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 출토 금동판불

Gijuzzang Dream 2011. 5. 13. 06:52

 

 

 

 

 

 

 안압지 출토 금동판불(金銅板佛)

 

통일신라 궁궐에 모신 부처님   

 

 

 

 

 

        

부처님 오신 날 기념특집

   “통일신라 궁궐에 모신 부처님,   

안압지 출토 금동판불”

 
 
                        2011.05.10~2011.06.26
 

    

 

 

경주 안압지(雁鴨池)에서 출토된 금동(金銅)으로 만든 판불(板佛) 10점을 한자리에 모은

최초의 특집전시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개최한다.


안압지는 신라의 궁궐인 월성(月城) 동편의 동궁(東宮)에 위치하는 인공연못으로

신라 문무왕 14년(674)에 완공되었다.
1975년부터 시작된 발굴조사에서 당시의 일상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문화재가 출토되었다.
이 중에서도 판불은 왕실에서 제작하여 모신 불상이라는 점에서

신라 왕실의 신앙 형태를 엿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판불(板佛)'은 통일신라의 왕실에서 제작한 불상이라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궁궐에서는 어떤 부처님을 모셨는지, 어떻게 제작하고 봉안하였는지 등

신라왕실 신앙의 일면을 살펴보고자 기획되어

출품된 2구의 금동판삼존불좌상과 8구의 금동판보살상을 통하여 신라왕실 불상의 우아함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표현을 구사하면서도 단정함과 화려함을 잃지 않았던 왕실의 품격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영산교주석가모니불(靈山敎主釋迦牟尼佛), 문수대보살(文殊大菩薩), 보현대보살(普賢大菩薩),

관음대보살(觀音大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증청묘법다보여래(證聽妙法多寶如來),

극락도사아미타여래(極樂導師阿彌陀如來)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도상은 『법화경(法華經)』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당시에 간행되었던 영상회 의식집의 거불편에 거명되는 인물들과도 일치하여

불교의식집에 근거한 도상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 삼존불 금동판삼존불좌상 / 높이 27.0㎝, 보물 1475호, 국립경주박물관

 

 

- 보살 금동판보살좌상 / 높이 23㎝, 보물 제1475호, 국립경주박물관

 

 

?왕실의 신앙, 아미타불인가? 석가불인가?

 

금동판삼존불좌상은 중앙이 주존불이 있고 그 좌우에 보살이 모셔져 있다.

주존의 풍만하고 당당하며 이목구비가 작고 통통한 얼굴은 사색에 잠겨 있다.

주존의 손모양(수인, 手印)이 석가모니가 최초로 설법을 행할 때 맺었던 초전법륜인(初轉法輪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석가불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형식의 불상이 중국 둔황석굴 벽화와

일본 호류사(法隆寺) 벽화의 아미타정토도(阿彌陀淨土圖)에서 보이고 있기 때문에

아미타불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일본의 호류사 헌납보물에도 이와 비슷한 도상의 판불상이 있고

보살의 보관에는 화불이 있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를 협시로 하는 아미타불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전법륜인을 한 아미타삼존불이 당시 7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 동아시아에서 유행하고 있었으며

통일된 신라 왕실에서도 아미타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디에 모셔져 있었을까?

 

안압지에서 발견된 판불은 모두 아랫부분에 촉을 단 흔적이 있어 어딘가에 꽂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광배의 주연부에는 못 구멍이 있어 나무판 같은 고정된 장소에 안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에 모셔져 있던 불상인지 추측하기 어렵다.

판불이 안압지의 제1건물터에서 1점이 발견되었고

그 외에는 건물과는 관계가 없는 남쪽 섬과 그 동편 연안 사이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건물에 고정된 불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고

감실을 만들어 판불을 그 안에 고정시키고 개별적인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판불은 금속으로 판불을 만드는 보편적인 방법인 두드리는 방법과는 다르게 제작되었다.

형식, 형태면에서 닮아있는 일본의 판불은

동판을 틀에 대고 두드려 만들어 똑같은 크기로 다량생산이 가능하지만

이 판불은 밀랍을 이용하여 한쪽 면만을 금동으로 부어 만드는 실랍법(失蠟法)에 의한 것이어서

한번 작업에 하나씩만 만들 수 있고 표현이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다는 장점이 있다.

 

금동판보살좌상 중에는

광배의 화염 부분이 훼손되어 화염을 따로 만든 후 못으로 박아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를 통해 판불이 오랜 시간 사용되었으며,

왕실 공방에서는 불상을 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리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 이정은 

-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 News, 2011년 5월호, Vol. 477

 

 

 

 

금동 아미타불 삼존불좌상(金銅阿彌陀三尊板佛坐像)

출토 : 안압지 

너비 : 20 cm

문양장식 : 식물문(植物文) / 연화문(蓮花文), 식물문(植物文) / 당초문(唐草文)

 

안압지에서 모두 10구(驅) 출토된 판불(板佛)은

안압지(雁鴨池)의 동쪽 언덕에서 발견되었는데

중국이나 일본의 판불이 압출불(押出佛)임에 반해 실납법(失蠟法)을 이용한 주조불(鑄造佛)이다.

판불의 밑부분 양 끝에는 장방형(長方形) 촉(鏃)이 달려 있었던 흔적이 있어

불감(佛龕) 같은 곳에 꽂아 안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본존(本尊)은 우리나라에서 예가 드문 설법인(說法印)의 수인(手印)을 맺고 있다.

이중연화문(二重蓮花文) 안에 인동문(忍冬文)이 배치된 연화대좌(蓮花臺座)에

오른발이 왼발 위에 올라간 길상좌(吉祥坐)로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질서정연한 호선(弧線)을 반복한 번파식(번波式) 옷주름의 법의(法衣)를 입은 모습이다.

*번파식 : 옷 주름이 파도치듯 번갈아 연속되며 두텁게 층단을 이루고,

              큰 주름 사이에 들어간 부분이 볼록하게 나타나는 크고 작은 이중 주름이며,

              질서정연하고 매우 사실적인 옷 주름으로 

              인도 조각의 요소로서 우드야나(Udyana)기법이라고 한다.

 

두 협시보살(脇侍菩薩)은 본존을 향하여 율동적인 삼곡(三曲)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광배(光背)는 삼존 각각의 두광(頭光)과 이들을 당초문(唐草文)이 감싸 안아

삼존 전체의 광배를 이룬 특이한 형태이다. 유려하고 균형 잡힌 조형미로

통일신라 초기(7세기 말∼8세기 초)의 성당(盛唐)양식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