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서울의 공공미술

Gijuzzang Dream 2011. 4. 29. 08:59

 

 

 

 

 

 

 서울의 공공미술

 

 

 

 

  연재를 시작하며

 

  공공미술, 공공디자인은 이 시대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특히 공공디자인은 서울시의 혁신적 노력으로 전국적 차원의 화두가 됐다.

  공공미술, 공공디자인으로 차츰 서울이 ‘샤방샤방’하게 바뀌고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걱정이 남는다.

  물리적 공간, 기능만을 염두에 둔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기우이다.

  작가든 디자이너든 개인적 표현의 배설구로 공적 공간이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기우,

  경제적 욕구만을 위해 공공미술 장사꾼, 공공디자인 장사꾼만 활개 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 말이다.

  공공미술, 공공디자인이 관의 행정만 앞서서 일궈낸 반짝 베스트셀러로 끝나지 않고,

  문화와 역사, 시민들의 삶과 예술이 담겨 있는 영원한 스테디셀러가 되길 바란다.

  

  공공미술을 씨줄로,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인접 분야를 날줄로 엮으려고 한다.

  이미 다른 지면에서 발표한 것도 포함해서 새로운 내용까지

  매주 연재하는 내용들이 공공미술, 공공디자인이 서울의 스테디셀러가 되는데

  한 페이지라도 보탬이 된다면 다행일 것 같다.

 

 

 

 

가림막의 진화

 

 

가림막에 공공미술을 허하라!

 

몇 해 전,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비통 매장이 새롭게 리노베이션 공사를 하면서 외부 가림막으로 대형 루이비통 가방을 선보인 적이 있다. 공사중인 와중에도 브랜드를 선전하는 기민함과 탁월함도 놀랍지만 3, 4층 높이의 거대한 루이비통 가방은 이미 공사장 가림막이나 광고물 이상으로 훌륭한 조형물이 됐다. 건물 공사장에서 볼 수 있는 철근 구조물이나 안전망은 거대한 루이비통 가방에 감춰져 당시 샹젤리제 거리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었다.

 

가림막이 진화하고 있다. 건설현장 ‘가림막’ 하면 십여년 전만 해도 너덜거리는 천조각이 전부였다. 흙먼지와 신경을 긁는 소음으로 ‘공사판=개판’의 등식이 성립되던 시절이다. 그나마 조금 좋아진 것이 너덜거리던 천조각이 깨끗한 가림막으로 바뀌고, 건설사나 해당 지자체를 홍보하는 문구나 꽃, 풍경, 기업의 이미지 광고 등 계몽적 사진들로 치장한 것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공사장 가림막이 획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깨끗하지만 밋밋하게 색칠된 철판이나 홍보문구가 고작인 가림막이 이제는 저마다 개성을 뽐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공사장 가림막과 공공미술, 공공디자인과 만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진화가 가속을 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리노베이션 공사장 가림막이 대표적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모자를 쓴 사람들이 비처럼 내리는 르네 마그리뜨의 ‘골콘다’가 백화점 건물 전체를 감싸 안으면서 지나는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작권료만 1억원에 가림막 제작비로 2억원가량 소요되어 일반 천쪼가리 가림막에 비하면 수 십배가 넘는 비용이 들었다지만, 기업이미지 홍보 효과로만 본전 이상을 뽑은 셈이다.

유명 외국작가의 작품을 카피해서 확대한 것에 불과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저 그런 가림막 사이에서 대단한 반향을 불러 왔다. 오히려 공사가 끝나면서 철거된 것이 아쉬울 정도다.

 

광화문 복원 공사가 한창인 세종로에 가면 강익중의 ‘광화에 뜬 달’을 만날 수 있다. 후덕한 달항아리 그림을 가로세로 60cm 나무합판 2,616개로 이루어진 높이 27미터, 가로 41미터 크기의 대형 캔버스에 그린 셈이다.

 

광화문의 금호아시아나 사옥 공사장 가림막은 이름까지 갖고 있는 ‘작은 갤러리’다. ‘시지엄(Cseum)’.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작은 ‘시티 뮤지엄’이라는 의미로 공사장 담벼락엔 이정교 홍익대 교수가 우제길, 이영희, 이성자, 하인두 등 국내 작가 4명의 작품 7점을 콜라주 형식으로 만든 작품을 설치했었다. 최정화는 서울문화재단 공사할 때 아예 건물 전체를 설치미술로 만들기도 했다. 조각가 신현중은 을지로의 ‘101 파인애비뉴' 가림막 100여미터를 붉은색의 바탕 위에 중간 중간에 사슴, 산양 등 우제류(짝수 발굽 동물)를 흰색으로 형상화했다. 디자인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공공미술로도 손색이 없다.

 

이처럼 예술의 옷을 갈아입으면서 귀하신 몸이 된 공사장 가림막은 작가라면 한번쯤 욕심나는 공간이 됐다. 공사장 가림막 만한 크기의 캔버스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가림막은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 붐을 타고 날로 인기가 상종가다. 그러나 아무래도 일반적인 가림막에 비해 예술적인 가림막은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유행이라 뭔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만만치 않은 비용이 부담스럽다. 아직도 고루한 관련 법규도 문제다. 서울시에서는 특별한 규정 같은 것이 있지는 않는 것 같지만 각 구청에 따라서 자치구를 상징하는 꽃이나 나무, 동물 등 상징물이나 “살기 좋은 OO구” 같은 식상한 슬로건이 반듯이 들어가야 되는 경우가 많아 가림막 자체가 우스꽝스러워지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 신청사 공사현장의 가림막도 훌륭한 공공미술이다. 가림막을 서울과 관련된 작은 사진들을 모아 모자이크로 만들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렇지만 조금 떨어지면... 거대한 그림이 된다. 서울의 풍경이다. 다양한 색감의 사진들이 군무를 이뤄 한강이 되고, 시청이, 남산이, 63빌딩이 된다. 서울광장 한켠에 있는 가림막은 새로운 서울의 명품이 될 신청사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안고 그 자체로 명물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옥의 티. 가림막 상단에 보란 듯이 적어 놓은 문구가 아직은 새마을운동 수준이다. “창의시정, 경제문화도시, 맑고푸른서울, 도시균형발전, 시민행복 업그레이드...” 티 내지 않아도 된다. 더더욱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신청사 공사현장의 멋드러진 가림막은 공무원 특유의 조급함이 묻어나는 홍보성 슬로건으로 예술에서, 거대한 캔버스에서 홍보게시판으로 스스로 격을 낮춘 셈이다.

 

서울의 가림막들이 자치구와 기업을 위한 홍보와 광고의 경연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을 시급히 정비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공공미술의 차원에서 가림막이 보다 예술적으로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 그리고 도시미관의 개선과 예술의 생활화, 대중화를 위해서 현행 건축물미술장식품제도에서 가림막까지 대상을 확대하면 어떨까?

 

미술장식품은 제도적 울타리에 갇혀 다양한 공공미술을 보여주기에 제약이 많다. 식상한 형태와 재료는 스스로를 옭매고 있어 창작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미술장식품이 꼭 영구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고작 몇 년 공사기간에만 볼 수 있지만 가림막이 제대로 된 공공미술을 만나게 된다면 아파트 한구석에 처박힌 비슷비슷한 돌조각을 매일같이 보는 것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 조례에서 미술장식품의 범위, 대상을 조금만 확대하면 정말 쉬운 일이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도시에는 저마다 독창적이고 개성이 넘치는, 예술의 옷을 입은 가림막들이 넘쳐날 것 이다. 서울시가 앞장선다면 말이다.

- 2008.07.10

 

 

 

 

새로운 서울의 아이콘 ‘해치’이야기

 

 

 

공공미술 이전의 공공미술 ‘해치’상

 

숭례문이 화마에 잿더미가 됐다. 어제일 같다.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2층 누각이 ‘폭삭’ 주저앉는 황망한 장면이 뇌리에 생생하다.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을지도 모른다.

 

숭례문은 한양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알다시피 역성혁명을 통해 조선을 건국한 이태조와 정도전은 숭유억불정책을 폈다. 그리고 유교의 다섯 가지 으뜸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방위에 적용하여 사대문을 만들었다. 동쪽은 흥인문(仁), 서쪽은 돈의문(義), 남쪽은 숭례문(禮), 북쪽은 홍지문(智)이 그것이다. 홍지문은 숙청문이라고도 한다. 다섯 가지 덕인데 사대문이니 하나가 빠졌다. 남은 것은? 신(信)이다. 그래서 사대문의 중심에 보신각(信)을 만들었다. 믿음의 종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는 뜻이다. 숭례문은 한양의 정문 역할을 해서 사대문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숭례문 화재를 두고 흉흉한 민심 탓인지 당시에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한참이었다. 광화문 복원사업을 하면서 해태상을 이전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해태상 이전과 숭례문 화재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상관이 있는 걸까?

 

경복궁 등 조선의 궁궐들은 유독 화재에 속수무책이었다. 목재로 지어진 탓에 방재 장비가 부족한 탓에 당시만 해도 화재는 국가적 재앙이었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조산은 관악산이다. 관악산은 돌이 많다. 대부분의 돌산은 풍수지리상 불기운이 강한 화산(火山)이다. 결국 궁궐의 앞머리에 강한 불기운을 머금고 있는 화산이 있다 보니 화재가 빈번했다는 소리다.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고자 관악산 정상에 우물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을 넣었다고 한다. 서양의 용은 불은 내뿜는 악한 동물이라면 동양의 용은 비바람을 부르는 상서로운 영물이다. 그래서 용은 물을 상징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비를 부르는 용으로 화마(火魔)를 막아보려는 간절한 바람이 궁궐과 숭례문 지붕 윗부분 가로로 길쭉한 용마루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 앞 양쪽에는 해태상을 놓았다. 해태상은 풍수지리상으로는 불을 삼키기도, 뱉기도 하는 상상 속의 동물로 화기를 다스린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화산인 관악산을 누르고 도성과 궁궐을 위협하는 화마를 제압하기 위해 해치를 세웠다는 것. 화마가 불을 지르기 위해 달려들면 해치의 목에 달려 있는 방울이 저절로 울려서 알려 주기도 했단다.

 

그 해태상이 광화문 복원사업 과정에서 없어졌다. 그리고는 숭례문이, 연이어 세종로의 정부종합청사에 불이 났다. 해태상이 없어졌다고 불이 났을 리 만무하다. 용마루 또한 있다고 해서 불이 안 났을 리도 없다. 해태상은 단지 지금처럼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에, 화재를 예방하고 방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어져 왔을 뿐이다. 그러나 해태상은 당시만 해도 그냥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 주술적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 의미에서 해태 조형물은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 공공미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공미술 자체가 건축과 조각이 분리되고, 환경과 미술이 분리되고, 삶과 예술이 분리되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전통적으로 마을 어귀의 장승, 솟대는 공동체의 상징물이자 마을의 수호신, 지역간의 경계와 이정표의 역할을 한다. 성황당의 돌탑은 개인과 집단의 안녕을 기원하고 소원 성취를 바라는 주술적인 역할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장승, 솟대는 기념조각, 상징조형물이고, 돌탑은 참여미술이고, 공동체미술이다.

 

근대 이전의 모든 조형물들은 의식적으로 공공미술을 지향하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원래부터 조형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공적이었다. 서구에서도 적어도 18세기 이전에 미술이 하나의 ‘작품’으로서 건축이나 공간, 장소로부터 분리되기 전에는 그야말로 공공미술이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잘 먹고, 죽거나 다치지 않고, 번창한 자손을 기원했던 말 그대로 공공의 가치를 추구했던 공공미술인 것이다.

 

해태의 순우리말은 해치다. 이 해치가 서울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선정됐다. 해치는 화재를 막는 역할 외에 그 부릅뜬 눈을 미뤄 짐작할 수 있듯이 정치의 잘잘못을 가리고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상상 속 동물로 사헌부, 사간원의 역할에 딱 맞는 상징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관복에 해치를 새긴 것도 그 때문이다. 문관은 학을, 무관은 호랑이를 수놓은데 비하여 사헌부의 관원들의 흉배에는 해치를 수놓았다. 지금도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나 대법원, 검찰청 등에 가면 해치 조형물을 만나게 되는 연유다.

서울시가 앞으로 해치를 싱가포르의 머라이언(머리는 사자, 몸통은 물고기인 상상의 동물)이나 베를린의 곰처럼 서울 하면 떠오르는 상징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국가나 도시를 상징하는 상징물에는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빅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상,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뉴욕의 빅 애플,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의 예수상 같은 조형물이나 건축물들이 있다.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된 다른 도시의 상징물처럼 해치가 서울시의 대표 아이콘이자 상징조형물로 자리 잡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광화문 광장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입구에 해치상을 배치하는 등 곳곳에 해치상을 설치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치상은 상상의 동물을 형상화한 조형적인 요소에 불을 막고, 부정비리를 막는 기능적인 역할이 일체화되어 있는 공공미술이었다. 이처럼 해치상은 지금의 공공미술이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공공미술이 가져야 할 시대정신, 공공적 가치에 대한 것이 과연 무엇일지, 강력한 상징물로서의 현대의 공공미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치상이 서울시 대표 아이콘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되묻게 된다.

- 2008.07.17

 

 

 

 

 

 

범람하는 상징물 사이에서 ‘해치’ 구하기

 

 

영동고속도로를 내달리다보면 이천 즈음에 하얀색의 커다란 ‘무’처럼 생긴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축물이라고 하기에는 좀 특이하고, 조형물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장난감 같다. 어림잡아도 20미터는 족히 돼 보이고, 고속도로 상하행선 수 백 미터 앞에서도 시선을 잡아챈다.

그런데 웬걸, 처음에는 ‘무’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도자기 형태와 비슷하다. 그제야 무릎을 친다. 도자기로 유명한 이천을 상징하는 ‘이천도자상징 조형물’인 것. 직업의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실소를 자아내는 촌스러움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백자’와 ‘무’의 중간 쯤 되는 외형에 인체캐릭터의 형태가 ‘짬뽕’된 이 조형물은 지금도 ‘개그콘서트’ 스타일의 아우라를 뿜으며 확실하게 이천을 홍보하며 그 자리에 서 있다. 광고 역할은 톡톡히 하고 있으니 어쨌거나 성공?

 

지방자치단체나 특산물을 홍보하는 여러 가지 방식 중 유용한 것 중에 하나가 상징물이다. 그러고 보니 지자체마다 앞 다퉈 상징조형물을 설치하곤 한다. 브랜드 홍보를 통한 이미지 제고와 관광객 유치, 지역 특산물의 매출 증가 등 다양한 필요성은 지자체마다 캐릭터와 상징조형물을 양산한다.

 

남양주에 가면 ‘먹골배상징 조형물’이, 익산은 ‘익산보석상징 조형물’, 태백의 ‘태백스포츠상징 조형물’, 횡성의 ‘횡성한우 조형물’, 강릉의 ‘홍길동 조형물’, 괴산의 ‘괴산고추 조형물’, 경기도의 ‘토야’, 인천의 ‘두루미’, 대구의 ‘패션이’, 서울의 ‘왕범이’ 등 지천이다. 종류도 형태도 다양하다.

이처럼 각 지자체들이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유의 상징물과 캐릭터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황당하거나 웃겨서 이목을 끄는 경우는 종종 있다.

고추로 유명한 괴산군의 상징물은 임꺽정이다. 양주 출신으로 경기도와 황해도를 주무대로 활동했던 임꺽정이 대뜸 충북 괴산의 상징물이 된 것도 의아스럽지만 양주의 임꺽정이 괴산으로 오면서 변강쇠로 변신한 연유가 더 궁금하다.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에 무슨 자양강장의 효능이 있는지, 아니면 고추의 ‘hot(매운)’한 맛이 그야말로 ‘hot(정열적이다)’을 연상시켜서 인지. 아니면 고추 자체의 어감과 생김새 때문인지. 브랜드는 임꺽정이지만 아이콘은 변강쇠에 가깝다. 작자미상의 ‘괴산고추상징조형물’은 5등신에 덥수룩한 수염. 풀어헤쳐 떡 벌어진 가슴. 게다가 거대한 크기의 고추(?)를 호기롭게 짊어진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단언컨대 괴산고추는 유명해질 것이다. 왜냐구? 변강쇠, 아니 임꺽정고추 조형물을 한번 보고 나면 절대 못 잊을 만큼 웃기기 때문이다.

 

허균의 고향인 강릉의 상징물은 홍길동이다. 강릉에 가면 곳곳에 홍길동 조형물과 캐릭터물이 즐비하다. 그중에서 ‘수류탄을 던지는 홍길동’처럼 현대화된 캐릭터는 조악한 형태와 황당한 스토리로 인해 확실히 기억에는 남는다. 물론 도시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것 같다.

 

이처럼 대부분의 지자체들에서 수준 이하의 캐릭터와 상징물이 넘쳐 난다. 덕분에 우리 지자체에도 내세울 상징이 있다는 자족감을 제외하면,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애초의 의도와 전혀 딴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와중에 새로운 서울의 아이콘으로 해치가 선정됐다. 특히 서울에는 이미 ‘왕범이’라는 호랑이를 형상화한 캐릭터가 있다. 88서울올림픽 와중에 탄생한 캐릭터일 듯. ‘왕범이’가 다른 지자체 캐릭터처럼 고만고만하다면 해치는 일단 디자인에서는 좀 더 세련됐다는 점에서 좀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해치를 선정했다고 발표한 이후에 상징물로서의 해치의 적격성과 절차상 문제, 독창성 등의 잡음도 새어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빅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싱가포르의 머라이언과 같이 이미 세계적으로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된 외국의 상징물처럼 해치가 서울시민의, 지구촌사람들의 가슴에 자리 잡으려면 갈 길이 정말 멀다. 특히 한 도시의 상징물로 인식되기까지의 역사적, 문화적 과정과 맥락이 고려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시민이 느끼는 심리적 상징물과 서울시에서 선정한 해치라는 브랜드 아이콘과의 온도차는 아직까지는 커 보인다.

