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연재자료)

[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④ 김구 친필 서명 태극기

Gijuzzang Dream 2011. 1. 13. 01:02

 

 

 

 

 

 김구 친필서명 태극기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정인보 작사 · 박태현 작곡 ‘삼일절의 노래’ 일부입니다.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퍼진 대한독립만세의 함성과 함께

손에손에 태극기를 흔들던 항일의 순간을 되새겨 봅니다.

 

1883년 조선의 국기로 채택되고,  1948년부터 대한민국 국기로 사용되고 있는 태극기는

2008년에야 비로소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등록문화재란 개화기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근대문화유산을 말합니다.

태극기의 효시에 대해서는 잘 아시죠?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인 박영효가 인천에서 일본으로 건너갈 때

태극사괘(太極四卦)를 도안한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의 태극기 실물이 남아 있다면 국보급 문화재로 손색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까닭에 문화재청은

1950년대 이전의 태극기 가운데 사료적 가치가 뛰어난 15점을 문화재로 등록한 것이죠.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고종황제가 1886년부터 1890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외교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데니에게 하사한

‘데니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2호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입니다.

전남 담양 출신의 의병장 고광순이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신념으로 상단 중앙에 ‘불원복(不遠復)’이란 글씨를 홍색으로 수놓은

‘불원복 태극기’(제394호·독립기념관)에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의가 서려 있습니다.

1908년 동덕여자의숙 개교와 함께 교정에 게양됐으며,

국권 피탈 이후 36년간 장롱 속 나무상자에 간직되다

광복과 함께 동덕여고 교정에 다시 게양된 태극기(제384호·동덕여대박물관),

 

독립운동가 남상락이 19년 독립만세운동에 사용하기 위해

부인과 함께 손바느질로 제작한 태극기(제386호·독립기념관),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에 걸렸던 태극기(제395호 · 독립기념관) 등

사연도 가지가지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1941년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벨기에 출신 미우스 신부에게 준 태극기(사진 · 제388호 · 독립기념관)에는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들의 지원을 당부한 백범의 친필 묵서가 쓰여 있습니다.

 

“미우스 신부 부탁하오. 이번 행차에 어느 곳에서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전해주시오.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 인력,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서 강로말세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고.”

이 태극기는 미우스 신부가 뉴욕에서 1년간 활동하다 중국으로 돌아갈 때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전달했으며,

1985년 유족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문화유산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문화재로 등록된 대부분의 태극기는

순국선열들의 후손이 간직하고 있다가 기증한 것이랍니다.

 

오늘은 제91주년 3·1절입니다. 태극기 휘날리며 외치던 그날의 함성을 떠올려 보시죠.

거창한 구호보다는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는 작은 실천이야말로

이에 동참하는 것이 아닐까요.
-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
- 2010.02. 28.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