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미술관에서 그림 읽기

Gijuzzang Dream 2011. 4. 29. 09:22

 

 

 

 

 

 

 미술관에서 그림 읽기

 

첫 만남은 가슴으로, 추억은 머리로!

 

 

음악이나 영화는 가슴만으로도 즐길 수 있지만, 미술은 상대적으로 머리로 즐겨야 하는 부분 커

 

여러분들은 그림을 보면 즐거워지시나요? 가끔 그림을 보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기도 하시는지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그림과 가슴으로 만나는 능력을 가진 분들일 것입니다.

그것은 예술작품 감상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저 들여다보기만 해도 마냥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그림이라 할지라도,

그림을 보다보면 이내 우리는 왜 이것을 그렸을까? 혹은 왜 이렇게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의문을 떠올리게 되죠. 최근 미술 작품들은 더더욱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사실 제 경험으로 미술은 참으로 냉담하고 도도한 것이었습니다.

배경 지식 없이도 어느 정도 그냥 즐길 수 있는 음악이나 영화와는 달리,

미술은 그저 순수하게 좋아하기가 힘들죠.

슬플 때나 화가 날 때, 그리고 누군가가 그리울 때, 음악은 좋은 친구가 됩니다.

이때, 제목이 무엇이고 작곡자가 누구인지, 어떤 배경에서 이런 음악을 만들었는지,

음악사에서 이 곡이 차지하는 위치가 무엇인지 몰라도, 그 음악은 나를 충분히 위로해 줍니다.

영화도 비슷하죠.

현실이 답답할 때, 내 삶의 고민에서 잠깐 도망치고 싶을 때 영화는 우리를 즐겁게 해줍니다.

그 영화에 대한 배경 정보나 영화 이론적 지식이 없더라도 말이죠.

 

음악이나 영화는 가슴만으로도 즐길 수 있지만, 미술은 상대적으로 머리로 즐겨야 하는 부분이 큽니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도 그런 뜻에서 나온 것이죠.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최근 미술 이론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커지고 있습니다.

미술관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 이론 강좌들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미술 이론 관련 서적 판매가 계속 증가하는 것은

분명 미술에서 이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지요.

 

미술에서 이론이 중요해진 것은 무엇보다 현대 미술의 개념적인 경향 때문입니다.

미술이 말로 설명되지 않고서는 이해되기 어렵다는 것이죠.

과거의 미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대상을 진짜처럼 그리는가?’와 같은 테크닉 혹은 기술적인 능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해도 미술가가 될 수 있죠.

독창적인 아이디어, 즉 개념만 있으면 미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현대 미술은 기술적인 능력보다 거기에 담긴 개념이나 의미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에,

작품 안에 담긴 아이디어, 혹은 그 작품이 미술사적인 맥락에서 가지는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술로서 아무런 가치도 가질 수 없죠.

 

 

 

 

작품이 갖는 의미 모른다면, 작품은 일상의 사물들과 차이 없어

 

몇 년 전 비엔날레에서 작품을 쓰레기인 줄 알고 쓸어다 버린 사건이 있었는데요,

작품이 갖는 의미를 모른다면 그 작품은

일상의 사물들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사건이었어요.

이렇게 작품의 외관이 일상의 사물과 차이가 없는 미술이 등장하면서 이론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두 사물이 하나는 미술작품이 되고

다른 하나는 일상의 사물이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론의 역할이 필수적이죠.

 

뒤샹의 <샘>(1917)과 워홀의 <브릴로 박스>(1964)가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샘>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남성의 소변기를 그대로 가져다가

뒤샹이 사인만 해서 미술관에 전시한 것이죠.

<브릴로 박스>는 당시 많이 사용하던 비누박스 상자를 워홀이 실물과 똑같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미술로 정당화해주기 위해서는 이론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그것이 이전 작품과 갖는 관계 속에서 위대해집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작품이 위대해지는 것은 그 이전 작품이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을,

혹은 이전 작품들이 하지 않던 방식으로 전통을 치고 나왔기 때문이죠.

이것은 예술의 아방가르드적인 특징이기도 한데요.

한 작품은 그 작품이 놓인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됩니다.

맥락이란 바로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 즉 이전 작품이나 고전들과의 관계를 말하지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이 걸작이 된 것은

원근법에 근거한 리얼리즘 예술과 단절하고 이후 오게 될 추상의 경향을 예시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그림이 그 전에 나왔거나 이후에 나왔더라면 전혀 주목받을 수 없었겠죠.

이 작품의 위대함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르네상스의 원근법적인 회화를 이해해야 하고

현대 추상회화를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한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이 놓여있는 미술사적인 맥락, 그리고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를 알아야 하지요.

 

하지만 미술작품에서 머리로 즐기는 부분만큼이나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부분도 중요한 것이지요.

미술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작품 보는 안목을 키워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에 대한 순수한 우리의 감성을 마비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작품에 대한 첫 대면은 사전 정보 없이 가슴으로 만나시길 권합니다.

그래야 작품이 내게 건네는 말을 들을 수가 있으니까요.

이미 사전 정보로 무장된 우리 눈앞에서 미술작품은

한갓 내 지식을 확인시켜주는 사례로 전락하고 말지도 모릅니다.

 

설레는 첫 만남을 가진 후에 그 작품과 작가에 대한 여러 이론적인 지식들을 정리하십시오.

