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한국 고미술 시장은 16년째 빙하기

Gijuzzang Dream 2011. 10. 8. 09:34

 

 

 

 

 

 한국 고미술 시장 16년째 빙하기

 

한 · 중 미술품 세계 경매 분석
1996년 70억 낙찰 조선백자는 지금까지 그 가격 그대로
중국 최고가 도자기는 973억원

 

 

한국 미술품이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16년째 정체 상태로, 날아가는 중국 시장에 비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란 얘기도 나온다.

전 세계 주요 경매에서 다뤄진 한 · 중 미술품 거래 현황을 집계한 결과

한국 미술에선 1996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거래된 철화백자 운룡문 항아리(鐵花白磁雲龍文壺)

1위를 기록했다. 841만 7500달러로 당시 환율로 70억원대, 아시아 미술품 거래 사상 최고가였다.

그러나 우리 1인당 국민소득이 16년간 1.7배 늘도록 미술 시장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셈이다.

 

청화백자 운룡문 항아리(靑畵白磁雲龍文壺)

= 코발트계의 청색 안료로 여의주를 희롱하며 구름 속을 나는 용을 그린 백자.

국내외 미술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한국 고미술품 상위 10점 중 5점이 청화백자,

그중 세 점이 운룡문 항아리다.


 

 


#1. 2011년 10월5일 홍콩 소더비 경매장.

중국 명(明)대 청화백자 매병(梅甁)이 2160만 달러(약 258억원)에 팔렸다.

추정가 1300만 달러(약 153억원)를 훌쩍 넘기며 명대 도자기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홍콩 소더비는 이번 경매의 성공으로 연 낙찰액 1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그 원동력은 세계 경제위기에도 최고가의 미술품을 사들인 중국 부자들이었다.

#2. 2011년 9월1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K옥션 경매장.

자코메티(1901∼66)의 조각 ‘아네트X’가 14억원에 팔리자 200여 명이 모여 있던 장내엔 박수가 터졌다.

그러나 “계속해서 고미술로 넘어가겠습니다”는 경매사의 안내에 관객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추정가 10억원으로 고서적 분야 기록 경신이 기대됐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서간첩은 유찰됐다.

장내엔 70여 명만 남아 있었다.

반면 중국 고미술은 상승세다.

2010년 11월 청(淸) 건륭제 때의 ‘길경유여(吉慶有余)’ 무늬 도자기가

런던 베인브리지 경매에서 973억원대에 팔린 것이 1위다. 1996년의 우리 철화백자보다 14배 비싸다.

송(宋)대 서화가 황정견(黃庭堅·1045~1105)의 글씨(773억원대) 등 10위까지가

2010년 5월∼2011년 6월까지 1년 새 만들어졌다.

 

이런 추세 속에 2011년 10월 5일 홍콩에서 신기록이 또 나왔다.
  

한국 미술품이 그 희소성과 가치에 비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시장의 수치로 확인됐다.

한창 비상 중인 중국 시장에 비하면 빙하기에 비견된다. 한국 미술이기에 저평가되는 것,

열기가 식은 한국 시장에선 사봐야 값이 오르지 않을 거라는 암울한 전망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미술정보 윤철규(서울옥션 전 대표) 대표는

“90년대까지 동양 도자기 중 가장 비싼 것이 한국 것이었지만 다 옛날얘기가 됐다”며

“18세기 전후 왕실에서 쓰던 대형 용항아리들은 극도로 귀한데도 제값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제 집에서도 대접 못 받는 더메스틱 디스카운트(domestic discount)가 문제다.

미술 시장의 붐은 자국 컬렉터(수집가)가 사들이는 데서 시작된다”며

“중국 미술은 고평가, 우리 미술은 저평가돼 있다고들 하지만

그게 바로 공개 시장의 데이터로 나타난 따끔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얼어붙은 고미술 시장 왜

중국 경매시장(홍콩 포함)은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1위가 됐다.

프랑스 경매시장위원회(CVV)는 2010년 중국 경매시장에서 11조6370억원이 거래돼

세계시장의 34.3%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중국 미술품 중 고미술품이 상위 가격대를 점령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본지가 집계한 상위 10위까지의 작품엔 도자기 · 서예 · 수묵화가 고루 포함돼 있다.

현대미술까지 합쳐도 순위는 동일하다.

 

2011년 4월 중국 현대미술 최고가 기록을 세운

장샤오강(張曉剛)의 유화 ‘영원한 사랑으로’(1988년)가 110억원대로,

10위를 기록한 명대 매병(梅甁 · 258억원)의 절반도 안 된다.

반면 한국 기록은 1996년 철화백자 운룡문 항아리에 멈춰 있다.

19세기 화첩인 금강산 와유첩(臥遊帖 · 8위)을 빼면 전부 도자기다.

