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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기간 : 2011.5.13~9.13
- 개막행사 : 2011.5.20(금) 11:00~13:00
- 개막 특별 강연 : 성호 이익과의 만남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회장)
- 학술회의 :
2011.7.1(금) 13:00~18:00 조선시대 유서(類書)의 편찬과《성호사설》(동아시아 고대학회 공동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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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적 사유와 인식의 실제는 어디에 바탕을 두었는가?” 실학의 비조 성호 이익(李瀷)의《성호사설》중 <만물문(萬物門)>에 나타난 사물 인식에서 실용과 과학적 사고가 시작됨을 보여주고, 260년전 성호가 꾸민 박물관에서 실학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세상사물에 대한 고증·변증·관찰을 통해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풍을 담아낸 이익의 사물 인식론이 실사구시 (實事求是)와 민생(民生)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다.
■실학의 종장(宗匠), 성호 이익의 가계(家係)
■실학의 종장(宗匠), 성호 이익의 학맥(學脈)
섹션 1. 백과사전, 《성호사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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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똥구리 |
조선 실학의 여러 흐름 중에서도 경세치용학파를 열었다는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은,
어느 날 마당에서 움직이는 소똥구리를 바라본다. 벌레가 하는 모양이 하도 신기해
여러 서적을 뒤져 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소똥구리가 땅에 묻힌 똥 덩어리에서 저절로 생겨난다고 말하지만 궁금증을 키울 뿐이었다.
이에 이익은 자세하게 벌레의 생태를 살피고는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무려 40여 년을 쏟아부어 완성했다는 <성호사설(星湖僿說)> 전체 30권 30책 중에서도
권4~6의 '만물편(萬物篇)'에 수록된 368개 항목은 바로 자연 관찰과 실험을 통한 글쓰기의 산물이다.
성호는 '만물편'에서 소똥구리나 바다 게 같은 자연 관찰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의복과 음식, 생활도구에 대한 단상, 민간신앙에 대한 견해, 메모장 만들기부터 무기개량 방안까지 그야말로 만물학의 방대한 기록으로 남겼다.
기러기와 쇠똥구리의 습성을 관찰해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고, 바닷게를 분류해 생태를 기술하고,
수십 년간 꿀벌을 치면서 느낀 바를 담아 이상적 사회에 관한 장편 시를 짓기도 했다.
"하찮은 풀과 거름이라도 풍성한 곡식을 기르는 바탕으로 삼을 수 있다"
"생물을 보면 깨달음이 있다"고 한 그의 말은 고담준론이 아니라 실사구시를 추구했던
그의 학문 세계를 압축하고 있다.
소똥구리(길강, 蛣蜣)
<자서(자서(字書)>에 “소똥구리는 똥 덩이를 둥글게 만들어, 암컷과 수컷이 함께 굴리다가 땅을 파고
넣은 다음 흙으로 덮고 간다. 며칠이 되지 않아 똥 덩이는 저절로 움직이고,
또 하루 이틀이 지나면 소똥구리가 그 속에서 나와 날아 간다”고 하였다.
내가 관찰해 보니 그렇지가 않다.
처음에는 여러 벌레가 함께 더러운 똥 속에 있는데, 벌레는 많고 동이 적으면 다 빨아먹고야 만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나누어 가지되, 두 마리가 한 덩이씩 굴리는데 이리저리 뒤섞여 구별이 없다.
이것은 우연히 서로 만난 것이지 암컷과 수컷은 아니었다.
똥 덩이를 흙 속에 묻어 두는 것은 다음날 먹으려고 쌓아놓는 것이다.
까마귀와 까치가 먹을 것을 얻으면 반드시 남모르게 우거진 숲속에 간직해 두었다가
나중에 파헤쳐 먹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람들은 소똥구리가 땅속에서 나오는 것만 보고
똥 덩이가 변해서 벌레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이치는 없을 듯하다.