 

서울만의 고유한 특징과 이미지를 담은 상징으로 해치를 선정한 서울시에서는 “정도 600년을 거치는 동안 전설과 상상 속의 동물로 서울과 함께한 ‘해치’가 이제는 서울을 세계에 알리는 상징으로 거듭난다”고 밝혔다.

 

내년 6월 완공 예정인 광화문 광장의 ‘해치상’이 본래 위치에 복원되며, 또 서울 곳곳에 유리나 고광택 금속 형태로 만든 해치 조형물이 설치될 예정이라고 한다. 택시나 버스, 지하철, 도심 조형물, 각종 액세서리, 티셔츠 등에서 해치를 쉽게 만날 것으로 보인다. 나름 예쁘고, 깜찍한 디자인이겠지만 해치가 지나치게 디자인적이다 보니 상징조형물로서의 해치 조형물이나 건축물들이 어떤 형태가 될지 궁금하다.

 

너무 디자인적이거나 혹은 너무 전통적인 조형물이 아닌 현대적인 변형을 거쳐 예술적인 조형성과 강력한 상징성을 갖는 그런 공공조형물이 기대된다. 하기야 에펠탑도 세워진 직후에는 “고철 덩어리 흉물탑”이라고 파리시민들의 비난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모파상은 에펠탑을 너무나 보기 싫어해서 파리에서 유일하게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에펠탑 안에서 식사를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위안이 된다.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물로 자리하기까지의 과정처럼 너무 멀리가 아니라, 꼭 한발정도 앞서가는 조형성과 현대미도 필요하다. 그건 위안이 아니라 서울시와 서울시민 뿐만 아니라 관련된 디자이너와 공공미술가들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숙제가 될 것이다.

2008.07.24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 대화가 필요해!

 

 

그것을 공공미술이라 해야 할지, 공공디자인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을 두부 자르듯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겠지만 말이다. 삼성종로타워 앞 광장에 가면 두툼한 원판을 조금씩 어긋나게 쌓아 올린 낮은 구조물이 랜덤하게 흩어져 있다. 종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졌고, 다른 하나는 검정색에 가까운 돌이다. 일종의 벤치인 셈. 기존에 흔히 보는 벤치에 비하면 나름 세련됐다. 요즘에야 서울시의 공공디자인 정책에 힘입어 벤치 같은 스트리트퍼니처를 좀더 예술적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많아지면서 아트벤치, 디자인벤치가 많아졌다지만 10년 전인, 1998년 종로타워가 만들어진 때를 생각하면 이 같은 시도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벤치는 홍승남이라는 작가의 작품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핸드페이퍼와 그라인더로 치밀하게 갈아내어 표면 질감이 주는 정제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기계적이고 차가운 금속재료에 노동의 미학을 아로새긴다.

검정돌로 만들어진 벤치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벤치와 어우러져 주변 광장에 흩뿌려져 있다. 물갈기로 매끈하게 갈아낸 원판형 검정돌을 어긋나게 쌓아 올렸다. 작가가 제작한 것은 아니다. 아마 종로타워 공사와 관련된 조경회사나 디자인회사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형물이라 불러야 할지, 시설물이라 불러야 할지 잠시 주춤하게 만들지만, 두 종류의 원기둥형 벤치는 금속과 돌이라는 재료의 차이, 그리고 약간의 크기 차이를 빼고는 벤치로서의 기능, 공간 배치 방법, 구조물을 쌓아올린 형태가 거의 동일하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 이것을 공공미술로 불러야 할지, 공공디자인으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이 지점에서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조각가가 만들었으니 스테인리스 벤치는 공공미술이고, 조경이나 디자인회사에서 만들었으니 돌 벤치는 공공디자인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지금 현실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전통적인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확실한 것들은 미술, 디자인이라고 부르지만 스트리트퍼니처 등 중첩되는 지점에서 경계가 모호한 조형물들은 애매하다.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을 구분하는 것은 오로지 ‘누가 만들었는가’이다. 작가냐 디자이너냐 그것이 문제다.

 

현재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의 분야가 가장 많이 중첩되는 지점은 스트리트퍼니처다. 가림막에서부터 가로등, 벤치, 펜스, 이정표, 분수 등 공공미술은 좀 더 기능성, 경제성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은 거꾸로 기존의 기능성과 경제성만을 고려해서 볼품없이 싸게만 만들다가 이제는 예술성, 창조성을 고민하고 있다. 스트리트퍼니처 중에서는 벤치가 압도적으로 빈도가 높다. 아트벤치는 공공미술작가가 기능성, 공공성을 고려할 때 가장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미술로 만날 수 있는 벤치는 천편일률적인 벤치에 비해 아주 작은 수지만 보석처럼 빛이 난다. ‘sometimes', 'never' 등 알파벳으로 만든 뉴욕의 벤치는 뉴욕시 퍼센트법으로 제작된 공공미술작품이다. 동물을 단순화한 벤치는 대량 생산이 가능해서 기능성, 경제성이 높다. 롯뽄기힐스는 아예 작가와 디자이너들이 ‘아트벤치’를 대규모로 설치하면서 공공미술로 유명해졌다. 등나무를 옆으로 누운 8자 모양의 벤치에는 담쟁이가 타고 올라간다. 공공적, 생태적 벤치인 셈. 강렬한 붉은 색 철판을 자유자재로 휘어 만든 벤치나, 범고래를 추상화시킨 벤치 등 다양한 아트벤치가 있어 공공미술에 관심 있는 관광객에게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아트벤치가 필수 투어 코스다.

 

 

국내에서도 아트벤치를 만든 작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진섭은 안락의자처럼 편해 보여, 푹 안기고 싶은 벤치를 돌로 만들었다. 한진섭의 근작은 둥그런 벤치에 화강석 위에 대지, 말, 호랑이, 하마 등 동물 가족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지나가는 이들도 사이사이에 앉아 웃는다. 이재효는 못으로 벤치를 만들었다. 조심 심 앉지 않으면 옷이 찢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웅배는 금속배관을 이리저리 용접해서 조형물을 만든다. 꼭 벤치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에 앉아 있는 시민이나 정글짐처럼 타고 노는 아이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채미지는 붉은색, 검정색 돌로 2미터 정도의 무당벌레를 만들었다. 벤치처럼 앉을 수도 있고 작품처럼 공간을 새롭게 만든다. ‘아트벤치’는 “손대지 마세요. 들어가지 마세요.”가 아니라 “만져 보세요. 앉아 보세요”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도시갤러리프로젝트’에서도 아트벤치를 만날 수 있다. 정동극장 앞에는 스피커가 달린 벤치 ‘라디오정동’이 있고, 불광천에는 나뭇잎 모양의 벤치이자 평상인 ‘눕는 데크’가 있다. 덕수궁 돌담길에는 기존의 벤치를 철거하고 최병훈의 아트벤치 ‘예술의 공간, 사색의 자리’ 19점을 설치했다. 검정돌, 나무 등 천연재료로 만든 벤치는 유기적인 곡선미로 어머니의 무릎 같은 푸근함으로 돌담길을 기억과 감성, 사색이 숨쉬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공공디자인으로서 벤치도 진화하는 중이다. 서울시에서는 ‘디자인서울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디자인서울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서울의 디자인을 효과적으로 개선하고자 다양한 디자인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벤치는 이미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모전을 통해 보다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2007년에는 무형의 바람이 벤치를 통과하면서 소리를 내는 ‘하늘울림-서울의 숨소리’라는 독특한 벤치가 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한강 고수부지를 대상으로 디자인 한 ‘벤치, 한강풍경에서 숨을 쉬다’라는 벤치가 수상했다.

 

이제는 거리에서 지나치는 시설물 하나도 문화와 예술을 담는다. 이미 벤치는 기능과 디자인을 추구해 이제는 디자인, 공예, 미술, 시설물을 뛰어넘어 예술이 되고 있다. 벤치 뿐만이 아니다. 최근 미술, 특히 공공미술 분야에서는 디자인, 건축적 요소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디자인의 미덕인 기능성, 합리성을 공공미술에서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디자인, 건축 분야에서는 작가주의적 성향이 점점 더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건축은 이미 거대한 예술작품이 되고 있다.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월드디자인플라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조형물이다.

 

디자인은 아트를 향하고 아트는 디자인을 향한다. 그런데 상호간에 협업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공공디자인은 여전히 기능성의 테두리에 옥죄어 있고, 공공미술은 아직 대량 생산이 어렵다보니 합리성, 경제성이 떨어진다. 이처럼 미술, 디자인, 건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서로 베끼고, 서로 동경한다. 때로는 서로 흠집내고, 서로 우월하다고 힘겨루기 하며, 눈을 내리깔고 바라본다. 상호 보완적이지만 상호 배타적이기도 하다. 서울시의 도시디자인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 대화가 더 필요하다.

- 2008.07.31

 

 

 

 

 

 

태초에 미술은 공공미술이었다?

 

 

태초에 미술은 공공적이었다. 일례로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라스코 동굴벽화 등 석기시대 동굴벽화와 암각화는 주술적, 제의적 역할이 목적이다. 조형성이라든가, 미의식 같은 것은 전혀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것이었고, 들소, 사슴 등을 그림으로써 먹이감을 위한 주술적 의미의 수단으로 미술 행위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선사시대 미술은 죽음에 대한 공포, 추위와 질병, 어둠, 재해 등 자연과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의 표현이자, 풍요로운 생산, 사냥과 개체 보존 등 종족 유지 본능 같은 것이었다.

 

미적 요구를 앞세우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선사시대 벽화와 암각화는 현대미술 못지않다. 공공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공동체의 이해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공개된 장소라는 점에서, 제작자가 무리에서 식량을 나눠 받았을 것이므로 공공적 재원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공공미술의 기본 개념을 충실히 보여준다. 사실 사적인 미술이 등장하기 전 단계의 모든 미술(적) 행위를 포괄적으로 공공미술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선사시대의 벽화와 암각화는 현대적인 관점으로 보아도 훌륭한 공공미술이다.

 

우리나라의 암각화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 등 대부분이 경상도에 위치한다.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국보급이다. 서울의 불광천 곳곳에 수십 개의 암각화가 있다. 물론 새로 발견된 것은 아니다. 선사시대 암각화도 아니니까 유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작년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공공미술인 셈.

 

 

2007년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는 일반공모와 지명공모, 자유제안 형식으로 ‘함께타는 공공미술-옥수역’ 등 각종 캠페인사업과 정동사거리 돈의문에 ‘보이지 않는 문’, 청계천의 ‘부드러운 벽’, 인사동 입구의 ‘일획을 긋다’, 서울숲의 ‘먼 곳에서 오는 바람’ 등 지명공모를 통한 공공미술품 설치 등 전부 25개 프로젝트를 한 해 동안 진행했다.

그 중 하나인 불광천 프로젝트는 폼나고, 거창한 조형물을 설치한 것은 아니지만 "동네를 미술관으로 만들고, 시민을 예술가로 만드는(오세훈 서울시장)“ 소박하고 잔잔하지만 ”야심찬 계획“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미술작가가 창작하고, 시민은 수동적으로 관람만 하는 기존의 공공미술과는 다르게 지역의 시민들이 직접 예술가로 참여한 보기 드문 경우다.

 

이미지 행동집단인 ‘레드 안테나’는 작년 여름 <불광천 공공미술 프로젝트 - 불광에 물오르니 미친 흥(興)이 절로난다>에서 불광천의 징검다리 곳곳에 암각화를 그려 넣었다. ‘징검다리 암각화’는 지역의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이 참여하는 생태탐험 미술교실을 열고, 아이들의 드로잉을 밑그림으로 작가들이 징검다리에 암각화를 새겼다. 마치 수렵, 어로시대 벽화처럼 참게, 오리, 물고기, 나비 등 ‘날 것의 드로잉’이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서 태어났고, 작가의 에어툴을 통해 암각화로 거듭난 것이다.

 

 

선사시대 벽화와 암각화하면 후딱 떠오르는 일이 있다. 대영박물관 고대 전시관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원시인 마켓에 가다’는 석기시대 암각화의 파편으로 보이는 돌조각이 대영박물관에 한동안 전시되어 있었다. 구석기시대로 추정되는 이 유물은 수렵기 동굴벽화가 대부분 그렇듯 한쪽에는 사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특이한 점은 아래쪽에 대형 마트에서나 봄직한 카트와 비슷한 형태가 새겨져 있어, 선사시대 유물 중에서도 매우 독창적이고 거의 유일한 형태지만 학계에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매우 독창적? 유일한 형태? 카트가 새겨진 암각화? 이쯤 되면 눈치 빠른 독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이 유물은 뱅크시(Banksy)라는 영국 태생, 젊은 작가의 작품이다. 뱅크시는 시멘트 조각에 ‘카트를 밀고 있는 선사시대 인류’의 모습을 그렸다. 뱅크시는 고대 동굴 벽화에서 떨어져 나온 부분 같은 이 작품을 들고 대영박물관에 몰래 잠입했다. 그리고는 석기시대와 고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진품들 사이에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걸어 놓았다. 친절하게 유물에 대한 설명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당장 들켰을 것 같지만 거의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관람객들은 물론이고 대영박물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와 직원들까지도 ‘카트를 밀고 있는 원시인’이 그려진 벽화조각을 알아채지 못했다. 진짜 유물과 누가 봐도 짝퉁이 확실한 유물이 대영박물관에서 함께 전시된 것. 나중에 작가가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세상에 공개하기 전까지 이 짝퉁 유물을 박물관 쪽에서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똥침을 놓은 것이다. 재밌는 것은 뱅크시의 작품이 나중에 박물관에 컬렉션 되어 지금은 진짜 유물들 틈에서 영구적으로 전시되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뱅크시는 게릴라적 예술 활동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재기발랄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던져주는 벽화 작품에 대해서는 다음주에 소개하기로 한다.

- 2008.08.21

 

 

 

 

 

 

고품격 디자인도시에 낙서를?

 

 

개발중심, 압축성장으로 대표되는 서울은 그동안 건설과 산업이 발전의 중심이었다. 자연스럽게 기능과 효율 위주로 개발 패러다임이 우선시되는 ‘하드시티’였다. 도시의 풍경은 지역적, 시간적, 기능적으로 분리되고 찢겨져 있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성냥갑 아파트가 점령하고 있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각종 시설물들은 혼이 빠질 정도로 혼란스럽다. 콘크리트 옹벽이나 도로변의 고만고만한 거대한 방음벽은 주변을 지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게 한다.

 

그런 서울이 변하고 있다. 변화의 바람은 공공디자인과 공공미술에서 불고 있다. 특히 서울시에서는 ‘고품격 디자인도시’, ‘매력 있는 서울’을 모토로 문화와 디자인이 중심이 되는 ‘소프트시티’로 거듭나기 위해 공공디자인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이를 위해 서울시에서는 공공공간 및 공공건축물, 공공시설물, 공공시각매체 등 다양한 공공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중에서 옹벽 및 방음벽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은 눈여겨 볼만하다.

 

도시의 또 다른 표면인 옹벽, 방음벽은 공사장의 가림막과 함께 도시의 거대한 캔버스다. 이 캔버스는 곧잘 벽화나 슈퍼그래픽 또는 그래피티를 통해 '거리의 예술(street art)'로 바뀌기도 한다. '그래피티(graffiti)'의 어원은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으로 스프레이 등으로 그려진 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을 뜻한다. 고대 동굴 벽화나 이집트 유적에서 볼 수 있는 낙서에 가까운 그림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같은 그래피티가 예술로 등장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사이 톰블리(Cy Twombly),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등은 그래피티 기법을 자신의 작품에 도입했다.

그래피티가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말 뉴욕 브롱크스 거리에 낙서가 범람하면서부터이다. 초기에는 사회적으로는 낙서가 큰 도시 문제이기도 하였는데, 그래피티가 도시의 골칫거리에서 현대미술로서 자리잡은 것은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와 키스 해링(Keith Harring)의 공이 컸다.

 

현재 활동하는 그래피티 작가 중 뱅크시가 있다. 뱅크시(Banksy)는 1974년 영국 브리스톨 생으로 이제 34살이다. 뱅크시는 자신의 길거리 작품을 이용해 다양한 동시대 문제들을 들춰내고 현대미술이 안고 온 미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뱅크시는 게릴라적 예술 활동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잘 나가는 yBa(young British artists) 작가도 아니다. 바스키아처럼 그래피티 작업을 하며 거리를 헤맸던 그가 엽기발랄한 게릴라성 전시 방법으로 기존 미술관의 철옹성 같은 담장을 넘었다. 규범화되고, 제도화된 미술관, 미술권력을 비웃은 것.

