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현대갤러리] 장욱진의 20주기 회고전

Gijuzzang Dream 2011. 1. 13. 14:37

 

 

 

 

 

 

 

 갤러리 현대, 장욱진(1918-1990) 회고전  

 

2011년 1월 14일 - 2월27일까지

 

 

 

 

 

 

 

 

 

"나는 심플하다. 이 말은 내가 항상 되풀이 내세우고 있는 나의 단골말 가운데 한마디지만

또 한 번 이 말을 큰 소리로 외쳐보고 싶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다.'"(장욱진의 말 중에서)

박수근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장욱진(1917~1990)의 그림에서는

그의 말처럼 단순하면서도 깨끗이 살려고 고집했던 작가의 면모가 묻어난다.

가족과 나무, 아이, 새 등 일상의 이미지들을 작은 화면 속에 소박하고 정감있게 그린

장욱진의 그림은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진다.
  
장욱진 20주기 를 맞아 사간동 갤러리 현대 가 장욱진 미술문화재단과 함께

그의 작업 세계를 종합적으로 살피는 대규모 회고전을 마련한다.
1월 14일부터 시작되는 전시는 2월27일까지.

 

덕소 시대, 명륜동 시대, 수안보시대, 구성(신갈) 시대 등

작가의 작업 전 시기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전시는 향토성이 짙은 초기(1937∼62), 정체성을 모색한 경기 덕소 작업실 시대(1963∼75),

정통회화의 경향이 나타난 서울 명륜동 작업실 시대(1975∼79),

수묵화의 절정기인 충북 수안보 작업실 시대(1980∼85),

종합화의 경지를 이룬 경기 용인 작업실 시대(1986∼90) 등으로 구성됐다.

전시장에는 용인 아틀리에에서 사용하던 화구 및 가구 등을 그대로 옮겨와 재현하고

영문 화집(마로니에북스)도 출간됐다.

유화 60여 점과 먹그림 10여 점 등 70여 점의 전시작 중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은 1947년작 '마을'이다.

흰 옷을 입은 두 여성의 뒷모습과 옆모습을 담은 이 그림은

장욱진이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하기 이전의 작업을 보여준다.
  
종이에 그린 1951년작 '자화상'은 한국 전쟁 당시 고향인 충남 연기에 내려가 있을 때 그렸던 것이다.

곡식이 익어가는 황금 들녘 사이를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가 걸어가는 그림은

사실 배고프고 힘들었던 전란 와중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자화상 Self-portrait 1951

종이에유채 Oil on paper 14.8x10.8cm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다"라고 했던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죽기 직전까지도 그림을 그렸다.

세상을 떠나기 전 바다를 즐겨 찾았던 작가가 작고하기 불과 열흘 전인 1990년 12월19일

동해를 찾아 그렸던 스케치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1990년작 '밤과 노인'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그린 작품이다.

흰 옷을 입은 노인이 어디론가 떠나는 듯한 이 그림은 작가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쓸쓸한 느낌이 든다.
 

밤과 노인 Night and Old Man 1990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27.3x22cm


 

 

유족이 따로 갖고 있거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 쉽게 볼 수 없었던 작품도 여러 점 나왔다.

빨간색 바탕이 인상적인 '소'(1953년)는 처음 공개되는 것이고

호암미술관에서 열렸던 5주기 전시 이후 처음 나오는 작품도 있다.
  

소 Ox 1953 나무판에 유채 Oil on Wood 15x23cm



 

장욱진은 작고 작가 중 비교적 사후 작품 관리가 잘 된 사례에 속한다.

남편이 생전 그림을 그릴 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림 뒤에 번호를 매겼던 부인 이순경씨와

아버지의 그림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겼던 큰딸 장경수(66.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 씨 등

유족의 노력으로 국내 작가로는 유일하게 카탈로그 레조네(전작도록)가 발간됐다.  

여기에 이번 전시를 계기로 영문판 화집도 나왔다.

지난해 박수근의 영문화집을 펴냈던 마로니에 북스가 이번에는 장욱진의 그림으로 영문 화집을 내놨다.

