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한국인의 조상 / 일본인의 조상

Gijuzzang Dream 2009. 12. 12. 15:08

 

 

 

 

 

 

中→한반도→일본 민족이동 유전자로 밝혔다

 

HUGO 아시아지역 컨소시엄 73개민족 염색체 조사

 


일본인의 조상은 주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대규모 유전자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인간게놈연구회(HUGO) 아시아지역 컨소시엄은 한국 일본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 73개 민족의 염색체를

조사해 각 민족들의 이동 경로를 밝혀냈다고 10일 밝혔다.

이 연구는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11일자에 발표됐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자 비교나 아시아 민족의 이동 연구가 이번처럼 대규모로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이번 연구는 2004년부터 한국 싱가포르 중국 과학자들이 주도해 시작됐으며

본 필리핀 태국 등 모두 아시아 10개국 90여 명의 과학자가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국립보건원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숭실대 등이 참가했다.

 


● 일본인 주류 한반도에서 왔다


이번 연구는 호모 사피엔스, 즉 10만여 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한 현생 인류가

어떻게 아시아의 각 지역으로 퍼졌는지에 대한 것이다.

김형래 국립보건원장은 “각 민족의 염색체를 비교한 결과 중국에서 한반도, 다시 일본으로

인류의 이동 경로가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즉 현생 인류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한 뒤 다시 일본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다만 일본에 이미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과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 사이에서 ‘민족 융합’이 일어났을

수는 있다. 김 원장은 “컨소시엄에 참가한 일본인 과학자들도 이런 사실을 다 인정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당시 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염색체 분석을 맡았던 박종화 테라젠 바이오연구소장은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은 다른 민족과 비교했을 때 매우 닮았다”며

“연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인과 중국인의 차이가 5%라면 일본인과는 4.2%에 불과하며

유럽인과는 58%나 차이난다”고 말했다.

일본과 한국은 전체 인류 안에서는 형제라고 할 정도로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뜻이다.

한국인은 경기 안성과 안산시 주민 90명의 염색체를 분석했으며,

일본은 도쿄 오키나와 등에 사는 사람들을 조사했다.

 


●동남아 살던 인류 중국과 한국으로 북상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주제는 아시아 민족이 어떻게 이동하고 분화되었는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 인류는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간다.

대략 5만~6만 년 전 인도 북부에 도착한 이들은 험준한 티베트 고원을 피해 동남아시아로 이동한다.

인도차이나 반도 등에 정착한 아시아인 중 일부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비롯해

남태평양의 섬으로 이동하고, 다른 집단은 북쪽으로 향해 중국과 한국, 일본에 정착했다.

그동안 동아시아 민족의 남쪽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있었다.

인도 북부에 정착한 인류가 바로 동아시아로 왔다는 설과 먼저 동남아로 이동한 뒤

다시 동아시아로 이동했다는 가설이다. 김상수 숭실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두 번째 가설의 손을 들어준 셈”이라며

“그림만 놓고 보면 인류가 남쪽 해안을 따라 돌면서 한반도까지 온 셈”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증거로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동아시아 사람들보다 유전적으로 훨씬 다양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만큼 동아시아 사람들이 최근에 분화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북방계 민족의 이동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완의 연구라는 지적도 있다.
컨소시엄에 몽골 등 중앙아시아와 북아시아 연구진들이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다른 연구를 보면 현생 인류 일부가 북쪽으로 이동해 동아시아로 온 것도 맞을 것”이라며
“한국인은 남쪽과 북쪽에서 온 인류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서는 말레이시아 북부와 필리핀 등에 아프리카 흑인과 유전자를 많이 공유하는
흑인 계열의 민족이 있다는 사실도 새로 밝혀냈다. 또
 언어를 공유하는 민족이 대체적으로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종영 국립보건원 형질연구과장은
“민족 간의 유전자 차이를 알면 특정 민족에게 잘 듣는 신약을 개발하는 등
이번 연구를 맞춤 의약이나 법의학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 2009년 12월 10일

 

 

 

 

 

 

한국인의 핏줄, 누구와 더 가깝나?

     

중국은 국경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과거사를 자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 후 예상되는 국경분쟁을 막기 위해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심지어는 백제와 신라까지 자국의 역사에 포함시켜

그 안의 모든 민족을 중화민족이라고 규정하려는 것이다.

동북공정의 연구물인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속론’(2003년)에는

고구려인이 중국의 고대 국가인 은나라와 상나라의 씨족에서 분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인과 중국 한족은 혈연적으로 한 핏줄이란 얘기인데, 과연 그럴까?

2003년 단국대 생물과학과 김욱 교수는 동아시아인 집단에서 추출한 표본을 대상으로

부계를 통해 유전되는 Y염색체의 유전적 변이를 분석했다.

이 결과 한국인은 주로 몽골과 동, 남부 시베리아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전자 형,

그리고 동남아시아 및 중국 남, 북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전자형이 모두 발견되었다.