지난 주에 소개한 <원시인 마켓에 가다>처럼 미술관에 대한 ‘테러’는 비단 영국 뿐만은 아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방독면을 쓰고 있는 여인의 초상화를, 브룩클린 미술관에서는 스프레이 통을 들고 있는 남자의 그림을 걸어 놓았고, 자연사박물관에서는 미사일과 폭탄으로 중무장한 <딱정벌레>를 걸어 놓았다. 뱅크시는 이처럼 기존 미술관에 대한 조롱에 그치지 않고 반전, 평화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스프레이를 이용, 낙서 형식의 벽화를 만든다.

 

화염병 대신 꽃을 던지는 시위대, 감시카메라 앞의 낙서 <뭘봐 What are you looking at?>,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그린 벽화, 소변을 보는 영국 왕실근위대, 이마에 총이 관통되어 붉은 피를 흘리는 헤르메스상 등 그의 작품들은 재기발랄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준다.

 

초기에는 영국의 공무원들과 건물 주인들이 뱅크시의 낙서를 지우느라 바빴을 것이다. 게다가 영국은 특히 낙서가 불법이어서 뱅크시는 그야말로 게릴라처럼 몰래 작업하고 도망치는 일을 반복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워낙 유명해져서 뉴욕타임즈, 가디안을 비롯 유수의 언론에서 앞다퉈 그를 조명했고, 심지어 KBS에서 조차 몇 달 전 뱅크시를 특집으로 다뤘다. 런던 곳곳에 설치된 그의 낙서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오고, 안내팜플렛이 제작되었다. 이제는 뱅크시의 작품 부분만을 잘 남겨두고 나머지를 깨끗하게 만드느라 바쁘다. 격세지감도 이정도면 상전벽해다. 안젤리나 졸리, 아길레라 등 유명 연예인과 컬렉터가 그의 작품을 수집한다. 브래드 피트는 그의 작품을 자그마치 200만불에 구입했다고 한다. 심지어 뱅크시조차 자신의 전시에서 “정말 믿을 수가 없군. 이렇게 쓰레기 같은 것을 사는 너 같은 바보들이 있다니”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작품을 사러 온 컬렉터들을 조롱했다고 한다. 뱅크시다운 면모다.

 

뱅크시의 작품은 도시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깨끗하고, 거대한 벽에 화려한 슈퍼그래픽은 아니지만 오래되고 지저분한 벽면은 뱅크시의 낙서를 통해 미술관 못지않은 공간이 된다.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것은 디자인적이고, 세련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공공디자인이건, 공공미술이건 환경미화를 위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뱅크시의 낙서는 시사점이 많다. 그것은 디자인서울이 추구하는, 잘하고 있지만 2% 부족한 부분에 대한 테러리스트적 보충이자 대안이 아닐까?

- 2008.08.28

 

 

 

 

 

 

남산 위에 첨성대, 한강변의 성냥갑

 

 

신사동에 있는 사무실은 옥탑층이다. 고작해야 7층. 그래도 시내에서 배란다가 있는 사무실은 그 자체로 해피한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높아만 가는 파란 하늘을 틈틈이 즐길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행운이다. 하지만 담배 한 개비 뽑아들고 베란다에 나오면 눈에 들어오는 건 양쪽으로 들어찬 아파트촌이다. 지은 지 20년은 족히 지난 아파트다. 같은 크기와 높이로 빼곡히 세워진 박스형 아파트는 한증막에 들어온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히게 한다. 다행히 중간에 나지막한 고등학교가 있어서 그 뒤로 멀찍이 보이는 남산이 그야말로 오아시스다.

 

남산 위에 갑자기 첨성대가 들어섰다. 말 그대로 갑자기다. 지난달 어느 날 남산N타워 옆에 첨성대나 봉화대처럼 생긴 구조물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규모도 제법 크다. 이정도면 세우는 데 몇 개월, 아니 몇 년은 걸림직 한데 신기하게도 “자고 나니 생겼다”고 해도 허언이 아닐 만큼 눈 깜짝할 새 생긴 것이다. 마치 컴퓨터로 합성한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고, 어떻게 짧은 시간에 세워졌는지 궁금하다.

 

남산 위에 불쑥 등장한 첨성대를 닮은 조형물은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또 궁금하고, 의아하게 만들었다. 주변에서도 “새로 지어진 천문관측소다”는 의견부터 “첨탑이 있었는데 새로 짓는 것 같다”, “남산타워 외에 서울시에서 새로 만든 전망대다”까지 다양한 추측이 난무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첨성대를 닮은 조형물은 정식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임시로 설치해 놓은 천막이었다. 현재 주한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안테나 시설 보수를 위해 가려놓은 일종의 가림막인 셈. 가까이서 보면 철제 빔을 세우고, 그 위에 천막을 둘러놓은 모습이라는데 멀리서는 천막으로 보이지 않고, 조형물 형태가 마치 첨성대를 닮아 있어 서울시민들이 새로 만들어진 조형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놀랐다가 다음에는 궁금해졌고, 연유를 알게 된 지금은 황당하다. 도심 한복판, 남산 위에 그리 큰 안테나 시설이 있다는 것도 당황스럽고, 고작 임시로 천조각을 둘러놓은, 별 것 아닌 구조물이 시각적으로 이렇게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 것도 놀랍다. 남산 위에 불쑥 등장한 첨성대?는 공사가 끝나면 사라지겠지만 스틸 컷처럼 ‘찰칵’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서울은 하루가 멀게 새로 만들어지는 건축물 등에 의해 시시각각 스카이라인이 변하고 있다. 대부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마디로 지루하다. 남산을 비롯한 서울시내 4대산인 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은 이미 무계획적인 건축물에 의해 점령당했다. 한강변은 더 가관이다. 남북으로 한강변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성냥갑 아파트다.

조사에 의하면 한강변의 90%를 아파트가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어찌나 모양과 색깔, 크기가 비슷비슷한지 올림픽대로나 강북강변도로를 가다보면 막히는 도로에 짜증나고 성냥갑 아파트에 하품이 나온다. 서울은 커다란 강이 도심을 가로지른다. 넓은 강폭은 남북의 스카이라인을 흡수하고,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그런 천혜의 자원을 널빤지 같은 콘크리트 벽면의 성냥갑 아파트로 지루하고, 단조롭게 만들었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을 정도다.

 

 

마천루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 도시에 진입하면서 보게 되는 스카이라인은 그 도시의 첫인상을 좌우하게 된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그 자체로 풍경화다. 유기적이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거대한 공공미술이라 할 수 있다. 도심 속에서 만나는 작은 조형물만 어찌 공공미술이겠는가? 도시 자체가 이미 거대한 조형물인 것이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한축으로는 자연과 생태가, 한축으로는 인공과 건축이 만들어낸다. 궁극적으로 스카이라인은 스토리를 가짐으로서 완성될 수 있다. 성냥갑아파트가 점유한 스카이라인이 답답하듯이 마천루만 즐비한 스카이라인 역시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이다.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장단고저와 강약이 화음을 이루어야 한다. 한쪽에는 조형적인 외관을 갖춘 첨단 마천루가 있고, 한쪽에는 나지막한 자연의 여백이 필요하다. 한쪽에는 이국적인 카페촌이 밀집해 있고, 다른쪽에는 즐비한 건물들이 빼곡해야 한다. 이럴 경우에는 어쩌면 성냥갑 아파트도 시각적 여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스카이라인은 도시계획이고 건축, 과학, 기술, 산업의 결과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폭의 회화고 도시를 깎고, 다듬은 조각이기도 하다. 규제와 계획만이 능사가 아니라 스카이라인에 예술과 조형이 녹아 있어야 할 이유다.

- 2008.09.04

 

 

 

 

 

 

공공미술보다 더 ‘아뜨’다운 건축

 

 

공공미술을 하다보면 디자인과 조경, 인테리어, 특히 건축을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주 생기곤 한다. 관심의 폭이 넓어진다는 뜻이기도 하고, 직업상 ‘어쩔 수 없는’ 필요에 의해서기도 하다. 이제는 건축, 인테리어, 조경 도면을 어느 정도 독해할 수 있다고 자만하다가도 복잡한 도면을 보게 되면 종종 발생하는 편두통에 ‘지끈’거린다. 사실 2차원 캐드(CAD)선의 건조한 조합만으로 3차원의 구조물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필자는 나은 편, 대부분의 작가들은 도면 자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공공미술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넘어야 할 산이다. 작품이 설치될 현장에 사전에 가보면 허허벌판이다. H빔만 앙상하게 올라가 있는 상황에서 도면에 의지해서 작품을 상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미술은 플롭아트(Plop Art)처럼 단순히 전시장의 작품을 공공공간에 갖다 놓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건축물이나 주변의 맥락을 무시한 ‘나홀로’ 조형물은 이미 ‘공공미술’이 될 수 없다.

 

한발 더 나아가 도시의 시각적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설물과 건축물, 조경물 심지어 도시의 스카이라인까지도 공공미술의 중요한 대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거꾸로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도 기능적, 효율적 ‘제품’에서 보다 시각적, 예술적 ‘작품’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이 활발하다. 당연히 관련 분야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미술, 디자인, 건축 등 간의 협업이 필요하다.

 

 

일찍이 요셉보이스의 ‘7천그루 오크나무 프로젝트’나 이사무 노구치, 비토 아콘치의 작품들에서 이같은 건축, 조경, 디자인적인 공공미술을 볼 수 있다. 이중에서 비토 아콘치는 2005년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APAP = Anyang Public Art Project)에서 주차장이자 공공미술 작품을 제안했고, 작년 여름에 준공(설치)됐다. ‘웜홀(Worm Hole)’로 이름 붙여진 이곳은 47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규모지만, 공사(제작)만 8개월이 걸렸으며 예산은 23억5천만원이나 들었다고 한다. 작품의 원제는 ‘나무 위에 선으로 된 집’(Linear Building up in the trees)으로 자동차를 세우고 원형 야외무대로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우주정거장의 홀과 홀을 연결하는 원통구조와 같다는 데서 ‘웜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주차장은 안이 훤히 보이는 강관(유리섬유로드)이 모자이크 형식으로 내부를 감싸고 있으며, 두개의 빈 터와 그 사이에 연결된 나무를 활용해 기능성과 예술성을 가미했다.

 

이처럼 건축가,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확장된 공공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비토 아콘치는 원래 비디오 작가 출신이다. 60-70년대 퍼포먼스와 슈퍼 8미리 필림 및 비디오 연작 등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으로 미술계에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아콘치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건축가,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광장, 정원이나 공원, 건물 로비나 교통 센터 등의 공공 공간을 디자인하는 다수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초기 개념적인 작업에서 보여줬던 신체에 대한 관심은 이후 “신체가 공적 공간과 맺는 관계성에 주목”하면서 건축과 조경, 디자인으로 작업을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비토 아콘치는 개념미술가이자 비디오작가, 디자이너, 건축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비토 아콘치를 한마디로 규정하라면 당연히 ‘공공미술가’라는 이름을 붙일 것이다.

확장된 공공미술의 시각에서 보면 비토 아콘치의 작품들은 눈여겨 볼 점들이 꽤 많은 편이다. 특히 오스트리아 그라츠 무어 강에 설치된 다리인 ‘무르 아일랜드’는 조개껍질 형태의 공간에 노천극장과 카페가 위치하고 있다. 물의 흐름에 따라 구조물이 움직이도록 설계된 이 독특한 형태의 인공 섬은 주변의 풍광과 어우러져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미국 멤피스의 캐논 공연예술센터(Canon Performing Arts Center)에 설치된 ‘개미핥기’를 연상시키는 ‘코너 플라자’도 매우 독특하다. 그밖에 주요작품으로 '재활용 소재의 집'(1985), '뫼비우스 벤치'(2001), '광장 위의 흐르는 물과 같은 지붕'(2004) 등이 있으며, 2005년에는 서울 공연예술센터 설계작이 당선되기도 했다. 그밖에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치즈 같이 생긴 건물이나 도룡뇽을 닮은 교량 등은 그야말로 예술가만이 꿈꿀 수 있는 작품들이다.

 

 

거꾸로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이 오히려 ‘아트보다 더 아트같은’ 경우가 많다. 가까운 예로 헤르조그(Herzog) & 드메롱(DeMeuron)이 설계한 베이징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냐오차오’와 수영경기장 워터큐브는 첨단 소재와 예술적 형태가 조형물 이상이다. 해체주의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은 이미 너무 유명해서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도 몇 년 사이 지루한 박스형 건축물, 성냥갑 구조물에서 탈피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대표적으로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에 건립 중인 ‘서울디자인플라자’를 들 수 있다. 건축가는 여성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우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자하 하디드.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디자인의 ‘서울디자인플라자’는 액체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건축물, 공원의 형태가 갖는 유연성을 보여준다. ‘환유의 풍경’이라는 제목답게 주변 공간을 억압하는 규모나 높이가 아니면서도 강한 상징성과 조형성으로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그런데 역시 문제는 ‘돈’이다. 단적으로 비토 아콘치의 '웜홀‘ 주차장은 47대 주차가 가능하고, 종일 주차가 7천원이라고 하니까 7천원×47대=32만9천원×365일=약 1천2백만원×20년=24억이 된다. 단순산술로 주차장 건축 비용 23억5천만원을 회수하려면 자그만치 20년이 걸린다는 계산. 물론 무형의 부가가치가 있어 단순 수치로만 계산할 문제는 아니지만 확실히 ’돈‘은 든다는 것은 사실이다.

공공미술이 돈이 들어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가치가 있어서 돈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돈만 들고 흉물이 되는 건축물. 돈만 들고 가치가 없거나 오히려 가치를 떨어뜨리는 공공미술을 볼 때면 낯 뜨거워지는 건 확실히 직업의식 때문이다.

-  2008.09.11

 

 

 

 

 

 

Bronze Bull, 다시 황소처럼...

 

 

뉴스를 볼 때마다 한숨 푹푹 나온다. 밤에 잠도 잘 안 온다. 펀드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까지도 ‘재테크’가 뭔지도 몰랐었다. 그 무렵 주변에선 주식으로 재미를 봤다느니, 펀드 수익률이 50%를 넘어 100% 가까이 올랐다느니, 전국이 펀드 열풍으로 들썩이던 때였다. 왠지 그 대열에 동참하지 않으면 재테크에 무지하고, 은행 적금이나 예금만으로는 ‘촌놈’으로 취급받던 시기였다. 결국 주변의 ‘들썩임’에 펀드에 가입했다. 그게 작년 11월. 꼭지점을 찍었던 때다. 설상가상으로 잘나간다던 중국펀드와 브릭스펀드에 각각 1,000만원씩 2,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왕창’ 넣었다. 지금은 딱 ‘반토막’ 났다. 원고료에 특강비로 몇 년을 모은 돈이 한방에 날라 갔다. 주변에 나처럼 속앓이를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덕분에 평소 잘 안 보던 경제면을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유심히 보게 됐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이 심상치 않다. 이름도 생소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메릴린치가 넘어가고, AIG가 위험하다. 하루에 주가가 90P 급락하고, 환율이 50원 폭등하는 등 거의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다. 공포, 괴담, 쇼크, 패닉이라는 단어가 연일 언론지상을 장식한다. 세상을 지배하던 월스트리트가 몰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제 아침 유력 일간지에 월스트리트에 있는 ‘비틀거리는’ 황소 동상이 크게 실렸다. 황소 동상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스트리트의 상징이다. 주식에서 상승장을 불 마켓(Bull Market)이라고 한다. Bull은 (거세하지 않은) 황소다. 반대로 하락장은 베어 마켓(Bear Market)이다. Bear는 곰이다. 황소가 상승장을, 곰이 하락장을 의미하게 된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황소가 공격할 때 아래에서 위로 머리의 뿔로 치받아 올리는 형태가 주식의 상승곡선을 닮았고, 곰은 거꾸로 공격할 때 앞발을 크게 쳐들었다가 아래로 내려찍는 듯한 자세를 취해서 하강곡선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증권가에서는 황소를 상징물처럼 여긴다.

 

지금 월스트리트에 인근에 있는 브론즈로 만들어진 황소 조형물은 월스트리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최고로 사진을 많이 찍는 공공미술품이다. 황소가 상승장을 상징하게 된 것은 이 조형물 덕택이기도 하다. 그런데 월스트리트 황소상이 지금의 장소에 설치하게 된 연유가 재밌다.

 

 

때는 1989년. 밤사이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브론즈 불’이 생겼다. 이태리 조각가인 Arturo DiModica가 허가도 받지 않고 조형물을 갖다 놓은 것. 당시는 1987년 10월 19일 그 유명한 블랙먼데이. 1980년대 대호황의 상승세가 급속히 꺾이고 이후로는 오늘처럼 금융계의 패닉이 몰려오던 시기다. 월스트리트를 비난하려고 한 건지, 약 올리려고 한 건지, 아니면 격려하려고 한 건지... 작가는 그냥 재미있는 장난거리였다고 했다. 뉴욕증권거래소 책임자는 별 다른 반응 없이, 화를 내지도, 좋아하지도 않고 그냥 작품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결국 이 황소 동상은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황소 조형물이 된 것.

 

월스트리트 황소 동상은 매우 역동적인 동세로, 금방이라도 뿔로 치고 나가기 직전의 모습을 조형화시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반토막난 펀드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심정으로, 다른 각도에서 황소 조형물을 보니 역동적인 동세라기 보단 옆으로 기우뚱해서 마치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마치 요새 월스트리트가 공포와 패닉으로 ‘비틀거리는’ 형국과 닮았다.