장욱진의 그림 101점 도판과

정영목 서울대 교수, 오광수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 고(故) 김원룡ㆍ최순우 선생 등의 평론 등이 실렸다.

장욱진의 이름을 딴 미술관도 경기도 양주에 들어설 예정이다.  
"요즘 세대들이 아버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던 큰딸 장경수 씨는

"아버지의 그림이 자그마했듯이 거창한 공간보다는, 자그마한 공간에 그림을 빽빽이 걸기보다는,

조금 걸어놓고 대신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곳, 갔다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곳으로 만들고 싶다"

고 말했다.
  
전시는 2월27일까지. 작품 외에 장욱진의 다큐멘터리 영상과 사진도 함께 전시된다.

21일 오후에는 장경수씨의 특별 강연이 열린다. 관람료 성인 3천원. ☎02-2287-3500.

- 한국미술신문, 2011년 1월11일

 

 

 

하얀 집 A White House 1969 Oil on Canvas 31x43cm



한국 근 · 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장욱진(1917∼90)은,

충남 연기에서 태어난 그는 소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고교 때까지 전국 학생미술상을 휩쓸었다.

일제강점기에 도쿄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그는

해방직후 국립박물관과 54∼60년 서울대 미대교수로 봉직한 외에는

줄곧 한적한 시골에서 작업에 전념했다.

그의 작품은 작은 캔버스 안에 간결한 묘사와 밀도 높은 균형감으로 한국적인 서정을 가득 안겨준다.

나무와 아이, 새와 소, 가족 등을 소재로 유희적인 감정과 풍류적인 심성을 표출했다.

기법 면에서는 동양화와 서양화를 넘나들며

전통을 현대에 접목시켜 조형적인 독창성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고고미술사학자인 최순우는

“그는 세움을 모르고 세상을 살아 왔고, 또 세움을 모르고 그림을 그려온 사람이다.

여기서 세움이란 명리과 생명과 돈, 덕을 모두 아우른 뜻이지만

그는 정말 거기에 곁눈질을 할 줄도 모르고 세상을 지나왔음이 분명하다”고 평했다.

작업에 엄격하면서도 순수와 동심을 잃지 않았으며, 천진난만하고 안빈낙도하는 생활을 즐긴 장욱진은 
역사학자 이병도의 사위이자 이건무 문화재청장의 고모부다.

장 화백의 큰딸 경수씨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 외에는 술을 마시는 게 휴식이었던 아버지는

툭하면 ‘너는 뭐냐 나는 뭐냐’라고 묻곤 하셨다”면서

“박사집안인 외가와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고독한 작업 중에서도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있었다”고

전했다.
부인과 1남4녀 등 가족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많이 남긴 장 화백은 1990년 12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그림은 나의 일이요, 술은 휴식’ 아버지 장욱진, 그의 딸이 추억하다 
 미공개작 포함 70점 모아 ‘20주기 회고전’

20주기 회고전 준비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된 ‘소’는 나무판에 유채로 그린 1953년 작(15X23㎝)으로

피난지 부산에서 장욱진이 겪은 체험을 추측하게 만든다.

 

 

“아버지는 마지막 시절에 자꾸 바다에 가자고 하셨어요. 이 드로잉은 제가 몇 번 동해에 모시고 갔던 추억을 그리신 거죠.”


장경수(65 · 경운박물관 부관장)씨는 선친을 만난 듯 찬찬히 그림을 살폈다. 화가 장욱진(1917~1990)의 큰 딸로 태어나 숙명에 사로잡힌 야인(野人)으로 살다간 아버지를 40여 년 지켜본 그는 작품마다 서린 기억을 잊지 못하는 듯 했다.

 

1월14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막을 올리는 ‘장욱진 20주기 회고전’을 준비한 그는 오랜만에 전시장에 나온 작품이 혈육처럼 반갑다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1957년 작 ‘나무와 새’는 저도 15년 만에 보네요. 개인 소장가들 손에 들어가면 좀처럼 만나기가 힘들어요. ‘가족’ ‘까치’ 등 88년부터 89년까지 말년 들어 그림을 참 많이 그리셨어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무렵이라 남들은 밖으로 나돌 때인데 아버지는 방에 틀어박혀 그리고 또 그리셨죠.”