그것은 밑거름이 되어 미술에 대한 여러분의 안목을 키우고,

이후 작품을 대면할 때 작품에 대한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해 줄 것입니다.

 

 

 

‘아방가르드’의 죽음 혹은 몰락 - 마르셀 뒤샹

 

 

소변기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을까요?

원래 파리에서 회화 중심의 작업을 하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1913년 뉴욕에 가서 활동하면서부터

미술의 전통과 미술관 제도 등을 공격하는 전위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뒤샹이 내놓은 남성용 소변기 <샘>(1917)은

미술에 대한 정의를 뒤흔드는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죠.

그는 공장에서 생산된 소변기 하나를 구입하여 거기에 ‘R. Mutt’라고 서명을 하여

진보적인 독립 작가 협회전에 출품하였습니다.

6달러의 회비만 납부하면 누구든 전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협회 규정에도 불구하고

<샘>은 격렬한 찬반논쟁 끝에 전시를 거부당했는데요.

 

 

소변기는 일상적인 배관용품이기 때문에 예술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거부 사유에 대해

뒤샹은 배관이 예술이 아니라는 것은, 미국이 창조해낸 가장 위대한 예술이

그 배관기술과 다리건설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말도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지요.

또한 그는 머트 씨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샘>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으며,

그가 일상용품을 ‘선택’해서 거기에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의 유용성을 제거하고 그 대상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창조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뒤샹은 전통적으로 당연시되어온 예술가의 손의 노고를 필수적이지 않은,

그저 관례적이었을 뿐인 것으로 격하시켜버리고, 예술작품과 일상용품 사이에 놓인 경계선을

아이디어와 선택이라는 행위를 통해 순식간에 지워버린 것이지요.

이로써 미술에 있어서 '레디메이드(readymade)'라는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샹의 소변기는 전통을 전복하는 아방가르드 미술의 대명사가 되었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뒤샹의 <샘>은

자신들이 비판하고 거부하려고 했던 예술의 관례와 제도 속으로 다시 흡수되게 됩니다.

1910년대에 다양한 레디메이드들을 선보였던 뒤샹은

1923년 무렵 작가로 계속 활동을 할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를 걸고 둔 내기 체스에서 지면서

공식적으로는 작업을 중단했었습니다.

1917년의 <샘> 해프닝도 사실상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지나갔고

1923년 이후로는 직접적인 작업을 선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 동안 뒤샹은 잊혀진 듯 했죠.

 

하지만 제스퍼 존스나 라우셴버그 등 그에게 영향을 받은 포스트모던 미술가들에 의해

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1963년 캘리포니아 파사데나 미술관에서 뒤샹의 대규모 회고전이 개최되었는데요.

이때 뒤샹의 레디메이드 원작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회고전을 위해

뒤샹은 1910년대에 만들었던 레디메이드들과 가장 유사한 외관을 가진 오브제들을 재구입했습니다.

그는 각각의 레디메이드들을 하나씩이 아니라 여러 점을 준비했고, 그것들을 여러 미술관에 판매했죠.

 

 

 

이러한 뒤샹의 태도는 기존의 미술관이라는 제도를 다시 인정하고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 이면에는 상업적 의도가 숨어있다는 의심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아방가르드의 상징과도 같았던 <샘>은 그가 공격했던 미술관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요.

이를 두고 이론가들은 ‘아방가르드의 죽음’ 혹은 몰락이라고 비판하게 되죠.

 

포스트모던 미술가 셰리 레빈은 <샘 : 뒤샹을 따라서> (1991)와 같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소변기를 통해

미술관으로 다시 화려하게 복귀한 샘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뒤샹은 고전 중의 고전, 명화 중의 명화였던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려 넣어

고전에 둘러쳐 있는 아우라와 전통적인 미학을 조롱하였는데요.

그러한 패러디는 현대 작가에 의해 다시 뒤샹에게 되돌려지게 되었습니다.

 

 

 

 

작품 해석 주도권, 작가에서 관람자에게로

 

 

 

미술을 비평하고 해석하는 관점은 종교, 신화, 역사 등을 다룬 작품 감상에 유용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예술 작품들을 대하십니까?

음악회나 전시회에 갈 때, 혹은 영화를 보고 돌아와서 그 작품에 대한 여러 정보나 지식들을 찾아보시나요?

아니면, 예술 작품들을 즐겁고 재미있게 즐기면 그만이지, 무슨 공부인가 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미술작품을 처음 만날 때에는 순수하게 가슴으로 만나고

그 이후에 작품에 대한 배경 정보와 이론적 지식을 정리할 것을 지난주에 권해드리기도 했는데요.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 혹은 태도에는 이렇게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작품을 단순히 개인적인 느낌의 차원에서 작품의 외관을 보고 즐기는 것이죠.

이때 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주로 미술 작품의 외관 곧 형식입니다.

예술작품에서 형식이란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릇과 같은 것으로서 전달수단, 혹은 매체라고 하지요.

작품의 형태, 색, 전체적인 구성, 작품의 재료들,

회화로 말하자면 물감, 캔버스, 조각이라면 대리석, 나무, 청동 등과 같은 것들이죠.

작품에서 이러한 형식적인 측면은 우리 관람자가 작품에 대한 특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리에게 쾌감 혹은 불쾌감, 즐거움 혹은 우울함과 같은 느낌, 즉 특별한 미적 반응을 불러일으키죠.

