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시관 안내

Gijuzzang Dream 2010. 9. 17. 14:00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재지 : 전남 목포시 용해동 문화의 거리 내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1975년 신안 보물선이 발견되면서 비롯된 전시관은

1981년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한 대형 무역선을 보존하기 위해 목포 보존처리장이 설립됐고,

1994년 문을 열었다. 국내에서 유일한 '수중고고학박물관'이다.

 

전시관에는 한반도 주변 특히 서남해안 바다 밑에서 발굴된 화물선의 잔해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도자기류나 생필품들을 싣고 연안을 오가던 고려시대 국내 배들과

중국~한국~일본을 오가던 중국 배가 남긴 수중 문화유산들이다.

수중문화유산이란 바다나 호수 · 강 · 늪지 등에 잠겨 있다가 발굴된 인류의 흔적을 말한다.

세계 각국의 바다와 호수 밑에선 이른바 보물선으로 불리는 가라앉은 배들이 발견돼

숱한 수중문화유산들을 발굴해 왔다.
 
대표적인 수중문화유산으로 9~10세기 노르웨이의 바이킹선, 12세기의 중국 난하이 1호,

12세기의 송대 해선, 16세기의 영국 메리로스호, 17세기에 발견된 스웨덴의 바사전함,

20세기초 영국의 타이타닉호 등이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문화재가 발견된 지역은 230여곳에 이르고,

이 가운데 15곳에서 대대적인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그동안 8척의 옛 선박이 발견돼 배의 잔해와 함께 9만여 점에 이르는 해양문화재를 건져 올렸다고 한다.

해양문화재연구소는 목포시 용해동 바닷가의 천연 조각품 갓바위 부근 남농로에 있다.

갓바위는 바위가 오랜 세월 바닷물에 씻기고 부서지면서 생긴, 갓을 쓴 사람 모양의 두 개의 바위다.

2009년 천연기념물 500호로 지정됐다.

갓바위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쐬며 계단을 통해 전시관 입구로 오른다.

 

먼저 정문 옆쪽 광장에 전시된 거대한 닻을 만난다.

전통 새우잡이 배인 멍텅구리배가 바다에 정박할 때 내리던 닻 모형이다.

멍텅구리배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 붙여진 이름이다.

 

서남해와 영산강이 만나는 바닷길 옆 터에 자리잡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시관은

6개의 실내전시실과  다양한 우리나라 전통배들을 전시한 야외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제 1 전시실 : 고려시대 청자 보물선과(완도선) 생활 문화  

제 2 전시실 : 중국 무역선과 동아시아 해상교육 문화(신안선 : 중국무역선) 

제 3 전시실 : 어촌민속 전시실 - 우리 어촌의 생활문화

                     <자산어보(조선시대 지어진 최초의 해양수산 생물지)>에 기록된 해양생물들    

제 4 전시실 : 우리나라의 전통배(고대 고기잡이 배부터 근대의 고기잡이 배등 변천사)

기획 전시실 : 특별기획 전시(특별전)

어린이 해양문화 체험관 : 어린이들을 위한 해양문화 체험

        : 선사시대 바위그림(울주반구대 암각화), 전통 배짓기와 항해체험 등 


  

1전시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말 그대로 목포 인근 해역에서 건져 올린 유물만을 모아 전시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의 대표유물은 선박이 주를 이룬다. 또한, 이곳에는 두 척의 배가 복원 전시돼 있는데,

이는 11세기 고려시대 배인 완도선과 14세기 중국의 무역선이었던 신안선이다.

 

수중문화재 일반과, 국내 연안에서 발굴된 옛날 배와 발굴 유물들에 대한 총괄적인 내용을 살펴본 뒤

완도선을 비롯한 국내 연안 해저 유물들을 둘러본다.

바다 밑에서 목선 일부와 유물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된 데는 갯벌에 파묻힌 상태에서

장기간 산소 공급이 차단됐기 때문이며 수중문화재는 선박 건조기술 발달과정과

각 계층의 생활문화를 함께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특히 완도선은 우리 전통의 바닷배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완도선은 11세기말~12세기초 고려시대 도자기 운반선으로,

강진과 해남 산이면 일대 가마에서 만들어진 청자들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던 중

완도 해역에서 침몰한 청자 보물선이다.