이것은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알아낸 것으로 나는 일찍이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뜰에 똥 덩이 있는 것을 용하게 알고 찾아와서 庭有苓通聖得尋
뒤에서 밀고 앞에서 당겨 애써 가져가는구나 後推前拒苦駸駸
자연히 서로 만나 함께 이로움을 구하는거지 偶然相値求同利
본래 두 벌레가 한마음으로 하는 건 아니라네. 未必雙虫本一心
- <성호사설, 만물문>
꿀벌 기르기(蜂史)
벌레로 어질고 착하기는 꿀벌이 으뜸이다. 이 꿀벌은 다른 벌레와 서로 다투는 일도 없다. 무릇 벌레는 초목의 잎과 껍질, 뿌리와 열매를 파먹어 해를 끼친다. 오직 이 꿀벌만은 꽃가루와 풀잎에서 흘러내리는 이슬을 모으는데 혹 다른 벌레를 만나면 옆으로 피하여 일찍이 서로 다투는 것을 보지 못했다. 벌 중에 임금[왕벌]이 있다는 것은 그 지혜와 힘으로 여러 벌들을 덮어 주고 외적을 방어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벌들이 날마다 하는 짓을 살펴보니, 왕벌은 아무 것도 마음에 두는 일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일벌들은 왕벌의 동정을 반드시 지켜보는 모양이다. 매일 한낮이 지나면 반드시 그렇게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왕벌도 한 마리의 벌일 뿐이다. 왕벌이 한 구멍에 가만히 있기만 하고 아무 하는 일이 없다면, 일벌들은 무엇으로 왕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겠는가? 위와 아래가 견고해지게 하는 것이니 무리를 위해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크게 성을 내면 침을 쏘고 죽게 되지만, 그 용맹은 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부지런히 임금만을 섬기기 때문에 서로 의심도 불평도 시기도 하지 않는다.
<성호사설> 만물문의 ‘봉순(蜂巡)’과 ‘봉사(蜂史)’에 수록된 내용에는 관찰과 분석을 통해 생물의 이치를 설명해 가는 성호 이익의 경험적인 글쓰기가 잘 드러나 있다. 성호는 자연 생물에 대해 능동적인 태도로 다가간다. 그에게 자연 생물은 교훈과 깨달음을 주는 존재였다.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과 함께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을 자연에서 찾아본다. 수십 년 양봉의 경험을 토대로 성호는 ‘왕벌[蜂王]’이라는 제목으로 한편의 시를 지었다. 꿀벌의 생태에 비유하여 군왕에 대한 충성과 각자의 직분을 다하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에 대한 유학자의 갈망을 담아낸 것이다. 또한 성호는 꿀벌을 잘 기르기 위해 유의해야 할 15가지의 방법도 자세히 정리한다. 당시 꿀벌을 기르는 백성들이 참고할만한 실용적인 지식이다. 이처럼 성호는 생물에 대한 관찰을 통해 자연을 과학적으로 바라보았고, 나아가 백성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실용정신을 실천하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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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초충도')
초충도(草蟲圖) - 풀과 곤충
모란(牧丹) 주렴계(周濂溪)가 이르기를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꽃”이라고 하였으니, 사람의 눈을 가장 기쁘게 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가 보기에 모란은 가장 쉽게 떨어지는 꽃이다. 아침에 곱게 피었다가 저녁이면 곧 시들게 된다. 부귀란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할 만하다. 또 모양은 비록 화려하나 냄새가 나빠서 가까이 할 수 없으니, 부귀란 참다운 것이 못된다는 것을 비유할 만하다.
벌 그런 까닭에 나는 벌을 노래함이란 시를 지었다.
