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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정명(正名)

Gijuzzang Dream 2009. 12. 21. 18:28

 

 

 

 

 

 

 한국전쟁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정명(正名)


 

 

 

 

박태균(현대사 분과)


 

 

이 영화의 제목을 왜 ‘태극기 휘날리며’로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다분히 눈치를 본 것이 아닌가 싶다. 참여정부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분명 정부의 눈치를 본 것은 아닐테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몰려드는 누군가의 눈치를 본 것인가? 어쩌면 영어 제목은 ‘형제애(brotherhood)’가 더 좋은 제목이었을 것도 같다.

 

그만큼 이 영화의 초점은 한국전쟁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해서 형제애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제목을 ‘태극기 휘날리며’라고 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성공한 영화이며, 훌륭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사진 1> ‘태극기 휘날리며’ 포스터(출처: 씨네21홈페이지 http://www.cine21.com/)

 

마지막에 관객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으니 말이다. 부끄럽게도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아마 장동건이 찍은 영화 중 ‘친구’와 함께 가장 많은 관객이 든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장동건이 가장 많은 ‘대사’를 한 영화가 아닌가 한다.) 영화의 곳곳에 나타나는 가부장적인, 그리고 쓸데없이 이데올로기적인 부분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러나 제목이 ‘태극기 휘날리며’라고 되자마자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한국전쟁을 기억하고자 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한국전쟁에 대한 전문가들과 만나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필자는 한국전쟁 전문가가 아닌가보다. 영화가 나온 이후에서야 감독과 만났으니까. 그런 의미로 본다면 영화비평가?) 그리고 영화의 곳곳에서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애쓴 흔적이 보인다.

 

어떤 장면들은 기존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국전쟁의 중요한 부분들을 드러내고 있다. 강제로 징집되는 장면이나 부역자 처벌 장면, 그리고 고지전투의 모습은 기존의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부분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흑수선’ 등 기존 한국전쟁 영화들과는 달리 전쟁의 모습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 2> ‘태극기 휘날리며’ 중 한 장면(출처: 씨네21홈페이지 http://www.cine21.com/)
  
‘흑수선’이 포로 문제를 처음으로 다루었다면, 이 영화는 부역자 문제, 보도연맹 문제를 처음으로 다룬 영화라고 생각된다. (당시 보도연맹이나 부역자 문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수가 10만명을 넘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가족들 중에 이 문제와 관련되지 않은 가족은 거의 없을 것이다. 피해자가 되었든, 가해자가 되었든.)

 

물론 이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옥의 티도 있다. 가장 큰 옥의 티는 초기 피난 장면이다. 많은 증언에 의하면 전쟁 초기에 서울에서 피난 간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정부의 주요 요직에 있었던 사람이거나 공무원이 아니면 거의 피난을 가지 않았다. 아니 시간상으로 볼 때 피난을 갈 수 없었다. 특히 이승만은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방송을 했고, 한강교가 끊어졌는데 어떻게 피난을 갈 수 있겠는가? (물론 피난을 가지 않은 사람들은 결국 ‘비도강파’로 몰려서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장동건과 원빈의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초기에 피난을 가야만 하는 가족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좀 더 사실적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오히려 인민군 치하에서 두 사람이 인민군에 편입되었다가 포로가 되어서 반공포로로 열심히 싸우거나, 중간에 탈출을 해서 한국군에 다시 편입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설정이 되었을 수 있다.

 

실제로 인민군에 편입되었다가 포로가 되었던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일부는 자진해서 편입되었겠지만, 많은 수의 사람들은 친구 따라 강남 가다가 인민군이 되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으로 한반도의 허리가 끊기자 낙동강 전선에 있었던 군인들은 ‘오리알’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많은 수가 포로가 되었다.

 

문제는 정전협상 과정에서 이들 포로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1949년에 체결된 제네바 협약에 의하면 포로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무조건(forcibly) 송환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전쟁에서 문제가 생겼다.

 

포로들을 모두 무조건 돌려보내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민군에 편입된 남한 출신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그나마 공산주의가 좋다고 들어간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고 친구 따라서 들어갔던 사람들을 북한으로 보낸다면 그것은 비인도적인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이 북한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실제로 문제가 된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포로 교환을 위한 협상을 하다보니까 유엔군이 잡고 있는 포로가 북한군이 잡고 있는 포로의 10배가 넘었다. 유엔군의 입장에서는 이건 손해 보는 장사다. 그래서 유엔군은 여러 가지로 잔머리를 굴렸다. 1대 1 교환을 하자는 것이 그 잔머리의 결과였다. 그러나 남은 포로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제네바 협정이 한국전쟁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제네바 협정에 서명한 미국은 지키지 말자고 하고, 서명하지 않은 북한은 지키자고 하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 자유의지에 의한 송환으로 결정되었다. 갈 사람은 가고, 가지 않을 사람은 가지 말라고. 이 과정에서 반공포로가 생겼고, 정전협상은 2년을 끌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한국전쟁의 본질이었고, 이 기간 동안 이루어진 고지전투가 한국전쟁 기간 동안 일어난 가장 전형적인 전투가 되었다. (우리가 항상 보는 그림은 실제로 1년도 되지 않는 기간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고지 전투를 휘날레로 하는 이 영화는 전쟁의 성격을 어느 정도 잘 반영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우’를 잃은 줄 알고 남한에서 넘어간 ‘형’이 북한군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사실 과거에 ‘국군의 시간’ ‘배달의 기수’ 등에서 고지 전투는 신물나게 등장했었다. 문제는 고지 전투가지고는 흥행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영화의 감독은 역시 흥행의 귀재다. 민감한 이슈를 갖고 돈이 되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으니까. 쉬리도 그렇지 않았는가?)

 


<사진 3> ‘태극기 휘날리며’ 중 한 장면(출처: 씨네21홈페이지 http://www.cine21.com/)

 

‘태극기 휘날리며’는 의미있는 영화다. 그러나 이름을 제대로 했으면 더 의미있는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명(正名)이 필요한가 보다. 관객이 기대하는 것부터 달라지니까. 이제 한 발을 띠었으니까, 전쟁의 진실,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들이 더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 필진 : 박태균/ 등록일 : 2009-06-24

- 한국역사연구회, 2009년 인문학강좌 제12강

 

 

 

 

 

 

 

 

 

 

 

- "태극기 휘날리며"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