배의 이물(앞부분)과 고물(뒷부분)은 유실됐고 배 밑바닥과 옆부분 일부 목재가 남아

전체 윤곽을 짚어볼 수 있다. 길이 약 9m, 너비 3.4m, 적재중량 약 9t의 목선으로 추정된다.

주로 소나무나 참나무 계통의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완도선에선 청자연판문통형잔ㆍ청자철회모란당초문장고 등 청자류와 함께

나무 함지, 쌀을 담아두던 항아리, 시루, 숫돌, 나무망치 등 선원들이 썼던 도구들도 발굴됐다.

3만701점의 유물이 실려 있었다.

또 보령 원산도 바다에서 발굴된 향로와 연적 등도 볼 수 있다.

보령 앞바다에선 완제품은 드물고, 주로 깨진 그릇 조각들이 발굴됐는데,

조각을 맞춰 보면 매우 아름다운 청자류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태안반도 앞바다에서 발굴된 제작연도가 새겨진 그릇들도 눈길을 끈다.

‘기사(己巳)’란 간지명이 상감기법으로 새겨진 청자들이다.

청자국화무늬 기사명 대접, 청자구름 · 학무늬 기사명 대접, 청자국화무늬 기사명 접시 등인데,

이는 1329년 제작된 것임을 뜻한다.

제2전시실

신안선과 그 유물들을 전시했다.  

마르코폴로와 이븐 바투타 등 서양 여행가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중세 중국의 원거리 항해 무역선인 신안선은

잔존 유물의 규모만도 길이 28.4m, 깊이 3.66m에 이르며 3개 층을 전시관으로써 활용할 만큼 거대하다.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신안선은 1323년 여름 중국 경원(현재 영파)에서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난파된 무역선이다. 길이 약 34.8m, 너비 11m에 이르는 200 t급 대형 목선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일본 교토의 절 동복사였다고 한다.

이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중국인 선원들과 일본인 무역상 또는 그 대리인으로 추정된다.

항해 시기나, 이동로 등은 배에 실려 있던 동전들과 중국 연호가 기록된 화물표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배에선 중국 신나라에서 원나라에 이르는 동안 통용된 동전 29t, 약 8백만개가 나왔고,

1만2천여 점의 청자류, 5천여 점의 백자류, 7백여 점의 금속제품 등이 쏟아져 나왔다.

무역품의 주인 또는 대리인의 이름과 물품명 등이 적힌 목패(목간),

선원들이 쓰던 숫돌 · 벼루 · 빗 · 주사위 · 장기 등도 발굴됐다.

무엇보다도 정교한 무늬들로 장식된 청자류와 공예품, 금속유물들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중국에서 생산된 물품이 중심이지만, 고려 청자류와 일본 도자기들도 함께 실려 있었다.

14세기 중국의 모란무늬 꽃병과 연꽃무늬 백자, 13~14세기 고려의 청자사자모양 연적,

일본 세토 도자기 등이 대표적이다.

소를 탄 아이 모양의 연적이나 소 모양의 청자 연적, 청동 저울추 등도 아름답다.
 
신안선에선 향료와 각종 약재, 후추, 계피 등과 과일, 각종 씨앗들도 발굴됐다. 최근의 것들처럼 생생하다.

배 밑바닥에서 나온, 각종 글씨와 기호가 새겨진 목재 가공물 자단목도 관심을 끈다.

배 맨 밑바닥에 무려 1천여 개가 실려 있었다고 한다. 자단목은 주로 가구를 만들 때 쓰던 고급 목재다.

 

2층에는 어촌민속실과 선박역사실이 있다.

3전시실 어촌민속실

조선시대 실학자인 정약전이 쓴 국내 수산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내걸어,

‘새로운 자산어보를 찾아서’란 주제로 전시실을 꾸몄다.

