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대총은 누구의 무덤일까?
황남대총은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큰 무덤이라는 뜻으로,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하였습니다.
황남대총은 남북으로 두 개의 무덤이 서로 맞붙어 있는 쌍무덤인데,
남쪽 무덤(남분)을 먼저 만들고, 뒤이어 북쪽 무덤(북분)을 잇대어 만들어졌습니다.
남분에는 남자가 묻혔고, 북분에는 여자가 묻혔는데 이들은 부부로 생각됩니다.
황남대총은 신라의 쌍무덤 가운데 가장 큰 무덤인데,
남북 길이가 120m, 동서 지름이 80m, 높이가 남분은 21.9m 북분은 22.6m입니다.
아파트 한 층의 높이가 약 3m라면 황남대총은 약 7층 건물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도 남분의 주인을
신라의 왕인 ‘마립간’ 중에서 한 명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5세기로 보고 있는데,
이 시기는 고구려가 영토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마도 무덤의 주인공은
이 시기에 신라를 발전시키기 위한 내부적인 힘을 기르고 있지 않았을까요?
경주 대릉원 전경(황남대총에 노란 동그라미 표시)
총(塚) : 흙으로 덮은 무덤이라는 뜻으로, 무덤의 주인을 분명히 알 수 없을 때 붙이는 단어입니다.
마립간 : 동북아시아에서 지배자 또는 족장을 부르는 “간(干, Khan)”에 최고를 뜻하는 ‘마립(麻立)’을 붙인 단어로, 여러 “간” 가운데 최고지위인 ‘왕(王)’을 뜻합니다. 왕으로 부르기 전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들을 사용했습니다.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왕) |
1. 무덤 속 탐험 - 돌무지덧널무덤
황남대총을 가리켜 돌무지덧널무덤 이라고 합니다.
무덤을 쌓는 과정에서 돌과 덧널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황남대총과 같은 신라의 무덤은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만들어집니다.
① 덧널을 만들고
② 돌을 덧널 주변에 쌓은 후
③ 무덤 둘레돌을 쌓고 돌무지 높이까지 흙을 쌓습니다.
④ 시신을 모신 나무널과 껴묻거리를 덧널에 안치하는 장례를 치릅니다.
⑤ 돌무지의 윗부분에 돌을 채우고, 나머지 꼭대기까지 흙을 덮습니다.
⑥ 무덤의 흙이 쉽게 흘러내리거나 비에 씻겨 내리지 않게 찰흙을 두텁게 덧바릅니다.
이와 같이 돌무지덧널무덤은 덧널을 돌무지로 감싸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들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덧널이 썩게 되면 돌무지가 흘러내려 덮어버리기 때문에
처음 장례를 치룬 모습이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남아있게 됩니다.
신라의 황남대총이 만들어진 시기에 고구려와 백제에는 돌을 쌓아 만든 돌무지무덤이 만들어졌습니다.
삼국의 무덤형태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조금씩 변화되었습니다.
고구려의 돌무지무덤(중국 집안, 장군총) / 백제의 돌무지무덤(서울 석촌동)
돌무지 : 돌을 쌓아 만든 둔덕 덧 널 : 관을 감싸는 방으로 ‘곽(槨)’이라고도 부른다. 껴묻거리 :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물건들 |
2.곱은옥과 금관장식
황남대총에서 매우 많이 매달린 장신구가 발굴되었습니다.
금관, 금귀걸이,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허리띠 등등 ⋯⋯
그 중에서 북분에서 발견된 신라의 금관을 살펴보면
3개의 맞가지모양( )과 2개의 엇가지모양( ) 장식이 세워져 있고,
생명을 상징하는 곱은옥이 매달려 있어 아주 화려합니다.
금관 / 곱은옥
곱은옥이 매달려 있는 또 다른 유물로 허리띠와 목걸이 등이 있습니다.
허리띠에는 다음과 같은 드리개들이 있는데 각각의 드리개는 당시 왕이나 제사장이 맡았던 여러 가지 일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 북분 출토 허리띠(여자) : 곱은옥, 용무늬, 작은칼모양, 물고기모양 등 - 남분 출토 허리띠(남자) : 곱은옥, 물고기모양, 손칼모양, 수실모양 등 |
북분 허리띠드리개(위) / 남분 허리띠드리개(아래)
전시실에는 금관 외에도 금동관, 고깔 형태의 관(모관)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금동관은 구리에 금을 도금하여 만들어진 관으로 남분에서 발견된 금동관이 대표적입니다.
고깔 형태의 관은 관 안에 넣은 속심과 관을 덮고 있던 비단이 모두 없어지고,
장식만 남아있는 것으로 날개모양 관 꾸미개를 꽂아 더욱 화려하게 착용했다고 합니다.
- 금동관
- 금동관
- 은관
전시실에서 금관에 매달린 장신구를 잘 살펴보고 스스로 금관을 만들어봅시다.
- 금관을 만드는 방법 ① 머리에 맞게 관테 크기를 조절한다. ② 5개의 세움장식을 관테에 붙인다. ③ 5개의 곱은옥을 금사를 사용하여 세움장식의 적절한 위치에 매단다. |
3. 저승길에 드실 밥상
황남대총 남분에서 네 개의 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항아리 안에는 작은 그릇과 각종 동물의 뼈, 물고기뼈, 조개껍데기 등은
죽은 자에게 마지막으로 바친 제사음식으로 생각되어집니다.
