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초현실주의의 딜레마

Gijuzzang Dream 2011. 6. 30. 23:42

 

 

 

 

 

 

 

 초현실주의의 딜레마

 

계산과 의도 없이 미술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아주 오랜 시간동안 서구 화가들은 인간들이 보았거나 알고 있는 세계를 작품 속에 담아 왔습니다.

그런데 1920년대 들어 유례없는 미술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들은 본 적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세계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초현실주의 미술이죠.

 

1910년대 세계 1차 대전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처참한 전쟁을 가져온 과학문명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인간의 이성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데카르트와 칸트를 비롯한 서구 근대 철학은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규정해왔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겪으면서 점차

“서로를 죽이는 폭력과 잔인한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이 과연 이성적인 존재인가?

그리고 끔찍한 전쟁무기를 개발해 온 과학과 인간의 이성은 과연 가치 있는 것인가?” 와 같은

회의적인 물음들이 제기되기 시작했죠. 이러한 문제로부터 출발한 것이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이며,

이들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형태의 미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혐오했던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가능한 한 이성을 배제하고 인간의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영역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초현실주의자에게 영감을 제공한 것은 무엇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었지요.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서구 근대철학이 설명하는 것과 같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인간은 이성의 이면에 존재하는 본능과 충동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본능과 충동의 영역인 무의식을 연구하고자 하였고,

특히 그러한 무의식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꿈이나 말 실수 등을 분석하고자 하였죠.

 

초창기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가능한 한 이성을 배제하고

무의식에 존재하는 본능과 충동에 의해 작업을 하거나 작품에 우연적인 원리를 도입하고자 하였죠.

이는 오랜 미술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상당히 이례적인 것인데요.

왜냐하면 아주 오랫동안 미술가들은 철저한 계산과 의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당히 이성적인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죠.

 

그러나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미리 형태나 색, 그리고 구성을 미리 계산하거나 의도하여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할 당시의 충동에 따라 즉흥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초현실주의 화가가 자신의 무의식을 드러내고

그것을 통해 작업하기 위해 시도했던 ‘자동기술법 혹은 자유 연상법’이지요.

 

앙드레 마숑(1896-1987))의 드로잉과 채색 작품들은

미리 의도한 것이 아니라 붓 가는 대로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그려진 것입니다.

 

장 아르프(1887-1966)의 <콜라주>(1937)는 의도와 계산이 아닌 우연의 원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죠.

즉 아르프는 종이를 아무렇게나 찢어 공중에서 뿌린 후

바닥에 떨어진 우연적인 형태들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호앙 미로(1893-1983)의 작품에는 무정형의 형태들과 모호한 글자들이 나타나는데,

이는 화가가 그의 마음속에 즉각적으로 떠오른 심상을 여과 없이 그려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초현실주의는

그동안 이성에 의해 억압되어 왔던 충동과 본능의 무의식 세계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작업 방식도 계산이나 의도 등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했던 것이죠.

이를 위해 초현실주의자들은 술에 취하거나 잠을 자지 않거나 굶기도 했고,

심지어 기이한 형상이 보이도록 오랫동안 벽 틈을 노려보는 등 각종 해괴한 방법들을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미술가가 이성적인 의식을 배제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계산과 의도 없이 미술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사실 계산과 의도 그리고 이성적인 인식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라면

인간은 어떠한 작품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의식을 배제한 상태에서 작품을 만들 때 무의식이 드러나게 될까요?

 

초현실주의는 인간이 본 적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세계,

지금까지 미술이 다룬 적 없던 무의식의 세계에 손대고자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지만,

그것은 위와 같은 딜레마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이후 초현실주의 미술의 경향은 화가 자신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방향을 돌려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되는데요.

정신분석학이 분석해 낸 무의식의 법칙들을 작품 주제나 소재로 사용하는 

달리, 마그리트, 에른스트와 같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이 바로 그것이죠.

 

- 최정은, 서울시립미술관, ‘찾아가는 미술감상교실’ 강사, 서울대 미학과 강사

- 2011.04.06 하이서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