홍어 · 낙지 · 조기 · 전복 · 소금 · 젓갈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4전시실 선박사실

우리 전통 배인 한선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5세기 가야시대의 배 모양 토기에서부터, 장보고의 무역선 복원도, 거북선, 조선통신사선 등의 모형이

전시돼 있다. 1995년 발굴된 달리도 배 모형도 볼 수 있다.

 

지하 기획전시실

그때그때 새로운 주제의 전시회가 열린다.  
해변전시장에선 신안 가거도배, 남해의 통구마니배, 동해의 목선, 멍텅구리배 등 여러 배의 모형과

개막이 · 덤장 · 죽방렴 등 전통 고기잡이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주말에 점심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누워 있자니, 잠결에 아들 녀석 방에서 무슨 음악소리가 새어 나온다.

최근 새롭게 국립해양유물전시관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보니,

어디 ‘바다’라는 단어만 나와도 귓가에 걸려 들어온다.
노랫말처럼 과연 파도와 바다 속에 묻혀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부임하면서,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던 바다 속의 유물들을 눈과 머리에 담느라

동분서주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커다란 배들과 셀 수없이 많은 도자기들이 나를 압도하고 있어,

이것들이 바다 속에 담겨져 있는 모든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좁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드넓고 파란 바다가 품고 있는 것이 침몰선과 도자기뿐이겠는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박물관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국민들을 위한 가장 큰 서비스는 무엇보다도 전시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의 전시는 4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특별전시실 야외전시에서 이루어진다.

1전시실(한국의 수중문화재)과 2전시실(동아시아 해상교역과 신안선)에는 완도선과 신안선,

해저에서 출토된 도자기, 선상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완도 어두리 해저 출토의 고려 11세기 한선- 완도선


군산 십이동파도 해저 출토의 고려청자유병들


신안선이나 완도선 같은 선박들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들이다.

물론, 해저에서 출토된 도자기가 이렇게 다량으로 전시되는 곳 역시 이 곳 밖에 없다.

이 선박과 도자기들이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서는 알 수 없는 다양한 사실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아직 도자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를 바 없어서

도자기 자체 보다는 그것을 포장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군산 십이동파도에서 발견된 도자기 꾸러미들은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우리 선조들의 도자기 포장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신안선을 통해 확인되었던 중국의 도자기 선적방식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같은 형태의 도자기를 한꺼번에 여러 개 포장하여 선적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가

바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셈이다.


군산 십이동파도 해저 출토 고려청자의 포장상태


신안선 출토 중국도자기 포장 상자


 

2층의 3전시실(어촌민속실)에 들어서면 친숙한 유물들이 보인다.

어촌민속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3전시실은,

바다 속에서 건져 낸 유물들은 아니지만, 진정한 의미에 “해양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바다에서 살아가기 위한 바다사람들의 생활 지식들이 바다에 담겨 있고,

이를 통해서 과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어장과 어로도구들이 있다.

어로도구들은 잡고자하는 해양동식물의 생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제작되어 있어

볼수록 신기하고 그 생활의 지혜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또 다른 쪽에는 민속신앙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배서낭이나 띠배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바다에서 생업을 하는 사람들의 애환과 믿음이 묻어난다.

아마도 1, 2전시실에 있는 완도선이나 신안선에 탑승했던 선원들도 무사귀환을 바라며,

띠배를 띄어 보냈을지도 모른다.


 

4전시실에는 선박의 역사를 모형을 통해서 간단하게 정리하여 보여주는데,

간단해보이지만,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당한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3실과 4실의 전시는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의 야외 곳곳에 재현되어 있어,

관람객들에게 보다 쉽고 친근하게 소개하고 있다.

 

바다에는 침몰선과 도자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지혜와 삶, 그리고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러한 바다의 역사가 국민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양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들이 만들어지는데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2층 난간에서 바라보는 넓은 창으로 재현한 죽방렴과 덤장이 보인다.



