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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라(Georges-Pierre Seurat), 가장 과학적인 인상주의 화가와의 준비없던 만남

Gijuzzang Dream 2011. 7. 29. 10:50

 

 

 

 

 

 

 

 쇠라(Georges-Pierre Seurat),

 가장 과학적인 인상주의 화가와의 준비없던 만남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Un dimanche après-midi à l‘Île de la Grande Jatte) 1884-1886, 시카고미술관

 

 

쇠라(Georges-Pierre Seurat, 1859-1891)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Un dimanche après-midi à l'Île de la Grande Jatte)를 본 것은 이십대 후반, 미술에 일자무식일 때 였다. 참 준비없는 만남이었다. 그림을 대면하고 처음 든 생각은 “와 미술교과서에서 본 그림이다” 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혀를 끌끌 찰 일이다.

두 번째는 “그림 정말 크네”라는 생각. 그림은 가로 3m, 세로 2m가 넘는다. 일단 크기가 너무 큰데다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다운 대접이었을까. 그림은 전시장 가장 좋은 자리,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을 홀로 차지하고 있었다.

널리 알려있는 바대로 쇠라는 점묘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색점을 찍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인데 우리가 보통 색맹검사라고 부르는 ‘이시하라 색각 검사표’를 떠올리면 된다. 쇠라의 그림은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형태는 사라지고 색점들만 보인다.

그러니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같이 큰 그림은 멀리서 봐야 형태가 보인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림. 그림에 다가갈수록 색색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신기하다”는 생각이 그림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빛을 그리는 일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들의 이름만큼이나 ‘인상’적인 일을 해 낸 것 같다.

세잔, 고흐, 마네, 모네, 르노와르, 드가, 피사로 등 누구하나 빼 놓을 수 없는 미술계의 거장이다.

재미있는 점은 각자의 화풍이 다름에도 모두의 그림이 현재 우리의 감성에 소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그림을 볼 수 있게 후대에 태어난 것은 행운이다.

그들의 족적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일은 그들이 ‘보이는 대로’ 그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캔버스에 색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빛을 그리는 작업. 그러기 위해 인상주의 화가들은 물감을 혼합하지 않고 원색 그대로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우리가 본대로 그리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멀리서 보면 형태가 있는 것 같은데, 가까이 가면 형태는 보이지 않고 색면만 보인다던가 멀리서 봤을 때의 색과는 다른 엉뚱한 색이 나타나기도 한다.

 

 


●빛을 분해하는 일

여기서 쇠라는 한발 더 나아간다. 그는 아예 빛을 분해해 버린다.

그래서 색점과 보색, 잔상효과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아마 그는 색을 계산했을 것이다.

2008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렸던 극사실주의 작가 척 클로스 (Charles Thomas "Chuck" Close, 1940-)의 '위대한 모험, 척클로스 판화전'에서 본 적이 있다. 작가는 판화에 입힐 색을 숫자로 치환하여 모눈종이에 촘촘히 적어 놓았다. 쇠라도 분명 나름의 방법으로 색을 분해했을 것이다. 그는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들기 위해 수 많은 습작을 남겼다. 그가 과학자처럼 이런 저런 실험과 연구를 했다는 증거다.

캔버스를 들고 야외에서 빛의 변화에 따른 색을 표현하고자 했던 선배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쇠라는 스케치는 야외에서 하더라고 본 그림은 작업실에 진행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색을 분해하여 점으로 찍는 장시간의 작업은 닫힌 공간이 더 적합했을 것 같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를 완성하는데 작가는 2년이 넘게 걸렸다. (1884년부터 1886년까지)

색점을 가로세로 5㎜로 잡고, 하나의 색점을 찍는데 걸리는 시간을 10초라고 가정해도 그림을 완성하는 데는 7천여 시간, 약 30일이 넘게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캔버스에 계속해서 점을 찍는 작업은 상상만 해도 어지럽다.

 

 


●그림을 만드는 일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fr:Une baignade à Asnières),

1884년, 런던 영국 내셔널 갤러리

 


나는 운이 좋았다. 쇠라의 작품을 그의 대표작부터 만났으니. 그런데 나는 그의 ‘점묘법의 처녀작’으로 불리는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Une baignade à Asnières)가 더 끌린다.

 

쇠라의 그림을 한단어로 말하자면 ‘정중동’, ‘망중한’이다.


캔버스의 평면에서는 원색의 점들이 벌이는 현란한 색잔치가 펼쳐지는데, 그 화려한 점들이 모여 전하는 분위기는 평온함이다. 이 평온함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에서 보이는 정적감으로 이어진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는 물가. 강 위에는 요트가 한가로이 있고, 저 멀리에는 유원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장이 있다. 공장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방향으로 미뤄 봤을 때 바람이 잠잠하지는 않다. 강아지와 함께 졸고 있는 중년의 신사는 여간해서는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그림의 오른쪽 아래 물속에서 나팔을 불며 놀고 있는 소년은 신이 났다.

물밖에 나와 있는 상체에서는 빛을 뿜는 듯, 그의 노래소리가 들리는 듯 한다. 그러나 화면의 가운데 모자를 눌러쓴 이는 전반적인 그림의 환한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리 좋은 날 무슨 근심걱정이 있길래 저리 힘빠져 보일까. 둥그런 등이 안쓰럽다.

이 더운 시간이 흐르고 나서 시원한 바람이 불 때 쯤 쇠라의 그림을 다시 보고 싶다.

짧은 인생을 살다간 천재화가의 그림을 이제야 겸허하고 감동스럽게 만날 준비가 조금은 된 것 같다. 이번에는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로 그를 만나고 싶다.

- 곽수진 동아사이언스 문화사업팀장 suzini@donga.com

2011년 07월 28일 동아사이언스 [수지니의 미술공부]

 

 

 

 

 

 

 

 

 

- 더 보기

 

시카고 미술관 -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아메리칸 고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