읊은 미타동(彌陀洞) 앞 세미즈카(せみ塚)에는 바쇼의 구비(句碑)가 세워져 있다.
야마가타 번의 영지에 류샤쿠 사라는 산사가 있다.
지가쿠(慈覺)대사가 세운 절로 참으로 청정하고 정적이 감도는 곳이다.
한 번 구경하는 것이 좋으리라 누가 권유해서, 오바나자와(尾花澤)에서 발길을 돌려 류샤쿠 사로 갔는데,
70리 거리였다. 다다랐을 때는 해가 아직 저물지 않았다.
산기슭의 숙방(宿坊)에 잘 곳을 마련해놓고 산 위의 본당으로 올라갔다.
바위 위에 또 바위가 첩첩하여 산을 이루고 있고, 소나무와 떡갈나무 노목이 우거져 있다.
흙과 돌도 오래되어 이끼가 매끄럽게 자라고 있는데,
바위 위에 세워진 열 두 지원(支院)은 모두 문을 닫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절벽을 돌아서 바위 위를 기다시피 올라가 불각(佛閣)에 참배했다.
주변의 뛰어난 풍경이 적막에 싸여 있는 것을 보노라니 그저 마음이 맑아져 가는 듯했다.
한적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閑(しずか)さや/ 岩(いわ)にしみ入(いる)/ 蟬(せみ) 聲(こえ)
한적한 산사, 미타동의 여름 그늘 속에서 매미가 운다. 그 높은 음조도 기괴한 형상의 바위에 스며들어
도리어 한적한 세계의 일부를 이루는 것만 같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왕적이 약야계에서 매미 울음소리에 숲의 고요함을 새삼 깨닫고,
임의직이 강마을에서 한밤에 외는 배따라기 소리에 산의 고요함을 환기하며,
바쇼가 야마데라의 미타동에서 매미의 울음이 바위에 스며드는 착각을 한 것은
그 모두가 활발발(活潑潑)한 자연에 자신의 몸을 온전히 내맡겼기 때문이다.
자연에 내 몸을 온전히 내맡기지 못하는 나는,
길거리의 엔진 음과 이웃집의 생활소음에 지쳐 이 더위를 이겨내지 못할 것만 같다.
서너 해 전에도 나는 그 점을 불안해 한 적이 있다. 지금도 불안하다.
이 여름 나는 우리 집 마당에서 매미의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그것이 지극히 평온한 자연의 소리임을 깨닫고 마음 깊숙이 열락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 심경호,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박물관 NEWS, 국립중앙박물관, 2011.08. vol.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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