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연재자료)

[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⑥ 황금보검의 비밀

Gijuzzang Dream 2011. 1. 13. 01:23

 

 

 

 

 

 

 

 

 

 황금보검의 비밀

 

 

 

 

1500년 전 신라 지증왕(재위 500∼514) 집권 시기에 두 사람이 한 무덤에 나란히 묻혔습니다.

키는 150∼160㎝로 둘 다 남성용 금귀고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른쪽에 누운 사람은 전형적인 신라의 대도(大刀·큰 칼)를 지니고 있었고,

왼쪽 사람은 허리춤에 황금보검(黃金寶劍)을 차고 있었죠.

1973년 경주시 황남동 계림로 도로공사 중 드러난 15호분에서 발굴한 유적들입니다.

 

고고학계의 관심은 무덤의 주인이 과연 누구이며, 길이 36㎝인 황금보검의 출처는 어디이고,

또 어떤 경로를 거쳐 유입됐는지에 쏠렸습니다.

이 보검은 테두리와 내부가 수많은 금 알갱이로 장식돼 있고 홍마노(紅瑪瑙)로 추정되는 보석을 군데군데 깎아 넣어 그리스양식 및 로마인 누금(鏤金 · 금 무늬를 새김) 기법과 유사한 것으로 조사됐지요.

 

이 유물의 제작지는 흑해 연안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치는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로 6세기 초 신라의 왕성했던 대외 교류의 상징물이라는 학계 평가도 나왔습니다.

 

출토 이후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해오던 황금보검은 해외에서 유입되기는 했으나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완전한 형태의 희소성과 역사적 가치 때문에 78년 보물 제635호로 지정됐답니다.

그리고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 5년 동안 보존 처리 및 정리 작업을 거쳐 ‘황금보검을 해부하다’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열고 있습니다.

 

적외선 촬영 결과, 황금보검은 황금으로 장식된 검집 안에

날 길이가 18㎝인 철검(왼쪽 사진)이 숨어 있는 것이 확인돼 이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검집 앞면을 덮은 황금판은 홍마노가 아니라 석류석(石榴石)이라는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지요. 철검 뒷면에선 능(綾·무늬가 있는 비단) 조각이 발견됐는데

<삼국사기>에는 신라시대 진골 이상의 귀족만 능으로 만든 옷을 입을 수 있었다는군요.

그렇다고 해서 황금보검의 주인이 신라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박물관은 고분에서 함께 출토된 목이 긴 항아리, 화살통, 굽다리접시, 화살촉, 청동그릇, 말 안장가리개 등 270여 점 가운데 황금보검을 제외하고

모두가 신라시대 유물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무덤 주인은 외지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한 무덤 구조와 남아 있는 치아의 껍질,

그리고 두 쌍의 금귀고리 등 부장품의 배치와 내용을 정밀 분석해보니

이곳에는 신라인 귀족 남성 두 사람이 묻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 유물의 발굴 조사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라시대에

이미 페르시아, 아랍, 중앙아시아에서 실크로드를 타고 서역 문물이 들어왔다는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순장한 것도 아니고 부부묘도 아니라면 왜 두 성년 남자를 나란히 묻었을까요.

함께 전사한 형제 또는 친구일까요.

신라와 친분이 두터운 서역인의 장례를 신라식으로 치러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무덤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밝혀줄 DNA가 추출되지 않아

수수께끼로 남았습니다. 이는 현대 기술문명이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요.

문화재는 역사이면서도 과학입니다.

-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

2010. 03.14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