 

우리나라의 증권가를 상징하는 것은 당연히 서울에 있는 여의도다. 여기도 황소 조형물이 몇 개 있다. 전남대 김행신 교수의 ‘황우’가 대신증권 앞에 있고, 서울대 신현중 교수의 ‘희망-내일을 향하여’라는 다소 긴 제목의 황소 조형물이 한국증권협회 앞에 있다. 대신증권에 있는 황소상은 월스트리트의 황소상 보다 크기는 작지만 잘 생긴 얼굴, 늠름한 동세, 근육질이다. 괴담이라지만 광우병 미국소가 아닌 토종 한우다. 1994년 제작, 설치됐다. 보다 힘 있고 역동적인 형상을 만들기 위해 당시 경북 청도 소싸움에서 우승한 황소를 사서 모델로 썼다고 한다.

 

제주도 돌하루방 코를 갈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처럼 월스트리트 황소 동상의 심벌을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얘기도 있다. 또 다른 얘기로 돈을 많이 번다는 속설도 있다. 그래서인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심볼 부분이 하도 많이 만져서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대신증권 앞의 황소조형물은 높은 좌대에 올라가 있고 주변이 조경으로 이루어져 손이 닿지 않아서인지 반질반질해지지는 않았다. 아들을 낳건, 돈을 많이 벌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다니 기쁜 얘기다. 정말 ‘소부랄’ 만져서 돈을 벌 리 만무하지만 지금처럼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는 시기에 자꾸자꾸 만져주고 싶다. 월스트리트의 황소조형물이 ‘비틀거리지’ 않고, 황소가 상징하는 것처럼 호황이 죽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것도 공공미술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2008.09.18

 

 

 

 

 

 

공공미술은 [...] (이)다


 

서울디자인올림픽이 다음달 10일부터다.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시가 2010년 세계 디자인도시로 선정된 것을 기념한 행사다. 축하할 일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 미국 9·11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설 프리덤 타워 공모 당선자 건축가 대니얼 리베스킨트, 영국 산업 디자인계의 거장 로스 러브그로브 등 국제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 기업 등이 참

여해 국제 디자인의 현안을 논의하고 세계 디자인의 흐름을 조망한다. 자하 하디드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건축가이기도 하고, 대니얼 리베스킨트는 삼성동 아이파크 본사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서울디자인올림픽의 주제는 'Design is Air'.

느껴지진 않지만 우리 곁에 항상 있는 공기,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며, 인간과 자연의 생명에 깊이 관여하고, 허공을 가로 지르는 에너지인 공기가 21세기 디자인 정신을 대변한다는 의미다.

‘디자인은 공기다’는 주제는 ‘디자인은 (이)다’처럼 빈칸채우기 놀이에서 빌려온 것이다.

 

아마 학교 다닐 때 과제로 한번쯤 해봤을 방식이다. ‘빈칸채우기’, ‘댓글붙이기’는 다양한 사고의 전환과 창조적 발상을 깨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네티즌들에게는 그자체로 ‘놀이’이자, 정치적 발언이기도 하다. 댓글 알바나 버즈 마케팅처럼 경제적 활동이기도 하다.

'Design is Air'라면 ‘Public Art is Life'가 아닐까 싶다.

공공미술은 ’공기‘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과 인생‘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공공미술에 대한 빈칸 채우기다. 비꼬기다. 놀기다.

 

공공미술은 (이)다

 

공공미술은 비인간적인 도시환경에 대한 문화적 치유와 지속 가능한 도시 형성의 주요한 방법이다. 공공미술은 삭막한 도시를 예술로 성형해준다. 잘되면 얼짱으로 거듭나지만 검증 받은 성형의가 많지 않다보니 자칫 실패할 경우가 많고, 수술비로 낸 비용에 비해 만족할 만한 효과를 못 얻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외모지상주의, 명품지상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 역사와 문화,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을 문화적으로 치유하려면 겉모습만 바꿔서는 안되는 건 당연지사.

 

공공미술은 (이)다

 

공공미술은 도시의 콘크리트 더미 한가운데를 걷다가 잠시의 여유와 휴식을 제공해주는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무늬만 오아시스가 많다. 정작 오아시스에 물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오아시스인줄 알고 힘들게 찾아갔더니만 신기루라니 이런 낭패가...

 

공공미술은 (이)다

 

공공미술은 공공(Public)과 미술(Art)을 대하는 태도와 입장에 따라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다. 카멜레온처럼 변신이 가능한 것. 공공미술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울정도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


 

공공미술은 (이)다

 

대부분의 공공미술이 전혀 공공의, 공공을 위한, 공공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욱 강조된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이나 정부와 매우 비슷하기도 하다.

 

공공미술은 (이)다 (이)다

 

1만제곱미터를 넘는 건축물에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다, 미술과 건축의 조화는 뒷전이다 보니 다 지어진 건물에 껌딱지처럼 옹색하게 붙어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공미술의 근간이 되는 퍼센트법(건축물미술장식제도)은 건물마다 비슷비슷한 조각을 양산했고, 출입구나 귀퉁이에 문패처럼 붙어 있어 문패조각이라고도 한다.

 

공공미술은 (이)다

 

공공미술로서의 기념비, 기념조형물은 “무장한 군대나 경찰에 비해 적은 비용과 덜 잔인한 내용으로 확실한 사회통제를 해낸다(말콤 마일즈)” 이데올로기적 기념비나 기념조형물은 치유자로서, 문화창조자로서, 개인과 공적인 영역을 이어주는 매개자로서 살아 있다. 권력자들은 이같은 공공미술의 기념비적인 속성을 이용해서 숭고화되고 미화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낸다.

 

공공미술은 (이)다

 

공공미술은 대체로 수직성과 거대함을 무기로 한다. 마치 남성의 그것처럼. 크고, 단단하고, 꼿꼿한 남근에 대한 무한한 로망이다. 모뉴먼트 조형물에서 자주 나타나는 공공미술의 남근주의적 속성은 미련하지만 의외로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혹시 비아그라를...

 

공공미술은 (이)다

 

미술장식품은 건축주의 리베이트, 브로커의 수수료, 작가의 창작비와 이익을 빼면 실제 제작비에 사용되는 금액은 차게 식히지 않은 맥주를 맥주잔에 콸콸 따랐을 때 거품을 빼고 나면 비슷한 비율이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은 차게 식힌 맥주가 점점 많아진다는 점이다. 차게 식힌 맥주를 따랐을 때는 건축주의 리베이트를 빼고 계산하면 비슷해진다.

 

공공미술은 (이)다

 

건축주의 요구, 미술장식품 심의위원들의 취향, 제작에 소요되는 금액과 적절한 이윤, 공간과 환경에 대한 고려에서부터 공공미술의 최근 트렌드까지 공공미술은 적절한 타협과 적당한 버티기가 필요하다. 간혹 타협을 잘한 공공미술이 좋은 공공미술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타협하지 않을 것을 권장한다.

 

공공미술은 (이)다

 

1980년대 미국의 한 정부관계자가 실제 했던 말이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중반인 지금 딱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단 공공미술보다 더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공공디자인이라는 점만 빼고 말이다.

 

공공미술은 (이)다

 

동전의 한 쪽 면이 공공성이라면 한 쪽 면은 예술성이다. 두 가지는 항상 붙어 다니지만 의외로 조화시키기가 어렵다. 동전의 양면을 조화시키려면 물리적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다. 동전을 녹여야만 한다. 공공성과 예술성의 조화는 화학적 결합을 통해서 가능하다.

- 2008.09.25

 

 

 

 

 

 

일상의 소소한 것이 아름답다

 

 

현실적으로 지금, 여기에서 공공미술의 가장 큰 덩어리는 건축물미술장식제도다. 도심의 회사빌딩 앞에서, 우리네 아파트 언저리에서 가장 쉽게, 자주 볼 수 있는 미술장식품이다.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폼새를 갖고 있다. 연간 1,000여점이 전국에 깔린다. 그렇게 많은 조형물들이 도심 곳곳에 포진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조형물들은 너무 반듯하다.

 

무난한 형태와 무난한 재료, 무난한 목소리. 운동장 아침조회 시간에 단상위에 올라서 누가 듣든지 말든지 일장 훈시를 하는 교장선생님 같다. 근엄한 조형물들은 그렇게 좌대 위에 버티고 서 있다. 그것이 추상적이든 사실적이든, 유기적이든 기하학적이든, 돌이든 브론즈든 나름대로 모범생이다. 물론 전부가 우등생은 아니다. 썩 멋들어진 작품은 아니지만, 저마다 정답을 찾기 위해 기를 쓴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소곤거리는 작품이 좋다. 거창하게 웅변하지 않고, 재잘거리는 작품이 사랑스럽다. 그것이 박장대소든지, 실소든지 심지어 ‘썩소’까지도 가볍게 웃어넘기고 싶을 때가 있다. 어설퍼서 오히려 팽팽하게 당겨진 일상에서 스타카토처럼 톡톡 튀게 하는 그런 작품도 필요하다.

 

 

도로에서 이정표를 잘못 보면 낭패를 당한다. 톨게이트를 잘못 나와 한참을 돌아가는 것은 그나마 다행. 혹시라도 역주행을 하게 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시쳇말로 원활한 도로 교통과 이용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길가에 세운 표지판이 잘못되면 당장 9시 뉴스감이다.

하지만 김준의 이정표는 그럴 걱정이 없다. 김준의 <하늘로 가는 이정표>를 언 듯 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직진하면 하늘? 관습이란 무섭다. 도로 이정표에서 <↑> 표시는 당연히 직진을 의미한다. 흔하게 보는 이정표에서 <↑하늘 Sky>을 본다면 우리의 뇌는 익숙했던 정보를 조합해서 직진 신호를 준다. 빨간 색이면 멈춰라! 전 세계 공용어인 것처럼 말이다. 직진하면 하늘?, 하늘마을? 하늘식당? 잠시 잠깐 혼란에 빠진다. 위를 지시하는 화살표, <↑>표시는 그제야 습관, 관습의 굴레를 벗고 제 기능을 찾는다.

 

잠시 숨을 멈추고 위를 보라. 거기에 부시도록 푸른 하늘이 있다. 진짜 하늘로 가는 길을 알려 주는 이정표가 있다면 좋겠다. 고속도로에서 이런 이정표를 하나쯤 보게 된다면 어떨까? 교통사고나 길을 잘못 들 위험이 전혀 없는 장소에 설치한다면? 투덜거리는 운전자도 많겠지만 뒤돌아서 입가에 웃음이 번질 것 같다. 그리곤 누구나 일상에서 탈출해 하늘로 날고 싶어질 것 같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마법의 자동차처럼 여기서부터는 직진이 아니라 하늘로 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설퍼서 좋은 작가 배영환의 비석 또는 명판은 소소한 얘기다. 거창하게 추켜세우지도 않고 마냥 우아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배영환은 비석이나 조형물 명판으로 자주 쓰이는 오석에 촌스러운 굴림체로 새김하여 일상의 ‘썰’을 푼다. 퇴계 이황께서 그랬을 리 만무한 장소에 마치 그럴듯한 명패를 세웠다. 이곳은 “퇴계 이황이 첫사랑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던 곳”이다. 조선 성리학의 거두 퇴계 선생께서 첫사랑 때문에 한숨을 쉬던 곳이라니? 꽤씸하기 그지없고, 발칙하기 짝이 없다. 한편으론 그럴 수 있겠다. 그분이라고 첫사랑의 추억이 없으란 법 있나. 이처럼 성인을 기리는 묘비나 상징조형물을 과시적으로, 현학적으로 설명하는 명판과 달리 장난치듯, 날것의 생활어로 수군거린다.

 

언제부턴가 그곳에 그냥 있었던 돌덩이 앞에서는 걱정이 많아서 움직이질 못해서 많이 위로해줘야 한단다. 혹시 모른다. 많이많이 위로해주면 훌훌 털고 제 갈 길을 갈지도. 또 그냥그냥 나무 앞에서는 이 나무는 사람들이 농담을 걸어주면 킥킥하고 웃는단다.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이, 나무가 웃는다. 킥킥.

 

 

영국태생의 게릴라 작가 이안 스티븐슨의 작품은 ‘쓰레기’다. 작품은 ‘쓰레기’지만 캠버웰 예술대학을 나온 작가는 네티즌 사이에서는 이미 ‘스타’다. 길가의 쓰레기통은 물론, 구석에 모여 있는 쓰레기봉지에 그려진 장난스럽고, 낙서 같은 그림들은 보는 이를 유쾌하게 만든다. “Can't Move” 발이 없어서 못 움직이는 쓰레기는 얼굴을 찡그리고, “Have a Nice Life” 신나는 생활을 곁눈질 하는 쓰레기는 흘기는 눈에 애교가 흐른다.

 

이 작가 손을 거치면 쓰레기처럼 더러운 것, 버려할 것들이 작은 관심으로 재활용된다. 생활 밀착형 작품이다. 환경미화원에 의해 금방 치워져 버리겠지만 잠시만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면 족한다. 전세계 미술시장이 호황인데, 이 ‘쓰레기’를 컬렉션을 할 수 있을지, 봉지안의 쓰레기는 썩을 텐데. 버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굳이 고민할 필요 없다. ‘쓰레기’ 작품은 그냥 그곳에 있으면 된다.

 

영국에 이안 스티븐슨이 있다면 한국에는 최정화가 있다. 사실 국제적으로도 최정화가 훨씬 유명하다. 이미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시장통에서 파는 플라스틱 바구니를 이용하여 멋진 설치 작품을 만든바 있는 최정화가 이번에는 재활용 쓰레기에 도전했다. 올림픽주경기장의 거대한 외관을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포장한 것. 10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의 메인 행사장인 잠실종합운동장의 외벽을 페트병, 다 쓴 세제병 등 폐플라스틱으로 꾸며, 세계 최대의 환경 설치 작품인 <세계최대플라스틱 스타디움>(천만시민 한마음 프로젝트)을 만든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폐플라스틱 150만 개 정도를 9월 10일부터 30일까지 ‘1000만 시민 한마음 프로젝트’ 캠페인을 실시해 시민들로부터 페트병을 모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폐플라스틱은 우리나라 쓰레기 중 5%를 차지하고 있지만 자연적으로 분해가 되지 않는 골칫덩어리”라며, “폐플라스틱을 모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이번 행사를 통해 환경친화적 디자인의 의미를 다시금 새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버려진 일상의 물건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서구의 ‘아르테포베라’는 미술사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일종의 ‘정크아트’인 셈.

 

그러나 재활용쓰레기, 일상에서 발에 채이는 재료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소소한 작품 같지만 ‘세계최대플라스틱 스타디움’이라는 촌스러운 제목처럼 기네스북에 등재하기 위한 ‘홍보성 행사’가 됐다. ‘천만시민 한마음 프로젝트’ 같은 제목처럼 시민축제로 위장했지만 70-80년대식 ‘동원된 행사’로 변했다. 어째 일상의 소소한 예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너무 동원된 느낌이고, 너무 관료적이다.

 

하지만 재활용쓰레기를 멋진 공공미술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많이 공공미술의 스펙트럼을 하늘로, 쓰레기로 더 넓혔으면 좋겠다. 법규와 제도, 심의의 틀로 이리저리 얽매여 있다 보니 그 많은 미술장식품들이 너무 진지해서 숨이 찬다. 가끔은 진지하지 않은 농담이 유쾌하다. 소소하고 허술한 것이 통쾌하다. 잔뜩 무게 잡은 ‘조형물’ 보다 부담스럽지 않아서, 굳이 모셔야 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다들 힘 빼!

- 2008.10.09

 

 

 

 

 

 

가린다고 감춰지나


 

삼성동 포스코센터 앞에 가면 고철을 덩어리로 만든 것 같은 작품이 있다. 프랭크 스텔라.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작가의 작품이다. 작품제목은 아마벨이다. 새삼 케케묵은 얘기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분을 위해 아마벨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몇 가지.

 

해외 공공미술사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작품이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Tilted Arc(맨하탄 연방플라자, 1981-1989)'라면 우리나라에서는 단연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Amabel(포스코센터, 1997)'이다. 두 작품은 닮은꼴이다.

기울어진 호는 코르텐 스틸이라는 녹이 스는 철로 만들어져 낙서와 빗물로 흉측했고, 아마벨은 마치 고철을 짓이겨 놓은 것 같다. 세라와 스텔라 둘 다 미니멀리즘의 대가이자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작가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입방아에 올랐다. 기울어진 호는 법원까지 올라간 논란 끝에 결국은 철거되었고, 아마벨은 철거하네 마네 한참 시끄러웠지만 위기를 넘기고 아직 포스코 앞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몇 달 전 포스코 앞을 지나다보니 작품이 없어진 게 아닌가. 나중에 알았지만 친절하게도 나무 수십 그루로 작품을 잘 안보이게 가린 것이다.

 

아마벨은 아마 우리나라 공공미술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은 야사를 갖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아마벨은 고철덩어리로 보이지만 스테인리스 스틸을 주조한 수백 개의 조각으로 9미터 높이의 구조물로 만들어졌다. 마치 거대한 철화(鐵花)가 핀 형상이어서 원래 작품 제목도 ‘꽃이 피는 구조물’이다. 아마벨이라는 애칭은 19세 꽃다운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스텔라의 친구 딸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아마벨에 관한 에피소드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거짓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거의 음모론에 가깝다. 우선 돈에 얽힌 이야기. 아마벨의 가격은 16억 원으로 1997년 설치 당시 단일 조형물로 국내 최고가를 경신했다. 비싼 만큼이나 시끄러웠던 것은 당시 포스코 고위층의 비자금설이다. 작품가도 발표한데로 16억이 아니라 실제는 20억이 넘을 것이라고 설왕설래했고, 많은 금액이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괴담이 꼬리를 물었다.

