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명품 20 (Masterpieces 20)
2010년 용산 개관 5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 명품 20을 선정하였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문화재 약 25만점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가운데 시대별, 종류별 대표성과 학술적 위상,
그리고 전시실 안배 및 전시 효과까지 감안하여 여러 차례의 검토와 의견수렴을 거쳐
대표 명품 20을 최종적으로 확정하였다.
선정된 명품들은 각각 그 시대와 이념, 표출방법이 다르지만
다양한 면모 속에서도 이를 관통하는 일관된 조형의식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는 한국인의 혼과 정신이 담겨 있으며,
나아가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독창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사시대 : 3건 4점
삼국시대 : 5건 8점
통일신라 : 2건3점
고려시대 : 4건 5점
조선시대 : 6건 6점
1. 빗살무늬 토기(즐문토기, 櫛文土器)
신석기시대 B.C. 8000년, 높이 38.1㎝/ 선사ㆍ고대관 도입부
기원전 8천년 전 한반도에 처음 출현하였으며 신석기문화를 대표한다.
토기 전체에 선과 점으로 장식된 기하학적 무늬는 당시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2. 간돌검(마제석검, 磨製石劍)
청동기시대 B.C. 6~5세기, 길이 66.7㎝/ 선사ㆍ고대관 청동기실
한국 선사시대의 독창적인 석기로서, 우리나라 간돌검 가운데 가장 큰 유물이다.
손잡이와 검날이 대칭을 이루며 고인돌에서 출토된 것으로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3. 오리모양토기(압형토기, 鴨形土器)
삼한시대 3세기, 높이 32.5㎝/ 선사ㆍ고대관 부여삼한실
의식이나 제례 때 필요한 음료를 담기 위한 용기이다.
역사기록에는 새가 영혼을 전달한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토기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천상으로 인도하는 매개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4. 기마인물도 벽화(騎馬人物圖 壁畵)
삼국시대(고구려) 5세기, 높이 44.0㎝/ 선사ㆍ고대관 고구려실
쌍영총 돌방무덤의 벽면 조각이다.
말을 타고 달리는 무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서
당시 고구려인의 웅혼한 기상과 상무정신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5.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
삼국시대(백제) 7세기, 높이 62.5㎝, 부여 능산리사지 출토, 국보 제287호/ 선사ㆍ고대관 백제실
이 향로는 왕실의 의례에 사용된 것으로 받침과 몸체, 뚜껑으로 구성되었다.
역동적인 용과 연꽃봉오리, 아름다운 산수와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이 조각된 이상세계,
그리고 영원불멸의 봉황으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걸작품이다.
6. 기마인물형토기(騎馬人物形土器)
삼국시대(신라) 6세기,
(왼편)주인-높이 26.8㎝, (오른편)하인-높이 23.4㎝, 국보 제91호/ 선사ㆍ고대관 신라실
사람이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이 토기는 물을 붓고 따를 수 있는 주전자이다.
주인과 그 앞에서 방울을 흔들며 주인의 영혼을 안내하는 하인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말과 사람의 모습이 매우 비슷한 두 점의 토기가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되었다.
말을 탄 인물은 넓은 밑받침에 서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속이 비어 있고, 컵모양의 수구(受口)가 있는 동물형 토기이다.
말의 궁둥이 위에 안으로 구멍이 뚫린 수구의 가장자리에는 뾰족하게 솟은 장식이 붙어 있고,
가슴에 긴 귀때[注口]가 있다. 수구로 물을 부으면 귀때로 물이 나오도록 고안되어 있다.
여기에 보이는 인물들은 차림새나 크기 등에 차이가 있어 신분이 다를 것으로 추정된다.
즉 차림새가 호화스럽고 크기가 큰 인물이 주인이고,
차림새가 약간 엉성하고 크기가 작은 인물은 수행원으로 여겨진다.
주인상을 보면 호화로운 관모를 쓰고, 갑옷을 입었다.
말에는 말띠드리개[杏葉], 말띠꾸미개[雲珠], 말다래[障泥], 안장, 혁구(革具) 등의 말갖춤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다. 말 이마에 코뿔소의 뿔과 같은 영수(纓穗)가 붙어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의식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그릇으로 생각된다.
주인으로 보이는 인물의 얼굴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날카롭게 솟은 콧날과 움푹 패인 눈매가 다소 이국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하인으로 보이는 토기로 기본적인 형태는 주인상과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상투머리에 수건을 동여맸고, 상체는 벗고 있다.
