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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서울 반세기종합전 : 강남 40년

Gijuzzang Dream 2010. 11. 26. 14:47

 

 

 

 

 

 

 

 

 

서울반세기종합전Ⅱ


「강남 40년 : '영동'에서 '강남'으로」특별전

 

 

 

 

 

□ 전시기간 : 2010. 12 29 ~ 2011. 2. 27

 

 

 

평범한 농촌이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1970년 이후 급성장한 江南 형성사 조명

 

 

 

40년 전

강 너머 한적한 농촌이었던 영등포 동쪽 지역 '영동'이 오늘날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강남'으로 변하였다.

 

1960년대 강북의 폭발적인 팽창과

1969년 제3한강교(한남대교)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촉발된 강남개발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 개발 사업이었으며,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였다.

또한 개발과정에서 땅값 급등, 부동산 투기, 흥청거리는 밤 문화,

8학군으로 인한 입시과열 등 많은 새로운 풍속도와 사회적 이슈를 낳았다.

오늘날 강남은 대한민국의 신산업의 중심지이자 새로운 문화와 유행의 생산지로 자리 잡고 있다.

 전시는 이와 같은 1970년 이후 강남 형성 과정과 함께

현재 강남의 다양한 이미지도 함께 전시하였다.

 

전시는 "강남 40년 : '영동'에서 '강남'으로", "하늘에서 본 강남", "땅에서 본 강남" 세 부분으로 구성하였다.

(1) "강남 40년 ; '영동'에서 '강남'으로"

강남개발 과정과 강남에서 펼쳐진 새로운 풍속도를 다루었다.

개발 이전 한적한 시골의 강남 모습, 강북 팽창을 해소하기 위한 「남서울계획」「새서울백지계획」등

강남개발에 대한 구상, 강남개발을 촉발시킨 제3한강교(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건설,

본격적인 강남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영동지구토지구획정리사업과 공무원아파트 건설,

공공기관 및 학교 이전, 고속버스터미널 건설, 지하철 2호선 건설 등 강남개발촉진정책 등을

사진, 영상, 당시 영동개발에 참여한 인사들의 영상인터뷰 등을 통해 살펴본다.

개발 열풍에 휩싸여 생겨난 강남의 새로운 풍속도에 대해서는

'말죽거리 신화'라고 하는 강남지역의 엄청난 땅값 폭등,

부동산투기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수많은 복덕방과 복부인들,

돈과 사람이 몰리면서 생겨난 강남지역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밤문화,

8학군의 등장과 아파트 가격상승 및 사교육 열풍 등을 사진, 영상을 통해서 소개한다.

(2) "하늘에서 본 강남"

지도와 항공사진을 통하여 강남의 도로, 건물, 주거지, 공원 등의 형성과정, 건물의 층수, 건물노후도,

건축물의 용도, 필지의 크기, 주택가와 상업지구 등 강남의 물리적 공간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래픽과 영상을 통하여 전시하였다.


(3) "땅에서 본 강남"

현재 강남이 보여주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담았다.

특히 이 코너는 시민단체 (사)내일의 도시와 공동으로 작업,

강남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이미지를 가감 없이 담았다.

 

강남의 낮과 밤풍경, 테헤란로, 강남대로 등 강남의 대표적 대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고속버스터미널과 강남역, 코엑스 등 지하도시 강남, 대치동 학원가,

신사동 성형외과, 청담동 명품거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말죽거리, 신사동 가로수길 등 특화거리,

양재천, 구룡마을 등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강남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평범한 농촌이 고층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변하는 급속한 성장을 겪었다.

이것은 서울의 다른 지역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해온 것과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바로 이점에서 강남 40년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의미가 있다.

 

강남의 형성과정에 대한 조명은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1970년대 이후

서울 도시성장사의 또 다른 일면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강남40년 주요전시자료

 


강남
강남2
강남3
강남4
강남5

 

 


 

 

 

 

 

강남 40년 특별전 - 40년 전 江南을 기억하시나요?

 

1978년 현대아파트가 들어선 압구정동에서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다.(전민조씨 제공)

  

한적한 농촌이었던 서울의 한강 이남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한계에 달한 강북(江北)의 인구와 시설을 분산시키기 위해 시작된 강남개발은

1969년 제3한강교(한남대교) 건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대규모 건설사업과 맞물리면서

시동이 걸렸다.
  
1975년 구자춘(具滋春) 서울시장이 4대문 안의 단핵(單核) 도심을 강북도심(都心·국가의 중심·國心),

영등포도심(수도권 산업 중심), 영동도심(서울 중추 및 금융업무 기능)의 3개 도심으로 분산한다는

‘삼핵도시구상’(三核都市構想)을 내놓으면서 강남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1980년대 테헤란로의 모습


 

강남개발 초기에 사용된 ‘영동(永東)’이라는 말은 ‘영등포(永登浦)의 동쪽’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강남이 짧은 기간 동안 아파트와 고층빌딩의 숲으로 급속하게 변화하면서

‘영동’은 점차 사라지고 ‘강남’이 이 지역을 통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그러면서 ‘강남’은 소(小)시민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동시에 받는 대상으로,

‘가진 사람’들을 상징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1970년대 압구정동. 배밭 뒤로 현대아파트가 들어서 있다.(압구정동 향우회 제공)

 

 

1980년대 잠원동. 생활하수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모습이다.(이성교씨 제공)

 


1980년대 중반 서래마을과 서래마을 앞 반포아파트 건설 모습.(방흥복씨 제공)

 


1980년대 초반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주변.(이성교씨 제공)

 


1975년 9월 잠수교 건설 착공식.


 

 

1976년 7월 착공 10개월 만에 완공된 잠수교.

 

 

 

1971년 강남개발 촉진책의 하나로 논현동에 들어선 공무원 아파트.(서울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