근 · 현대 유화까지 포함하면 박수근의 ‘빨래터’(45억2000만원)가 3위가 되면서 순위 변동이 커진다.

이 와중에 최근 추사(秋史) 김정희의 서간첩(추정가 10억원)도 주인을 찾지 못했다.

 

우리 고미술 시장이 얼어붙은 이유는 뭘까.

첫째, 신뢰도 하락이다. 무명 장인의 공예품이 많다 보니 감정이 더욱 어렵고도 중요한 게 고미술이다.

하지만 권위 있는 감정기관이 없고, 이것을 악용한 업자들의 사기사건도 잦다.

2011년 4월 검찰이 발표한 강진청자 고가 매입사건이 대표적이다.

전직 도자박물관장이 소장자와 짜고 1억원이 안 되는 고려청자를 10억원에 감정해

강진청자박물관에 팔도록 하면서 1억2500만원의 리베이트를 챙긴 사건이다.

국내시장에 대한 불신은 데이터로도 나타난다. 상위 1∼6위가 미국에서 팔린 것이다.

둘째, 볼 기회가 적다.

매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샤갈 · 모네 · 반 고흐 등 서구 인상파와 근대미술 전시에는

70만∼80만 명의 관객이 몰린다.

반면 고미술의 도자기, 근 · 현대미술의 박수근 · 이중섭 등을 집중 조명한 대규모 전시가 국공립 미술관에 거의 없다.

셋째, 미술 공공 부문이 빈약하다.

활발한 고미술 전시와 그에 따른 시장 평가라는 선순환을 찾아보기 힘들다.

유물 구입도 제한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올해 작품 구입 예산은 28억8000만원, 국립현대미술관은 31억4000만원이다.
- 2011.10.08 중앙일보

 

 

 

 

고미술 목마름, 진품명품서 풀어야 하나

 

#1. 2011년 10월2일 오전, 서울 당산동의 한 대중목욕탕 휴게실.

 

중 · 장년 남성들이 삼삼오오 ‘TV쇼 진품명품’을 시청하고 있었다.

35년 전 선물 받은 ‘호접도(蝴蝶圖)’, 정조가 직접 채점한 규장각 초계문신(抄啓文臣)의 답안지 등이

소개됐다. 개별 유물의 사연과 가치가 드러날 때마다 휴게실엔 탄성과 탄식이 교차했다.

#2.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10월16일부터 시작하는 가을 정기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풍속인물화대전’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엔

혜원(蕙園) 신윤복(1758∼?)의 ‘미인도’가 4년 만에 세상 구경을 한다.

‘미인도’가 전시됐던 2008년 가을, 미술관의 관람객은 20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신윤복 ‘미인도’

 

여전히 우리 미술에 목마른 이들이 많다. 시장의 냉대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본지가 전세계 주요 경매에서 다뤄진 한·중 미술품 거래 현황을 집계한 결과

한국 미술은 16년째 정체 상태임이 드러났다.

199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 환율로 70억원에 팔린 철화백자 운룡문 항아리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 1위는 지난해 11월 런던에서 973억원대에 팔린 청대 건륭제 때 도자기다.

중국의 미술품 경매는 우리만큼이나 역사가 짧다.

90년대 중반 시작돼, 서울옥션의 첫 경매(1998년)보다 조금 앞섰을 뿐이다.

하지만 현재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한국미술정보원 윤철규 대표(서울옥션 전 대표)는 “중국엔 168곳의 경매사가 있고,

이 중 상위 10곳이 올 상반기 205억 위안(약 3조 8000억원)어치를 팔았다.

경매로 공개된 자료 또한 풍부해 신뢰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우리 경매사들은 상위 한 두 곳 외엔 자료 공개를 꺼린다.

투명한 거래로 고객들의 신뢰를 쌓고, 자료를 축적하며 시장을 탄탄하게 구축하는 것,

즉 공개 시장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인사동 고미술상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선수들의 물건은 경매까지 가지도 않는다. 고미술은 특히 소수 개인 거래에 그친다”는 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강진청자 고가매입 등 사기 사건 대부분은 업자들이 일으켰다.

또 기록 경신이 예상되는 작품이 나오면 위작 의혹부터 제기하는 등

결론도 책임도 없는 흠잡기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 결과 요즘 인사동은 미술거리라기보다 중국산 토산품을 파는 관광지에 가깝다.

‘진품명품’은 824회를 준비하고 있다. 16년간 이어진 장수프로다.

간송미술관 전시는 81회로 41년째다.

언제까지 우리 미술에 대한 목마름을 TV프로그램과 몇몇 사립미술관 전시를 통해 풀어야 할까.

시장이 답을 내놓지 못하는 한 우리 고미술 빙하기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  2011.10.10 중앙일보, 권근영기자, [문화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