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더듬어보고(전시)

[서울역사박물관 특별전] 광주 100년, 서울나들이

Gijuzzang Dream 2010. 11. 17. 14:35

 

 

 

 

 

 광주-서울 교류전 '광주 100년, 서울나들이'

□ 기 간 : 2010. 11. 17(수)~12. 12(일)      
  □ 장 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 주 최 : 광주시립민속박물관 · 서울역사박물관

 

 

 

 

 

- 이번 전시는 광주의 이야기를 서울에 풀어놓는 최초의 전시회로

광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이해증진을 도모하고자 한다.

- 카메라가 보급된 이후 광주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120여 점을 주제별로 구성하여

지난 100여 년 동안 광주가 걸어온 여정과 어떻게 한 도시가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됐는가를 얘기한다.

 

광주천을 따라 광산동, 양림동, 충장로, 금남로 등은

지난 100년간 광주가 바쁘게 달려온 역사와 삶이 담겨 있다.

 

앞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설 자리인 광산동은

광주가 호남의 최대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곳으로,

1896년 도청이 자리한 후 도시의 핵으로 역할 해왔다.

양림동은 전통과 현대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근대건축물의 보고다.

충장로는 1919년 시민들의 만세시위, 1929년 학생들이 일본 경찰에 맞선 항거,

1960년 부정선거에 대항했던 독립과 민권, 민주주의의 무대다.

그리고 금남로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이 전개된 곳으로

광주사람들의 가슴속에 아주 특별한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이야기들은 지난 1백년의 광주를 담고 있는 동시에

독립과 민주주의, 좌절과 희망, 궁핍과 번영으로 아로새겨진 우리 국토 여느 도시민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 제1부, '광주천(光州川), 도시의 축'

광주천은 무등산에서 발원해 광주의 도심부를 가로질러 흐른다.

도심부를 흐르는 광주천(光州川)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 왔음을 강조한다.

광주천은 길이가 서울 청계천의 2배 정도인 24km이고 폭은 도심부 통과 지점에서 60m로

비교적 작은 광주사람들의 젖줄이지만 도시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또, 광주천을 중심으로

좌안(左岸)은 향교, 사직단, 사마재, 성거사 등 제사, 종교 등 성스러운 공간으로 조성되었고,

우안(右岸)은 읍성, 경양방죽, 농토, 시장 등 삶의 공간으로 배치된 점도 광주만의 특징적인 점이다.

구곡양장(九曲羊腸)의 광주천은 1928년부터 직강공사를 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광주천은 단순한 하천 이상으로 일상의 삶이 어우러진 곳일 뿐만아니라 지난 20세기에만

3ㆍ운동, 학생독립운동, 5ㆍ18민주화운동이 모두 이 하천을 무대로 일어났다.

광주천은 사람들의 애환을 함께 품고 흐르는 하천인 셈이다.


 


○ 제2부, '무등산'

광주천의 발원지이자 진산으로서 광주사람들의 삶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는 무등산을 소개한다.

무등산은 해발 1187m로 화산폭발로 생겨난 산으로 서석대, 입석대 등 주상절리, 곧 돌기둥이 특징이다.

고대로부터 호남의 신령한 산 가운데 하나로 산 아래쪽의 광주사람들에게 듬직한 존재감을 줬다.

백제시대에 사람들은 이 산에 성을 쌓고 이를 자축하는 노래를 불렀고,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더러는 국토를 수호하는 산으로, 더러는 광주의 수호자로 받들여졌다.

이 산의 물줄기는 광주천으로 흘러들어 광주사람들의 농업용수뿐만 아니라 생활용수로까지

생명수 역할을 해 왔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광주읍성을 쌓을 때 필요한 돌, 분청사기를 빚어내는 가마와

산 아랫사람들의 구들장을 덥혀주는 연료를 제공해 왔다.

 

이곳에서 조선시대 선비들은 호연지기를 키우고 학문과 정치를 논하며 시가문학을 꽃피웠고,

광주학생들은 소풍장수로 즐겨 찾았다.

이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장소가 되어 정신적인 영역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음을 얘기한다.

이처럼 무등산은 자연적인 이용뿐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까지 광주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무등산은 광주사람들에게 생활용수, 땔감, 산나물 등 자연재의 제공뿐만 아니라,

예부터 수많은 사찰의 보금자리로 각광을 받았으며,

광주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 무등산은 경관 또한 아름다워 국립공원으로 추진하고 있고,

서석대와 입석대 등 주상절리(돌기둥)는 무등산의 특징 중의 하나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

 

 


○ 제3부, '광주의 역사와 삶'

지난 100년간 도시 광주가 걸어온 역사와 삶을 풀어본다.

왜, 옛 전남도청 부근의 광산동이 도시의 중심지로 발전하였고,

남광주역이 생긴 후 도시에 어떤 변화가 있었으며,

양림동에서는 어떻게 서양문물과 화해했는가 짚어본다.

또, 역사의 거센 격랑 속에서 광주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했고 행동했는지를

충장로와 금남로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독립ㆍ저항ㆍ민주화의 사건들로 더듬어보고,

광주사람들의 소소한 삶의 풍경도 전달하고자 하였다.

 

 


○ 제4부, 체험코너

최재영(조대 미대졸) 화가가 형광물질로 구성한 빛아트 작품 '무등-빛'이 전시되어

무등산의 환상적인 이미지가 전시되고,

광주의 주요 건물과 거점들의 옛 사진과 현대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돌림판도 설치된다.

아울러 광주의 아름다운 작품사진과 시정홍보영상으로

현대 광주의 밝은 모습과 미래비전을 부각시킬 예정이다.


- 관람문의 : 서울역사박물관 (02)724-0114~6 /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 (062-613-5363)

 

 

 

 

 

 

광주천
광주천 / 1970년대
광주는 1970년대까지도 광주천을 따라 집중 개발되었다. 이 무렵 광주의 행정, 금융, 문화 등 중요한 서비스는 대부분 광주천 주변에서 이뤄졌다.
 

광주
광주 / 1920년대
아직 조선시대의 자취가 물씬 풍기던 시절의 광주 모습. 광주는 광주천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경양방죽
경양방죽 / 1940년
조선초 광주천에서 멀리 떨어진 농토에

물을 대기 위해 축조되었으나 2차(1937,67)에

걸쳐 매립되었다.

서석대
서석대 / 1959년
거대한 병풍을 두른 듯한 장엄한 돌기둥으로 수려한 경관과 학술적 가치로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됐다.

충장로
충장로 / 1920년대
충장로2가와 3가의 교차점인 이곳에서

1929년 11월 3일 오후 한국인 학생들은 경찰의

저지를 뚫고 이곳을 통과해 당시 광주시내의 끝이라 할 도립광주의원(현 전남대병원)까지 진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