한국인은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 가운데서 동남아시아인인 중국 동북부 만주족과

유전적으로 가장 유사했고, 중국 묘족이나 베트남 등 일부 동남아시아인과도 비슷했다.

이는 한민족이 크게 북방계와 남방계의 혼합 민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2300여 년 전 농경문화와 일본어를 전달한 야요이족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 본토로 이주했음을 나타내는 유전학적 증거이기도 하다.


2006년 김 교수는 모계유전을 하는 미토콘드리아 DNA도 분석했다.

Y염색체가 아버지를 통해 아들에게만 전달되는 부계유전을 하는 것과 달리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머니를 통해 아들과 딸 모두에게 전달된다.

더욱이 미토콘드리아 DNA는 돌연변이율이 높고, 교차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 정보인 하플로타입 상태를 분석해

조상을 추적해 낼 수 있다.

하플로타입이란 일련의 특이한 염기서열이나 여러 유전자들이 가깝게 연관돼

한 단위로 표시될 수 있는 유전자형을 가리킨다.

하플로그룹은 같은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자형을 가진 그룹으로 보면 된다.

한국인은 3명 가운데 1명꼴로 몽골과 중국 중북부의 동북아시아에 많이 분포하는

하플로그룹D 계통이 가장 많았고,

전체적으로 한국인의 60% 가량이 북방계로, 40% 가량이 남방계로 분류됐다.

유전적인 분화 정도를 통해 분석한 결과,

한국인은 중국 조선족과 만주족 그리고 일본인 순으로 가까웠다.

그러나 중국 한족은 베트남과 함께 다른 계통에 묶여 한국인과는 유전적으로 다소 차이를 보였다.

동북아시아에 속한 중국 북경의 한족은 한국인과 다소 비슷한 결과를 보였지만

중국 남방의 한족과는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특히 만주족과 중국 동북 3성인 랴오닝(遼寧) · 지린(吉林) · 헤이룽장(黑龍江)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중국 한족보다는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더 가까웠다.

이 때문에 김 교수는 “과거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활동했던 고구려인의 유전적 특성은

중국 한족 집단보다 한국인 집단에 더 가깝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중국 한족을 물리치고 중원을 점령했던 금나라의 여진족(훗날 만주족)이

신라인의 후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금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금사(金史)에는

“금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를 비롯한 3형제의 후손이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금을 계승한 청나라의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루원류고>에는

금나라의 명칭이 신라 김(金)씨에서 비롯됐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한국인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해 보면
우리의 유전자가 누구와 가까운지 알 수 있다.
생명공학기업인 마크로젠이 소개한 한국인 유전자 지도 초안이다(동아일보 자료).


청나라 황실의 만주어성 ‘아이신줴뤄’ 중 씨족을 가리키는 아이신은 금(金)을 뜻한다.

이는 아이신줴뤄를 한자로 가차한 애신각라(愛新覺羅)에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자”는 뜻이

담겼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이런 결과로 볼 때 한국인의 유전자는 북방계가 다소 우세하지만

남방계와 북방계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섞여있다.

4000~5000년 동안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발달시키고

역사적인 경험을 공유하면서 유전적으로 동질성을 갖는 한민족으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만주에 살던 이들은 중국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발원한 한족과는 달리

한반도에 살던 이들과 깊은 혈연관계였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나아가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웠던 여진족과 만주족 역사를

한국사에 새로 편입시켜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 ‘단일민족’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단일민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유전적 동질성을 획득했다는 의미이지

한국인의 기원이 하나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인은 동아시아 내에서

남방과 북방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이뤄져 형성된, 다양성을 지닌 민족이다.

유전적으로 다양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집단 구성원이 갖고 있는 유전적 다양성이 세대를 통해 유지될 확률이 크다.

그리고 집단의 안정성도 높아진다. 다양한 유전자를 보유한 집단은

단순한 집단에 비해 집단이 유지되고 진화하는데 유리하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인은 ‘잡종강세’의 전형적인 집단이다.

어쩌면 중국이 동북공정을 서두르는 이유도 한국인의 유전적 다양성을 두려워해서가 아닐까?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 KISTI의 과학향기, 2009년 09월 11일

 

 

 

 

한-일 의학자 혈액분석해 이동경로 밝혀

 

 

한민족의 뿌리를 찾으려면 모랫바람 따가운 고비사막이나 바이칼호 부근 초원,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며 유적지를 찾아야만 할까?


디지털시대에는 실험실에서 혈액만 분석해도 뿌리를 얼추 알 수 있다.

최근 한일 의학자들은 두 국민의 백혈구에 붙어있는  ‘사람백혈구항원(HLA)’이 어떤 종류인지를

분석해 한민족과 일본민족의 이동경로를 밝혀냈다. 


 

2000년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골수이식 학회에서

가톨릭의대 김동욱교수와 일본 게이오대 오카모토 시나치로교수는

“양국 골수 기증자 17만여명의 HLA를 분석한 결과

‘그래픽 1’과 같이 각각 다른 HLA를 가진 몇 무리의 사람들이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 자리잡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어떻게 HLA를 이용한 이같은 분석이 가능할까.