오른손에 방울 같은 것을 들고 있으며 말갖춤 장식도 주인에 비해 간략하고
발걸이(등자)와 다래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사람이나 동물, 또는 물건의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토기(像形土器)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것이라기 보다
제사와 같은 의례 시 죽은 이의 안식과 사후세계에 대한 상징적인 염원을 담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 탄 사람 토기는 인물이나 말을 투박하나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옷치장과 말갖춤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7. 황남대총 출토 황금유물 일괄(皇南大塚)
삼국시대(신라) 5세기,
금관 높이 27.3㎝, 허리띠 길이 120.0㎝, 관꾸미개 길이 40.6㎝, 경주 황남대총 출토,
금관과 허리띠 각 국보 제191호, 관꾸미개 보물 제630호/ 선사ㆍ고대관 신라실
금관은 순금으로 만든 것으로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으로 된 세계적 걸작품이다.
허리띠에는 곱은옥, 물고기모양판, 손칼모양장식 등 다양한 물건을 본떠 만든 장식이 달려 있다.
금관과 허리띠, 관꾸미개 등은 왕족의 위세품이자 장송의례용으로 보인다.
8.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삼국시대 7세기 전반, 높이 93.5㎝, 국보 제83호/ 조각ㆍ공예관 불교조각실
한쪽 다리를 무릎 위에 얹고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이 자세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주조기술과 조형성이 뛰어난 뿐만 아니라 철학적, 종교적 깊이를 지닌 세계적 걸작이다.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걸치고
고개 숙인 얼굴의 뺨에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대어 깊은 명상에 잠긴 모습의 반가사유상이다.
이러한 상은 원래 석가모니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던 모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국에서는 이러한 상을 태자사유상(太子思惟像)이라고 하였다.
반가사유상은 이 상과 같이 하나의 독립된 형식으로도 만들어졌다.
입가에 머금은 생기있는 미소, 살아 숨쉬는 듯한 얼굴 표정, 부드럽고 유려한 옷주름,
상체와 하체의 완벽한 조화, 손과 발의 섬세하고 미묘한 움직임 등
모든 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된 동양불교 조각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일본 고류지(廣隆寺)의 목조반가사유상과 모습이 비슷하여 영향 관계가 주목되는 상이기도 하다.
9. 감산사터 미륵보살과 아미타불(甘山寺址 石造彌勒菩薩ㆍ阿彌陀佛)
통일신라 8세기(719년경),
- 미륵보살(왼쪽) 높이 270.0㎝, 국보 제81호/ 조각ㆍ공예관 불교조각실
- 아미타불(오른쪽) 높이 275.0㎝, 국보 제82호/ 조각ㆍ공예관 불교조각실
단단한 화강암을 소재로 한 높은 예술적 수준의 우수한 조각품이다.
광배에는 김지성이 부모의 은혜와 임금의 은덕을 기리고자 제작하였다는 명문이 있다.
10. 물가풍경무늬 정병(靑銅銀入絲 蒲柳水禽文 淨甁)
고려 12세기, 높이 37.5㎝, 국보 제92호/ 조각ㆍ공예관 금속공예실
정병은 승려들이 마실 물을 담았던 휴대용 용기였다.
버들가지가 늘어진 물가 풍경을 새긴 후 얇은 은선을 그 안에 끼워 넣어 장식하였다.
한국 최고의 금속공예품으로 손색이 없다.
정병은 맑은 물을 담아두는 병으로, 본래 승려가 지녀야 할 열 여덟 가지 물건 중 하나였으나
점차 불전에 바치는 깨끗한 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었다.
불교의식을 할 때 쇄수게(灑水偈)를 행하면서 의식을 인도하는 승려가 솔가지로 감로수를 뿌림으로써
모든 마귀와 번뇌를 물리치도록 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고려시대의 정병은 대체로 몸체가 계란형이며, 매끈하게 빠진 긴 목 위로 뚜껑 형태의 둥근 테가 놓인다.
그 위로 다시 대롱형의 물을 넣고 빼는 첨대(尖臺)가 솟아 있으며,
몸체 한쪽에는 중간을 잘록하게 좁힌 비녀처럼 생긴 귀때[注口]가 튀어나와 있다.
정병은 물가의 풍경을 담아냈는데, 언덕 위로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물 위로 노를 저어가는 어부와 낚시꾼 등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정경이다.
