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화, 프랑스에서의 자취
한국문화재의 가치 발견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프랑스국립기메동양박물관은 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 동양미술품을 전시하는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리용의 사업가 에밀 기메(Emile Guimet, 1836~1918)가 1889년에 설립한 박물관으로, 당시 세기 말을 풍미하던 오리엔탈리즘의 시대적 조류에 힘입어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는 물론 이집트, 터키 등 근동(近東)지역까지 폭넓은 소장품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발전하였다.
이 박물관에 한국관이 설치된 것은 1889년부터 1919년까지이며, 1970년대 들어서 20평 규모의 전시실로 다시 문을 열었다. 또 1998년에는 박물관 개 · 보수와 더불어 국립문화재연구소 전문가들에 의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문화재에 대한 전면적인 정밀 실태조사가 이루어졌다. 이것을 통해 한국문화재에 대한 가치와 성격을 새롭게 밝혀내고, 우리 유물 속에 섞여 있던 중국, 일본 문화재를 구별해내는 성과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기메동양박물관에 다수 소장되어 있는 한국 불화가 수면 위로 떠올라, 그것이 지니고 있는 고매한 가치와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한국불화의 백미, 아미타여래도와 수월관음도
많은 불화 중에서도 국내에 전시된 적이 있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 있다.
바로 고려시대 작품인 아미타여래도 2점과 수월관음도이다.
아미타여래도는 아미타불이 연꽃을 딛고 선 아미타독존 입상 형식이다.
수월관음도 또한 고려시대의 작품이며 관음보살과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대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어둡게 묘사되어 있는 바탕 때문에, 관음보살이 어둠 속에서 달처럼 아름답게 빛나며 현신하는 것 같은 신비한 효과를 주고 있다. 아미타여래도와 수월관음도는 고려불화의 백미라고 불릴 만큼 그 화려함과 더불어 역사적 가치, 문화재적 중요성이 크다.
이외에도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에서 제작하여 경기도 광주군 남한산성 서문안에 소재한 국청사(國淸寺)에 봉안했던 감로탱화(영조 31, 1755년)와 경기도 고양시 만월산에 위치한 수국사(守國寺) 후불탱화로 알려진 15점은 모두 화기가 있어 발원의 주체와 소재지가 밝혀진 작품들로서 가치가 있다.
특히, 경기도 고양시 만월산에 위치한 수국사 후불탱화로 알려진 15점에는 감로왕이 육도(六道) 가운데 하나인 아귀의 세계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내용의 감로탱화(순조 32, 1832년)와 염라대왕이 지옥에서 망자를 심판하는 모습의 현왕도(영조 32, 1756년/ 정조 24, 1800년), 지장시왕도(1796∼1820년), 신중도(정조 24, 1880년), 서운선사학도처선대사초상화(栖雲禪師學道處善大師肖像畵, 1930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도 김홍도의 8폭 풍속도병풍과 19세기 말 부산, 원산, 제물포 등 개항장에서 주로 활약하여 외국에 더 많은 작품이 산재해 있는 기산(箕山) 김준근의 풍속도가 170점, 작자 미상의 풍속도가 다량 소장되어 있다. 당시 수집가들이 이국의 예술과 풍속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프랑스의 이국 문화에 대한 관심
이들 소장유물의 내용을 통해 당시 프랑스인들의 한국미술에 대한 미감을 엿볼 수 있으며, 이는 당시의 시대 분위기 흐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국립기메동양박물관의 한국유물의 수집이 가능하였던 것은 19세기말 유럽에서 막 불기 시작한 오리엔탈리즘이 프랑스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하여,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불교라는 이국종교에 대한 관심 등이 일어나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프랑스에 소개한 인물은 지리학자이며 민속학자인 샤를 바라(Charles Louis Varat, 1842~1893)와 빅토르 콜렝 드 플랑슈(Victor Collin de Plancy, 1987~1906년 한국체류),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1865~1935) 등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한국을 다녀간 이들이다.
1886년 조불우호통상조약(朝弗友好通商條約)의 체결로 우리나라가 프랑스와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시작하면서 프랑스 외교사절단들이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다.
빅토르 콜렝 드 플랑슈는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우호통상조약이 체결된 그 이듬해인 1887년에 최초의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 자격으로 서울에 부임하였다. 그는 1888년부터 1891년까지 영사자격으로, 1895년부터 1905년까지는 총영사 겸 대리공사로 서울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는 한국에 머무는 13년 동안 한국의 서적과 골동품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1891년에 100점의 도자기를, 1895년에는 가구류나 회화를 프랑스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지리학자이며 민속학자인 샤를 바라(Charles Louis Varat, 1842~1893)는 꼴렝 드 플랑슈의 지원을 받아 1888년부터 1889년에 걸쳐 조선을 여행한 인물이다. 그는 꼴렝 드 플랑슈 공사가 프랑스 여행가 한명이 조선의 생산품을 구입하기 위해 매일 아침 상인들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 공사국에서 기다린다는 소문을 퍼뜨려 그들이 가지고 오는 희귀한 물건을 정밀하게 검사하고 구입하였다고 후에 기술하였다.
그는 조선 탐험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가 수집해 온 문화재들을 프랑스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이관하고, 때 마침 파리에 체류 중인 조선말기 정치가 홍종우(洪鍾宇, 1850~1913년)의 도움을 받아 이들 수집품들을 정리하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1893년 프랑스국립기메동양박물관 안에 한국관을 개관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만난 한국적 미학의 파노라마
프랑스국립기메동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문화재는 약 천여 점에 달한다.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손잡이 달린 잔을 비롯하여 각종 항아리, 고배, 합, 병 등 일상용기의 토기와 신라 금동관, 고려시대 투조 장신구, 허리띠 장식, 귀걸이 등 장신구와 수저, 금속용기 등의 생활용기, 동경 등 다양한 금속공예품이 있다. 그리고 청자와 분청자, 백자 등 각 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도자기도 상당한 수량을 차지하며,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는 불상과 나한상, 동자상이 있다.
이밖에도 박물관의 초기 수집품으로 알려진 회화 작품은 화기와 발문이 전해지고 있는 불화와 무속화, 풍속화, 초상화 등 다양한 장르의 것이 많아 그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프랑스국립기메동양박물관 한국관은 유럽 내 한국문화예술 소통의 교두보로, 한국적 미학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박대남,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사진ㆍ국립문화재연구소
- 2011-04-15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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