▽HLA란?

세포에 ‘견장’처럼 붙어있어 다른 면역세포들이 그 세포가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구별토록

는 ‘표시 단백질’. 세포핵의 6번 염색체에서 만들어져 세포질을 거쳐 세포막에 둥지를 튼다.

이 HLA의 기능은 ‘정보 요원’과 비슷하다.



▽HLA의 종류와 민족

HLA는 크게 1, 2, 3형으로 구분된다.

각 유형에도 여러 꼴이 있으며 면역반응에선 1형의 A B C형, 2형의 DR DP DQ형이 큰 역할을 한다.

특히 백혈병 환자에게 피를 만드는 ‘조혈모(造血母)세포’를 이식할 때

공여자와 수여자의 1형의 A B형과 2형의 DR형이 일치하는지를 주로 본다.

A형은 144가지, B형은 266가지, DR형은 313가지 이상이 있다.

각기 다른 HLA는 자녀에게 유전되므로 HLA의 종류를 분석하면

민족의 단일성 여부와 이동경로를 알 수 있다.



▽어느 국민이 단일민족?

의학적으로는 한국인 대만인 일본인 가운데 일본인이 단일민족에 가장 가깝다.

단일민족임을 자랑하는 한민족은 두 번째, 대만인은 세 번째로 ‘순수 혈통’이다.

김교수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원하는 환자 1명이 전체 공여 등록자 가운데

최소 1명에게서라도 적합한 조혈모세포를 받을 수 있는 ‘이식 확률’을 분석하면

어느 쪽이 단일민족에 가까운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국내 골수 기증자 4만2000여 명, 일본 골수정보은행의 기증자 13만1000여 명,

대만 츠치(慈濟) 골수공여자 등록소의 기증자 17만8000여 명을 분석했다.

확률이 높을수록 단일민족에 가까운데 등록자가 많을수록 이식받을 확률이 높아지므로

세 나라 공여등록자를 12만명으로 똑같이 맞춰야 한다.

그 결과 한국은 70%, 일본은 80%, 대만은 50%가 나왔다.

 


▽의학적 의미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국내에서 HLA가 같은 공여자를 찾지 못할 때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공여자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김교수는 “98년과 99년 비혈연간 조혈모세포 이식을 원한 환자 287명을 분석한 결과

국내에서 공여자를 찾을 확률이 54.7%였고 일본에선 53.2%, 대만에선 18.2%였다”면서

“지금까지 일본인 19명, 대만인 8명의 골수가 국내 환자를 살렸다”고 밝혔다.



HLA 어떤 역할을 하나?

 

1. 침입자인 바이러스나 세균이 세포 안으로 침투한다.
2. 침입자가 분해된다.
3. 세포질의 화학적 변화에따라 세포핵의 유전자가 자극받으면 HLA가 만들어져 세포질로 나온다.
4. HLA가 분해된 침입자의 몸덩이를 잡아채서 세포막으로 이동한다.

5. 가슴샘(흉선)에서 만들어져 면역반응을 맡는 T세포에선 평소 HLA와 경첩처럼

짝이 맞도록 만들어진 'T세포수용체'가 HLA와 짝을 맞춰보고 '어 이상하네?'하는 반응을 보인다.

T세포의 수가 늘고 움직입이 기민해지며, 다른 면역물질을 동원하는 등 '전투태세'를 갖춰

침입자에 감염된 세포를 공격하거나 침입자를 직접 공격하도록 한다.


- 이성주 동아일보 기자, 2001년 05월 10일

 

 

 

 

 

 

바이칼湖서 빙하기 한민족 흔적 찾는다

 

 

한민족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해답을 한반도 내에서만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북방 아시아인과 언어 문화 뿐 아니라 생김새와 유전적 특징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뿌리를 찾으려면

국경은 물론 학문 간 장벽을 뛰어넘는 종합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 첫 시도로 우리나라의 유전학자, 의사, 지질학자, 고고학자, 민속학자 22명과

러시아 학자 4명이 8월 5일부터 8일까지

러시아 이르쿠츠크대에서 ‘동아시아 민족의 뿌리’를 주제로 세미나를 갖고

시베리아의 성소로 추앙되는 바이칼호를 답사했다.

동아사이언스는 서울대 내분비대사영양연구소,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 이르쿠츠크대가

공동 주최하고 (주)미토콘과 (주)SIS가 후원한 이 행사를 단독 동행 취재해 보도한다.

 

 

시베리아 최고의 성지인 바이칼호 내 올혼섬에서 바라본 호수와 불한 바위.
기후가 건조해 섬의 대부분이 초원이고 소를 방목한다. 

 

해외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거리에서 한국인을 한눈에 쉽게 알아보고 아는 척 한다.

그러나 비행기로 4시간 거리나 떨어진 바이칼호에서 맞부딪힌 시베리아 원주민이

한국인과 구별이 어려울 만큼 얼굴이 똑같은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아시아인은 다리가 짧고, 두터운 지방층을 가지고 있다.