이 모든 풍광이 표면에 홈을 파서 은선을 두드려 박는 은입사 기법으로 장식되었다.
병의 긴 목에는 구름무늬, 동체의 어깨와 굽 주위에는 여의두무늬[如意頭文],
귀때에는 풀무늬[草文]가 입사되었다.
은을 돌린 굽은 지금은 파랗게 녹슨 몸체와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청동제의 병에 은상감을 한 예는 적지 않으며, 이러한 기법이 고려청자에도 통용되어 주목된다.
11. 감은사터 동탑 사리갖춤(感恩寺址 東三層石塔 舍利具)
통일신라 7세기(682년경),
외함 높이 30.2㎝/ 내함 높이 18.8㎝, 보물 제1359호/ 조각ㆍ공예관 금속공예실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Sarira)를 탑 안에 넣기 위한 용기세트이다.
왕실에서 발원한 이 사리갖춤은 수정 사리병과 전각모양의 사리기, 사리외함으로 이루어졌다.
투각으로 표현된 정교한 공예기술과 인물의 사실적인 묘사가 뛰어나다.
12. 세계 최고 금속활자와 대장경(世界最高 金屬活字ㆍ大藏經)
고려시대 사람들은 독일 쿠텐베르크(1397-1468)보다 200년 앞서 금속활자를 사용하여 책을 인쇄함으로써
일찍이 세계 인쇄사에 큰 획을 그었다.
고려 금속활자의 실물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이 매우 적어서 그 가치가 높다.
인쇄물은 고려시대 목판본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다.
- 금속활자 “복(山+復)”
고려, 전 개성 출토, 1.0×1.2㎝, 두께 0.7㎝, 무게 4.1g/ 중ㆍ근세관 고려3실
- 초조본 유가사지론<권제32> (初雕本 瑜伽師地論 卷第三十二)
고려 11세기 전반, 국보 제272호, 송성문 기증/ 중ㆍ근세관 고려2실
13. 청자 연꽃 넝쿨무늬 매병(靑磁陰刻蓮唐草文 梅甁)
고려 12세기, 높이 43.9㎝, 국보 제97호/ 조각ㆍ공예관 청자실
아름다운 비색과 화려한 문양 표현이 뛰어난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기이다.
이 매병의 둥근 어깨부터 굽에 이르는 부드러운 선은 고려청자만의 곡선미를 잘 보여준다.
몸체 전면에 음각된 연꽃과 넝쿨은 비취빛 유약과 어울려 동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연꽃무늬를 감싸고 있는 넝쿨무늬의 윤곽선은 조각칼을 뉘여서 음각하였기 때문에
반쯤 양각(半陽刻)된 것처럼 보인다.
고려 청자에 사용된 음각기법은 초기에는 가늘고 예리한 음각 무늬이지만,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 중엽이 되면 이처럼 선이 굵어지고 반양각된 것처럼 처리하는 특징이 있다.
14. 경천사터 십층석탑(敬天寺址 十層石塔)
고려 1348년, 높이 1350㎝, 국보 제86호/ 역사의 길
고려 1348년에 대리석으로 만든 십층석탑이다.
기단에는 사자, 연꽃, 수행자, 소설 <서유기>의 내용 등이 새겨져 있고,
총 16장면의 법회가 표현되어 있다.
목조건축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당시 불교 교리를 잘 묘사하였다.
15. 백자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白磁鐵畵梅竹文 壺)
조선 16세기, 높이 41.3㎝, 국보 제166호/ 조각ㆍ공예관 백자실
품격 있는 장중한 형태와 뛰어난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16세기의 대표적인 철화백자이다.
그릇 면을 화폭 삼아 대나무와 매화나무를 나타낸 우아한 필치를 보건데 궁중 화원의 솜씨인 것 같다.
순수와 절제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백자는
유교이념을 추구한 조선 왕실과 사대부층에서 주로 애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용 자기를 제조할 때 사옹원(司饔院) 소속 관리가
매년 도화서(圖畵暑)의 화원(畵圓)을 인솔하고 광주 관요(官窯)에 나가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16. 백자 끈무늬 병(白磁鐵畵垂紐文 甁)
조선 16세기, 높이 31.4㎝, 보물 제1060호/ 조각ㆍ공예관 백자실
잘록한 목에 한 가닥 끈을 휘감아 자연스럽게 밑으로 늘어뜨려 끝에서 둥글게 말린 모습이 표현되었다.