 

작품 설치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는 픽션이라는 의견이 강하지만 걸작이다. 아마벨은 형태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큰 규모다 보니 외국에서 제작, 분해해서 한국에 들어온 뒤 포스코센터 앞에서 설치만 며칠이 걸렸다고 한다. 한번은 작업 도중 발칵 뒤집어진 일이 터졌다.

새벽까지 조립하다 다음날 현장에 와보니 조립해야 할 작품 몇 덩어리가 감쪽같이 사라진 게 아닌가. 16억이나 하는 작품의 일부가 없어졌으니 난리가 난 것은 당연한 일. 경찰까지 동원해서 법석을 떤 끝에 찾은 경위가 황당하다. 새벽에 고철장수가 지나가다 폐철인줄 알고 싣고 가버려서 고철로 팔려나가기 직전에 찾아냈다는 것이다. 하마터면 16억짜리 작품이 고철로 몇 십, 몇 백만 원에 팔려나갈 뻔한 웃지못할 일 때문에 관계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재작년쯤인가 실제로 공원에 설치된 조각품을 고철장수가 가져간 일이 방송을 탔다. 고철장수는 도둑죄로 구속됐지만 고철장수는 “진짜 고철인줄 알았어요”라며 선처를 바랬다고.


 

 

결국 아마벨을 둘러싸고 ‘걸작’이라는 반응과 ‘흉물’이라는 반응이 첨예하게 대립되다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세라는 연방법원에서 ‘기울어진 호’를 철거하라고 결정이 나면 문화에 무지한 미국을 떠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법원은 철거 쪽의 손을 들어줬고, 기울어진 호는 1989년 철거됐다. 그런데 세라가 미국을 떠났냐고? 글쎄. 아직 그런 소식을 들은 것 같지는 않다. 아쉽게도 스텔라는 한국을 떠나겠다고는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작품을 철거한다면 전 세계 미술계에 한국이 문화 후진국이라고 떠벌리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는 설도 있다.

 

결국 포스코에서 아마벨을 철거하고 대신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한 일은 작품 해체와 재조립 비용 문제가 겹치면서 없던 일로 돼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미관상 때문인지 아니면 논란이 싫어서인지 작품 앞에 소나무를 울창하게 심어 아마벨을 가려버렸다. 물론 포스코에서는 절대 아마벨을 숨기려고 했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숨길 거라면 차라리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이나 할 것이지. 아니면 ‘걸작’이라는 평가도 있으니까 당당하게 내세우던지. 나무로 가린다고 추문마저 가려질까?

 

이상의 에피소드는 대부분 진실이 아닐 것이다. 자칫하면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죄로 송사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음모론이다. 그리고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진실인지 당사자만 알 것이다. 다만 떠도는 음모론이 주는 교훈은 행간을 잘 읽어야만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읽는 이의 몫이다. 바램이라면 똑같은 야사를 만들어내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  2008.10.16

 

 

 

 

 

 

앵두색 육교와 물결무늬 횡단보도

 

 

작년에 있었던 재미있는 ‘사건’ 하나. 동대문구 신이문 삼거리의 육교를 일단의 작가들이 구청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야밤에 ‘빨간 앵두색’으로 몰래 칠해 버렸다. 동대문구청은 육교를 “사전 협의나 승인 없이 아무나 칠할 수 없다”며 “(빨간)색깔이 튀고 주민 항의가 빗발”치므로 당장 원상 복구하지 않으면 형사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반면 ‘앵두색’으로 육교를 칠한 작가들은 “좋아하는 주민들이 많다”며 “앵두색은 왜 안되냐?”고 반발했었다. 서울시청에 중재신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앵두색 육교는 원상복구됐다고 한다. 육교 색을 놓고 구청이 말하는 ‘빨간색’과 작가들이 주장하는 ‘앵두색’의 어감 차이 만큼이나 시각차가 크다. ‘앵두색 육교 사건’은 여러 면에서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한다.

 

우선, 만일 1990년 이전에 벌어졌던 일이라면 아마 작가들 대부분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갔을까? 현행법에 따르면 육교는 도장업 면허를 가진 사람만이 칠할 수 있으며, 특별히 색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일반적으로 공공시설물로서 무난한(어떤 색이 무난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색이어야 한다. 이 기준이라면 작가들이 직접 칠하면 위법이고, 도장업 면허를 가진 업체가 칠했다(고 우기)면 합법이 될까?

하지만 육교를 관리하는 구청의 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원상복구 명령이 떨어지고, 복구를 안하면 아마 벌금형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발칙한’ 작가들은 ‘마이크로웨이브’라는 공공미술 그룹으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도시문화를 재조명하는 프로젝트 ‘이문, 석관 마이크로플렉스’ 작업의 일부였다. 결국 서울시 산하기관의 지원을 받았으나, 해당 구청에서 고발당하는 사고를 친 셈이다. 서울문화재단에서는 사전에 이같은 계획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작가들은 “동네 주민들에게 자고 일어나면 칙칙했던 회색빛 육교가 빨갛게 변하는 ‘깜짝 선물’을 주려고 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육교가 ‘앵두색’으로 변함으로써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크로웨이브’팀은 ‘앵두색’이 주민들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으리라 자신했을까? 아니면 그야말로 ‘서프라이즈’를 통해 논란을 불러일으키려는 즉흥적 이벤트를 노렸을까? ‘같기도’지만 하여간 후자라면 성공이다.

문제는 ‘앵두색’의 공격적인 이미지를 부담스러워 하는 주민들이 많았다는 데 있다. 만약 육교를 울긋불긋, 화사하게 꽃문양으로 칠했다면, 아니 꽃문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역 주민들이 좋아했다면... 그래서 동대문구청이 만족했다면... 다른 육교까지 확대했을까? 그래도 복구 명령을 내렸을까? 위법, 합법에 대한 결정권은 결국 해당 자치구에 있는 걸까? 작가들은 사회와 소통하려는 예술로 이해해달라지만 현실적으로 자치구청과 ‘한판’ 떠야 해서 ‘앵두색 육교 살리기’는 결국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재작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이미경이 계획한 횡단보도는 끝끝내 부산시청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 작가는 해운대 앞 도로 교차로 횡단보도를 파도와 물결 무늬로 구상했었다. 기존 횡단보도의 특징과 인지성을 유지하면서도 해운대의 특징을 조형적으로 차용하여 도시의 공공 사인물도 얼마든지 예술적 형태로 만들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비엔날레를 빌어 거의 실현되기 직전까지 갔으나 결국 취소됐다. 이미경도 ‘앵두색 육교’처럼 야밤에 몰래 칠했다면 어땠을까?

도로를 통제하고 작업을 해야 하는 장소적 특성상 불가능했겠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는 작업이다. 사실 국내 거의 모든 횡단보도는 일정한 간격의 흰색 아스팔트용 도료가 똑같은 모양으로 칠해져 있다. 횡단보도를 칠하고, 유지, 관리하는 비용이 기능 대비하여 가장 효율적인 형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이고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횡단보도가 도시마다 독특한 형태로 칠해진다면, 그래서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다면 그 또한 도시의 색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해외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횡단보도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육교건 횡단보도건 꼭 정해진 규정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 2008.10.23

 

 

 

 

 

 

남근주의적 속성과 기념조형물

 

 

공공미술이 쉽게 경도되기 쉬운 속성 중의 하나는 남근주의에 대한 집착이다. 일차원적으로 그것은 규모의 거대함과 수직적 구조로 나타난다. 마치 크고, 단단하며, 꼿꼿하게 서있는 남근에 대한 끊임없는 로망이기도 하다. 크기에 대한 미련은 때론 드러나고, 때론 감춰지지만 남성들의 공통된 욕망 중 하나다.

문제는 모든 여성들 또한 같은 욕망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라고 많은 여성들이 강조한다) 크기 콤플렉스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술분야에서도 의외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국내 최고, 또는 세계 최고의 크기를 기록하는 것이 지상과제일 경우가 종종 있다. 고백컨대 지금도 베스트 공공미술로 꼽는, 그래서 필자가 진행했던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낯간지럽게 내세우는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의 헤머링 맨(Hammering Man)도 크기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세계에서 7번째 에디션인 헤머링 맨은 높이가 21m다. 21m가 된 이유가 조금 남사스럽다.

이유인즉, 이전까지 헤머링 맨의 가장 큰 크기는 20m였고, 당연히 전 세계 헤머링 맨 중 가장 크게! 제작하길 원하는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꼭 1m 더 높게 제작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볼만한 공공미술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헤머링 맨은 최고의 공공미술품으로 꼽혔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21m 크기의 작품에 비해 공간이 너무 협소해 건물에 바짝 붙었다는 점이다. 지금도 누군가 공간 문제를 지적할 때마다 낯이 뜨거워진다.

 

수직적 구조의 거대한 크기의 효과가 공공미술에서의 남근주의적 속성의 단면이라면 사회에서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분출되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전쟁이다. 그리고 모뉴멘트 조각과 전쟁의 남근주의적 이해가 접점을 이루는 지점에 전쟁기념조형물이 있다. 조형적 언어로 ‘뭔가’를 기념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은 창작자나 수용자 모두에게 피곤한 일. 게다가 전쟁기념조형물이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적 속성인 경외심, 초월성을 갖게 하고 숭고화되고, 미화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욕망은 남근주의적 피로의 절정이다. 경우에 따라 기념대상을 영웅이 아닌 보통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관람객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팁하나.

이같은 속성을 잘 이해하면 관련 공모에서 당선되는데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용산 전쟁기념관에 있는 <한국전쟁정전50주년기념조형물>은 이에 대한 모범답안이다.
국내 작가인 신한철, 강진식 등 4명의 작가와 건축가가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높이 32m, 무게 26톤으로 규모면에 국내 최고다. 투입된 금액만 자그마치 80억 원. 기업에서 컬렉션을 목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헨리 무어, 루이스 부르주아 등의 작품을 제외하고, 공공조형물로 계획된 작품 중에서는 최고가 금액이다. 청동검을 모티브로 생명수와 상무정신을 조형화 했다고 하는 중앙부의 기둥 형태는 말 그대로 고대의 칼[刀] 형상이며, 멀리서 보면 마치 총알 같기도, 남근 같기도 해서 그야말로 전쟁기념관 조형물답다. 대단히 마초적이고 위압적인 중앙 조형물 양 쪽으로 군인, 유격대, 남녀노소 등 4미터 높이의 인체 형상의 조형물과 이를 감싸는 연못이 있다.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도식적이고, 전형적인 기념조형물 형태다. 뭔가를 기념/추념하기 위한 조형물의 형태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틀에 박힌 관념에서 언제쯤 벗어날 지, 언제쯤 마야 린의 <베트남참전기념조형물> 같은 공공미술품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베트남기념조형물을 공모했을 당시 대부분의 제안들은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이오지마의 해병들’처럼 승리를 향한 불굴의 의지와 강하고 확신에 찬 조형물들이었다. ‘이오지마의 해병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아버지의 깃발’이란 영화를 보신 분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깃발을 세우는 미군의 모습을 기억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군사진작가 조 로젠탈이 1945년 2차세계대전 말, 이오지마 전투에서 성조기를 꽂는 해병대원들의 사진을 찍어서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이 사진을 토대로 조형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당선작은 당시 20살, 약관의 나이의 중국계 미국인, 그것도 남성도 아닌 여성인 마야 린(Maya Lin)이었다. 베트남전으로 실추된 미국남성들의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선자가 알려지면서 커다란 논쟁에 휩싸였다.

마야 린을 공격하는 논쟁의 주된 내용은 “왜 땅속으로 기어들어가는가? 너무 여성적이다. 남성적으로 우뚝 솟게 만들지 않은 것은 베트남전쟁의 패배를 자인하는 것 아닌가? 부메랑 모양의 조형물은 미국으로 날아와 발등을 찍는다는 상징인가?“ 등등 성조기나 영웅적으로 묘사된 군인들, 전쟁의 미화된 장면들 같은 전쟁기념조형물의 일반적 요소들이 배제된 것에 대해 반대여론이 심했다. 게다가 ”검정색은 슬픔과 수치를 나타내고, 묘비같으며, 반 영웅적이고, 패배를 상징하고, 참전용사를 모독했다“는 등의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재향군인회처럼 가장 보수적이고 영향력 있는 단체를 선두로 사회전반적으로 국론분열까지 일으킬 정도로 심각했던 논란은 결국 주변에 일반적인 전쟁기념조형물을 추가로 세우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1981-82년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이후 마야 린의 기념조형물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오히려 공공미술의 모범으로 자리잡게 됐다. 마야 린의 작품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전쟁기념조형물의 공식을 완전히 부서버렸다는 데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 2008.10.30

 

 

 

 

 

 

기업과 미술의 행복한 마리아주

 

 

“미술은 끝났다. 누가 저 프로펠러 보다 잘 만들 수 있는가” 다다이즘(Dadaism)의 대표적 작가인 뒤샹이 브랑쿠지에게 한 말이다.

또 있다. 20세기 초 현대미술의 주요한 사조 중 하나인 미래주의(Futurism)의 선언문에서 마리네티는 “경주용 자동차가 사모트라케 승리의 여신보다 더 아름답다”고 했다.

물론 의미 차이는 많지만 두 경구를 굳이 새김질하지 않더라도 공공미술에서 비슷한 유혹을 가끔 접하게 된다. 사실 용평스키장 톨게이트에서 만나게 되는 풍력발전기가 같은 지역의 어설픈 상징탑이나 조형물에 비해 훨씬 더 쉬크하고 랜드마크적이다. 연장선상에서 레디메이드는 아니지만 추상적, 기하학적 도형, 특히 원형이나 사각형은 공공미술의 영원한 스터디셀러라 할 수 있다.

 

기업의 로고 또한 그렇다. 벤츠의 아이콘은 조형적인 측면으로만 보면 거의 완벽한 수준의 추상 조형물이다. 만약 CI를 지름 10m 이상 ‘뻥 튀겨서’ 설치한다면... 이 또한 대단한 공공미술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안한다/못한다. 왜냐구? 인(아웃)테리어, 혹은 디자인과 미술을 긋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인(아웃)테리어 작품(?)의 미덕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제작비에 비해 창작비(혹은 디자인비)가 거의 안 든다는 점. 특별히 독창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래서 저작권 시비에 휘말릴 염려가 미술에 비해 훨씬 적다는 점이다. 기업 홍보에 대한 조바심은 이런 미덕을 십분 활용하도록 충동질 한다. 가끔은 공공미술에 강요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강남의 동부그룹 사옥 앞에 있는 조형물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룹 CI를 그대로 입체화시킨 이 작품이 어떻게 서울시 미술장식품 심의를 통과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요구한 기업, 제작한 작가, 승인한 심의위원, 삼박자가 아주 잘 맞아 떨어진 결과다.

 

기존의 제도적 공공미술(건축물미술장식)제도에서 소화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최근 공공미술의 진화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뉴장르 공공미술로 대변되는 지역공동체와의 간격 좁히기와 건축물과 거리시설물 등 건축,디자인 영역과 퓨전하는 경향, 기업의 마케팅의 일환으로 활용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역삼역 사거리의 GS 신사옥 외벽에는 LED가 설치되어 있다. LED가 숫자모양, 별모양, 걷는 사람 모양 등으로 시시각각 바뀐다. 38층 높이다 보니 거의 10km 밖에서도 보일 정도로 시각적 랜드마크로 자리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같은 대형 프로젝트에 미술가든, 디자이너든 작가 전혀 개입되지 못하면서 예술적 컨텐츠가 부족해진다 점이다. 강변 테크노마트처럼 아직도 ‘대-한민국’을 크게 써놓은 수준이다. 공공디자인이다, 공공미술이다 말은 무성하지만 아직도 시각적 컨텐츠에 대한 비용이 인색한 건 어쩔 수 없는 실정이다.

 

반면 재작년 말 광화문 철거벽이나 하나은행 본사 건물은 작가의 숨결이 깃든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하나은행 본사 건물은 작가는 26만개의 초록색 PVC 리본을 외벽에 휘감았다. 일순 바람이 불자 초록색의 물결이 일렁인다. 리본의 군무이자 집체극이다. 무채색의 건물이 색의 향연으로 환생하여 주변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거대한 공공미술품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기업 홍보에 대한 조바심이 엿보인다. 옥의 티다. 간판이 위치한 건물 윗부분은 리본으로 마저 감싸지 못했다. 설치미술을 끌어온 것도 다 홍보를 위해서니까 이해는 가지만 화룡정점에 실패한 듯한 인상은 어쩔 수 없다. 홍보효과로 봐서도 굳이 “이 건물은 하나은행이오”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공공미술품로 승화된 건물에 대한 궁금증은 입소문과 ‘펌질’을 통해 조용하지만 훨씬 더 큰 파장을 주었을 것이다. 잘 만든 티저 광고가 오히려 더 큰 홍보효과를 주는 법이니까.

 

 

하나은행의 빅팟 광고에는 프랑스 작가 장 피에르 레이노의 작품이 등장한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을 대표했던 세계적인 작가로, 파리 퐁피두 센타, 베이징 자금성에 설치한 초대형 화분 등 오브제 작업으로 유명하다. 국내에도 국립현대미술관 야외에 그의 공공미술 작품이 있다. 레드 컬러의 대형 화분이 강렬하다.