또 얼굴이 평평하며 코가 낮고, 입술이 작고, 눈꺼풀이 두텁고, 눈이 가늘다.

이런 생김새는 동상과 찬바람을 견디고 흰눈 속에서 지내는데 보호막이 되었을 것이다."

 

서울의대 이홍규 교수는 이런 북 아시아인의 체질이 빙기 때 시베리아에서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이번 행사를 조직한 이 교수는 20년 전 북방과 남방 아시아인의 당뇨병 유전자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한 뒤부터 한민족의 기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추위에 적응된 체질이 형성되려면, 오랜 기간 고립된 지역에서 살았어야 한다”며

“2만5000년 전쯤 시베리아에 매우 혹독한 빙기가 닥쳤을 때

바이칼호는 아시아인들의 선조에게 오아시스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당뇨병 전문가인 이 교수로서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추위에 적응된 체질’을 갖고 있다는 게

중요한 문제이다. 생활 수준이 높아져 이제는 추위를 모르고, 영양도 과잉 상태다.

이런 급속한 환경 변화와 체질의 부조화가 비만과 당뇨를 일으키는 것.

이 교수는 “실제로 시베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우리와 유전적으로 비슷한

미국의 피마 인디언은 거의 모든 성인이 비만 상태이고, 절반은 당뇨병에 걸린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를 포함한 전세계 유전학자들은

80년대 말 세계 주요 인종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를

토대로 등장한 ‘아프리카 인류 기원설’을 신봉한다.

흔히 ‘분자 시계’로 불리는 미토콘드리아 DNA는 엄마가 딸에게만 물려주고

돌연변이가 빨라 조상을 추적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이 학설에 따르면 아프리카에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은 15만년 전 쯤.

이어 5∼7만년전 쯤 중동지역으로 진출해 빠른 속도로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로 퍼졌다.

이런 흐름에 비추어 국내 유전학자들은 한국인의 원류가 된 북 아시아인이

마지막 빙기인 5만년 전부터 1만2000년 전까지 시베리아지역에서 살면서

추위에 적응된 체질을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교수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북 아시아인의 체질을 갖고 있지만,
남방계 아시아인과

유럽인의 유전자 등도 일부가 섞여 크게 4개의 유전학적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며

“이는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을 4종류로 구분한 것과도

일맥상통해 유전자 검사를 통한 사상체질의 진단법을 만드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단국대 김욱 교수(유전학)도 북 아시아인이 한민족의 주류였음을 인정하면서도

남방계 혈통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본다. 
한국, 일본, 몽골, 중국, 태국 등 아시아 8개 민족 1211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했다.

그 결과 1만6500개의 DNA 가운데 CCCCCTCTA라는 9개의 글자가 빠진 특이 유전자를 가진 비율이

한국인은 16%, 일본인 14%, 중국인 13%였다. 반면 몽골인은 4%, 베트남인은 23%, 필리핀인은 30%.

북쪽으로 갈수록 낮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높았다.

김 교수는 “이 결과를 통해 한민족의 형성과정에는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바이칼호 주변에는 ‘무덤 계곡’이란 지명이 있을 정도로 많은 구석기와 신석기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석기를 연구한 목포대 이헌종 교수(고고학)는

“2만5000년 전부터 날씨가 추워지면서 정교한 세형돌날 문화가 시베리아에서 발원해

한반도로 확산된 것은 빙기와 인구 이동의 연관성을 엿보게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고고학의 권위자인 이르쿠츠크대 게르만 메드베데프 교수는

“빙기였던 1만7000년∼1만9000년 전 바이칼호 인근의 시베리아가 사막화되자

더 좋은 기후를 찾아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한국과 일본에 인구가 밀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홍규 교수는 “국내 구석기 유적에서 나온 뼈에서 DNA를 추출해

시베리아 원주민이나 인골의 DNA와 비교하면 한민족의 이동경로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우리 특유의 질병 패턴을 찾는 연구에 정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칼에선 동명성왕을 ‘고구려칸’이라 부른다

 

바이칼 일대 부리야트족, 동으로 이주해 만주 부여족 이뤄…
고구려와 뿌리 같은 ‘한민족’
인당수 전설, 나무꾼과 선녀 등 ‘설화’도 우리와 유사…

솟대 · 신목 · 당집 등 풍습도 비슷해 

 

바이칼호는 시베리아 대륙의 한복판에 있다. 러시아인들은 동부 시베리아에 속한다고 하지만

수천년 전부터 이곳에 살아온 몽골 사람들은 시베리아를 논할 때

바이칼 동쪽이냐, 서쪽이냐로 가름한다.

 

곧 이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중핵지대로서 시베리아를 상정하면서

바이칼 호수의 동서로 시베리아를 구분하는 잣대를 삼았던 것이다.

이는 그만큼 바이칼호가 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역사적·지리적 중요성을 말해준다.