- 류춘규,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전시홍보과장

 2007-07-27 문화재청, 문화재칼럼

 

 
 

 
 
 

세월이 숨긴 배 · 돈 · 공예품 등 흔적 고스란히

고려시대 한-중-일 생활문화와 교역 한눈에

 

  국립 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
  개   관 : 1994년
  위   치 : 전남 목포시 용해동
  관람시간 : 오전 9시~오후 5시
  휴관일 : 월요일
  전   화 : (061)27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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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 박물관이다.

바다에서 발생한 선박 사고. 화물을 싣고 거친 바다와 겨루며 항해하다 끝내 수장되고 만 배와

그 유물들이 주인공이다.
물살에 닳고 펄에 삭아 요점만 간추려진 유물들이 수백년 세월을 뛰어넘어 다가와 말을 걸어온다.
부러진 수저와 깨진 밥그릇들, 그리고 삭아 문드러진 갑판 나무판자엔 선원과 그 가족의 눈물이 묻어 있다.
캄캄한 바다 밑에서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여 한 서린 유물들이다.
배와 화물, 뱃사람들의 생활용품, 눈부시게 아름다운 공예품, 무역상들의 거래 내역 등이

생생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난파선 박물관으로 간다.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해양유물전시관이다.
 

연안 230 곳 수중문화재 발견 …배 8척 등 9만 점 건져 올려 

전시관엔 한반도 주변 특히 서남해안 바다 밑에서 발굴된 화물선의 잔해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도자기류나 생필품들을 싣고 연안을 오가던 고려시대 국내 배들과
중국~한국~일본을 오가던 중국 배가 남긴 수중 문화유산들이다.
수중문화유산이란 바다나 호수 · 강 · 늪지 등에 잠겨 있다가 발굴된 인류의 흔적을 말한다.
세계 각국의 바다와 호수 밑에선 이른바 보물선으로 불리는 가라앉은 배들이 발견돼
숱한 수중문화유산들을 발굴해 왔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문화재가 발견된 지역은 230여 곳에 이르고,
이 가운데 15곳에서 대대적인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그동안 8척의 옛 선박이 발견돼 배의 잔해와 함께 9만여점에 이르는 해양문화재를 건져 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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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유물전시관은 목포시 용해동 바닷가의 천연 조각품 갓바위 부근 남농로에 있다.

갓바위는 바위가 오랜 세월 바닷물에 씻기고 부서지면서 생긴, 갓을 쓴 사람 모양의 두 개의 바위다.

2009년 천연기념물 500호로 지정됐다.

갓바위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쐬며 계단을 통해 전시관 입구로 오른다.

먼저 정문 옆쪽 광장에 전시된 거대한 닻을 만난다.

전통 새우잡이 배인 멍텅구리배가 바다에 정박할 때 내리던 닻 모형이다.

멍텅구리배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 붙여진 이름이다.
 


1전시실에선 수중문화재 일반과, 국내 연안에서 발굴된 옛날 배와 발굴 유물들에 대한

총괄적인 내용을 살펴본 뒤 완도선을 비롯한 국내 연안 해저 유물들을 둘러본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김병근 학예연구사는

“바다 밑에서 목선 일부와 유물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된 데는 갯벌에 파묻힌 상태에서

장기간 산소 공급이 차단됐기 때문”이라며 “수중문화재는 선박 건조기술 발달과정과

각 계층의 생활문화를 함께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향료와 약재, 과일과 씨앗 등 최근의 것처럼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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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선은 11세기말~12세기초 고려시대의 배로,

강진과 해남 산이면 일대 가마에서 만들어진 청자들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던 중

완도 해역에서 침몰한 청자 보물선이다.

배의 이물(앞부분)과 고물(뒷부분)은 유실됐고 배 밑바닥과 옆부분 일부 목재가 남아

전체 윤곽을 짚어볼 수 있다. 길이 약 9m, 너비 3.4m, 적재중량 약 9t의 목선으로 추정된다.

주로 소나무나 참나무 계통의 나무로 이뤄져 있다.