牧丹花上何曾到 저 미물인 벌도 모란 꽃송이에는 가려하지 않으니 應避花中富貴名 꽃 중에 부귀화(富貴花)라는 이름을 꺼려하는 것이지 -<성호사설, 만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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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를 입에 문 기러기(銜蘆) <회남자(淮南子)>에 “기러기가 갈대를 물고 나는 것은 쏘는 활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나는 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함로(銜蘆)’란 대개 군중(軍中)에서 재갈을 물린 것처럼 소리 없이 지나간다는 뜻이다. 기러기는 떼를 지어 날아갈 때 울음으로 서로를 부르지만, 낮게 날아가다 사람과 거리가 가깝게 되면 재갈을 문 듯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니 이런 데에서 징험할 수 있겠다. 내가 살고 있는 바닷가에는 기러기 떼가 잘 모이지만, 갈대를 물고 다니는 기러기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고양이(家狸) 고양이는 가리(家狸)이다. 옛사람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猫兒眼裏定周天 고양이 눈 속에는 주천이 제대로 정해져 있어 子午懸針卯酉圓 자오로 지남침을 달고 묘유로 둥글게 돈다. 寅申巳亥杏仁橢 인신과 사해로 갈 때는 살구씨처럼 길쭉하게 되고 四季還如棗心然 사계로 돌아올 때는 대추씨와 같이 뾰족하구나.
고양이 눈동자는 살구씨처럼 생겨서 시간처럼 빙빙 돈다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자오(子午)란 바로 남북의 방향인 까닭에 한쪽 면만 드러내게 되고, 묘유(卯酉)란 동서방향으로 가로놓였기 때문에 둥근 전체가 나타나게 된다. 그 중간에 대추씨처럼 되기도 하고 살구씨처럼 되기도 하는 것은 모두 앞을 향해 비뚜름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모습이 각각 다르게 되는 것이다. 혹 고양이가 성을 내게 될 때는 눈 속에 달린 지남침이 반드시 성내는 기를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성을 내면 기가 따라 움직이게 되고, 눈동자도 역시 남북으로 바로 서게 된다.
병아리 기르기 병아리의 털과 날개가 생기기 전에 솔개와 매는 위에서 엿보고 생쥐와 족제비는 아래에 숨어 있다. 살쾡이와 고양이는 둥우리를 뚫고, 철모르는 아이들은 기왓장과 돌멩이로 이리저리 던진다. 이들은 모두 병아리를 잡아먹으려고 한결같이 엿보면서 사람이 어떻게 보호하는지 살핀다. 따라서 돌봐주는 사람의 마음이 조금만 게을러지면 온갖 걱정이 이틈 저틈으로 들이닥친다. 나는 병아리를 기를 때 남은 밥알을 자주 먹이며 부지런히 보호해준다. 똥구멍이 막힌 것은 털을 가위로 잘라주면 똥이 바로 터져 나온다. 이렇게 하면 병아리가 쉽게 자란다. 대개 백성들이 겪는 여러 가지 고통을 잘 사는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다. 온갖 고통을 받고 또 굶주리게 되니 어찌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다가 도랑과 구렁에 엎어져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성호사설, 만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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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와 게(장한종) 게(蟹) 갯가와 바닷가에 게가 많은데, 내가 본 것은 열 종류 정도이다. 여항(呂亢)의 <십이종변(十二種辯)>, <해보(蟹譜)>, <본초(本草)>, <도경(圖經)>, <자의(字義)> 등을 살펴보면 물의 형태와 지대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혹 살펴서 아는 것에도 옳음과 잘못이 있다. 