고대 유라시아 유목민들에게 바이칼은 삶의 형이상학적 의미와 형이하학적 조건들 모두를 통틀어

아주 밀접한 연관을 지니던 곳이었다. 이는 지금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의 중세까지 세계사의 전면에서

끊임없이 역동적인 변화와 이합집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시하고

문명의 교류를 실현시켜왔던 수많은 유목민족들의 정신적 지주가

바로 시베리아 샤머니즘이요, 이는 곧 바이칼호 지역을 모태로 하여 형성되었다.

 

지금 한반도에 사는 우리 또한 민족 문화의 뿌리를 북방 샤머니즘과 연관시켜

논의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20세기 초부터 활발히 있어왔다.

물론 고고학이나 문헌사학, 언어학, 농학, 유전학, 의학, 지질학, 해양학, 기상학 등 제반 학문 분야의

민족 기원 문제에 대한 연구와 접근도 중요하고 실제 연구 결과도 적은 바 아니지만

민속학, 민족지학(ethnography) 등의 측면에서 고대 북방인들의 정신문화적 복합 상태를 연구하는

작업이야말로 그 어떤 연구보다도 학문적 비중이 낮지 않다고 본다.

 

특히 우리는 분단시대의 공백으로 1990년대에야 비로소 우리 민족의 기원지로 언급되는 북방지역,

즉 중국 동북 만주지방, 발해만 연안, 시베리아 바이칼호 주변, 알타이 산맥 지역,

예니세이강 투바지역, 아무르강, 송화강 유역 등을 답사하기 시작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이 지역들에 대한 개론서 수준의 정보도 아직 갖춰져 있지 않은 형편이다.

 

 

‘텡그리’ 신화, 단군 신화와 유사

 

결국 지금까지 우리가 국사에서 배워온 겨레의 기원에 대한 부분을 비롯하여 북

방지역 고대문화사의 상당 부분 역시 우리 손이 아닌 남의 손에 의해 채록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된 셈이므로 이제부터 진정한 국사, 진정한 조상들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민족지학 연구의 첫째 조건은 현장성이다.

바이칼호 지역을 고대 시베리아인들의 정신문화적 원류인 샤머니즘의 중심지로 볼 때,

이 지역 원주민 부리야트족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현장 연구가 가장 급선무이며

아울러 우리 전통문화 특히 한국 무(巫)와의 비교연구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한국 무의 시작은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 나오듯 샤먼킹(shaman king) 단군이다.

단군은 하느님의 자손이며 지상의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파견된 존재이다.

 

부리야트족 샤머니즘의 구비 서사시 ‘게세르’에서도

이 우주의 구조를 아버지격인 하늘과 어머니 땅, 그 사이에 인간을 놓고

인간이 악마에게 빠져 세상을 어지럽힐 때면 주기적으로 아버지인 하늘의 신 텡그리(Tengri)가

자신의 아들을 지상에 보내 악을 물리치고 땅 위의 평화를 이룩하곤 한다.

 

이때의 서사 영웅이 우리의 단군에 해당하는 게세르칸(Geser-Khan)이다.

그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 70살 할아버지와 60살 할머니가 사는 오두막집에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이는 또한 단군신화를 비롯한 한반도의 각종 부족 신화(동명왕 설화 등)의 하늘 사상이나

천손(天孫) 강지(降地: 땅으로 내려옴) 사상과 똑같은 구조와 동기를 보이고 있다.

 

부리야트인들의 전설은 바이칼호 형성에 관해

“…옛날 옛적에는 바이칼 바다가 없었고 오로지 땅뿐이었다.

어느날 불을 토하며 산이 무너지더니 물로 변하여 커다란 바다가 만들어졌다”라고 말한다.

즉 바이칼 호수는 지금도 ‘서있는 불(standing fire)’ 이라는 뜻으로

땅속의 불이 식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한편으로는 샤먼의 바다라고도 불리는데 태초에 불을 토하며 형성된 원시의 바다가

변 바이칼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한없는 동경과 함께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곧 바이칼 자신이 샤먼의 존재와 동격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때 ‘바이’는 샤먼을 뜻하고 ‘칼’은 계곡 · 호수를 지칭하는 것으로 전해왔다.

 

 

‘바이칼’은 샤먼과 동격 의미

 

부리야트 샤머니즘에 의하면 이 세상은 수많은 선악의 영(Tengri)들로 가득하다.

서쪽의 선한 신령 55위(位)와 동쪽의 악한 신령 44위가 합하여 99위의 신들이 주재하고 있다.

산, 숲, 강, 호수, 별, 해, 달 등에는 에젠(ezen)으로 불리는 정령들이 있는 것으로 믿었고

자연의 존재 가운데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바이칼 호수에는 텡그리 수준의 천신들 외에도

여신(女神) 바이겔 하탄(Baigel Xatan)이 모든 자연 현상을 다스리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매년 초여름 부리야트인들은 알혼섬이나 이르쿠츠크 인근의 바이칼 호숫가에서

성대한 타일라간(공동체의 하늘제사 이름) 의식을 집전했고

텡그리 신령들 가운데 가장 영험있고 세력이 센 것으로 알려진 바이칼 여신 바이겔 하탄에게

희생물을 바쳐왔다. 이때는 겨우내 호수를 덮은 얼음이 녹고 바이칼 물결이 드세지는 시기이므로

미리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입장이 된다.