이렇게 작품을 즐기는 입장을 미학 용어로는 예술에 대한 경험주의적인 입장이라고 합니다.

칸트 같은 철학자가 대표적인데요.

칸트는 골치 아픈 철학 체계를 세웠지만 예술을 보는 입장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예술작품을 아주 심각한 것으로 바라보는 입장이 있는데,

이러한 입장은 예술이 우리에게 일종의 진리를 보여준다고 전제합니다.

이러한 입장은 예술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입장이라 하고 헤겔,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가 대표적이지요.

이러한 입장은 주로 작품의 내용에 치중하면서, 작품이 담고 있는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예술 작품에 대한 이 두 가지 감상 방법은 곧 미술을 비평하고 해석하는 주요 관점이 됩니다.

작품에 대한 형식 분석과 내용 분석이 그것이지요.

작품에 대한 형식 분석은 색채, 형태, 구도, 명암 등과 같은 세부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추상 양식과 사실주의 양식, 혹은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 등과 같은 양식(style) 분석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외적인 형식을 대상으로 합니다.

 

한편, 작품의 내용을 다루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도상학(iconography)이 있습니다.

도상학은 그림과 관련된 텍스트나 문헌자료에 의거해서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인데요.

특히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기의 종교, 신화, 역사 등을 다룬 작품들을 해석하는데 유용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반라의 상태로 십자가에 달려 있는 남자를 볼 때, 그것을 '예수'라고 해석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성서라는 문헌자료를 알고 있기 때문이죠.

 

 

작가의 생애와 경험에 의거하여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

 

형식과 내용에 대한 분석은 미술작품을 해석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방법을 더하자면,

작가의 생애와 경험에 의거하여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7세기 이태리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의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작품을

위와 같은 세 가지 방법으로 해석을 해보도록 하지요.

우선 형식적인 측면에서 이 두 작품은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극단적인 명암 대비를 통해서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바로크의 양식적인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에 대한 분석은, 어린 소년 다윗이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큰 골리앗의 머리에

새총을 쏘아 맞춰 쓰러뜨린 다음 골리앗의 검을 빼어 그의 목을 베었다는 성서 속 이야기가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카라바조 자신의 경험과 관련하여 이 작품을 해석해 봅시다.

카라바조는 동성애자였는데, 그의 젊은 애인으로부터 버림받았던 경험을 이 작품을 통해 표현을 한 것으로

골리앗의 얼굴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의 애인에게 받은 정신적인 상처, 혹은 심리적인 패배를 표현을 한 것이지요.

 

이상과 같은 세 가지 방법은 전통적인 미술사 해석의 방법론들입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해석 방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작가의 의도를 찾아내고자 한다는 점이지요.

그러나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이라는 에세이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이제 점차 작품 해석의 주도권은 작가로부터 관람자에게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낳아 세상에 내 놓은 이후에는 부모의 뜻대로 할 수 없듯이

이미 세상에 나온 작품의 의미는 작가의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해석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미술사 방법론이라고 하는 최근의 새로운 미술 해석의 방법들은

마르크시즘, 페미니즘, 기호학,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사상과 철학적 관점을 수용하여

작품에 대한 폭넓은 해석과 비평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르네상스, 매너리즘, 그리고 바로크 미술의 양식적인 특징

 

카스타뇨, 다빈치, 틴토레토, 루벤스의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은 수태고지, 피에타, 최후의 심판 등과 함께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 종교화에서 많이 그려지던 주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여러 작품들도 각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 양식으로 그려져 있지요.

 

자 그럼, ‘최후의 만찬’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담은 네 점의 작품을 통해

르네상스, 매너리즘, 그리고 바로크 미술의 양식적인 특징을 알아볼까요?

 

 

카스타뇨(1421~1457)의 <최후의 만찬>은

원근법이 자연스럽게 구사되지 못하던 르네상스 초기작품으로서

아직은 입체적인 공간에 대한 표현이 다소 미숙해 보입니다.

또한 인물과 공간과의 관계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데요.

이 화가는 작품에 주제인 최후의 만찬에 임해 있는 인물들을 묘사하는 데 보다는

공간을 표현하는데 더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인물 뒤편에 있는 6개의 타일에 지나치게 큰 공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 타일이 그림의 주제와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번개가 치는 것처럼 보이는, 왼편으로부터 세 번째 타일은

바로 그 앞에 앉아 있는 유다의 죄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카스타뇨는 매우 노골적인 방식으로 죄인 유다를 응징하고 있는데요.

유다 홀로 다른 제자들의 반대편에 앉혀두었죠.

다른 제자들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거나 천정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두 사람 만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등 산만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러한 카스타뇨의 작품과 비교해 볼 때, 다빈치(1452-1519)의 천재적인 면모는 더욱 잘 드러납니다.

전성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다빈치의 작품에 와서는

3차원적인 공간에 대한 표현이 정말 현실에 가깝게 자연스러워집니다.

공간과 인물 간의 관계 또한 편안하게 배치되어 있고요.

카스타뇨가 인물 뒤에 두었던 6개의 불필요한 타일들 대신

다빈치는 3개의 타일을 통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표현했습니다.

