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회중시계의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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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경매사인 K옥션이 10일 여는 봄 경매에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재위 1907∼1910)의 회중시계가 출품된다는 보도를 접한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는 최근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규장각 환수 소송을 벌이는 등 ‘발로 뛰는 문화유산운동가’로 불리는데
“순종이 쓰던 물건은 부장품으로 왕릉에 모두 묻혔는데 회중시계가 경매에 나오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
이라는 겁니다.
이 시계가 정말 순종의 무덤에 묻혔다면 경매에 나온 것은 가짜이거나 도굴품일 수밖에 없겠지요.
조선시대 임금이 승하하면 평소 사용하던 물품들을 시신과 함께 묻는 것이 관례였답니다.
부장품 내역은 국장도감의궤에 세세히 기록됐구요.
하지만 1926년 4월 25일 숨지고 같은해 6월 10일 장례식이 치러진 순종의 경우는
일제강점기여서 이같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군요.
기록이 없으니 회중시계를 함께 묻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순종은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사적 198호)에 묻혔습니다.
홍릉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능이고,
유릉은 고종의 아들 순종과 그의 비 순명효황후 및 계비 순정효황후의 능이랍니다.
대한제국의 영광과 몰락을 동시에 거친 비운의 왕족이 나란히 묻혀 있는 홍유릉은
조성 이후 봉분이 파헤쳐지거나 유물이 도굴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문화재청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순종의 회중시계가 도굴품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얘기입니다.
K옥션이 이 회중시계를 순종의 유품이라고 추정하는 근거는
순종의 장례식 사진 101장을 담은 <어장의사진첩(御葬儀寫眞帖)>입니다.
국장도감의궤에 해당할 만한 이 사진 자료에 실린 부장품과 동일한
시계(스위스 바셰론 콘스탄틴사, 1910년 제작)라는 겁니다.
경매에 나온 시계가 도굴품이 아닌 것은 틀림없고
뒷면엔 대한제국의 문장인 이화문(李花文)이, 안에는 장인(匠人)까지 새겨져 있어
가짜일 가능성도 희박하니 그렇다면 당시 왕실 관계자가 부장품을 빼돌린 것일까요.
2003년 <어장의사진첩>을 공개한 왕실 후손 이혜원(순종의 동생 의친왕의 손자 · 종묘관리소 자문위원)씨의
설명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순종의 시계 사랑은 유명했지요. 거처하던 창덕궁에 시계방을 차렸을 정도였으니까요.
회중시계도 스위스에서 여러 개를 주문해 이화문을 새긴 다음 자신이 직접 가진 것도 있고,
누군가에게 하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번 경매에 나온 시계는 순종 부장품과 유사한 것이지만 부장품 자체는 아니라고 봅니다.”
추정가 5000만∼1억원에 나올 회중시계가 순종이 직접 사용했던 것이 아니라면
가치는 다소 떨어지겠지만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임에는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겁니다.
이 시계를 소장해야 할 곳은
조선왕실 유물을 보존 · 관리하고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적합하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한 해 유물 구입비가 7억원에 불과한 고궁박물관으로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군요.
스위스의 제작사에서 지대한 관심을 보여 자칫 해외로 유출될지도 모르는데도 말입니다.
-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
- 2010. 03.07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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