 

특히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 내 28개 섬들 중 가장 크고 예부터 부리야트인들을 비롯하여

바이칼 사람들의 원류가 시작된 곳으로 샤먼 민속 문학상 중요한 무대가 되어왔다.

신성한 땅인 이곳에는 희생을 바치는 제사터가 곳곳에 널려있고

부리야트인의 피를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온다.

알혼섬은 바이칼인들의 정신적 고향이자 서사시의 산실인 셈이다.

 

또한 이곳은 코리(Khori)족의 발원지로서 이 부리야트족의 일파가

먼 옛날 동쪽으로 이동하여 만주 부여족의 조상이 되었고 후일 고구려의 뿌리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만 모르는 이 얘기는 동몽골이나 바이칼 지역에서는 상식적인 전설이다.

심지어 동명왕을 코리족 출신의 고구려칸(Khan)이라 부른다.

 

알혼섬 바다는 바이칼호 전지역 중 가장 수심이 깊고 풍랑이 센 곳으로

예부터 이곳 뱃길을 항해하는 상인에 의해 몸을 던지는 부리야트 심청의 인당수가 있다고 전해온다.

즉 희생처녀가 알혼섬의 바이칼 인당수에 몸을 던지자 금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로 다시 환생하여

신들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전설이다. 

우리의 심청전이 먼저인지 바이칼 인당수가 먼저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이는 한반도의 우리와 수만리 떨어진 바이칼 지역의 민족지학적 상관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우리의 대표적 전래설화 가운데 하나인 ‘나무꾼과 선녀’ 또한 바이칼호가 진원지이다.

나무꾼 이야기는 알타이 산맥 지역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 내몽골, 티베트, 만주지역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으나 바이칼호가 그 원류라는 점이 학계의 중론이다.

 

또 하나 중요한 바이칼 구비전승으로 ‘알탄샤가이(황금복사뼈)’ 신화가 있다.

이는 부리야트 전통 신화 중 대표격인 ‘울리게르 서사시’ 계열의 영웅서사시로

‘게세르’ 신화와 함께 모두 샤먼문학으로서 수천년 아니 수만년 간 샤먼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다.

 

샤먼은 종교적 사제이자 제사장이며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이자

종족의 역사와 우주의 기원을 설파하는 역사가이자 과학자이다.

또한 사회 윤리를 제시하는 도덕적 리더로서 행동하는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해온 특이한 존재였다.

 

이러한 샤먼이 전해준 ‘알탄샤가이’ 신화에도 여러가지 우리네 풍속과의 연관성이 드러난다.

손님에게 곰방대로 담배를 권한다거나, 상대방과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씨름으로 결판을 낸다든가,

지상의 혼란을 하늘에 거주하는 신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으로 화하여 제거하고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는 천신주재 사상 등을 역시 공통적으로 엿볼 수 있다.

 

바이칼의 구비문학은 내용상 현재로부터 수만년 전의 지구 빙하기에 대한 인류의 기억까지

희미하나마 담고 있으며 바이칼 주변 알타이어계 여러 종족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문화적 보고이다.

그리하여 시베리아 바이칼 지역과 한반도의 민족지학적 상관성을 밝히는 작업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으며 앞으로의 연구과제가 산더미 같고 바다와 같음을 느끼게 된다.

 

 

부리야트 마을에도 ‘천마도’ 있어

 

아직도 바이칼엔 곳곳에 샤머니즘의 실상들이 넘쳐난다.

나그네 발길이 닿는 언덕과 언덕, 고개와 고개마다 솟대와 신목(神木), 당목(堂木), 당집이 있으며

소원을 비는 돌무더기와 오색 댕기들이 만발하여 있다.

 

질병을 고치는 약수라는 뜻의 ‘아르샨’ 지방에 가면 산중의 약수와 약초로 병자를 치료하는 샤먼을

지금도 만날 수 있고 어느 부리야트족 마을에는 비료자(자작나무의 러시아말)를 신성시하며

하늘로 솟구치는 천마(天馬)를 그려 놓았다.

 

마을마다 하늘 제사터가 있고 그 주변은 사람들이 출입 않는 소도이며

이곳을 하늘과 땅의 소통이 가장 잘 되는 곳으로 여기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우리네 사촌 부리야트 사람들이다.

이르쿠츠크에서 한두 시간 거리의 부리야트족 마을 우스체르다 부근의 제사터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다.

 

‘이곳은 우스체르다 자치구 가운데 가장 지력(地力)이 센 곳입니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하늘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저희 주민들이 경의를 표하는 곳이니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은 각자의 종교적 신념이나 국경과 인종에 상관없이

저희처럼 경의를 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이칼에서 샤머니즘은 결코 닫힌 박물관 내의 전시품이 아니다. 샤머니즘은 살아있다.

그래서 한반도의, 세계의 수많은 정신들과 이제 다시 교통을 시작하고 있다.