 

예수의 머리를 중심으로 하여 교차대각선을 그을 때

작품 세계는 선원근법적인 완벽한 3차원의 환영을 보여줍니다.

또한 제각각이던 카스타뇨의 인물들과 달리 다빈치는 12명의 제자를 4개의 그룹으로 결집시켰을 뿐 아니라

그 안에 극적인 드라마를 부여했습니다.

즉 다빈치의 장면은 예수가 너희 중 누군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제자들이 술렁이며,

어떤 제자들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주여, 접니까?”라고 묻는 순간을 재현하고 있지요.

이 작품에서 유다는 예수의 왼편으로 세 번째에 있는 얼굴이 검은 제자인데요.

이렇게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함께 한 편에 두면서도, 베드로에 의해 살짝 밀쳐진 자세로 그려 넣어

세련된 방식으로 이 극적인 순간에서 유다를 배제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매너리즘 시기의 틴토레토(1518~1594)의 작품을 살펴봅시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 양식이 이미 확고히 자리 잡은 16세기에 르네상스의 양식이 왜곡되거나 과장되는 양식으로서,

르네상스 양식으로부터 바로크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보입니다.

안정적인 구도를 통해 내적인 주제와 외적인 형식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다빈치의 작품과는 달리

틴토레토의 작품의 구도는 과감해지고 구성은 복잡해졌습니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는 공간 깊은 곳으로 밀려나 있고

작품의 전면에는 작품의 주제와는 무관한 하인들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복잡하고 역동적인 구도와 감성적이고 격정적이며 극적인 요소 등은

매너리즘의 양식적 특징으로서 바로크 미술에까지 이어지게 되죠.

 

 

마지막으로 바로크의 대표적인 거장 루벤스(1577~1640)의 <최후의 만찬>을 소개하겠습니다.

르네상스 미술이 세부까지 정확하게 묘사했던 것과는 달리,

전체적인 효과를 중시했던 바로크 미술은 중요한 부분은 극적으로 강조하고 나머지는 생략하는 방식으로 본질적인 것만을 부각시킵니다.

이러한 극적인 효과를 위해 사용했던 것이 극단적인 명암대비나 색채대비 등이죠.

루벤스 작품에서도 디테일은 과감하게 생략하면서 중심이 되는 예수 얼굴에 극적인 광채를 부여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의 순간과 찰나를 포착하고자 했던

바로크 미술의 특징도 잘 나타나 있지요.

 

이상과 같이 작품의 외관상의 형식적인 특징에 따라 작품을 분석하는 것을 양식(style) 분석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양식 분석은 작품의 외관만 보고도

그것이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 어디에 속한 미술인지를 구분해낼 수 있다는데 그 유용성이 있습니다.

 

 

 

풍요로운 그리스와 척박한 이집트의 차이

사실주의와 추상 미술

 

 

원근법은 삼차원의 현실 세계를 이차원의 평면 위에 진짜처럼 옮겨 놓는 중요한 수단

 

미술 작품의 형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한 가지는 현실을 그대로 미술로 옮겨 놓고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변형, 재구성하거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죠.

전자는 ‘사실주의’나 ‘구상미술’이라는 말로 정의되고, 후자는 ‘형식주의’ 혹은 ‘추상미술’로 정의됩니다.

 

개개의 미술 작품들은

사실주의와 추상이라는 범주를 양 축으로 하는 스펙트럼 위의 어딘가에 위치할 것입니다.

그 스펙트럼 위에는 예를 들어, 얀 반 아이크와 같은 북구 르네상스 작품들이나

현대의 극사실주의 작품 같은 철저한 사실주의 작품들이 가장 왼쪽 끝에 놓일 것입니다.

 

그로부터 점차 오른쪽으로 갈수록 바로크 미술이나 매너리즘 미술, 그리고 인상주의,

대상의 형태를 변형하고자 했던 세잔느나 피카소,

선과 색의 왜곡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던 고흐 등을 거쳐

른쪽 끝에는 순수한 추상미술이 놓일 것입니다.

 

현실과 흡사한 환영을 보여 주고자 하는 사실주의 미술은

자신이 미술 작품이 아니라 현실인 척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화가의 작업 흔적이나 과정을 숨기려고 하는데요.

그 중요한 특징이 바로 붓 자국을 감추고 아주 매끈하게 그리는 것입니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고안해 낸 원근법은

바로 삼차원의 현실 세계를 이차원의 평면 위에 진짜처럼 옮겨 놓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추상’이라는 말은 영어로는 ‘abstract'인데요.

이것은 본질, 혹은 중요한 것을 뽑아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미술에 고유하고 중요한 본질이란 바로 선, 색, 형태이고요. 추상미술은 바로 그것에 집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미술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보다는 전달 수단, 즉 형식 다른 말로는 매체가 중요해집니다.

미술의 매체란 색, 형태, 캔버스, 물감, 조각에서는 대리석, 청동, 나무 등이 되죠.

추상미술은 외부 세계를 미술 작품으로 옮겨 놓으려 하기보다는

미술 작품 그 자체로 외부 세계와는 관계없는 하나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내고자 합니다.

즉 추상 작업을 통해 미술가는 마치 신이 우주를 창조하듯이

캔버스 위에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죠.