죽음을 예감한 듯 타계 두 달 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 ‘밤과 노인’(1990)에서 화가는 자신을 속세를 떠나 달과 함께 하늘을 훨훨 주유하는 도인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라 했던 그답다. 장욱진은 나이를 묻는 사람에게 늘 앞의 십 단위는 빼고 답했다고 한다.

 

쉰여덟이면 “나 이제 여덟 살이야, 여덟 살이면 철이 나나?” 하는 식이었다.

 

평생을 ‘심플(simple)하게’ 살았고, 직업을 ‘까치 그리는 사람’으로 내세웠던 화가는

“그림은 나의 일이요, 술은 휴식”이라며 조선 선비처럼 유유자적했다.

지난해 서울대미술관(MoA)에서 기획한 ‘장욱진 전’에 이어 마련된 이번 대규모 회고전은

미공개작을 포함해 70여 점이 나와 장욱진의 그림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게다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2월 11일까지 열리는

‘연리지, 꽃이 피다’전에 김종영(1915~82), 김환기(1913~74)와 함께 나란히 작품이 걸리니

고인의 그림세계를 20년 만에 제대로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다.

까치 · 나무 · 개 · 소 · 집 · 해 · 달 · 산 · 아이 · 가족 등 화가가 가장 잘 알고 좋아했던 것들을

되풀이그린 그림은 어린아이의 눈과 지극히 까다롭게 세련된 안목 사이를 오가고 있다.

‘소박화가’라 불린 그는 같은 대상과 일상을 반복해 그린 까닭을

생전에 ‘회화적 압축’이라 설명하며

“압축된 게 나와요. 결국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거니까 정직한 거예요.

그래서 자꾸 반복할수록 그림이 좋은 거예요”라고 털어놨다.

이와 같은 전시와 연구가 가능한 건 화가의 ‘분석적 작품 총서(카탈로그 레조네)’ 덕이다.

장욱진이 제작한 총 720여 점의 유화작품을 모두 사진 자료를 토대로 조사해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장욱진 Catalogue Raisonne 유화』(정영목 지음, 도서출판 학고재 펴냄)가 2001년 출간됨으로써

화가는 일단 가짜 그림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일일이 사진을 찍고 이력을 챙겨 기록해둔 부인 이순경(91)씨와

‘장욱진 미술문화재단’을 꾸려가는 유족 힘이 크다.

장경수씨는 “20주기 전을 준비하며 또 미공개작이 나온 만큼

몇 년 안에 내용을 보완한 전작 도록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 2011.01.10 중앙

 

 

 

 

장욱진의 그림 - 내 마음 속의 작은 추억

  

‘장욱진’이라는 화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의 그림을 보여주면

모두 ‘아하~ 이 그림 본 적 있어요’라고 대꾸한다. 그의 그림은 그렇다.

장욱진 선생님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우리나라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란 것을 알고 있는,

그런 그림을 남긴 화가이다. 우리는 보통 그런 이를 ‘거장’이라고 칭한다.

그의 그림을 평하는 것은 미술공부 초심자인 나로서는 당치도 않는 일이다.

단지 그의 그림을 왜 좋아하는지 몇 가지 이유를 적고자 한다.

 

낯익은 풍경

자화상 Self-portrait

1951, 종이에유채, Oil on paper, 14.8x10.8


이상하게도 그의 그림은 낯익었다 싶었다. 알고 보니 장욱진 선생님의 고향이 내판이란다.

충정남도 연기군 내판리. 경부선 완행열차가 다니던 시절,

나의 고향 부강에서 서울 방향으로 한 정거장만 올라가면 내판역이었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1918년에 태어나셨다. 장욱진 선생님과 동갑내기신거다.

이웃 사촌이었던 셈. 그래서 그랬을까.