 

바이칼은 부른다. 모두에게 공평히, 와서 보고 느끼고 깨달으라고.

 

- 정재승 봉우사상연구소 소장, 정신세계사 편집주간

- 주간조선, 2003.09.16

 

 

 

 

 

 

알타이산맥서 한민족 흔적 찾는다

…서낭당같은 성소, 신라양식 古墳

 
 
 

시베리아의 알타이산맥은 한민족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동쪽으로는 몽골과 만주를 잇는 초원길에 있는 이 산악지방은

수만 년 동안 많은 유목민의 피난처이자 동서 문화의 교차로가 된 곳이다.

 

동아사이언스 취재진은 지난해 여름 바이칼호 탐사에 이어 올해 6월 29일부터 7월 5일까지

정신세계사의 후원으로 고고학자인 목포대 이헌종 교수 등과 함께

‘한민족의 기원’을 찾아 알타이산맥을 답사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볼 수 있었던 한민족의 시베리아 기원설 흔적을 소개한다.

흰눈으로 모자를 쓴 듯한 4000m 이상의 산봉우리와 빙하, 수정처럼 맑은 물과 코발트빛 호수,

난공불락의 절벽 사이로 흐르는 급류, 햇빛조차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울창한 삼림,

풍부한 날짐승과 약초, 활주로처럼 펼쳐지는 고원 분지의 초원,

알타이고원에 오면 이곳이 ‘아시아의 진주’란 말이 실감난다.

산맥은 러시아에서 시작해 중국, 카자흐스탄, 몽골의 국경지대를 따라 2000km에 걸쳐

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다.


이 산악지대는 ‘시베리아 고고학의 보고’로도 유명하다.

5만년 전 이곳에 현생인류가 정착한 뒤 만든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등 다양한 도구와 함께 암각화, 고분, 미라, 매머드 뼈, 동굴 유적, 유골이 수없이 발굴됐다. 또 50만년 전 구인류의 석기도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까지 비행기로 5시간. 다시 버스로 10시간을 달려 취재진은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고고학연구소의 데니소바 발굴 캠프에 도착했다.

발굴 책임자 아나톨리 데레비안코 소장은 “이곳은 시베리아에서 가장 먼저 현생인류가 정착한 곳”이라며 “산악지대에 유난히 석회암 동굴이 많아 빙하기에도 안식처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해발 1000m의 고원지대 초원에 있는 알타이자치공화국 멘드로사콘 마을로 향했다. 서울에서 5000km나 떨어진 여기에서 낯익은 닮은 꼴 얼굴을 보니 반갑기만 하다.


여기서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투르계 알타이어를 배운다.

놀랍게도 이곳 말로 ‘믈’은 우리말로 물이다.

‘아빠’는 아버지, ‘마늴’은 마늘, ‘말’은 말(馬)이다.

투르크어, 몽골어, 만주퉁구스어를 비롯해 한국어와 일본어도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게 실감난다.

흰 천을 매달고 제사를 지내는 성소도 우리의 서낭당과 빼닮았다.

이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파지리크 무덤은 한국 문화와의 관련성으로 주목을 받는 곳이다.

무덤 발굴을 참관했던 서울대 최몽룡 교수(고고학)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타이 유적인 파지리크 봉토분은 적석목곽분으로 고신라의 것과 비슷하다”며

“알타이 지역에 사는 투르크계와 몽골계 원주민은 우리 민족과 사촌관계다”고 밝혔다.

한민족의 기원을 추적해온 강원대 주채혁 교수(역사학)는

2년 전부터 한민족의 ‘알타이-사얀산맥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다.

알타이와 그 동쪽의 사얀산맥에 살면서 순록을 키우고 숭배했던 유목민족이

만주 싱안(興安)령 쪽으로 이동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고,

고조선의 ‘선’은 순록의 먹이인 ‘선(蘚 · 이끼)’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1월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도 알타이-사얀 지역에서 기원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모스크바대 일리아 자하로프 교수(유전학)가 미국 학자와 함께 러시아 내 유목민족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비교해 ‘러시아과학원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한 것.

이 논문에 따르면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은 15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2만5000년∼4만년 전 시베리아 사얀지방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알타이,

동쪽으로는 바이칼호 일대에 살다가 베링해를 건너간 투바족 등 투르크계 유목민족이다.


만일 한민족의 발상지도 알타이와 사얀지방이라면 우리는 아메리카 인디언과 선조가 같은 셈이다.

알타이어 문화권은 지난 2000년 동안 흉노제국, 고구려제국, 돌궐제국, 몽골제국, 금, 청, 오스만 같은

대제국을 건설해 유라시아를 동서로 연결하며 대륙의 주인 역할을 해왔을 뿐 아니라

멀리 아메리카 대륙까지 개척한 것이다.