성호가 안산 바닷가에서 관찰한 게는 대략 18종이다. △방해(蚄蟹) - 약에 넣으면 맛이 좋다. △이오(二螯), 팔궤(八跪) - 어느 곳에나 다 있다. △유모(蝤蛑) - 바다 가운데 있는 큰 게로 빛이 붉고 등에는 뿔과 가시가 있는데, 속칭 ‘암자(巖子)’라고 한다. △발도자(撥棹子) - 뒷발이 넓고 엉성한 것이 돛대처럼 생겼다. 물을 밀고 떠다니는데, 속칭 ‘관해(串蟹)’라고 하는 것은 등에 꼬챙이 같은 두 뿔이 있기 때문이다. △갈박(竭朴) - 팽활보다 크고 껍질에 검고 아롱진 무늬가 있다. △오정적(螯正赤) - 농게를 말한다. 늘 큰 뿔로 햇빛을 가리고 작은 발로 먹이를 구한다. 속칭 ‘농해(籠蟹)’란 것인 듯한데, 등이 삼태기처럼 둥글고 길쭉하기 때문이다. 암컷은 두 발이 모두 작다. △팽활(蟛螖) - 무늬발게를 말한다. 바닷가의 바위와 자갈밭에 산다. <만물문>에 따르면 ‘팽월(蟛越)’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팽해(蟛蟹)’라고 부른다. △사구(沙狗) - 팽활과 흡사하다. 모래에 구멍을 만들고 사람을 보면 이리저리 방향을 바꾼다. 지금 흔히 말하는 ‘갈해(葛蟹)’라는 것이 있는데, 등은 편편하면서 길고 털이 있으며 다닐 때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잡기 어려운데 이것이 사구인 듯하다. △의망(倚望) - 크기가 팽활과 비슷하며 늘 사방을 흘겨보면서 두 뿔을 들고 일어서서 먼 데를 바라본다. 속칭 ‘황통(黃通)’이라는 것인데, 단오날 밤이면 반드시 바다풀 위에 빽빽하게 둘러 모인다. 지역 사람들은 그네뛰기 한답시고 불을 밝히고 수없이 잡는데 팽활과 비교하면 조금 크게 생겼을 뿐이다. △노합(蘆합=虍+巾) - 팽기(蟛蜞)나 오정적처럼 생겼으나 먹을 수가 없다. 지금 속명으로 ‘적해(賊蟹)’란 것은 등에 조금 아롱진 무늬가 있다. △팽기(蟛蜞) - 팽활보다는 크고 보통 게보다는 작으며 팽월과 비슷하면서 조금 크고 털이 있다. 밭고랑 가운데 구멍을 뚫고 다니는데 채도명(蔡道明)이 게인 줄로 착각하고 먹었다가 거의 죽을 뻔했던 게가 이것이다. △마통해(馬通蟹)는 독이 있고, 율해(栗蟹)는 팽활과 같은데 등이 넓적하고 털이 있으며 뿔과 발이 뾰족한데 끝이 조금 붉다. 이것은 여항(呂亢)이 기록한 열두 가지 종류 중에도 없는 것이다. 또 옹검(擁劒), 망조(望潮), 석군(石蜠), 봉강(蜂江) 등에 대해서는 어업하는 집에 물어보았는데, 모두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 <성호사설, 만물문> <만물문>에 기록되어 있는 게 중에서 10여종 정도는 현재 멸종되었다고 한다. △도둑게 - 바다와 가까운 습지, 논밭, 냇가 등에 산다. 부엌에 들어가 음식물을 훔쳐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게 - 강 하구의 진흙 바닥, 갈대밭에 산다. △칠게 - 갯벌에 사는 게이다. *** 내용 더보기 어해도(魚蟹圖) - 옥산 장한종 / 임전 조정규 : http://blog.daum.net/gijuzzang/3291555
물레(蠶綿具) 기계가 교묘하고 세밀함에 따라 공력은 갑절이나 줄어든다. 우리나라 물레는 문익점의 장인 정천익(鄭天益)이 처음 만들었다. 물레 하나에 실톳도 하나로 되어 있다. 한 사람이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쥐고 돌리면서 왼손으로는 실을 뽑아 가락에 감게 되어 있는데, 돌아가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중국 물레와 비교하면 일을 갑절이나 할 수 있으니 묘하게 만들어졌다고 하겠다. 사조의 <석문>에는 “강남 지방에는 목면이 많이 생산되는데 봄 2-3월이 되면 씨를 뿌린다. 싹이 난 후에 한 달이 지나서 세 차례만 김을 매면 꽃이 피어 열매를 맺는다. 열매가 익으면 껍질은 네 조각으로 찢어지고 그 속에서 솜과 같이 생긴 흰 숭어리가 제대로 터져 나온다. 지방 사람들은 쇠로 만든 씨아로 그 씨를 빼버리고, 솜과 같은 것만 모아서 자그마한 대나무 활로 활줄을 잡아당기면서 뭉실뭉실하게 탄다. 모두 일정하게 타진 후에 솜을 말아서 대통처럼 속이 비게 만든다. 물레 가락에 대고 돌리면 저절로 실오리가 뽑혀 나오는데, 베틀에 짜서 베를 만든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지금의 면화(棉花)라는 것이다. 목면 재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바닷가의 구석진 지대로 목면은 심지 않는다. 목면을 혹 시험 삼아 재배해보는 자가 있지만 게으름만 피우고 제대로 가꾸지 않는다. 