우리 할아버지가 나에게 들려 주시던 고향의 기억들이 어쩌면 화가의 손에 의해 그려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릴 적 할아버지의 고향이자 나의 고향이기도 했던 그 곳의 논과 밭, 산,

그리고 부지런 하셨던 우리 할아버지가 아침에 마당을 싸리비로 쓸고 계실 때 울어대던 까치소리가

그의 그림에 담겨있었나 보다.

 
●소박한 가족 사진

30년 전 만해도 시골에는 문지방 위쪽에 이런 저런 흑백 사진들을

콜라주처럼 한꺼번에 액자에 넣어 천장에 비스듬하게 걸어 놓는 집이 많았다.

거기에는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운 얼굴, 누군가의 백일 잔치상 사진,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졸업식사진,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쓴 신랑 각시의 어색한 얼굴 같은

가족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사진도 귀한 시절인데다 항상 가족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에 그런 안방 인테리어가 연출된 것일 게다.

장욱진 선생님의 그림은 대부분 소품이다. 크기가 딱 집에 걸어놨던 사진 액자 그 안팎이다.

간결한 선과 따뜻하고 차분한 색조를 품은 그림은

문지방 위 가족들 사진 속에 있어도 튀지 않고 정겹게 잘 어울릴 것 같다.

평생 그림의 주제 중 하나가 가족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의 그림은 가족 사진 속에서 조용한 존재감으로 남을 것이다.


● 생략이 주는 힘

장욱진 선생님의 그림을 한국적 추상화라고도 한단다.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본 그림들은 추상화가 아닌 구상화 같던데,

동그랗고 붉은 해, 하얀 초생달, 까치 네 마리, 닭, 소, 강아지, 엄마, 아빠, 할아버지, 아이, 한옥, 언덕,

동산 그리고 잎이 풍성하고 커다란 녹색의 나무들로 확실하게 보인다.

다양한 조합으로 등장하는 이 화재(그림의 소재)들은

화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작게도 크게도 그려지고,

나란히 걷기도, 함께 놀기도 하고, 어긋나게 나눠지기도 한다.

항상 감탄하는 것은 단순화 된 선과 면, 원근감과 실측 무시된 과장과 축소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면서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선이 그냥 선이 아닌 모양이다.

 

 (조금 더 궁금하신 분은

「이유있는 아름다움」(지상현 지음, 아트북스) 이라는 책에서 이왈종 편을 읽어보세요. )

 

● 동산

동산 Hill

1978,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31.5x23

 

이 그림은 나의 어린 시절이다. 우리 집 뒷동산 꼭대기 미루나무 아래서 내가 놀고 있다.

당연히 우리 집 강아지가 졸졸 나를 따라왔다.

(저는 소를 키운 적은 없어요. 그래도 친구집 가서 많이 봤어요)

 

해가 붉은 것을 보니 한 여름이다.
까치는 아침 해를 가르며 날아가고 있다.

언덕 아래 논 한가운데 오두막에서는 우리 할아버지가 편히 쉬고 계시다.

나무가 약간 휘어진 것을 보니 시원한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하늘에 거꾸로 매달린 듯이 그려진 강가의 한옥들은 언덕에서 내려다 본 것이다.

(거꾸로 그려진 집은 하늘에서 바라보면 그렇게 보인다고 화가가 말했다고 합니다.)


● 그림이라는 것

장욱진 선생님의 그림과 일생을 공부하면서 내내 드는 질문은

‘화가에게 그림이라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였다.

“인생은 소모해가는 것이다” “심플한 것이 좋다”를 입버릇처럼 말씀했다는 화가는

작은 공간에 자신 내면의 모든 것을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완전히 쏟아내는 작업을 하지 않았나 싶다.

장욱진 선생님 20 주기전이 갤러리현대에서 1월 14일부터 2월 27일까지 열린다니 기대가 크다.

이번에 그의 작품을 아주 실컷 볼 작정이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몽땅 만날 참이다.
- 곽수진 문화사업팀장

- 2011년 01월 12일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