 

현대카드 광고에는 줄리안 오피의 미디어 작품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짧은 시간 스쳐가서 아쉬움이 많았다.

최근 광고 중 한 LG전자의 X-캔버스 광고에는 아니쉬 카푸어의 클라우드 게이트(Cloud Gate)가 등장한다. 시카고 밀레니움 파크를 대표하는 공공미술 작품이다. 자그만치 230억원이 들었다는 이 작품을 배경으로 탭댄서들이 일사분란하면서도 화려한 군무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직업 탓인지 광고나 영화에 공공미술품이 등장할 때마다 남들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나은행과 관련해서 하나만 더. 사실 하나은행은 국내에서도 내노라하는 기업 컬렉터다. 김승유회장의 개인적인 취향도 있겠지만 미술계의 입장에선 분명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해야 할 은행이다. 금융기업 중 미술에 가장 많은 애착을 보이고, 가장 많은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 하나은행이 기업의 소장품을 자랑할 때 자주 내놓는 작품 중 하나가 백남준 작품이다. 백남준의 ‘하나 로봇’은 트레이드마크인 비디오 조각에 하나은행의 로고를 그대로 사용해서 만들어졌다. 기업 입장에서야 세계적 대가의 작품에 기업 CI가 들어갔으니 얼마나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며, 또 얼마나 뿌듯하겠냐만 개인적인 생각은 조금 다르다.

기업과 미술이 문화(미술)마케팅으로 행복한 ‘마리아주’가 됐다기 보다는 흡사 계약결혼 혹은 정략결혼 같아 불편하다. 궁금한 건 존경해마지 않는 백남준 선생님께서 이걸 제작하신 이유다. 기업과 미술의 만남이라고 만족해 하실까? 아니면 당신의 작품으로 내세우기에 부끄러워 하실까? 여쭤볼 방법이 없다.

- 2008.11.06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거인이 한 걸음 더 걸었다. 육중한 몸으로 한 걸음을 떼는데 자그만치 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비용도 만만치 않다. 4.8m 한걸음. 20m가 넘는 거인의 보폭으로 딱 한걸음 정돈데 8억원 가량 소요된다고 한다.

신문로 흥국생명사옥 앞의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의 헤머링 맨(Hammering Man)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공공미술 중 하나다. 2002년 작품 설치 당시부터 키 22m, 무게 50톤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와 1분 17초에 한 번씩 망치질하는 동작을 통해 노동의 숭고함과 노동자에 대한 경외를 담았다는 작품의 의미, 클래스 올덴버그와 함께 공공미술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 작가의 명성, 관람객의 호응과 미술계의 관대한 평가 등 대중성과 작품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이제는 식상할 정도로 오랫동안 찬사를 받아왔다.

헤머링 맨은 작품의 탁월함과 2002년 설치됐지만 작가와 계약할 무렵인 1999년에 10억이 넘는 작품비는 당시 세간의 화제가 됐었다. 보통의 기업들이 법적으로 정해진 미술장식품 금액에서 곶감 빼듯 리베이트를 빼가던 일이 비일비재했던 시기에, 미술장식품 금액 이외의 비용으로, 그것도 10억에 육박하는 적지 않은 금액으로 조각품을 구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에야 아트마케팅이 일반화 됐다지만 당시만 해도 삼성 등 미술관을 소유하고 있는 일부 대기업에서만 컬렉션 목적으로나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기업입장에서는 모험이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헤머링 맨은 작가와 작품의 명성에 가려 장소성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지 못했다. 헤머링 맨은 흥국생명 사옥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22m의 거인이 생활하기에는 너무나 비좁은 장소. 마치 억지로 구겨 놓은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건물 벽에 바짝 붙어 버려 비교가 안될 만큼 더욱 거대한 건물에 위축되고, 짓눌린다.

그간 미술장식품의 문제점을 얘기할 때 단골로 나오는 “껌딱지 조각, 문패 조각” 등의 비아냥을 헤머링 맨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였다. 그만큼 작품의 규모, 관심에 비해 공간과 썩 맞춤은 아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상대적으로 21m로 규모가 약간 작은데도 시야가 확 트인 광장에 설치되어 있는 헤머링 맨에 비해 흥국생명에 설치된 헤머링 맨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시애틀, 달라스, 스위스 바젤 등 전 세계 일곱 곳에 설치된 헤머링 맨 중에서 흥국생명 앞에 설치된 작품이 크기는 제일 큰데, 제일 초라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헤머링 맨이 설치된지 6년만에 조금이나마 넓은 공간으로 한 걸음 나왔다. 물론 한참 부족하다. 대신에 기존에 작품이 있던 자리가 벤취가 있는 거리 공원으로 탈바꿈됐다. 작품 앞의 버스정류장도 새로운 디자인으로 단장됐다. 은빛 띠 10개가 휘감아가면서 유기적인 공간을 만든 것. 야간에는 푸른 빛의 조명이 환상적이다. 차와 사람이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다 다시 흘러간다고 해서 정류장 이름도 ‘The Flow(흐름)’라고 지었다.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이 정류장은 톡톡 튀는 디자인으로 기존의 식상한 버스정류장과 확실히 달라 보인다. 디자인한 하태석 건축가는 “정류장이 기능만 따지고 정서는 배제해 버스 기다리기가 더 지루했던 것 같다”며 “시민들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 했다”며 제작 의도를 밝힌다. 또 있다.

 

맞은 편 서울역사박물관 앞 ‘아트쉘터’는 검은색 파이프를 주르륵 세워 한옥의 처마나 한복의 저고리를 연상시킨다. 파이프 사이사이로 역사박물관이 보인다. 버스정류장으로서 경계를 긋지만 시선을 차단하지 않아 시원하고 무겁지 않다. 제작자는 역시 건축가인 최욱.

“정류장 자리는 옛 경희궁의 담이 있던 곳으로 이미 없어져 버린 옛 장소의 느낌을 복원하려 했다”며 “주변과 경계를 이루면서도 어울리는 한옥의 방식을 따랐다”고 밝힌다. 덕분에 흥국생명 앞과 맞은 편은 공공미술, 공공디자인 관계자들이 꼭 한번은 봐야 할 투어장소로 탈바꿈했다. 도시를 미술관으로 꾸미고, 도시를 문화적으로 디자인하겠다는 서울시의 “디자인 서울”,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다.

 

게다가 흥국생명 앞의 벤취와 작은 공원, 정류장까지 흥국생명에서 비용을 부담했다고 하니 시민의 세금을 아낄 수 있어서 좋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민간기업의 비용으로 시 역점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어서 좋고, 흥국생명 입장에서는 헤머링 맨이 좀 더 눈에 잘 띄고, 인지도를 높임으로써 기업 이미지를 높일 수 있어서 좋다.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특히 흥국생명의 CI를 새로 런칭하는 과정에서 “한걸음 더” 전진하는 헤머링 맨을 통해 상징적인 효과를 올릴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이처럼 기업마케팅으로 공공미술, 공공디자인이 활용되는 것은 도시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고, 시각적 환경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더욱 바람직하다. 청계천의 올덴버그 작품도 사실 KT에서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이다.

최근 서울시에서 이같은 방식을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기업에서는 공공미술, 공공디자인을 이용한 홍보효과가 있어서 좋고, 공공미술, 공공디자인 작품을 도시 곳곳에 놓을 수 있어서 서로 좋을 것이라는 논리다. 계획 자체가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과연 기업에서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민간의 입장에서야 정부나 서울시가 영원한 ‘갑’이라는 어쩔 수 없는 사실을 ‘갑’이 알라나 모를라나.

- 2008.11.13

 

 

 

 

 

 

공공미술은 불황 중?

 

 

“R의 공포가 오고 있다” 겨울 문턱에 왠 납량특선영화 홍보카피냐고? 아니다. R은 Recession, 즉 경기침체를 뜻하는 단어다. 경제에 관심 있으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최근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신조어다.

뉴욕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번지면서 온 세상이 경기침체를 넘어 불황에 대한 공포로 술렁인다. 공공미술도 예외는 아니다. 공공미술 또한 시장에 포함되고, 영향을 받기 때문에 소위 ‘R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공공미술은 건설업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보니, 최근 건설업계의 극심한 불황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공공미술은 보통 미술시장의 흐름과 역으로 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미술시장은 부동산 시장이 침체될 때 호황인 경우가 많다. 오갈 데 없는 유동자금이 부동산에서 빠져나와 미술시장으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건축물미술장식제도, 소위 %법이라는 제도 덕택에 공공미술은 부동산, 건설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결국 미술시장이 호황일 경우에는 공공미술이 불황이고, 거꾸로 미술시장이 불황일 경우에는 공공미술이 상승세를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같은 흐름은 1984년 %법이 서울시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특히 1995년 전국적으로 확산된 이후에 일관되게 나타났다. 그런데 최근 미술시장과 공공미술이 동시에 심각한 상황으로 고꾸라지고 있는 중이다. 근 20년 만에 처음으로 동반 하락하는 셈이다.

특이한 건 공공디자인은 일이 넘친다.실업자 1천만명 시대에 공공디자인 관련 직종은 하루가 다르게 몸 값이 오른다. 사람 구하기가 별 따기다. 그러다보니 주위에서 아우성이다. 한 쪽은 일이 없어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한 쪽은 일이 많아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세상 참 요지경이다.

공공미술은 미술시장에 포함되면서도 사뭇 다르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경기 자체가 반비례한다. 오히려 공공디자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미술시장이라면 당연히 생산(작가)→유통(화상)→소비(컬렉터)의 과정을 거친다. 반면 공공미술, 공공디자인은 거꾸로다. 공공미술은 생산이 먼저 발생하지 않는다.

소비를 전제로 한 맞춤형 생산, 주문형 생산이다. 작가에 의해 작품이 생산되고 고객에 의해 소비되는 형태가 아니라 법적으로 정해진 소비에 맞춰서 생산이 된다. (법적)소비→유통→(주문)생산 순으로 물구나무 선 셈이다.

또한 공공미술, 공공디자인은 시장논리가 반영되지 않고 법적, 제도적 논리가 우선한다. 건축물미술장식법에 의해 정해진 금액과 방식에 따라 변화된다. 언제든지 법이 바뀌면 시장 규모와 패러다임이 크게 출렁인다. 심지어 당장이라도 정부나 국회에서 독하게 마음먹으면 아예 폐지시켜버릴 수도 있다.

설마 그러랴 싶지만 내년이라도 없어져 버린다면 년 간 800억 규모의 시장이 한방에 날아가 버린다. 공공미술의 존립 근거가 법에 있는 것이다. 목줄을 제도에 맡긴 셈. 명줄을 쥐고 있는 것은 또 있다. 미술시장이 자율적이라면 공공미술, 공공디자인은 타율적 시장이다. 호황, 불황이 부동산시장, 건설경기나 지자체의 정책 방향에 좌우된다.

 

 

공공미술품은 종종 소비하는 사람과 소유하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발생한다. 미술시장이라면 작품을 구입, 소비하는 사람이 다시 팔기 전까지는 그 작품을 소유한다. 아파트에 있는 공공미술품이 주인은 당연히 입주민들인데, 아파트가 다 지어져서 입주하기 전에 공공미술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시행사나 시공사다. 아파트 분양과 준공이 끝나면 툭툭 손 털고 나갈 사람들이 생색내는 격이다.

무엇보다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 그중에서도 미술장식품은 재유통이 불가능하다. 미술작품은 재유통과정을 거치면서 부가가치가 덧붙는다. 반면 건축물미술장식법에 의해 정해진 금액으로 작품이 설치고 나면 다시 판매할 재간이 없다. 오로지 건물과 함께 수명을 다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러다보니 작품의 예술적 가치나 투자 가치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하기야 재유통돼야 부가가치건 뭐건 발생할 것 아닌가. 부가가치가 안 붙는 건 다음 문제다.

 

그러다보니 공공미술품은 조금씩이지만 쌓여가는데 처리할 방법이 난감하다. 수명이 다한 건물을 철거할 때 건물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는 작품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철거되는 건물과 함께 ‘건설현장폐기물’이 되는 걸까?

공공디자인이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같이 철거해버리면 되지만, 공공미술은 애매한 경우가 많다. 미술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평균 수명은 25년이라고 한다. 건축물미술장식제도는 1972년 권장사항으로 출발, 1984년 서울시 의무사항으로, 1995년에 전국적 의무사항으로 바뀌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84년에서 25년을 더하면 2009년이다.

당장 내년부터는 슬슬 철거를 목전에 둔 미술장식품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서울시에서만 어림잡아 년 간 200점 이상 300점 가까이 공공미술품이 설치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년부터 최소한 100점 이상의 작품들이 2020년 경부터는 전국적으로 1천여점이 작품들이 철거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정도면 사회문제다.

공공미술이건 공공디자인이건 사후 관리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공공디자인은 아직 시간이 많다지만 공공미술은 슬슬 관련 조례나 방침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철거되는 건물의 작품만 모아서 조각공원을 만들 수도 있고, 재건축하는 건물에 다시 설치할 수도 있다. 내년부터 서울에서만 100점이 철거된다면 반만 건져도 50점이다. 매년 조각공원 2개는 만들 수 있겠다. 문제는 얼마나 건질만한 공공미술품이 많냐는 거다. 어디로 갈까?

- 2008.11.20

 

 

 

 

 

 

“다들 힘드시죠?”

 

다음주면 벌써 12월입니다. 어느새 내년 달력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올 겨울은 예년에 비해 포근하다고 합니다만 왠지 ‘귀때기, 볼때기’가 떨어져나갈 만큼 ‘쌩쌩’ 칼바람이 느껴집니다. 뉴욕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번지면서 끝없이 추락하는 경제상황 때문입니다. 길고 긴 터널, 이제 초입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도 힘듭니다. 팍팍해진 생활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내년에는 더 어려울 거라는데 막막합니다. 다들 힘드시죠?

 

엇보다 미술시장의 어려움은 경제 상황 이상입니다. 작년, 재작년 10년 만에 미술시장에 반짝하고 대 호황이 온 뒤라 체감온도는 그야말로 영하권입니다. 2005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미술시장의 호황은 2007년 하반기를 정점으로 처참할 만큼 주저앉고 있습니다. 10년 만의 호황에 흥청거린 미술계는 지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시장의 거품을 우려 했고, 미술시장 침체를 예상했음에도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궁금합니다.

물론 미술시장의 버블이 터진 데에는 세계적 금융위기가 도화선을 당겼습니다. 거기에 작년부터 삼성비자금의혹, 신정아사건, 박수근, 이중섭 위작파문 등이 연이어 터졌습니다. 어쩜 그렇게 악재란 악재가 한꺼번에 터질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근본원인은 미술계 내부에 있지 않았나 돌아보게 됩니다. 미술시장의 호황을 타고 경매회사는 과잉 공급되고, 새로운 화랑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많은 화랑들이 지점을 내거나 규모를 불리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신진 작가건, 중견 작가건 가리지 않고 작품 값 올리기 바빴습니다. 경매는 부채질하기 바빴습니다. 폭등했던 가격은 결국 대부분 버블이 되었습니다. 다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정부는 미술계가 시한폭탄을 안고 침체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순간에 양도소득세라는 칼을 꽂았습니다.

공공미술은 더하면 더합니다. 공공미술을 미술시장에 포함시키기에는 여러 가지 무리가 따르지만 미술시장의 시각에서 보면 공공미술시장은 벌써 몇 년째 하락하던 중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금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건설업계가 가장 많이 받고 있습니다. 미분양으로 누적된 시행사와 건설사의 부실은 저축은행으로 파급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화라는 핵폭탄을 껴안고 있습니다. 건설업계에서는 “100대 건설사 중 20개 이상이 날라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심지어 대림건설이나 GS건설 같은 대형건설사 조차 유언비어에 시달리며 곤혹을 치르고 있습니다. 공공미술시장, 특히 건축물미술장식품 분야는 핵폭탄을 안고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미술시장과 공공미술시장이 쌍끌이로 벼랑에 몰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술시장과 공공미술시장은 반비례합니다. 덕분에 건축물 미술장식제도가 시행된 이후 미술시장이 어려울 땐 공공미술시장이, 공공미술시장이 어려울 땐 미술시장이 버팀목이 됐었습니다. 동시에 어려워진 건 사상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더 답답합니다. 당장 공공미술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실감이 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의하면 공공미술시장이 피크였던 2004년 기준으로 건축물 미술장식품만 700억원에 육박합니다. 그밖에 지자체의 각종 상징, 기념조형물이나 조각공원 등을 합치면 거의 800억 규모였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최근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서울시 문화국의 자료를 토대로 추정해보면 2004년까지 증가하다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2000년 158건의 미술장식품이 심의를 받았습니다. 2001년에는 138건, 2002년 204년, 2003년 389건으로 증가하다 2004년에는 453건으로 최고치를 보였습니다. 그리곤 2005년 386건, 2006년 314건, 2007년 238건으로 계속 감소했습니다. 올해는 11월 24일까지 서울에서만 182곳 273점이 작품이 심의를 받았습니다. 승인된 작품은 179점으로 약 66% 정도됩니다. 2/3 정도가 심의에 통과하는 셈이죠. 이 상태로 가면 올해말까지 아마 200여곳, 300여점이 심의를 받고, 중복심의 받은 작품을 제외하면 200여점 가량이 설치될 것 같습니다. 2004년과 비교하면 거의 반타작입니다. 물론 이같은 통계는 서울에만 국한된 것이고, 심의건수로 추정한 것이므로 정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공공미술시장 규모가 줄어들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표> 서울시 건축물미술장식품 심의건수

년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서울시심의
건축
물수
158건 138건 204건 389건 453건 386건 314건 238건 192건
(11월말)
180건 (예상)

그런데 문제는 내년부터입니다. 이미 건설경기는 몇년새 하락세로 접어들었는데, 최근 경기불황의 여파로 내년에는 그 규모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됩니다. 당장 건설사의 수주 규모가 내년에는 30%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각종 지표가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지표상으로 보면 내년에는 180건, 후년에는 150건이 채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서울시에서 공공미술, 공공디자인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건축물미술장식품 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곤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저 하루빨리 경기가 좋아지고, 건설사들이 행여나 부도나지 않고, 경제가 살아나길 바랄 뿐입니다. 내년, 내후년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다들 추운 겨울 조금이라도 따스하게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2008.11.27

 

 

 

 

 

 

“한걸음 더”

 

“한걸음 더 ♬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건은 아냐 ♪” 글쎄 10대나 20대는 모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30, 40대 귀에는 익숙한 가사다. 30, 40대 기준으로는 아마 ‘아이돌’ 반열에 오름직했던 윤상의 ‘한걸음 더’의 후렴구다. 노랫말처럼 숨 가쁘게 바쁜 도시의 일상은 우리에게 천천히 가게 두질 않는다. 잠시잠깐 멈추면 경쟁에서 낙오라도 될지 모른다는 강박은 가쁜 숨 몰아쉬며 뛰라고 등 떠민다. 도시, 그것도 전 세계에서도 메가시티에 속하는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여유가 곧 사치인 삶이다. 윤상은 “잠깐 동안 멈춰 서서 머리 위 하늘을 보면 우리 지친 마음 조금은 쉴게 있게” 될 거라고 ‘한걸음 더’의 노랫말은 위로한다.