나중에 와서 잘되지 않으면 토양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니 어찌 그럴 이치가 있겠는가. 그러나 사실은 풍속습관이 고쳐지지 않아서 그렇지 목면의 성질이 지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방을 두루 살펴보면, 산골이건 바닷가건 목면이 생산되지 않는 데가 없으니 이는 책임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지금 북쪽지방에도 목면을 심지 않으나 이 지역은 모두 바다가 가까워서 기호지방 산 가까이 있는 고을보다 따뜻하다. 나는 이런 사실을 직접 듣고 본 결과, 저 머리에 젖은 습관은 고질처럼 되고 가꾸는 손은 생소해서 끝내 제대로 가꾸는 방법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남지방에는 소마가 없고 다만 수유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켜게 된다. 남과라는 호박이 난 지도 거의 백년이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 호남지방에는 미치지 못했으니 목면이 생산되지 않는 것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목면을 심는 방법만 깨닫는다면 반드시 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인데, 삼베옷과 가죽옷을 입는데 습관이 되어서 힘껏 생산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을 잘 달래고 지도하여 목면 심기를 풍속이 되도록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황시(黃始)와 문익점(文益漸)과 같은 공이 있게 될 것이다. 뽕나무 재배 뽕나무의 잎은 누에를 먹이고 껍질은 종이를 만들며 가지는 휘어서 광주리와 농 등속을 만든다. 뽕나무는 크게 키우기가 매우 어렵다. 뽕나무에는 두 종류의 벌레가 있는데, 한 종류는 가지에서 시작하여 속을 파먹고 뿌리에 들어간다. 한 종류는 나무가 오래 묵으면 벌레가 껍질과 살 중간에서 저절로 생겨서 그것이 빙 두르게 되면 나무가 말라 죽는다. 그리고 땅이 너무 토박하면 무성하지 않고 밭두둑에 심으면 곡식에 해를 입힌다. 그래서 뽕나무를 가꾸는 방법은 해마다 베어서 크게 자라지 못하게 한다. 또 오디가 익으면 씨를 받는데 심으면 바로 나지만, 여름철 가뭄에는 잘 마르고 겨울 추위에는 곧 얼어 죽는다. 이 때문에 씨를 받아 보관했다가 해동된 후에 심으면 겨울철이 되더라도 뿌리가 깊이 박혀 죽지 않을 것이다.
섹션 4. 만물학의 제창
책가도(책거리)
*** 내용 더보기 - 책거리(책가도, 冊架圖) : http://blog.daum.net/gijuzzang/918446 - 책가도 / 책거리 : http://blog.daum.net/gijuzzang/696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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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이규경)
조선 헌종 때 오주 이규경(李圭景, 1788~?)이 우리나라ㆍ중국(中國)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고금의 사물에 대하여 고증하고 해설하고 천문(天文)ㆍ시령(時令)ㆍ지리(地理)ㆍ풍속(風俗)ㆍ관직(官職)ㆍ궁실ㆍ음식(飮食)ㆍ금수(禽獸) 등 모든 부문에 관한 것이 수록된 60권이다. 역사 · 경학 · 천문 · 지리 · 불교 · 도교 · 서학(西學) · 예제(禮制) · 재이(災異) · 문학 ·음악 · 음운 · 병법 · 광물 · 초목 · 어충 · 의학 · 농업 · 광업 · 화폐 등 총 1,417항목에 달하는 내용을 변증설(辨證說)이라는 형식을 취하여 고증학적인 방법으로 해설하고 있다. 19세기에 들어와 임진 · 병자 양란(兩亂) 이후 조선사회 내부에 축적된 학문적 성과와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 등으로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문집인《임하필기(林下筆記)》과 작가 미상의《동전고(東典考)》등 백과전서적인 책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이 책은 이러한 학풍을 대표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규장각(奎章閣) 검서관(檢書官)을 지낸 조부인 이덕무(李德懋)의《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규경은 서문에서 “명물도수(名物度數)의 학문이 성명의리지학(性名義理之學)에는 미치지 못하나 가히 폐할 수 없다”고 하여 자신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적고 있다. 