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년 전 1894년 겨울, 경복궁(사적 117호) 향원정 연못에서 이색행사가 열렸습니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도 참석할 정도로 성황을 이룬 행사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벌인 피겨스케이팅 시연회랍니다.
‘향기가 멀리 퍼져 나간다’는 뜻을 지닌 향원정(香遠亭)은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새로 조성하면서
연못 한가운데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집을 지은 문화유산이지요.
외국인 선교사들이 고종 어전에서 선보인 피겨스케이팅은
당시 ‘얼음발굿’ ‘빙예(氷藝)’ ‘빙족희(氷足戱)’ 등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즈음 조선에 머물렀던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저서 ‘조선과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에는
향원정 연못 위에서 고종과 명성황후를 위한 피겨스케이팅 시연회가 열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에 따르면 고종은 선교사들이 미끄러져 넘어질 때마다 박장대소를 하면서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내외의 법도 때문에 향원정에 드리운 발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명성황후는 어떤 표정이었을까요.
“남녀가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게 꼭 사당패와 색주가들 같구나”라며
처음엔 못마땅한 반응이었으나 얼음판 위에 놓인 의자를 훌쩍 뛰어넘는 곡예를 부릴 때는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죠.
명성황후는 이후에도 다시 그들을 궁궐로 불러 스케이트를 타게 했고
독일 출신의 외빈 접대담당 미스 손탁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맛있는 다과를 베풀기도 했답니다.
1895년 1월 명성황후는 두 차례에 걸쳐 서양인들을 위한 스케이트 파티를 궁궐에서 열었는데
서울에 사는 상당수 서양인들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향원정을 건너는 다리 취향교(醉香橋)에도 구경꾼들이 대거 몰려들었다는군요.
당시 서울에서 발행된 영문잡지 ‘더 코리아 리포지토리’가 보도한 내용입니다.
“연못의 얼음상태는 아주 좋았으며, 이렇게 성대히 초대한 왕과 왕비에 대해
모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연못 위 향원정은 따뜻했으며 가벼운 간식이 제공됐다.”
얼음을 얼리는 특별한 기계장치도 없이 자연 빙판을 이룬 향원정 연못은
한국 최초의 스케이트 공간이라는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죠.
서양식 스케이트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1884년 갑신정변 직후 미국 푸트 공사를 보호하기 위해 조선에 파견된
미국 전함 팔로스 호의 필립 랜스데일과 윌슨대위였다고 합니다.
랜스데일 대위는 부하들을 이끌고 제물포에서 서울로 오면서 자전거와 스케이트를 가져왔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당시 사진이나 실물자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스케이트에 호기심을 가져 궁에서 파티까지 베푼 명성황후는
1895년 10월 8일, 향원정 앞 건천궁에서 일본 낭인에 의해 비운의 삶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캐나다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선수들의 낭보가 잇따라 날아들고 있습니다.
명성황후가 이 소식을 듣는다면 어떤 심경일까요.
과거의 아픈 역사와 현재의 환호를 간직한 향원정 연못에는 요즘 하얗게 눈이 내렸습니다.
-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
- 2010.02. 21.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