완도선에선 청자류와 함께

나무 함지, 쌀을 담아두던 항아리, 시루, 숫돌, 나무망치 등 선원들이 썼던 도구들도 발굴됐다.
 
또 보령 원산도 바다에서 발굴된 향로와 연적 등도 볼 수 있다.

보령 앞바다에선 완제품은 드물고, 주로 깨진 그릇 조각들이 발굴됐는데,

조각을 맞춰 보면 매우 아름다운 청자류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태안반도 앞바다에서 발굴된 제작연도가 새겨진 그릇들도 눈길을 끈다.

‘기사(己巳)’란 간지명이 상감기법으로 새겨진 청자들이다.

청자국화무늬 기사명 대접, 청자구름·학무늬 기사명 대접, 청자국화무늬 기사명 접시 등인데,

이는 1329년 제작된 것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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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전시실에는 신안선과 그 유물들을 전시했다.

신안선의 오롯하게 남아있는 목재는 우현과 좌현 일부분이다. 선형구조물이 실제 배의 크기다.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신안선은

1323년 여름 중국 경원(현재 영파)에서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난파된 무역선이다.

길이 약 34.8m, 너비 11m에 이르는 대형 목선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일본 교토의 절 동복사였다고 한다.

 

이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중국인 선원들과 일본인 무역상 또는 그 대리인으로 추정된다.

항해 시기나, 이동로 등은 배에 실려 있던 동전들과 중국 연호가 기록된 화물표 등을 통해 드러났다.
 
이 배에선 중국 신나라에서 원나라에 이르는 동안 통용된 동전 29t, 약 8백만개가 나왔고,

1만2천여 점의 청자류, 5천여 점의 백자류, 7백여 점의 금속제품 등이 쏟아져 나왔다.

무역품의 주인 또는 대리인의 이름과 물품명 등이 적힌 목패(목간),

선원들이 쓰던 숫돌 · 벼루 · 빗 · 주사위 · 장기 등도 발굴됐다.

무엇보다도 정교한 무늬들로 장식된 청자류와 공예품, 금속유물들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중국에서 생산된 물품이 중심이지만, 고려 청자류와 일본 도자기들도 함께 실려 있었다.

14세기 중국의 모란무늬 꽃병과 연꽃무늬 백자, 13~14세기 고려의 청자 사자모양 연적,

일본 세토 도자기 등이 대표적이다.

소를 탄 아이 모양의 연적이나 소 모양의 청자 연적 등, 청동 저울추 등도 아름답다.
 
신안선에선 향료와 각종 약재, 후추, 계피 등과 과일, 각종 씨앗들도 발굴됐다. 최근의 것들처럼 생생하다.

배 밑바닥에서 나온, 각종 글씨와 기호가 새겨진 목재 가공물 자단목도 관심을 끈다.

배 맨 밑바닥에 무려 1천여개가 실려 있었다고 한다. 자단목은 주로 가구를 만들 때 쓰던 고급 목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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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 상인들이 사용하던 물통, 밥그릇, 그물바늘

 

정약전의 자산어보 본받아 전시한 갯것에 얽힌 이야기 재미도 쏠쏠

 

2층에는 어촌민속실과 선박역사실이 있다.

3전시실 어촌민속실은 조선시대 실학자인 정약전이 쓴 국내 수산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내걸어,
‘새로운 자산어보를 찾아서’란 주제로 전시실을 꾸몄다.
홍어 · 낙지 · 조기 · 전복 · 소금 · 젓갈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4전시실 선박사실에선 우리 전통 배인 한선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5세기 가야시대의 배 모양 토기에서부터, 장보고의 무역선 복원도, 거북선, 조선통신사선 등의 모형이
전시돼 있다. 1995년 발굴된 달리도 배 모형도 볼 수 있다.

 
 

지하 기획전시실에선 그때그때 새로운 주제의 전시회가 열린다. 
 