이규경은 성리학에 해박하였으며, 불교와 도교 및 서학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석전총설(釋典總說)>에서는 “유가 · 도가 · 석가를 3교로 일컬어 정족(鼎足)처럼 평등하게 여겨온 지가 오래되었다”고 하였으며, 노자(老子)를 성인(聖人)의 무리로서 평가하였다. 서학에 대해서는 발전된 서양의 과학기술은 수용하고 천주교는 사교로서 배척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동국전사중간변증설(東國全史重刊辨證說)> <이십삼대사급동국정사변증설(二十三代史及東國正史辨證說)> 등에 나타나 있으며, 중국의 역사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우리의 역사에 대해 애정을 가질 것을 강조하고 역사적 사실을 치밀하게 고증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평민 안용복(安龍福)이 울릉도를 우리 영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외에 민중생활사와 관련된 내용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농가(農家)의 월령(月令)에 대한 것, 구황식물로서 감자, 어구(漁具), 장시(場市), 화폐, 병법, 금속, 자연과학에 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책은 19세기 지식인의 학문의 폭과 깊이가 나타나 있으며, 왜곡되게 인식되어 있는 19세기 사상사를 검출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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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의 저술을 모은 책, 성호집 20세기, 이익(李瀷, 1681~1762)이 평생에 걸쳐 이룩해 놓은 실학사상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저술이다. 그의 7대손인 이덕구(李德九)의 집에 보관해 오던 것을 1917년 밀양의 퇴로서숙(退老書塾)이라는 곳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전체 구성은 이익의 문장을 살펴볼 수 있는 부(賦)와 악부(樂府), 친지 · 제자들과 주고받은 편지인 서(書), 여러 가지 저술들은 모은 잡저(雜著), 기(記), 발(跋), 논(論) · 명(銘) · 잠(箴) · 찬(贊) · 송(頌), 축문(祝文) · 제문(祭文), 비(碑) · 묘표(墓表), 묘갈명, 묘지명, 행장, 행록 · 유사(遺事) · 전(傳)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편지들을 모은 서(書)에서는 친구 및 문인(門人)들과의 학문교유 양상을, 잡저에서는 그의 실학의 핵심인 경세치용학(經世致用學)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실학자 이익의 사상과 학문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성호선생전집》권5) 나는 가난한 사람이다. 가난하다는 뜻은 재물이 없다는 말이다. 재물이란 부지런히 힘쓰는 데서 나오는 것으로 부지런히 힘쓰는 습관이란 어릴 적부터 익혀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습관을 익히지 못한 내가 어찌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루에 두 그릇의 밥은 입이 있는 자는 누구나 먹어야 하는데, 저마다 노력을 다해서 얻은 것이 아니므로 재물이란 항상 모자라고 없어지는 것이 걱정이다. 따라서 한 올의 베나 한 알의 쌀도 모두 내 힘으로 생산된 것이 없다. 