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사실적인 극사실회화의 세계

Gijuzzang Dream 2011. 6. 30. 23:31

 

 

 

 사실적인 극사실회화의 세계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생생한 그림

 

주태석_기찻길 Rail-road, 145x112cm, oil on canvas, 1978

 

 

“꼭 사진 같다.” 우리는 대상을 실재하는 것처럼 그린 사실적인 그림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인간적인 표현을 넘어서 기계적인 재현과 비견되기도 한다.

 

극사실회화는 이처럼 극도로 사실적인 그림을 말한다.

인간은 ‘이미지’를 실재를 대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실재처럼 보이게 하려는 욕망은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하나의 본능이었다.

미술사는 이 같은 욕망으로부터 시작되어 환영과 재현에 대한 다양한 논의로 전개되어 왔다.

 

현대미술에서는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극사실주의(Hyper realism)가 등장하였다.

감정을 배제하고 실재 대상을 사진처럼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려내는 기법이다.

또한 일상적인 사물이나 상황과 같이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을 대상으로 그려내는 것도 특징이다.

척 클로스나 리처드 에스테스 같은 작가들이 대표적인데 인물이나 풍경, 사물을 주로 그린다.

이들은 산업사회의 부산물, 소비사회의 풍경들로 확대하거나 극도로 중성적인 방식으로 포착해낸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극사실회화가 등장하였는데,

당시는 구체적인 형상이 배제되어 관념적인 세계를 그려낸 추상미술이 화단을 휩쓸고 있던 시기였다.

형식주의와 추상의 극단이라 할 수 있는 모노크롬 추상화(단색화)가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에

이에 대한 도전적인 대안으로 극사실회화가 등장하였다.

모더니즘 미술에서 배제시켰던 구체적인 형상, 이야기 등이 극사실회화를 통해 부활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배경 하에 발생된 극사실회화의 세계를 선보이는 <서울미술대전-극사실회화, 눈을 속이다>전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활동하던 1세대 작가들과 함께 2000년대 들어 다시 급부상한

극사실계열의 회화작품을 하는 젊은 작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강강훈_Modern Boy-custom made breath,193.9x130.3cm,oil on canvas,2011(좌), 한영욱_Face, 97x162cm, oil on aluminum, scratch, 2010(우)

 

 

1세대 화가들의 후예 격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으로 사실적인 기법의 그림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일상적인 현실에 주목하고 그것을 확대하거나 세밀하게 그리는 방식을 취한다.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소재는 주로 일상의 사물, 인물, 풍경과 같은 소재들로

이를 사실적으로 그림에 따라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낯선 느낌을 자아낸다.

눈으로 보는 세계나 사진보다 더 진짜처럼 ‘눈을 속이는’ 작품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1970년대 극단적 추상화였던 모노크롬에 대한 대안으로 극사실회화가 등장했다면

근래 들어 다양한 매체와 미디어 환경의 발달로 더욱 극단적인 기법의 극사실계열 회화가 주목받게 되었다.

 

이들은 정물, 인물, 풍경과 같은 일상적인 소재에 주목하여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일상 풍경에 관심을 가진다.

이들은 대상의 세부를 확대하고 극도로 정밀하게 묘사하여 고도로 현실적인 동시에,

오히려 그 현실을 뛰어넘을 법한 초현실적인 감각을 얻게 되기도 하며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에 비해 새롭게 급부상하며 미술시장의 주목을 받았던 젊은 작가들은

고화질 영상 매체에 길들여진 세대답게 실재보다 더 선명하고 매끈하게 보이도록 화면을 구성한다.

이로써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소비사회에서 더욱 매혹적으로 비춰지는 오브제와 정물,

실제보다 더 정교하고 적나라한 인물을 미세한 부분 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한다.

 

김대연_Grapes_110x110cm_oil on canvas_2010(좌), 황순일_낯선 어둠속에서, 162x130cm, oil on canvas, 2003(우), 최정혁_Natural-Topia , 80x200cm, oil on canvas, 2010(아래)

 

 

이는 마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가상으로 만들어낸 3D 이미지가

현실보다 더 정교하고 촉각적으로 느껴지는 경험과도 비슷하다.

아바타는 3D로 만들어졌는데, 실제 배우나 풍경을 촬영한 영화보다도 더 정교하고

손으로 만져질 듯, 잡힐 듯한 촉각성과 생생함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실재 사진이나, 대상보다도 손으로 가상의 영상을 만들 듯

극단적으로 사실적인 방식으로 그리는 그림은 보는 이의 눈을 속일 정도로 정교하다.

이들이 그린 인물은 땀구멍, 주름,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낄 정도로 생생하다.

 

강강훈, 강형구, 한영욱의 작품은 얼굴을 전면에 내세워 이 같은 특성을 드러낸다.

정면으로 그려진 얼굴은 실제보다 더 생생하게

모공 하나부터 수염, 주름까지 촉각적으로 느껴질 만큼 세밀하다.

마치 관람객을 바라보듯 정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인물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한편, 포도나 사과와 같은 과일을 먹음직하게 묘사하는 작품들도 있다.

싱그러운 과일의 향기가 나는 것처럼 보이는 공감각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유행하던 바니타스의 양식을 빌어 소비사회의 단면을 비판하기도 한다.

1세대 작가들이 재현과 환영의 문제, 대상과 그것을 재현하는 행위에 대한 관계 등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했다면,

최근의 젊은 작가들은 즉물성, 즉시성과 같은 감각적이고 표피적인 욕망의 문제에 천착한다.

다양한 소재와 기법의 극사실회화는 이처럼 우리에게 무언가를 재현하고 싶은 욕망,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키며 세계와 맺는 관계로서 다가온다.

우리들의 눈을 속이는 다양한 회화들과 조우하며 과연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와 재현된 세계의

차이와 그 관계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 하다. 

 

- 김우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 2011.05.11 하이서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