하얀 바탕에 철화 안료로 그린 끈 무늬는 들고 다닐 수 있는 술병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형태와 무늬에서 선조들의 풍류와 해학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현대인의 눈에도 멋스럽게 다가온다.
단순하면서도 여유 있는 묘사와 절제된 필치 그리고 여백과 문양을 적절히 안배한 세련된 구성이
절정의 기량을 가진 화가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굽 안바닥에 뜻을 알 수 없는 ′니나히′라는 한글 명문이 있어 한글 창제 이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 무동(舞童), 『단원풍속도첩』중
김홍도(1745-1806 이후), 조선 18세기,
종이에 엷은 색, 27.0×22.7㎝, 보물 제527호/ 서화관 회화실
풍속화의 대가인 김홍도는 다양한 계층의 서민들을 관찰하여
그들의 일상을 특유의 익살과 해학으로 재탄생시켰다.
북, 장구, 피리, 대금, 해금의 가락에 맞춰 춤추는 무동의 흥겨운 몸짓이
원형 구도와 어울려 생생한 현장감을 준다.
18. 끝없이 펼쳐진 강산(강산무진도, 江山無盡圖)
이인문(1745-1824 이후), 조선 18세기, 비단에 엷은 색, 43.8×856.0㎝/ 서화관 회화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산수화가 이인문이 18세기에 제작한 두루마리 그림이다.
춘하추동 사계절 변화무쌍하게 변모하는 조선의 대자연과
그 속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충실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고도 섬세한 세필로 그려냈다.
산과 물이 만나 끝없는 장관을 이루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긴 두루마리 그림이다. 다양한 구도와 기법이 변화무쌍하면서도 종합적으로 구사된 걸작이다.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은 김홍도(金弘道, 1745-1816 이후)와 같은 나이이자 친척으로
서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산수, 인물, 포도 등을 잘 그렸다.
산과 물이 서로 만나고 갈라지면서 이루는 대자연의 절경과 함께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다양한 생산 활동을 그린 긴 두루마리 그림이다.
이러한 주제는 국토와 백성을 상징하는 한편,
강과 산이 끝없이 펼쳐지듯 왕조가 영원하길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인문은 높은 곳에서 멀리 내려다 보는 듯한 시점으로 산수의 변화무쌍함을 장대하게 재구성하였다.
위치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는 평원(平遠), 심원(深遠), 고원(高遠)의 삼원법을 두루 구사하고 있으며,
남종(南宗)과 북종(北宗)의 산수기법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적절한 묘사기법과 구도로 화면의 대부분을 연한 황색과 녹색으로 채색하였다.
상록수인 푸른 소나무와 강한 대조를 보이면서
가을 경치임을 분명히 알리는 낙엽수에는 선명한 붉은색을 입혀 조화를 꾀했다.
세련된 필치, 감각적인 색채는 조선후기 김홍도와 쌍벽을 이룬 화원화가로 평가되는
이인문의 뛰어난 솜씨를 잘 보여준다.
화면 앞뒤에 ″추사秋史″와 ″추사진장(秋史珍藏)″이라고 새겨진 도장이 있어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소장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17면 중 '영통동구(靈通洞口)'
강세황(1713-1791), 종이에 엷은 색, 32.8×54.0㎝, 이홍근 기증/ 기증관 이홍근실
강세황은 문인화가이자 서화평론가이다.
송도 즉 경기도 개성(지금의 황해도 개성) 지역을 직접 여행하며 그린 진경산수화첩으로
서양화풍을 접목하여 산과 계곡을 사실적이면서도 간결하게 그려낸 회화작품이다.
체험에 바탕한 참신한 구도와 맑고 따뜻한 색채의 사용이 특징이다.
20.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조선 18세기, 비단 2722×137.9㎝, 보물 제1538호
우리나라 전체를 약 42만분의 1 정도로 축소하여 지도의 정확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대형 조선전도로 도화서의 화원이 그린 것으로 짐작되는 유물이다. 보물 제1538호 지정.
한반도와 만주지방 일부를 아우르고 있으며, 지도에 기록된 지명 등으로 미루어볼 때
1755년에서 175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북부지방을 포함한 국토의 윤곽을 거의 실제와 가깝게 그리는데 성공하였으며,
다양한 기호를 활용하여 교통로와 마을 및 병영의 위치 등 지리정보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표시하였다.
-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 News 2010년 11월 471호
- 국립중앙박물과 웹진, MUZIN 32호
'더듬어보고(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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