서울시가 의욕을 갖고 추진 중인 사업 중 도시갤러리 프로젝트가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다. 올해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화두는 '한걸음 더‘다. ’한걸음 더‘는 꼬릿말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한걸음 더 가까이‘는 친숙함과 편안함을, ’한걸음 더 멀리‘는 희망과 전진을, ’한걸음 더 천천히‘는 여유와 휴식, 재충전의 기회를 준다. 2008년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슬로건 ’한걸음 더 가까이, 한걸음 더 멀리(seoul city gallery, one more step)'는 양적 성장과 하드웨어적 개발에만 치중했던 서울을 예술과 문화로서 되돌아 보게 만들어 준다. 이것은 창의와 문화를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하고, 도시를 작품으로, 삶을 예술로 만드는 도시갤러리의 도전을 나타내는 말로써, 한걸음 더 도약하는 공공미술을 지향한다.

 

도시를 작품으로, 삶을 예술로 만든다는 것은 사실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의욕이 앞서고,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하기 쉬운 얘기다. 물량 공세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건축물미술장식제도 덕택에 서울에서만 매년 150억에서 200억의 금액으로 200점에서 300점 가량 공공미술품이 설치되는 데도 별반 달라져 보이지 않는게 사실이다. 이에 비하면 제법 많다고 생각했던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예산 30억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것저것 많이도 했다. 서울시가 2007년 "도시가 작품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실시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시범사업은 옥수역(함께 타는 공공미술)을 출발점으로 하여 인사동(일획을 긋다), 서울숲(먼곳에서 오는 바람) 등 25개의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참여 작가만 수백명이고, 작품수도 못지 않다. 예술가들은 망원동, 성산동으로 달려가 지역 주민과 예술로 일촌 맺기를 시도했고, 불광천에서는 개천에서 용 대신 공공미술 나게 했다. 신림동에서는 예술을 매개로 놀이방과 공부방을 운영하며 공동체미술의 새싹을 키웠다. 기존의 식상한 지하철 벽화 대신 조금은 색다른 공공미술로 합정역, 을지로3가역 등을 꾸몄다. 미술가만의 ‘나와바리’이자 순수작품만 설치되었던 기존 공공미술의 테두리를 탈피해 미술가, 디자이너, 건축가들이 참여하고 전통적인 조형물 스타일의 공공미술에서부터, 벤취, 버스쉘터 등 디자인 영역에서 다루어졌던 기능적인 공공미술,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공동체 공공미술 등 정말 다양한 참여와 다양한 영역을 가로질렀다. 덕분에 적은 예산으로 다양한 사업을 해결한 바람에 오히려 산만해진 단점도 보이기도 했다. 시범사업의 성격도 강하고, 첫해다 보니 이것저것 모양새를 잡아야 하다보니 여러 가지 일을 펼쳐 놓은 덕택이기도 하다.

올해는 5개 부문, 18개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2008년도 도시갤러리 사업은 공공미술을 통해 서울다운 장소를 가꾸고, 활기에 찬 공동체를 만들어 서울의 매력을 향상시키겠다고 한다. 또한, 공공장소에 창의적인 예술을 심어 서울의 매력을 향상시키고 서울다운 장소성을 강화하며, 이웃/동네 등 공동체를 활성화하며, 도시의 공간을 아름답게 업그레이드 하겠단다.

역시 말은 거창하다. 말 뿐만 아니라 예산도 작년보다 훨씬 늘었다. 계획도 작년에 한번 해봐서 인지 훨씬 짜임새를 갖췄다. 기단프로젝트, 분필아트, 러브하트프로젝트 등 많은 프로젝트들이 하나씩 선보이는 중이다. 정말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슬로건처럼 한 걸음 더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지, 한 걸음 더 멀리 공공미술로 향해가고 있는지 두눈 크게 뜨고 지켜 볼일이다. 한 걸음 더 ∼

- 2008.12.04

 

 

 

 

 

 

도시가 작품이다

“도시가 작품이다(city as oeuvre)" 앙리 르페르브의 말이다. 앙리 르페브르는 일상성 속의 광고, 소비, 자동차, 여성 등의 문제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현대성을 예리하게 비판한 프랑스의 사회학자다. 그는 고도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나아가는 현대사회의 특징들에 주목하여 일상성의 문제, 도시문제, 인공지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역저 『현대세계의 일상성』은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가상현실(시뮬라크르) 이론으로 영화 「매트릭스」에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는 등 현대 문화 이론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의 한 사람인 장 보드리야르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하다.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는 『현대세계의 일상성』을 원형으로 하여 좀 더 구체적인 예들과 함께 논의를 전개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앙리 프페르브의 “도시가 작품이다”는 또한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도시 자체가 작품이 되는 창의도시, 문화도시를 꿈꾸고 그리는 프로젝트다. 창의적인 공공미술을 공공장소p 설치해서 서울다운 멋과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시민들에게는 문화적 향유와 자긍심을 전하고, 국내외 길손들에게는 서울다운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 목적이다. 작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올해는 한걸음 더 가까이, 한걸음 더 멀리(seoul city gallery, one more step)'란 주제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가 관심이 가는 이유는 기존 공공미술과의 차별성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공공미술은 건축물미술장식제도가 중심이 되면서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이 더딘 편이었다. 게다가 전통적인 조각, 돌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이나 서양화나 한국화,사진,판화 등 건물 로비 등에 걸 수 있는 평면회화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공공미술의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다양해지고 있는데 반해 계속 제자리 걸음하는 중이었다. 곳곳에서 반성의 목소리, 새로움에 대한 요구가 터져나왔고 2005년을 기점으로 다양한 공공미술프로젝트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는 적절한 타이밍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면서 전국적인 공공미술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전통적인 조각, 회화에 그치지 않은 점이 주요한 것 같다.

또한 기존의 공공미술이 말그대로 ‘미술’의 영역에 국한되고, 미술 이외의 장르에 대해 대단히 배타적이었다면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는 건축, 디자인, 조경, 인테리어 등 인접 분야에 문호를 대폭 개방했다. 사실 이런 도시갤러리 행보를 놓고 미술계 내부에서는 볼멘 소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부서가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 산하에 있는데다 서울시가 디자인에 ‘올인’하다 보니 미술의 장르특성이 디자인과 섞이면서 이도저도 아니라는 소리다. 더구나 서울시가 “확실히 세긴 세다”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가 공공미술 관련 부서를 문화예술부서에서 디자인관련부서로 속속 바꾸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다. 불만은 불안감으로 전이되는 중이다. 미술장르에서 독점했던 공공미술에 디자인 장르가 “치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결국 너저분한 ‘밥그릇싸움’으로 변질될 ‘임계점’에 온 듯하다. 그러나 대세는 미술이 인접 장르와 통섭하지 않고서는 최소한 공공미술 분야에서 버티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미술이 갖고 있는 아방가르드적 속성, 독창적, 실험적 속성은 디자인 분야의 기능적, 합리적 속성과 융합되고, 조화되지 않고서는 공공장소에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는 어느정도 학술적으로 정리가 된 용어지만 어쩌면 좀 더 포괄적인 용어를 지향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공공미술, 공공디자인으로 나눠진 용어 덕택에 미술이네, 디자인이네 다툼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공예술? 적절하진 않지만 미술과 디자인, 건축 등을 포괄할 수 있으면서 도시를 시각적, 문화적, 예술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려는 공통의 목표에 좀 더 잘 맞는 용어가 새삼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도시가 작품이길 바라는 마음은 마치 ‘흑묘백묘’처럼 관련 장르가 같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는 전후 사정을 떠나 미술이외의 장르까지 끌어 안는 것은 한발 앞서가는 것이 분명하다.

2008.12.11

 

 

 

 

 

 

올덴버그의 수모

서울시민이 뽑은 “버리고 싶은 공공미술" 1위에 청계천 광장에 설치된 클래스 올덴버그의 ‘Spring’이 선정됐다. 지난 달 모 건축잡지에 특집으로 실린 기사다. 공교롭게도 MB정부의 치적 중 하나인 청계천 복원공사와 그곳에 상징물로 설치된 작품이어서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할 것 같다.

공공미술 작가 중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올덴버그의 입장에서 상당히 ‘굴욕’스러울 것 같다. 마침 모 일간지 기자도 ‘올덴버그의 굴욕’이라는 문화칼럼을 쓰기도 했다. 올덴버그의 ‘Spring’에 대한 필자의 입장은 약간 곤혹스럽다. 입장 자체가 상반되고, 모순되기 때문이다. 사실 먼저 고백하자면 개인적으로 올덴버그라는 작가를 아주 좋아한다. 그의 작품도 물론이다.

팝아트의 대표적 작가로 잘 알려진 올덴버그는 1960년 말부터 일상의 사물과 상업적 오브제를 어마어마한 크기로 확대한 대형 모뉴먼트 작품을 도시 공간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빨래집게, 야구방방이, 햄버거, 넥타이를 몇십배 몇백배 뻥 튀긴 작품으로 관객을 놀래키는 충격적인 작품들이다. 고상한 미술, 어려운 예술, 심오한 작품에 지쳐 있던 대중들은 올덴버그의 작품에 환호했다. 대중 뿐 아니라 초기 올덴버그 작품이 뿜어내는 아방가르드적 ‘포스’에 평론가, 큐레이터 등 미술계 전문가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화상들과 컬렉터들은 엄청난 가격으로 그의 작품을 거래했다. 한마디로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몇 안되는 현대미술작가인 셈.

무엇보다 공공미술 작품이야말로 올덴버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좋아하는 거대한 숟가락 위에 올려진 체리, 그리고 체리 꼭지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는 실개천에 가로 놓이면서 공공미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필라델피아 시청 앞에 있는 거대한 빨래집개는 고풍스러운 시청건물과 대비되어 시각적 반란을 일으킨다. 그동안 공공미술의 기념비성, 상징성은 추상적, 기하학적 오브제나 서사적, 사실적 조각이 주류였었다. 필라델피아 시청 앞의 빨래집개, 도쿄 청사 앞의 거대한 톱 등은 관료적이고, 무게만 잡는 관공서를 비틀어 꼰다. 결국 상징성, 기념비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상징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독특한 경우다. 또한 올덴버그 작품의 현란한 원색은 마치 현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도시를 찍은 사진위에 컴퓨터로 합성해 놓은 듯하다. 아날로그 보다 디지털에 가까운 편이다. 어쩌면 만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인상을 그대로 현실에 끄집어 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이 공공미술의 대가가 처음 왔다는 서울에서 시민들이 버리고 싶은 공공미술 1위에 뽑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다. 물론 그렇다고 청계천의 ‘Spring’을 적극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이 서울시 뉴스에 실린다고 괜히 무딘 비평을 할 필요도 없다. 전후사정을 떠나서 ‘Spring’은 공공미술이 지향하는, 그리고 공공미술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을 빠뜨렸기 때문이다. 우선 청계천의 장소성, 역사성을 반영하였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또 하나는 시민들의 참여와 공적인 의견 수렴이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올덴버그의 ‘Spring’은 이 두 가지 점에서 실패함으로써 온갖 비판과 비난에 대상이자, 논란의 중심이 돼버렸다.

“청계천의 장소성이나 의제와는 무관한 골뱅이 탑이다” "거기에 왜 서있는지 모르겠다“ ”서울에 스며들지 못하고 동동 떠돈다“ 등의 신랄한 비판들이 바로 이 작품에 대한 언론의 평가다. 개인적으로 이런 비판들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우선 개인적으로 올덴버그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개인적 취향만은 아니다. 의미 모를 추상 조각, 촌스런 기념 조각, 관객을 고려하지 않은 고상한 예술 조각이 아닌 많은 대중들이 올덴버그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단지 국내 작가가 아니라는 밑바탕에 깔린 불편함도 한 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청계천 상징 조형물을 한국 작가가 해야 한다는 것은 곧 서울에 사는, 그것도 청계천에 사는 작가가 해야 한다는 것만큼 억측이기도 하다.

- 2008.12.18

 

 

 

 

 

 

Urban Lounge, Urban Canvas

레드 카펫, 도시의 한쪽 코너에 깔려 있는 강렬한 레드 카펫. 마치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와 턱시도를 몸에 감은 영화배우가 터지는 플래쉬 사이를 금새라도 스쳐 지나갈 것 같다. 스위스의 갈렌시(st Gallen)에 있는 레드 카펫으로 만들어진 도시 라운지(Urban Lounge) 얘기다. 갈렌시는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로크 양식의 갈렌수도원으로 유명하다. 갈렌시의 오래된 시청과 역 사이에 위치한 도시 라운지는 아예 거리를 아스팔트 대신에 통째로 레드 카펫으로 깔아버렸다. 벤치라기보다 소파에 더 가까운 다양한 시설물과 분수, 포르쉐 형태의 조형물, 심지어 은행나무 밑둥까지 붉은 색의 카펫이 화려하다. 고풍스럽고, 과거의 기억이 올올이 역사로 남아 있는 옛 도시와 기발한 상상력과 현대적 감각이 유명 비디오 아티스트인 피피로티 리스트와 칼 마르티네즈의 공동 기획으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덕분에 스위스에서도 유명한 얼터너티브 공간으로 변신했다. 이쯤되면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거리 자체가 예술작품이고, 거리 자체가 하나의 공공미술품이다.

갈렌시에 레드 카펫이 깔린 Urban Lounge가 있다면 네덜란드 북부 프리슬란트주의 레이우아르던(Leeuwarden)의 Zaailand광장은 거대한 프라이팬이 되었다. 노란색과 흰색의 스프레이로 광장을 칠하고, 계란 노른자는 반원형 입체로 만들었다. 직경 3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계란 후라이가 도시에 위트와 재미,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발음하기도 힘든 생소한 도시 레이우아르던은 농,축산물로 유명한 도시다. 결국 도시의 성격을 잘 살리면서도, 공공미술품을 통해 맛있는 도시, 재미있는 도시를 만듦으로서 블로그를 타고 전세계에 알려졌다. Art-Eggcident라고 이름 지어진 거대한 계란 후라이는 네덜란드의 공공미술 작가 한 호스트라(Henk Hofstra)의 설치 작품이다.

 

이 작가의 엉뚱한 상상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07년에는 네덜란드의 도로를 푸른 강으로 만들기도 했다. Urban River이라는 작품으로 네덜란드 북부의 작은 도시 드라흐덴(Drachten)을 관통하는 1Km에 이르는 도로를 푸른색으로 칠해 버린 것. 도시에 흐르는 푸른 강을 작가는 구글 어스에서 검색해도 볼 수 있기를 바랬다고 한다. 단지 푸른색만 칠한 건 아니다. 작가는 ‘WATER IS LIFE'라는 말을 강 위에 새겼다. 이 도로는 우리의 청계천처럼 과거에는 진짜 물이 흐르던 강이었다고 한다. 흐르던 강을 복구할 수는 없었지만 과거의 추억, 자연의 소중함, 강에 대한 그리움 등등을 담은 셈이다. 그렇다고 마냥 심각한 것만도 아니다. 푸른 색 도로 가장자리에는 사선으로 잘린 자동차를 설치했다. 마치 자동차가 강물에 빠진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사실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도로를 푸른색의 강으로 만든 공공미술작품은 우리가 먼저 시도했었다. 2006년 부산에서는 작가 김택상과 기획자 류병학이 합심하여 부산비엔날레의 출품작으로 기획한 것. 실제로 부산 해운대 앞 3차선 도로를 밤새 푸른색으로 칠했었다. 하필이면 페인트가 마르기 전인 새벽부터 내리던 비에 오가던 차들이 연속으로 추돌 사고를 일으켰고, 푸른 색 페인트가 주범으로 지목된 덕택에 하루도 안돼서 시청에서 원상복구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전사고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부산시의 배려가 더 있었다면 아마 국제적으로 화제가 될 만한 작품이었는데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다.

