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닫아 100년간 폐쇄 32곳… 수질개선 거쳐 10월 일반 공개
조선시대 임금이 마시던 우물은 어떤 맛이었을까요.
임금에게 올릴 물을 긷는 우물을 어정(御井)이라고 합니다.
혹시 독약을 탔을지도 모르니 수질검사를 철저히 시행했음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궁궐의 전각 등 건축물 못지않게 우물도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우물은 음식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고
고궁에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왕실생활사의 귀중한 유물이니까요.
현재 남아 있는 궁궐 우물은
경복궁 7곳, 창덕궁 10곳, 창경궁 10곳, 덕수궁 3곳, 종묘 2곳 등 모두 32곳으로
조선 왕실의 몰락과 함께 사용하지 않고 뚜껑을 덮어둔 상태랍니다.
경복궁의 경우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 이후
어정은 무용지물이 됐다고 합니다.
창덕궁은 경술국치인 1910년부터, 덕수궁은 고종이 숨진 1919년부터,
이밖의 궁궐 우물도 비슷한 시기에 전부 폐쇄됐구요.
우물에 얽힌 사연도 가지가지입니다.
무수리가 물을 긷다 임금의 눈에 띄어 성은(聖恩)을 입었다는 얘기,
왕의 여인이 우물가에서 정한수를 떠놓고 매일같이 기도해 임신을 했다는 얘기,
임진왜란 때 왜군이 궁궐로 들이닥치자 귀중품을 우물에 빠뜨려 숨겨두었다는 얘기 등등.
하지만 우물에 대한 사관들의 인식 부족 탓인지 구체적인 기록이 별로 없어 아쉬울 따름입니다.
임금이 마시던 궁궐 우물을 100년 만에 다시 마실 수 있게 됐다는 소식입니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지난 18일 경복궁 강녕전에서
웅진코웨이, 문화유산국민신탁과 함께 ‘말라있던 왕의 우물 100년 만에 샘솟다’라는 주제로
‘5대궁 어정 수질개선을 위한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협약식을 가졌습니다.
생수회사인 웅진코웨이가 전문기술을 투입해
32개 우물에 대한 실태조사와 수질개선 및 관리점검 활동을 추진하고,
문화유산국민신탁은 궁중우물 보전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기부금 모금운동 등을 전개한다는 겁니다.
문화재청은 수질이 개선되면 오는 8∼9월 두레박을 이용해 ‘우물음용’ 시범운영을 실시하고
10월부터는 일반 관람객이 우물을 마시는 궁중생활 체험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라는군요.
앞서 우물 시료 채취 검사 결과,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전혀 사용하지 않아 흙과 모래가 많이 쌓이고
수질도 음용수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답니다.
우물은 북악산에서 흘러들어 지금의 삼청동 부암동, 사간동 일대 주민들의 지하수와
수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우물 깊이는 궁궐마다 다르지만 얕게는 3∼4m, 깊게는 6∼7m로 측정됐습니다.
6개월 정도 지나면 여러분들도 궁궐 우물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기대를 하실지 모르지만 임금이 마시던 우물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겠지요.
‘물은 소가 마시면 젖이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는 격언이 떠오르는군요.
백성을 아끼고 사랑한 태평성대의 성군에게는 단맛이 나고,
그 반대의 폭군에게는 쓴맛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
- 2010. 03.21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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