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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가며(자료)

서울의 능(陵), 원(園), 묘(墓)

Gijuzzang Dream 2011. 5. 27. 22:35

 

 

 

 

 

 

 서울의 능ㆍ원ㆍ묘

 

 

왕과 왕비가 묻히면 '능(陵)', 왕세자 등이 묻히면 '원(園)'

 

정릉(성북구 정릉동)

 

 

 

정릉동, 선릉로, 홍릉길, 서오릉로. 이 지명에서 공통되는 단어는 바로 ‘능’이다.

 

능(陵)이라 함은 왕릉(王陵)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왕족의 무덤을 의미한다.

고대 신라나 백제의 그것은 고분(古墳)으로 통칭하고

여기서 말하는 왕릉은 주로 고려와 조선시대의 왕족 무덤을 말한다.

그러나 서울에 남아있는 왕릉은 조선시대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조선의 왕릉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왕족의 무덤이라고 하면 으레 '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에는 엄격한 구분이 있다.

왕족의 무덤은 무덤 주인의 신분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로 분류가 된다.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사친(私親)이 묻혀 있으며,

그 외의 왕족, 즉 왕자, 대군, 공주 등은 일반인의 무덤처럼 묘(墓)라 불린다.

 

태조, 세종, 영조 등의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이지만

재위기간 중 반정(反正)으로 인해 군(君)으로 강등된 연산군과 광해군은

비록 임금이었으나 사후 '묘(墓)'로 지정이 되었으며,

재위에 오르지 못한 왕세자나 왕의 후궁이면서 왕세자의 생모 등의 무덤은 '원(園)'이라 하고 있다.

성북구 정릉동의 정릉, 도봉구 방학동의 연산군묘,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영휘원과 숭인원 등이

능 · 원 · 묘의 사례이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에 이르며, 이 중 능은 42기, 원이 13기, 묘가 64기이다.

42기의 능 가운데 북한에 있는 2개의 능을 제외한 40기의 능이 남한에 있다.

서울의 능은 태릉, 강릉, 의릉, 정릉(貞陵), 선릉, 정릉(靖陵), 헌릉, 인릉 등 모두 8기이고

원은 영휘원, 숭인원, 휘경원, 수경원, 의령원 등 5기이며,

묘는 연산군묘, 양녕대군묘, 광평대군 묘역, 창빈안씨묘 등 50여 기가 분포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경기도 일대에 산재하고 있다.

 

이처럼 능묘가 수도권 일대에 모여 있는 이유는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의 조항 때문이다.

즉 왕릉을 조성할 때 한양 도성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10리 밖, 100리 이내에 왕실의 능역을 두도록

국법으로 정하여 기록하였던 것이다.

능은 고유한 풍수지리사상과 엄격한 유교예법에 따라 국가가 주도하여 조성하였기에

완벽성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그 원형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영휘원(동대문구 청량리동)(좌), 연산군묘(도봉구 방학동)(우)

 

 

능원묘의 대표격인 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조선시대 능은 죽은 자가 머물며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성역의 개념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능역의 공간 구성은 속세와 성역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진입(속세)→제향(속세와 성역이 만나는 곳)→능침(성역) 등 3공간으로 대별되는데

속세, 곧 세상에서 성역으로 들어가는 경계가 바로 홍살문이다.

홍살문은 궁궐이나 관청 입구에 세우는 붉은 화살 모양의 문으로

이곳부터는 옷깃을 여미고 경의를 표해야 되는 신성한 장소를 의미하는데

바로 능 앞에 있는 홍살문이 속세에서 성역으로 진입하는 공간인 셈이다.

단순한 공간이 아닌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곳인 것이다.

이는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으로 가는 보도에서도 알 수 있다.

 

보도 왼쪽 길이 오른쪽 길보다 조금 들려있다.

보도 입구 안내문에는

‘이 왼쪽 길은 혼령이 다니는 곳이니 일반인들의 출입을 자제해달라’는 설명이 되어 있고,

정자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비슷한 경구(警句)의 안내문이 놓여 있다.

 

왼쪽 길은 신(神)이 다니는 신도(神道)이고, 오른쪽 길은 사람이 다니는 인도인 것이다.

이쯤 되면 홍살문 너머의 공간은 속세에서 신령한 세계로 들어가는 진입로인 셈이다.

 

위에서 보면 정(丁)자처럼 보인다고 해서 정자각이라 붙인 누각은 제사 시설이지만

궁궐에서 왕과 왕비가 거주하는 곳과 동일한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홍살문(좌), 신도(왼쪽 길)와 인도(오른쪽 길)(우), 정자각. 이 뒤편으로 무덤이 있다.(아래)

 

 

이 정자각 뒤편으로 야트막한 구릉을 따라 올라가면 무덤 주인공의 봉분이 나오는데

여기는 죽은 자를 위한 공간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으로 성역이며 신령한 세계이다.

 

능과 원, 묘는 여러 가지로 구별이 된다.

기본적인 시설은 서로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어도 

규모면에서, 각종 무덤 장식면에서, 그리고 무덤관리 면에서 확연히 차이가 있다.

능의 관리가 우선시 되었기에 묘는 거의 돌봄이 소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수지리적으로 불길하다든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능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긴 경우도 있지만

원과 묘는 그럴 소지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 곧 열외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휴일 가까운 왕릉에 가보면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왕릉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는 사람은 어린이를 동반한 학부모뿐이다.

우리가 조상묘를 성묘할 때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하는데,

국가의 통치자였던 지도자와 그 일족을 모시고 있는 신령한 곳에서는 더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앞서 간 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난잡한 행동을 삼가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왕릉을 방문할 때 알아야 할 상식으로 정자각 출입 시

동쪽으로 들어가서 서쪽으로 나가는 동입서출(東入西出)의 기본 예의쯤은 알아 두는 것이 좋겠다.

- 사종민(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문화관장)

- 하이서울뉴스, 서울역사기행

- 2011.05.26

 

 

 

 

 

 

<더 보기>

 

조선 왕릉, 세계문화유산 되다 : http://blog.daum.net/gijuzzang/8514538

 

조선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