 

 

 

사실적으로 모방하기보다, 왜곡·변형· 단순화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양식 만들어

 

이것은 바로 모더니즘 미술의 중요한 특징으로서,

그러한 특징은 인상주의 미술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르네상스 이후 인상주의가 도래하기 이전까지

서구미술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데 큰 힘을 쏟았지요.

그러나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인 사진이 등장하자,

회화는 이제 다른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네의 인상주의 이후 큐비즘, 독일 표현주의 등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모방하기 보다는,

왜곡, 변형, 단순화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양식들을 만들어 내게 되지요.

 

1차, 2차대전 이후 미술의 중심지가 유럽으로부터 미국으로 옮겨진 후 나타난

잭슨 폴락의 추상표현주의 미술에 이르면 이제 미술은 외부 세계와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가리키며, 화가의 내적 세계를 담아내게 됩니다.

 

하지만 추상 양식은 현대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오래 전 고대 이집트와 중세 미술을 살펴보면,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는 추상 양식을 볼 수 있습니다.

빌헬름 보링거라는 미술사학자는 추상과 사실주의 미술에 대해 재미있는 이론을 내놓았는데요.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안락함을 제공할 때에는 사실주의 양식을 사용하고,

세계가 고난을 줄 때에는 추상양식을 사용하는데, 역사적으로 이 두 양식은 번갈아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범람하는 나일강과 척박한 사막에서 살았던 이집트인들은 추상의 양식을 발달시켰고,

따뜻하고 풍요로운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인들은 사실주의 양식을 발달시켰다는 것이죠.

또한 빙하기가 되풀이되고 전염병 페스트가 유행했던 중세 시기에는

교회미술인 스테인드글라스나 모자이크가 보여주듯이 추상양식이,

이후 지중해 연안에서 발달한 르네상스에는 사실주의 양식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보링거는 여기까지 이야기했는데, 추상과 사실주의 양식이 번갈아 나타난다는 그의 이론에 따르자면,

이제 곧 추상의 양식이 나타날 것임을 예견하는 것이기도 했지요. 그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그의 책이 나온 것은 1907년이었는데 바로 그 해에

추상의 전조를 알리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나왔던 것이지요.

 

사실주의와 추상 양식은 미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개의 대립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미술작품과 마주치게 될 때,

그것이 사실주의와 추상의 스펙트럼의 어디쯤에 놓일지를 고민해 본다면,

미술작품 형식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에게 명성 안겨 준 첫 작품 <피에타>상

 

'모자상' 조각에 나타난 고전주의와 추상 양식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신의 창조에 비견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

 

오늘은 ‘어머니와 아이’라는 주제의 모자상 작품들을 통해

조각의 여러 가지 양식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상은 아주 오랫동안 조각에서 자주 다루어지던 주제입니다.

기원전에 만들어진 이집트 조각상에서도 그러한 주제가 나타타는데요.

이집트 시기 조각상은 이후의 그리스 시기처럼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물이 다소 경직된 형태를 보여줍니다.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아이시스>라는 이집트 조각상은 좌우가 대칭을 이루며,

인체가 자연스럽고 사실적이기보다는 단순하게 양식화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적인 양식이 아닌 추상적인 양식을 추구했던 이집트 미술의 특징이죠.

 

그러나 그리스 시기에

조각상은 인체를 좀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재현할 수 있는 관습을 개발하게 됩니다.

그것은 황금 비율과 같은 비례 규칙,

비대칭이면서도 균형을 이루게 하는 콘트라포스토 자세 등의 ‘카논’으로서,

그리스 이후 르네상스를 거쳐 로댕이 등장하기 전 1800년대까지 미술 아카데미를 통해 교육되었지요.

그러니까, 그리스 조각은 인체를 모방하되,

거기에 조화와 비례, 균형의 규칙들을 통해서 이상적인 미를 표현하고자 했고,

그것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오랫동안 조각의 전통으로 유지되어 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양식이 중세 이후 다시 부활된 것이 르네상스 양식입니다.

특히 조각의 전통은 고대 그리스의 규범을 철저히 따랐죠.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화가이기보다는 조각가라고 생각했고,

조각에 훨씬 더 애착을 갖고 있었습니다.

회화가 조각보다는 좀 더 정신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회화를 좀 더 품격 있는 것으로 여겼던 당시의 풍토로 볼 때 미켈란젤로의 태도는 독특한 것이었고,

그것 때문에 아버지와 불화를 겪기도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돌로부터 거기에 갇혀 있던 형상을 끌어내는 조각은

신의 창조에 비견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에게 명성을 안겨 준 첫 작품이 바로 <피에타>상입니다.

이 조각상은 그리스로부터 물려받은 완벽한 이상적인 미를 구현하고 있는데요.

예수의 몸은 매우 사실적이고 해부학적으로 정확한 인체 근육과 골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채로 늘어져 있는 자세가 매우 사실적이죠.

 

그런데 어머니 마리아의 얼굴은 안고 있는 것과 같은 장성한 아들이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젊습니다.

그것은 마리아의 순결함을 암시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이상적인 미를 구현하고자 했던

그리스와 르네상스 양식의 특징이기도 한 것이죠.

그런데 가냘프게 보이는 얼굴에 비해 마리아의 하체는 상당히 육중할 것으로 짐작되죠.

하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눈치를 채기가 어렵습니다.

