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관과 편견 깨뜨린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 II -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으로서의 미술
애초에 초현실주의는 계산과 의도와 같은 이성적인 의식을 배제하는 작업 방식을 취함으로써
화가 자신의 무의식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자발적인 충동에 따라 즉흥적으로 작품을 제작하거나 작품에 우연의 원리를 도입하여
가능한한 인간의 이성적인 개입을 배제하고자 하였죠.
그러나 점차 이러한 방식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초현실주의 미술은 점차 이성적인 의식과는 다르게 작용하는 무의식의 법칙 등을
작품의 모티프나 소재로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초현실주의 미술은 오히려 고도로 계산된 이성적인 것이 됨으로써 초기 경향과는 매우 달라지지요.
에른스트, 마그리트, 달리 등이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초현실주의자들입니다.
이제 그들의 흥미로운 작품들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데요.
마그리트는 정말로 눈을 하늘이 들여다보이는 창문으로 묘사했습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고 타인과 소통하는 것으로서 ‘눈’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달리와 브뉘엘이 함께 만든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의 첫 장면에도 눈이 클로즈업되어 등장하지요.
눈이 칼로 베어지는 충격적인 첫 장면에는 이성이라는 선입관에 의해 오염된 눈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하는 초현실주의의 중요한 모토가 담겨 있습니다.
에른스트가 그린 <셀레베스 코끼리>를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처음에 코끼리의 코라고 생각했던 것은 꼬리가 되고,
코끼리의 엉덩이라고 생각했던 뒷부분에 얼굴에 있어야 할 상아가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 코끼리의 얼굴은 엉덩이가 되고 엉덩이는 다시 얼굴이 되죠.
하늘이라고 생각하고 올려다 본 곳에서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습니다.
하늘은 바다가 되고 바다는 다시 하늘이 됩니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는
놀랍게도 새들이 나무에서 잎사귀와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듯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한 결합들이죠. 하지만 꿈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꿈의 법칙을 설명했던 프로이트는 그러한 꿈의 속성을 ‘전치’라고 했지요.
그래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결합으로서 함께 등장할 수 없는 것들이
같이 나타나는 초현실주의 미술의 기법을 ‘전치’, ‘디페이즈망’ ‘displacement'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는 사람의 머리와 물고기의 하체를 하고 있습니다. 그 반대는 안 되는 걸까요?
초현실주의 미술은 우리의 선입관과 편견을 깨뜨림으로써 화석화된 우리의 사고에 충격을 주고
어린 아이와 같은 선입관으로 오염되지 않은 날 것의 사고를 자극합니다.
마그리트는 사과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 놓고, 그 아래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라고 써 넣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서 사과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아래 써있는 글귀를 보고 우리는 어리둥절해지면서, 여러 의문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마그리트 그림에서 그림은 풍경이 되고 풍경은 다시 그림이 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을 '다중 이미지'라고 하는데,
이는 편집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이지요.
달리는 이러한 다중 이미지를 가지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의 변모의 순간을 재현했습니다.
나르시스는 자신의 모습에 매료되어 매일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다 물어 빠져
한 떨기 수선화로 피어났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나르시스의 모습이
똑같이 다시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그것은 알을 든 손으로 변하고
그 알에서는 수선화가 피어납니다.
스페인의 피카레스크 달리 미술관에 있는 먼로의 방도 그러한 다중이미지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이죠.
이렇게 초현실주의 미술은 우리가 본 적도 없고 알 수도 없었던 세계를 재현했습니다.
초현실주의는 화가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데서 출발하여,
꿈과 같은 무의식의 작용을 보고 주고,
우리의 편견과 선입관을 공격함으로써 순수한 사고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런 점에서 초현실주의는 미술의 가능성을 폭넓게 확장한 것이지요.
이제 미술은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대상을 창조해내는 것이 되었습니다.
마그리트 그림은 예술가의 그러한 창조적인 통찰력을 잘 표현하고 있지요.
- 최정은, 서울시립미술관 '찾아가는 미술 감상교실' 강사, 서울대 미학과 강사
- 2011.04.27 하이서울뉴스
'느끼며(시,서,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쇠라(Georges-Pierre Seurat), 가장 과학적인 인상주의 화가와의 준비없던 만남 (0) | 2011.07.29 |
---|---|
초현실주의의 딜레마 (0) | 2011.06.30 |
사실적인 극사실회화의 세계 (0) | 2011.06.30 |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 예술작품이 된 포스터 (0) | 2011.06.30 |
앙리 마티스 - 색종이 오리기로 예술작품을 만들다. (0) | 2011.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