도시의 오픈된 공간은 아니지만 바닥 자체를 거대한 작품으로 만드는 작가 중에 마이클 린을 빼면 섭섭하다. 마이클 린은 알록달록 꽃무늬를 바닥에 펼쳐놓는다. 네덜란드 헤이그 시청의 안뜰, 파리 팔레 드 도쿄의 바, 뉴욕 PS 1 카페 등 공간 속에 낯선 감성을 불어 넣는다. 일견 패셔너블하고, 일견 팝스럽지만 그의 작품은 전통과 문화를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건축과 공간을 시적으로, 문화적으로 변화시킨다.

도시의 바닥이 라운지로, 강으로, 후라이팬으로, 꽃무늬로 변신했다. 상상력으로 무장한 공공미술의 도전은 끝이 없다.

- 2009.01.28

 

 

 

 

 

 

자연의 연금술이 함께한 공공미술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말처럼 ‘최고의 예술이 자연’이라는 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팝아트가 햄버거라면 자연이 함께한 공공미술은 자박자박 졸여놓은 강된장 같다. 방금 강된장에 호박잎 척 싸서 맛깔스레 먹은 것 같은 작가가 있다. 예술가라기보다는 농꾼같은 이재효는 우아한 레스토랑에 와인잔을 기울이는 것 보다는 찬물에 보리밥 훌훌 말아 매운 고추 푹 찍어먹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

W호텔, 한화대한생명 63빌딩, 대명비발디 파크에 가면 전나무를 불에 그슬리고, 쌓은 뒤 볼트로 연결한 다음 구 형태로 매끈하게 깎아 낸 공공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숯처럼 태운 검정색과 깎아낸 나무의 속살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어떻게 만들었지? 제작 방법에 대해서도 궁금하지만 어쩌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친근함이 관객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낸다. 작가는 나무 외에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풀이나 돌, 못과 쇠를 재료로 해서 구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작품들도 있지만 자연 그 자체를 예술로 만들기도 한다. 작품이라기보다는 행위이고, 행위 자체가 하나의 공공미술이다.

한번은 거주하던 작업실 주변에 밤새 눈이 소복하게 내렸다. 어린아이 놀 듯 눈 속을 뛰어다니다 홀린 듯, 미친 듯 쌓인 눈을 꾹꾹 밟아나간다. 하얀 호떡들이 하얀 눈 위에 금세 만들어진다. 동그란 백설기 같기도 하다. 햇살이 들고 따스해지면 어느새 녹아내릴 것이다. 결국은 없어져 버리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연과 만들어낸 공공미술이다. 처마 밑의 고드름 조각도 그럴싸하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처마 밑의 고드름이 일렬로 나란하다. 물론 인위적으로 반원 형태로 만들었겠지만 이것 역시 짧은 순간만 작품인척 하다 바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눈 대신 잡초를 굴려 만들거나, 텃밭에 배추 대신 글자를 심기도 한다. 반쯤은 자연이고, 반쯤은 예술인 그런 것들이다. 기존에 만났던 예술, 조각, 작품들처럼 단단하고, 높은 완성도에 밀도감 대신 어설프게 얽혀진 헐렁한 구조물에 가깝다. 느슨하고 여유가 있고, 무엇보다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바로 자연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작품에는 대표적으로 대지미술이 있다. 로버트 스미드슨의 나선형 방파제나 크리스토의 마이애미의 섬을 분홍색으로 둘러싼 작품들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대지미술은 자연을 변형하고 이용하거나 때로는 훼손하는 것에 더 가깝다.

칼 네스자르라는 노르웨이 작가는 기온을 자신의 작품으로 활용한다. 이 작가의 뉴욕에 설치된 작품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조형물이다. 하절기에는 시원한 물을 내뿜는 일종의 분수조형물이다. 그러나 뉴욕의 매서운 겨울이 닥치면 작품이 탈바꿈된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조형물에서 흘러내린 물이 얼어붙으면서 전혀 새로운 조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연의 도움을 받아 완성되는 조형물, 날씨의 변화에 따라 같이 호흡하는 조형물인 셈. 이 작가의 작품은 올림픽 조각공원에도 한 점 있다. 역시 겨울에 얼음 조각으로 변한다. 이제는 온난화 현상 덕택에 아쉽게도 얼음 조각으로 변한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아졌다.

바람이 만드는 작품도 있다. 알다시피 키네틱 아트다. 키네틱 아트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는 초,중,고 미술교과서에서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작가로 칼더, 조지 리키를 들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팀 프렌티스라는 키네틱 아티스트는 극도로 섬세한 작품을 만든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이 공기의 움직임입니다.이런 공기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 작업입니다” 미세한 공기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그의 작품은 바람을 이용한 작품 중에서도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가라 할 수 있다. 작은 삼각형, 사각형의 기하학적 구조물이나 깃털, 장난감 자동차, CD 등을 이용하여 반복적이고 기하학적으로 연결한 구조물들이 약간의 바람에도 흔들린다. 매끄럽고, 기이하고, 로맨틱한 댄스를 바람에 기대어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스틸 컷이 아닌 동영상으로 봐야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관심 있으신 분은 Timprentice.com에서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

- 2009.02.04

 

 

 

 

 

 

공공미술이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어릴 적 기억 속의 초상집은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도무지 우는 건지 아닌지 구별하기 힘든 곡소리와 친척들의 어두운 표정에 다소 침울했지만, 그래도 간만에 먹는 고기와 왁자한 분위기에 마냥 신났더랬다. 가끔은 짓궂은 동네 아저씨들이 찔끔 건네준 술지게미에 취했다가 어머니께 혼났던 기억도 한편에 남아 있다. 마당에 천막을 쳐 놓고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이들의 수발을 드느라 며느리들의 허리가 끊어지는 곳이다. 놀음과 음주로 지새우는 문상객들의 고인에 대한 추모와 남겨진 이들에 대한 위로, 때론 과한 술에 못이긴 행패까지 고스란히 몸으로 버텨야 했던 곳이다. 그렇게 먼저 가신 분에 대한 슬픔을 채 느낄 새도 없이 3일 밤낮을 정신없이 보내야 했던 곳이다. 그게 고인에 대한 도리고, 상주에 대한 예의였다.

흰 소복이 검은색으로 바뀐 것처럼, 시끌벅적한 상갓집 앞마당은 엄숙한 병원 장례식장으로 변했다. 이제 ‘장례’라는 절차는 농경사회의 질펀하고, 끈끈한 공동체 의식에서 도시사회의 세련되고, 품격 있는 의식으로 바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어떤 점에서는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상주는 별실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게 됐고, 딸린 식당 덕택에 음식 준비하느라 허덕이지 않게 됐다. 이제 거의 모든 장례식장에서 매캐한 담배 연기를 맡지 않아도 되고, 화투장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제는 고인에 대한 기억을 오롯하게 더듬으며, 문상객들의 위로를 받으며 가신 이에 대한 추모와 애도에 잠길 수 있게 됐다.

더구나 장례식장이나 병원에 공공미술품이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었다. 지금은 일상화된 풍경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특히 장례식장에 미술품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상주건, 조문객이건 슬픔에 젖어 있는데 느닷없이 작품이라니, 화려한 원색의 조형물이라니.

S병원 장례식장에 가면 눈을 찌를 듯 푸른색의 원뿔이 있다. 크기도 13.5미터로 꽤 크다. 최재은이라는 작가의 <시간의 방향>이라는 작품이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이 작품도 초기에는 감정에 북받친, 취한 조문객의 돌팔매를 허다하게 맞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작품은 탁월한 장소성으로 국내 최고의 공공미술로 꼽힌다. 살짝 기울어진 거대한 원뿔 형태다. 미니멀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던지는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생명력, 이브 클라인 블루가 주는 청량감과 우울함은 단순하면서도 다양하다. 초월적인 블루칼라와 영적인 형태는 고인의 죽음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조문객들과 감정을 섞는다. 그리곤 한 방울의 눈물이 된다.

이 작품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공공미술이 향수자와 교감하고, 감정이입되면서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된 것이다. 마야 린의 단순한 벽이 ‘통곡의 벽’으로 승화된 베트남 참전 기념비처럼 말이다. <시간의 방향>이라는 작품명보다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청계천 올덴버그의 ‘스프링’은 다슬기라는 애칭이 있지만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세간의 불평 때문에 급조된 제목이라면, 포스코센터 스텔라의 <꽃이 피는 구조물> 역시 <아마벨>이라는 애칭이 있지만 작가에 의해 붙여진 제목이다. 그래서 <눈물>은 영안실을 찾는 조문객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붙여진 애칭이어서 더욱 소중하다.

이 병원에는 볼만한 작품이 제법이다. 미술관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많기도 하다. 우선 세자르의 <엄지손가락>이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병원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는다. 그밖에도 브네의 <부정형 선>, 김인겸의 <묵시공간-우주>, 최종태의 <소녀사유상> 등이 있다.
실내에도 작품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선 정창섭의 작품이 압권이다. 벽면 인테리어로 지나치기 쉽지만 닥종이 작품이 곡선의 벽면을 모자이크처럼 감싸 안으면서 불안하고 위축되기 쉬운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속살처럼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 주고 있다. 이 작품 역시 공간에 맞춤이다. 송번수의 ‘생의 오케스트라’도 자주 소개되는 작품이다. 싱그러운 칼라가 오케스트라처럼 허공에서 뛰논다. 보테로의 옆으로 누워있는 풍만한 여인상과 그밖에도 이대원, 유영국, 이상우의 대형 작품이 병원 곳곳을 수놓고 있다.

말 그대로 병원이 거대한 조각공원이고, 현대미술 전시장인 셈이다. 곳곳에 넘치는 예술의 향기가 아픔을 치유해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인가?

- 2009.02.11

 

 

 

 

 

 

공공미술품 감상하러 백화점에 간다?

그리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봤던 영화 <이퀄리브리엄>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는 미래사회가 그려진다.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소설 <멋진 신세계>의 ‘소마’라는 약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이퀄리브리엄>에서는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감정을 억제한다. 특히 종교나 문학, 예술은 미래사회에서 사회악으로 철저히 통제된다. 영화 속이었지만 세계 최고의 문화 유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불태우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역시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소설 <멋진 신세계>는 인간이 인공적으로 제조되는 2500년경, 모든 감정이 통제되는 미래사회를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과학의 진보와 문명의 발전이 인간의 감성과 예술을 거세하고 안락과 획일성, 효율성만을 극대화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소설의 대표적 작품이다. 문명의 발전이 관리와 통제, 효율이라는 전체주의와 조우할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될 수 있을까? 필연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통제해야 하고, 가장 먼저 예술의 싹을 잘라야 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예술의 효용가치는 자주 위협을 받곤 한다.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문화예술보다는 쇼핑과 소비가 우선시 된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을 차용하지 않더라도 소비사회에서 현대 문명의 대표적 아이콘은 단연 쇼핑이다. 그렇다면 논리의 비약이지만 결과적으로 백화점은 예술의 무덤이 아닌가? 극단적을 말해 예술이 활용되는 것은 오로지 쇼핑을 위해서, 즉 기업의 매출 증가를 위해서다. 어쩌면 최근의 아트마케팅, 데카르트(Techart=Technology+Art)마케팅 등 기업에서 예술을 고급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점차 많아지는 역설적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화비평을 떠나서 보면 백화점 등 소비의 최전선에서 미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대단한 행운이다. 이 지면에서 특정 백화점을 소개하는 것이 조금 주저되지만 그야말로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번쯤 가 볼 만하다. 물론 쇼핑은 하지 않아도 된다.

중구 충무로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옥상에는 조각 공원이 있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이 조각 공원에 가면 정말 입이 벌어진다. 헨리 무어, 알렉산더 칼더, 루이스 부르조아, 클래스 올덴버그, 토니 스미스, 호앙 미로 등 한명, 한명이 거장이고, 한 점 한 점이 명품이다. 다른 백화점에서는 한점도 컬렉션하기 힘든 작품이 여기서는 발에 채인다. 어이없게도 그래서 아쉬울 정도다. 워낙 비싼 조각들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어서인지, 옥상 정원이 비좁아 보인다. 아마 전세계에서 면적 대비 가장 최고가 작품이 모여 있는 정원일 것이다. 이 정도의 해외 거장들의 공공미술품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조각 공원은 우리나라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올림픽 조각공원, 호암미술관 정도다.

이정도면 왠만한 미술관 이상인 백화점이다. 게다가 백화점 내부 중앙계단을 장식하는 아트월은 솔 르윗의 벽화, 샹들리에처럼 사랑스러운 서도호의 작품을 필두로 김환기, 유영국, 남관 등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몇 년 전 본점 공사 가림막 또한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았다. 저작권료만 1억원, 가림막 공사비만 2억원 가량 소요됐다고 알려진 마그리뜨의 ‘겨울비’는 당시 공공미술의 하나의 돌파구를 보여줬다. 고작해야 기업 홍보성 문구로 채워지는 무미건조한 가림막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은 지금 하나의 흐름이 된 것이다.

- 2009.02.18

 

- 윤태건(미술기획자)

- Hi Seoul 뉴스 [미술의 세계] : 윤태건의 공공미술 산책 연재시리즈

 

 

 

 

 

무게 팍팍 잡던 공공미술… 더 가벼워졌다, 더 재미있어졌다

 

사옥 등에 설치하는 예술작품, 예술성 · 엄숙함 보다 이젠 시민과 소통을 더 중시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한 미술가 이용백(45)은 지난해 싱가포르계 부동산 투자회사인 아센다스로부터 청계천 인근 시그니쳐 타워에 설치할 공공미술 작품을 의뢰받았다. 이용백은 "처음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패러디한 개념적인 작품을 설치하려 했다.

그런데 의뢰자가 '어렵다. 대중적인 걸로 해 달라'고 해서 결국 흰색 브론즈로 물을 내뿜는 길이 16m의 고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용백의 '알비노 고래'는 지난달 말 설치돼 현재 시험가동 중이다.

너무 엄숙했나… 1997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 앞에 세워진 미국 작가 프랭크 스텔라의 추상조각 ‘아마벨’.

당시로서는 생경한 외형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경진 기자

 

 

공공미술이 '가볍고 재미있고 쉬워지고' 있다. '건축물미술장식제도(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때 공사비의 1% 이하를 미술품 설치에 사용하도록 한 제도)'가 의무화돼 국내에 공공미술작품 설치가 본격화됐던 1995년 무렵만 해도 유명 작가의 묵직하고 엄숙한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작품 색깔도 흰색·회색 석조작품이나 청동색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작품의 '예술성' '엄숙함'은 대중들에게는 '거리감'과 동의어가 됐다.

1997년 서울 삼성동 포스코 센터 앞에 설치된 미국 작가 프랭크 스텔라(Stella · 75)의 추상조각 '아마벨'은 작가의 세계적 명성과는 달리 "어렵다" "무섭다"는 대중들의 반응을 듣기도 했다.

세상은 불과 몇 년 사이 바뀌었다. 공공미술의 기준이 작가의 유명세,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관객 친화성 쪽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 기업들이 법 때문에 의무적으로 작품을 설치했다면, 요즘은 공공미술작품을 자신들의 BI(Brand Identity)를 내세울 수 있는 마케팅 요소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트 컨설팅 업체 더 톤의 윤태건 대표는 "기업들이 아트 마케팅을 중시하게 되면서, 주변 환경과 어울리고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들이 요즘 공공미술 작품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경쾌하고 컬러풀한 작품이 특색인 조각가 김경민의 작품을 대치동 빌딩 앞에 설치한 KT & G측은 "본사 직원 200여명을 대상으로 투표를 한 결과 그 작품이 선정됐다. 민영화 이후 공기업의 고루한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상상 · 젊음 · 역동성을 기업 이미지 콘셉트로 삼았고, 그 이미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고르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반응을 건물주가 의식하게 됐고, 그 결과 덜 무겁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대형 건물들 앞에 서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작년 4월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홍보관 앞 문화공원Ⅱ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진준(37)의 작품 'THEY'가 설치됐다. LED 3만2000개로 포옹하고 있는 남녀의 얼굴을 만든 높이 11m의 이 작품은 "'미디어 작품은 차갑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서정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진준은 "작품에 '스토리'가 있어서 관람객들의 반응이 좋다고 들었다.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작품보다는 이야깃거리가 있는 랜드마크를 조성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라고 말했다.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트리니티 가든에 지난 4월 설치된 미국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Koons · 56)의 '세이크리드 하트(Sacred Heart · 신성한 마음)'도 마찬가지. 이 작품이 들어오면서 기존에 설치돼 있던 루이즈 부르주아(Bourgeois · 1911~ 2010)의 '거미'는 다른 곳으로 치워졌다.

세계 미술계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지만 '거미'는 '세이크리드 하트'에 비해 무겁고 어려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황호경 신세계갤러리 관장은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를 담고 있고, 고객친화적인 작품을 고민하다가 제프 쿤스를 택했다"고 밝혔다.

'왜 공공미술인가'(학고재)의 저자 박삼철 서울디자인재단 디자인사업부장은 "예전의 공공미술이 예술가의 아우라를 활용한다는 소극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면, 요즘의 공공미술은 공간 디자인과 공간 커뮤니케이션 요소로 작용한다"면서 "고담준론(高談峻論)하는 작품보다는 관람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쉽고 편안한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 2011.07.19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