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연재자료)

[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① 백제인의 얼굴

Gijuzzang Dream 2011. 1. 13. 00:31

 

 

 

 

 

 

 백제인의 얼굴

 

 

 

 

1400년 전 백제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백제인이지만 활달한 기상을 자랑한 고구려인과

잔잔한 미소가 아름다운 신라인에 비해 당시 모습을 드러내는 유물이 별로 없는 실정입니다.

영화 ‘황산벌’이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백제인이 등장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가상의 인물일 뿐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최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부여 관북리 유적(사적 428호) 발굴 조사서’에 실린

묵서(墨書) 인면문(人面文) 토기(사진)는 6세기 백제인의 얼굴을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사비시대(538∼663) 백제 연못 터에서 발굴된 토기 조각 수 천점 중 하나인 이 유물은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 나중에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돼 1400년 만에 빛을 보게 됐지요.



 

붓으로 먹을 찍어 그린 백제시대 사람의 얼굴이 출토된 것은 처음으로,

깨진 토기 밑바닥(지름 12㎝)에 얼굴 전체 윤곽을 한 줄로 둥글게 표시한 다음

그 안에 눈과 눈썹, 코와 입을 형상화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토기는 해무리굽(바닥이 태양 주변에 동그랗게 형성되는 해무리처럼 생긴 것)모양 받침대

있는 대부완(臺附碗)으로 일종의 사발그릇입니다.

토기에 그려진 얼굴이 어떻습니까? 유순하고 순박한 인상이지요.

둥글고 통통한 얼굴에 눈을 지그시 감은 표정이 선한 사람의 전형이라고 할까요.

서산 마애삼존불상(국보 84호)과 군수리 석조여래좌상(보물 329호)도 환한 미소를 띠지만

당시 백제인들이 생각한 천진난만하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얼굴일 겁니다.

1995년 부여 능산리에서는 6세기 백제 기와공이 왕의 행차모습을 그려넣은 것으로 짐작되는

기와 조각이 출토됐습니다. 가로 4㎝, 세로 17㎝에 너그럽고 인자한 얼굴이 간략한 선으로 표현된 이 유물은

발굴보고서에도 실리지 않다가 10년 후 국립부여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뒤늦게 공개됐지요.

‘삼국사기’에서 백제 임금들의 인상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대체로 인자하고 관대하며 너그러운 성격을 가진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기와의 그림에 그려진 관모(冠帽, 착용자의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모자)는

양 옆에 관식(冠飾, 관 장식) 2개가 달려 있는 것으로 당시 왕만이 썼던 복장이라고 합니다.

왕의 얼굴 역시 서민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얼굴박사’로 통하는 조용진 한서대 교수는

“사람의 얼굴에는 그 시대의 문화와 사회상이 함축돼 있다”며

“충청인의 편안하고 온화한 모습은 고대부터 이 지역이 얼마나 평화로운 곳이었는지를 말해준다”고

설명합니다.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유골로 백제인의 얼굴을 복원하기도 했던 조 교수는

충청인의 대표 얼굴로 탤런트 윤문식씨를 지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화가 나거나 찡그리는 얼굴도 있습니다.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토기의 표면에는 수염이 나고 관모를 쓴 5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눈은 처져 있고 꾹 다문 입술은 시름에 잠긴 듯한 표정입니다.

온화하고 넉넉한 웃음을 짓는 백제인의 본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요즘 세종시 문제로 일그러진 충청인들의 얼굴은 아닐까요?

-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
- 2010.01.31,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