해변전시장에선 신안 가거도배, 남해의 통구마니배, 동해의 목선, 멍텅구리배 등 여러 배의 모형과
개막이 · 덤장 · 죽방렴 등 전통 고기잡이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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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글·사진 이병학  기자

 

 

 

***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관장 성낙준)이 2009년 4월 27일자로

     기관명칭을「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로 변경하였다.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www.seamuse.go.kr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주변

 

포 갓바위(천연기념물 제500호)



 

갓바위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는 바위 이름이다.

 

입암산(笠岩山)은 높이 120m의 갓을 쓰고 있는 바위 이름이 갓바위가 있어 갓바위산이라고도 한다.

갓바위는 예로부터 '입암반조(笠岩返照 - 저녁노을 물든 갓바위의 풍경)'라 하여

저녁노을에 물든 바다와 입암산 절벽에 반사되는 노을빛의 아름다움은 목포팔경(八景) 중 하나였다.

 

갓바위는 영산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곳이다.

파도가 치거나 안개가 끼면 표면이 연분을 함유한 물에 젖었다가 마르기를 수없이 되풀이 한다.

수분에 녹아있는 실리카성분이 암석표면으로 이동된 후 거기에 침전되면서

딱딱한 바위의 표면을 형성하고 용해된 부분은 조직이 이완되고 강도가 낮아져

쉽게 풍화되어 멍이 생긴 것이다.

모자모양의 경질부와 아래쪽 움푹 패인 벌집 모양의 풍화혈이 형성되었다.

삿갓이 동남쪽을 향한 것은 햇볕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갓바위는 인위적인 요인이 전혀 작용하지 않고

오랜 세월 자연적인 과정에서 빚어진 풍화혈(風化穴 : tafoni) 상태의 자연 조각품으로

파도 · 해류 등에 의해 바위가 침식되는  해식작용과 

암석이 공기· 물 등의 풍화작용의 영향으로 어떻게  해식, 풍화되어 변화되어 가는지 잘 보여주며

다른 지역 풍화혈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성을 가지고 있어

지질학적 가치가 크고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자연학습장이다.

자연 ·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4월 27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500호로 지정되었다.  

 

- 전설

한 쌍의 바위에는 전설이 여럿 전해 내려온다.

아주 먼 옛날에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소금을 팔아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살림살이는 궁핍하였지만, 아버지를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착한 청년이었다.
아버지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부잣집에 머슴살이로 들어가 열심히 일했으나

주인이 품삯을 주지 않아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의 손과 발은 이미 식어있었다.

젊은이는 한 달 동안이나 병간호를 못한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저승에서나마 편히 쉴 수 있도록

양지바른 곳에 모시려다 그만 실수로 관을 바다 속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효를 통회하며 하늘을 바라 볼 수 없다며 갓을 쓰고 자리를 지키다가 죽었는데,

훗날 이곳에 두개의 바위가 솟아올라

사람들은 큰 바위를 '아버지바위'라 하고 작은 바위를 '아들바위'라고 불렀다.

또는, 부처님과 아라한(번뇌를 끊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성자)이 영산강을 건너 이 곳을 지날 때 

잠시 쉬던 자리에 쓰고 있던 삿갓을 놓고 간 것이 바위가 되어

이를 '중바위(스님바위)'라 부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해상보행교
 
오르락 내리락 바다에 띄운 다리.. 목포 갓바위 보행교

  

목포시에서는 갓바위를 해상에서 직접 조망할 수 있는 보행교를 바다위에 설치하였다.

이 다리는 2008년 4월 10일 개통하였다. 총연장 298m, 폭 3.6~4.6m의 물 위에 떠있는 보행교는

밀물 땐 약 1m 정도 왔다가 썰물 땐 바닷물을 따라 내려간다.

목교 118m, 도교40m, 부잔교140m, 난간 등 부대공사와 보행교의 야간경관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갓바위 앞 해상보행교가 개통됨에 따라 갓바위를 해상에서 직접 볼 수 있게 되어

하당 평화광장으로 연결되어 해안도로를 따라 산책하기에도 그만이다.

단, 갓바위보행교는 태풍, 호우, 폭설, 안개 등의 기상악화 시에 출입이 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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