작품 전체가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묘하게 아래로 넓어지는 피라미드형 구성을 통해

마리아의 하체를 과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이 작품이 너무도 완벽하여 23세의 젊은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그는 가슴 부분의 띠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작품에 서명을 남기 유일한 예입니다.

 

 

조각들은 덩어리인 매체와 비어있는 공간 사이의 관계 강조

 

1900년 전후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던 신고전주의의 규범이 로댕에 의해 깨지면서

조각에 있어서도 다양한 양식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번에는 현대 여성 조각가의 모자상을 살펴보도록 하죠.

영국의 선구적인 조각가 바바라 햅워스는

추상적이면서도 유기적인 형태를 통해 어머니와 아이의 유대감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요.

그의 조각들은 덩어리인 매체와 비어있는 공간 사이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특히 모자상 I, II의 경우 현실세계 속 대상의 모습에 대한 암시가 아직 남아 있지만,

모자상 III에서는 그 암시마저 사라지고 완전히 추상적인 형태로 단순화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자상 III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같은 전통적인 모자상의 형태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죠.

 

전통적인 모자상의 형태를 본 사람이라면,

햅워스의 작품 모자상 III에 나타나나는 수직의 두 형태들이

어느 것이 어머니이고 아이인지를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햅워스는 유명한 남성 조각가 헨리 무어와 친분이 있었고 조각의 경향도 상당히 유사하지만,

무어에 비해서 잘 알려지지는 못했습니다.

이상과 같이 모자상은 조각이 다양한 양식변화를 겪는 와중에도

오랜 기간 동안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다윗상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장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운명...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예술작품 분석에 유용한 도구가 되어 왔습니다.

장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이 알려져 왕에게 버림받았던 왕자가

결국 아버지인줄 모르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참조하고 임상 사례를 통해 프로이트는 그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어머니를 독차지하고 싶어 하면서 아버지를 제거하고자 하는 남자 아이의 욕망을 가리키며,

그것은 그러한 욕망 때문에 당하게 될지 모르는 아버지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거세 콤플렉스와 함께 작용하게 됩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그것은 만 3세부터 만 7세 사이에 나타나는 성 심리 발달의 핵심적인 단계로서,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어 있는 정신적인 구조입니다.

이는 긍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서

이 단계를 적절하게 극복할 경우 정상적인 이성애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한편, 프로이트는 자신을 어머니와 동일시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수동적인 대상이 되고 싶어 하는

남자 아이의 욕망을 부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했습니다.

한 사람 안에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유동적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긍정적인 것이 우세할 경우 이성애자가 되지만,

부정적인 것이 우세할 경우 동성애자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죠.

프로이트는 창조적인 사람들의 경우 양성애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이론을 통해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분석해 봅시다.

사울왕은 그의 나라를 공격한 블레셋 군대의 영웅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그를 사위로 삼겠다고 하죠. 이에 사울 왕이 아끼던 목동 소년 다윗은

새총 하나만을 가지고 갑옷과 창으로 무장한 골리앗과 싸우러 갑니다.

다윗은 자신을 조롱하는 골리앗의 이마에 새총으로 돌멩이를 쏘아 맞추고 그가 쓰러지자,

검이 없던 다윗은 골리앗의 검을 빼어들고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삼지만, 그가 점차 명성이 커지고 세력을 얻게 되자

다윗을 경쟁상대로 생각하면서 그를 죽이려고 하죠.

그러나 결국 다윗은 왕이 되어 솔로몬의 아버지가 됩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구도로 볼 때,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 속에 아들은 다윗 하나이지만,

아버지에 해당하는 인물은 셋입니다.

즉, 승리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기로 한 사울 왕, 위협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골리앗,

그리고 아들의 성공을 통해 신분이 상승되는 다윗의 생부 이새입니다.

이 세 아버지는 오이디푸스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버지에 대한 소년의 분리된 관점으로서

결국 무의식 속에서는 한 명의 인물이죠.

즉 이새는 자신을 낳아준 생부이고 사울은 자신이 바라던 왕부이며,

골리앗은 자신을 거세할지 모르는 위협적인 아버지입니다.

 

 

자, 이제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세 명의 조각가가 만든 다윗 조각상들을

해당 미술가의 경험과 관련하여 오이디푸스 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해 볼까요?

 

먼저 르네상스 초기 도나텔로(1386~1466)가 만든 다윗상은

다윗을 주제로 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독특하게 여성적이고 에로틱한 미소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발가락으로 골리앗의 수염을 간질이고 있는 다윗의 자세는

싸움을 끝낸 용맹스러운 소년의 모습으로 보기는 어렵죠.

도나텔로는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의 다윗상에서 나타나는 에로틱한 특징은,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는 부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1475~1564)의 다윗은 아직 골리앗을 죽이지 않고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는 오른손에는 새총을, 왼손에는 돌멩이를 들고 있죠.

그러한 다윗의 모습은 오이디푸스적인 맥락에서,

곧 저지르게 될 부친 살해에 대해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미켈란젤로의 아버지는 그가 조각가가 되려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에 그와 부친은

긴장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부친을 평생 부양했고 표면적으로는 충실한 관계를 유지했죠.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지 못하고 노려보기만 하고 있는 다윗의 모습은

미켈란젤로 자신이 조각을 하는데 있어 심리적으로 극복해야할 대상이었던

반대하는 아버지에 대한 양면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켈란젤로의 아버지와 달리,

자신이 조각가였던 베르니니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후원자들을 소개시켜주고 누구보다 그를 격려했죠.