무덤을 쌓으면서 제사를 지내고 사용했던 제사용품과 음식들을 항아리에 넣어 묻어두었던 것이지요.
항아리에 담긴 동물의 뼈 - 소, 말, 바다사자, 닭, 꿩, 오리가 있는데 그중에 닭이 가장 많았습니다.
특히 뼈는 조각나 있었는데 이는 음식으로 조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물고기와 조개껍데기도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식물성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들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음 뼈의 모습을 관찰하고 어떤 동물이었을지 찾아 연결해 보세요.
닭뼈 - 거북이뼈 - 물고기뼈.
4. 고구려, 실크로드, 중국 그리고 일본
황남대총에는 고구려, 중국, 일본에서 온 물건들과 함께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물건들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고구려에서 직접 전해진 ①청동그릇과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②말갖춤들,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생각되는 ③은잔 ④흑갈유병,
주로 물건을 만드는 재료로써
일본에서 온 ‘이모가이’라고 불리는 ⑤고동 ⑥야광패가 있습니다.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⑦⑧유리그릇은 최상의 교역물품이었기에
망가지면 귀금속으로 수리할 정도였습니다.
다음 세계지도에 전시실에서 해당되는 유물을 찾아
어느 나라와 관련 있는 유물인지 연결해 보세요.
①청동그릇 ②말갖춤 ③은잔 ④흑갈유병 ⑤고동 ⑥야광패 ⑦유리그릇 ⑧유리그릇
5. 화려한 말의 모습
말갖춤을 만들 때 비단벌레의 어느 부분을 사용했는지 알아봅시다.
가야, 고구려에서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말갖춤과, 신라의 말갖춤을 비교하여 봅시다.
황남대총에는 화려한 말갖춤들이 발견되었는데,
바로 ‘마립간’을 위해 비단벌레를 사용하여 만든 말갖춤들입니다.
비단벌레의 색깔이 천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반짝이고 있습니다.
말갖춤은 기본적으로 재갈을 비롯하여, 말띠드리개(행엽)와 안장, 발걸이(등자) 등이 한 벌을 이루고 있습니다. |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
황남대총 남분(왕의 무덤) 부곽에서 출토된 말안장의 뒷가리개(後輪)이다.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는 목심 2개를 접합한 뒤 그 위에 백화수피 2겹 정도를 깔고
금동의 맞새김판 아래에 그 위에 세로 방향으로 비단벌레 날개를 촘촘히 깔아 붙였다.
그 위에 금동 맞새김판을 덮고 테두리를 감싸 못으로 고정하였다.
황금빛과 비단벌레 특유의 영롱한 초록빛이 화려하게 서로 어울리는 최상의 공예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장식법은 매우 드문 것으로 신라시대 최상위의 계층만을 위해 사용한 기법이었다.
비단벌레로 장식한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는, 1975년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이래
보존을 위하여 수장고 내에서 빛과 차단된 채 높은 순도의 글리세린 용액 속에 보관되어 있다.
비단벌레의 날개는 빛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건조한 상태가 되면 색깔이 변하기 때문.
따라서 학계의 연구를 위한 제한적인 열람 이외에는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이번 특별전(2010년 12월14일-2011년 2월6일 "통일신라 능묘 특별전
- 황남대총 / 신라王, 왕비와 함께 잠들다)을 계기로 글리세린 용액에 담겨 있는 상태 그대로
조도를 낮추어(80럭스 이하) 3일 동안만 일반에 공개하기로 하였다.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 복원품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비단벌레 장식 말안장 뒷가리개 복원품이다.
1,000 마리분의 비단벌레 날개가 소요되었다. 비단벌레는 환경부 지정 보호야생동식물 중의 하나로서
국내에서 충당하기 어려웠으나, 일본에서 사육에 성공한 비단벌레의 기증을 바탕으로
최광웅(금속공예가)에 의해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안장(복원)/ 재갈/ 발걸이(=등자, 복원)/ 말띠드리개(=행엽, 복원)
6. 유물에 새겨진 글자
황남대총에는 금, 은 등으로 만들어진 허리꾸미개가 많이 출토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북분에서 발굴된 은으로 만든 허리띠꾸미개에는
“부인대(夫人帶)”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이 무덤의 주인공이 여성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유물에 새겨전 글씨는 무덤의 주인공을 알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음 유물의 동그라미 속에 지워진 글자가 있어요.
어떤 내용인지 전시실에서 찾아 자세히 관찰해보고 똑같이 써 보세요.
부인(夫人) : 다른 사람의 아내를 높에 부르는 말인데, 이 시기에는 ‘왕비’를 뜻합니다. 대(帶) : 허리띠 |
한편 남분에는 “환두대도”라는 큰 칼이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공은 남성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귀걸이와 허리띠에 매다는 드리개를 통해서도 성별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고리가 가는 귀걸이는 남성, 굵은 것은 여성이 착용했다고 합니다.
허리띠의 드리개도 남성은 왼쪽다리에, 여성은 오른쪽다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게재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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