그러니 어찌 이 세상의 한 마리 좀벌레가 아니겠는가? 다행히도 물려받은 땅이 조금 있어 몇 섬의 쌀을 받고 있다. 그런 빠듯한 살림살이 속에서 절약하여 적게 먹는 것으로 첫번째 경륜(經綸)과 양책(良策)으로 삼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흰 죽 먹는 것을 ‘조반(早飯)’이라 하고, 한낮에 배불리 먹는 것을 ‘점심(點心)’이라 한다. 부유하거나 귀한 집에서는 하루에 일곱 차례를 먹는데, 술과 고기가 넉넉하고 진수성찬이 가득하니, 하루에 소비하는 것이 백 사람을 먹일 수 있다. 옛날 하증(何曾)처럼 집집마다 사치하니, 민생이 어찌 곤궁하지 않겠는가? 매우 탄식할 일이다. (《성호사설》인사문 식소(食小) 중에서 발췌) 가난한 학자의 생활에 자족하면서 백성들의 음식에도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며 먹었던 죽은 임금님부터 백성들까지 먹었던 음식 중 하나였다. “곡식이란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 그 중 콩의 힘이 가장 크다”고 성호는 말하고 있다. 가난한 백성은 콩을 갈고 콩나물을 함께 넣어 죽을 만들어 먹도록 추천했다. 뜨거운 순두부 물에 꿀을 타서 먹으면 효험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있다. 나아가 백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상의 음식으로 여겼다. 성호가 지은 “콩 밥 먹으며”란 시에서 안빈낙도하며 민생에 따뜻한 시선을 지녔던 성호선생의 모습을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 실학박물관 학예팀 조준호 - 2011년 6월2일, 실학박물관 뉴스레터 <실학자의 단상> 하늘이 오곡을 만드니 콩도 그 하나지 天生五穀菽居一。 그 중 붉은 색은 더욱 좋다고 하네 就中赤色尤稱嘉。 불이 왕성하면 물은 빠르게 죽고 火旺方生水旺死。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맛은 더욱 좋다 甜滑輕輭味更奢。 가난한 집 궁핍한 살림에 더없이 좋은 방편이고 貧家乏財善方便。 싼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이것 또한 좋다 賤價易辦此亦多。 쌀과 잘 어울려 내 몸 고르게 할 수 있고 與米相和得均劑。 가마솥에 푹 찌면 김이 모락모락 錡釜爛蒸騰成霞。 그릇에 담아 내면 그 기운 사람을 씌우고 盈杅啓會氣燻人。 깨끗하고 맑으며 고르게 익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水晶火齊交相加。 들꽃에 봄 바람 불어 피고 또 피니 春風雜花開複疊。 복숭아 꽃 오얗 꽃 울긋불긋 그 색 진하다 桃紅李白色盪磨。 어른과 아이들 달려나가 다투어 숟가락질 하네 長少分行爭擧匙。 일시에 씹으니 입 안은 향그럽다 一時咀嚼芬齒牙。 이래로 고기 맛은 오래도록 잊어버리겠지 爾來肉味忘已久。 강의 잉어와 송어· 농어 자랑하지 못하고 河鯉松鱸莫相誇。 앞 마을 한 번 보니 연기 나는 집 없으니 請看前村煙未起。 이 물건 우리에게 큰 존재 아니겠나 此物於我非泰耶。 전해 들으니 부귀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사치스럽다는데 傳聞貴富競豪侈。 한 상에 만냥 고기반찬 가득하여도 一餐萬錢羶葷羅。 마음 흡족하고 배 불리는데는 자랑할 것 없다 塡胷果腹不肯休。 인민들 벗겨내여 자기 욕심 채우니 이를 어찌할까? 剝民充欲其柰何。 나는 군자를 알거니 스스로 너그러운 것 잘하지 吾知君子善自寬。 콩 밥이 큰 사람의 관대함에 무어 해가되겠나? 半菽何害碩人薖。 가난한 집에 사는 것도 괜찮으니 蓬門日月足生涯。 육경을 책상에 펴놓고 아침저녁으로 읽는다. 六籍在案終朝哦。
목판본 이익(李瀷) 저술, 이병휴(李秉休) 편
재물 중에 곡식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나는 천성이 글을 좋아하여 온 종일 글만 읽고 있다.
위의 글에서 나타나듯 성호의 식생활은 검소했다.
성호는 죽 음식을 즐겼다.
콩은 허기진 백성의 식탁을 채워 줄 으뜸가는 곡식이었다.
또한 기침병[해수병]을 치료하는 민간요법으로
성호는 콩을 자신의 삶에 매우 긴요한 곡식으로 생각하였고
콩 밥 먹으며[半菽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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