이태리 바로크의 거장 베르니니가 공격해야할 대상은 바로 르네상스의 양식적인 규범이었습니다.

베르니니(1598~1610)는 이전의 도나텔로나 미켈란젤로에게서 확립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안정된 르네상스 양식을 타파하고 역동적이면서 전체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바로크 양식을 발전시켰죠.

 

베르니니의 다윗상은 도나텔로나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몸을 한껏 뒤틀고 골리앗에게 돌을 막 던지려는

순간의 팽팽한 긴장된 상황을 연출합니다.

관람자는 이러한 역동적인 다윗상 앞에 서면 자신의 뒤편에 골리앗의 존재를 느끼면서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이것이 전체적인 효과를 강조함으로써 관람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 들이는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죠.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단순히 가정 내에서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로 상징되는 권력자,

그리고 그의 권력과 그가 가진 여성을 갈망하는 부하의 구도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권력자가 아끼던 부하는 점차 성장하여 결국 자신의 소유물인 여성까지 차지하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죠.

 

이러한 관계 구도는 문학이나 영화 속 인물들 간의 관계 구조를 분석하는 데에도 상당히 유용합니다.

예를 들어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 등,

그리고 영화 <스타워즈>에도 그러한 관계 구도가 나타나고 있죠.

 

 

 

 

벨라스케스의 <라스메니나스>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단서

 

회화나 조각과 같은 조형 예술이 추구하던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목표는

예술 작품이 마치 현실처럼, 진짜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진짜 같은 환영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예술 작품들은

자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그 흔적들을 감추고자 하죠.

예를 들어 현실에 흡사한 환영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르네상스 회화는

그림이 그려진 흔적인 붓 자국을 남기지 않습니다.

붓 자국이 나타나게 된다면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것이 탄로 나게 될 테니까요.

 

그림에서 붓자국은 인상주의 회화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요.

인상주의로부터 회화는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진짜 같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벗어 던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모습이나 놓치고 싶지 않은 행복한 순간이 있을 때,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서 그것을 보존해 두고 싶어 합니다.

러한 인간의 오랜 욕망을 영화 이론가 바쟁은 ‘미라 컴플렉스’라고 설명하기도 했죠.

사진이나 영화가 등장하기 전,

현실을 그대로 보존해두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을 충족시켜주었던 것은 그림이었습니다.

 

그러한 개인적인 열망으로 인해 무엇보다 초상화는 매우 인기 있는 장르였습니다.

귀족이나 부유층들은 자신의 초상화를 주문했고, 왕실에서는 전속 궁정화가를 두기도 했지요.

위의 그림은 스페인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가의 초상화들로서 흔히 그려지던 양식입니다.

 

하지만 벨라스케스가 그린 <라스메니나스>(1656)라는 그림은 어떨까요?

이 그림은 풀리지 않는 여러 가지 수수께끼들을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문들이죠.

화가는 거대한 캔버스 앞에 팔레트를 들고 서 있는데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운데 정면 거울에 어렴풋이 비치는 국왕 부부일까요?

아니면, 그 앞에 시녀들과 함께 있는 마가리타 공주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바로 이 그림 <라스메니나스>일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라스메니나스>의 특별한 점은

그것이 보통의 초상화에서는 감추어지게 되는 화가의 작업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라스메니나스>가 위의 벨라스케스의 두 그림과 같은 일반적인 초상화였다면,

그것은 작품 속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를 그린 초상화가 되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초상화에 등장해야 할 모델인 왕과 왕비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히려 모델이 서 있던 곳의 반대편 상황이 재현되어 있죠.

즉 이 그림에는 작업장에 있는 화가가

자신의 캔버스 앞에서 팔레트와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에 관한 그림’으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에 관한 일종의 언급이 되는 것이죠.

 

이는 그림에 성취되어 있는 현실에 흡사한 환영 이면에 존재하던 작업과정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작품에 대한 예술가의 자의식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품이 만들어지는 작업과정을 드러내는 예술은

현실에 흡사한 환영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예술과는 대비되는 것이죠.

 

 

‘자기 자신에 관해 언급하는 작품’들은

미술보다는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미 많이 등장했고, 일반적인 것이 되었죠.

아주 멀리는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로부터

고다르의 <사랑과 경멸>(1963), 로버트 알트만의 <플레이어>(1992) 등,

영화를 만드는 것에 관한 영화들의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TV에서도 <온에어>, <그들이 사는 세상> 등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에 관한 드라마들이 등장하고,

<영화는 영화다>, <은하해방전선> 등과 같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관한 영화들이 선을 보였습니다.

TV 드라마나 영화 역시 현실 같은 환영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작품들이 일반적인데요.

나의 예술 장르가 진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양식과 매체에 대한 실험을 마친 후,

이제 자기 자신에 대해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자 할 때

렇게 스스로에 관해 언급하는 작품인 ‘예술에 관한 예술’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작품들에는 예술가가 예술에 대해 가지는 관점과 비전이 담기게 되며,

이러한 작품들의 등장은 그 장르가 어느 정도의 수준과 궤도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죠.

 

지금까지 설명한 자기 자신에 관해 언급하는 예술의 속성을 ‘예술의 자기 반영성’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예술의 반영성과 현실에 흡사한 환영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예술의 환영성,

이 두 가지는 바로 조형예술을 발전시켜 온 두 가지 중요한 원동력이죠.

조형 예술 작품들은 이 두 요소 사이의 긴장 관계를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예술에 관한 예술’ 안에는 특히 그 두 요소가 첨예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벨라스케스의 <라스메니나스>를 포함하여 예술에 관한 예술 작품들 역시

환영주의적인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라스 메니나스>는 예술의 반영성 원리에 의한 ‘예술에 관한 예술’의 원조격이 되는 작품입니다.

 

 

 

 

같지만 다른 그림 『유다의 입맞춤』

기호학적인 관점에서의 미술 작품 해석

 

 

 

<유다의 입맞춤>이라는 이 두 작품은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서로 다른 두 화가의 작품입니다.

하나는 아레나 예배당에 있는 지오토의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시에나에 있는 두치오의 작품이죠.

여러분들은 어느 작품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시는지요?

이 두 작품은 모두 “유다가 무리 가운데 예수가 누구인지를, 예수를 잡아가려는 병사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예수에게 입맞춤을 한다.”는 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는데요.

어느 작품이 그 내용을 더욱 진짜처럼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일견 이 두 작품은 비슷해 보이지만 양자는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결정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좀 더 체계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비평의 방법론이 기호학입니다.

 

미술 작품을 분석하는데 기호학을 도입한 노먼 브라이슨의 해석을 통해

위의 두 작품을 기호학적인 시각에서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호학자들은 ‘의미’라고 모두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의미에는 일종의 층위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좀 더 얕은 층위의 의미를 ‘지시(denotation)’라 하고

좀 더 깊은 층위의 의미를 ‘함축(connotation)’이라고 하죠.

전자는 누구나 알 수 있거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명백한, 혹은 사전이 제시하는 그 단어의 의미이고,

후자는 사회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정서적으로 좀 더 개인적이거나 주관적인 연상 작용 등을 말합니다.

그래서 기호는 지시에 있어서보다 함축에 있어서 더욱 다양해집니다.

 

대부분의 기호학자들은 지시와 함축 양자 모두에 코드,

즉 구성원들 사이의 관습이나 약속 체계가 사용된다고 봅니다.

다만 지시는 더 넓은 범위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게 되죠.

즉 기호의 지시적인 의미는 같은 문화 구성원들에 의해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기호의 함축적인 의미들의 집합은 완결 짓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함축적인 의미라고 해도 그것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 문화의 구성원들은 어느 정도 상호적인 반응들을 공유하며,

함축적인 의미는 해석자가 사용하는 코드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유다의 입맞춤』이라는 같은 주제를 두고서도

지오토가 두치오보다 더 확실한‘리얼리즘’을 이룩하였다는 것이 미술사의 일반적인 평가인데요.

노먼 브라이슨은 지오토가 어떻게 그러한 리얼리즘을 성취했는지를

‘지시’와 ‘함축’개념을 통해 기호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성서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혹은 성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 그림의 주제이자 내용이 이 그림들의 ‘지시적 의미’입니다.

 

한편, 그림이 그려진 방식은 ‘함축적 의미’를 발생시키죠.

즉 작품의 형식적인 측면은, 보다 심층적인 의미의 차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는 결정적인 장면인데요.

두 화가 모두 이 내용을 전달하고 있지만, 지오토가 두치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공간에서의 인물의 위치, 자세, 동작, 광선, 옷감과 같은 지오토의 그림에서의 형식은

무언가 함축적인 의미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이 사건의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킵니다.

 

지오토가 그린 그리스도와 유다의 옆얼굴을 비교해봅시다.

그리스도의 이미와 코의 윤곽선은 유다에 비해 반듯합니다.

반듯하다는 작품에서의 형식적인 요소는‘곧음’과 ‘올바름’과 같은 함축적인 의미를 만들어내죠.

또한 그리스도는 유다보다 윗부분에 위치해 있고 그의 목은 강하고 분명하고 곧은 형태입니다.

반면, 유다의 목은 외투에 파묻혀 있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있기 때문에 바르지 않고 사선의 형태입니다.

이러한 형식적인 요소들은 그리스도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유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는 보다 정직하고 당당합니다.

이러한 함축의미들은 후광이나 십자가 같은 전통적인 코드들보다 밝히기가 어렵고

관람자의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치가 높습니다.

 

이와 같이 미술 작품에서의 진짜 같은 효과는

작품에서 지시적 의미와 함축적 의미가 은밀히 연합함으로써 발생합니다.

르네상스 회화는 해부학, 관상학, 대기학 등의 도움으로

미술 작품에서의 함축적 의미를 발생시키는 작품의 형식들을 정교하게 사용함으로써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도록 만들었던 것이죠.

이와 같이 함축의 층위를 정교하게 조작하는 것은 지시가 사실임을 믿게 하는데,

즉 의심 없이 작품 안에 들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살펴 본 바와 같이 미술 작품을 기호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은

작품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며,

작품을 이루는 형식과 내용 간의 상호 관계를 통해

작품의 의미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분석해준다는 점에서 비평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 최정은(서울시립미술관 ‘찾아가는 미술 감상 교실’ 강사, 서울대 미학과 강사)

- Hi Seoul 뉴스, [미술의 세계]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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