한민족의 기원을 찾아 20차례나 북방지역을 답사한 정신세계사 정재승 편집주간은

“알타이인은 말을 타고 사얀산맥을 거쳐 바이칼호나 몽골 초원까지 일주일이면 갔고,

여기서 고구려 만주 땅까지는 다시 일주일이면 갔다”며

“불분명했던 과거의 국경과 유목민의 빠른 기동력으로 볼 때 알타이와 한반도 사이의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해발 1000m의 고원 분지에 있는 우스트칸의 동굴 유적. 바위 한 가운데 동굴이 보인다.

수십만년 전의 구석기 유적 발굴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알타이 설화-민담

알타이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설화와 민담 가운데는 우리 것과 원형이 같은 게 많다. 국내 최초로 알타이 민담과 설화를 모아 최근 발간한 ‘알타이 이야기(370쪽, 정신세계사)’는 이곳의 설화가 우리 이야기와 얼마나 비슷한지 보여준다.


알타이 민담인 ‘하늘로 간 별이, 즐드스’는 한 여자애가 새엄마와 언니의 구박을 받다 죽지만 환생한다는 줄거리가 ‘콩쥐팥쥐’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알타이 설화 ‘소원을 들어주는 댕기’는 우리의 ‘나무꾼과 선녀’, 부여의 시조설화인 ‘금와왕 이야기’를 합쳐놓은 것 같다. 이 설화의 줄거리는 탄자왕(개구리왕이란 뜻)이란 이름의 노인이 개구리의 생명을 구해주고 보답으로 아내를 얻어 알타이의 후손을 넓게 퍼뜨린다는 것.
 

저자인 부산대 노문학과 양민종 교수는

“알타이는 ‘황금’을 의미하는 단어로 금와왕=황금개구리왕=알타이 개구리왕=탄자왕으로도 유추해 해석할

수 있다”며 “한반도 북부지역과 알타이는 문화적 상징과 이야기의 내면에 흐르는 모티브에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터키에서 중앙아시아, 알타이산맥을 거쳐 몽골과 만주, 한반도로 이어지는 알타이 문화권에서

말로 전해오는 구비문학의 유사성에 주목해 자료를 수집하고 원주민을 만나 채록을 해왔다.


- 알타이(러시아)=신동호 기자, 2003년 07월 16일
 
 
 
 
 
 

“한국인 조상은 농경민족”… 김욱교수 새 학설 제기

 
 
 
우리 조상의 주류가 기마민족이 아니라 농경민족이었다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됐다.

단국대 생물학과 김욱 교수(인류유전학)는 11일 연세대 공학원 대강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인의 유전자(DNA)를 분석해 기원을 추적한 결과

우리 조상의 주류는 중국 중북부의 황허(黃河)와 양쯔강 일대에 농경문화를 꽃피우던 민족이었으며

일부만이 북방의 유목 기마민족에서 유래했다”고 밝혔다.

이 조사 결과는 지금까지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주요 학설로 인정받던

‘북방(몽골) 기마민족 단일 기원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학계의 논란이 예상된다.

김 교수가 조사한 DNA는 미토콘드리아에 포함된 것.

사람의 DNA는 99%가 세포 내 둥근 핵에 모여 있고

나머지 1%는 핵 바깥(세포질)의 미토콘드리아에 존재한다.

이 DNA는 4가지 염기(A, G, C, T)가 조합된 1만6500여 개의 염기로 이뤄진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초미니 발전소’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할 때 정자는 핵 DNA만을 난자에 제공하며 세포질은 난자 것이 그대로 사용된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미토콘드리아는 모두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또 남성은 이를 자손에게 전달할 수 없으므로 미토콘드리아는 오로지 여성을 통해서만 대대손손 전해진다.

이 DNA는 돌연변이 속도가 일반 DNA에 비해 빨라 이를 조사해 계통도를 그리면

‘이브’의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인 185명으로부터 입안 상피세포를 채취했다. 최소한 4∼5세대 이상의 조상이

외국으로부터 귀화하지 않았으며 출신지가 전국에 골고루 분포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미토콘드리아 DNA에서 돌연변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부위 등을 포함해 3000여 개의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유전자형의 빈도 분포가 중국인의 95%를 차지하는 한족(漢族),

그리고 일본 본토인(혼슈인) 집단과 매우 비슷했으며

몽골과 시베리아 집단과는 유사성이 다소 낮게 나타났다.


김 교수는 “이 결과는 우리 조상의 주류가 몽골에서 유래한 기마민족이 아니라

중국 황허하와 양쯔강 일대를 지배하던 농경민족이었음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또 “일본인과 유전적으로 유사한 것은 2300년 전 일본에 가서 농경문화를 일으켰다는 야요이민족이

바로 한반도인이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 돗토리대 의학부 이노우에 다카오 교수팀은 기원전 4∼5세기 고대 야요이시대에 살던

일본인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현재 한국인의 것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좀 더 세밀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한국인과 몽골인 100여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조사하고 있는 서울대 의대 서정선 교수(생화학)는

“현재 각 민족이 갖고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작업이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라며

“염기의 일부가 아니라 1만6500여개 전체를 비교해야 좀 더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김훈기 기자, 2004년 05월 11일
 
 
 
 
 
 
 

유전자 지도로 인류족보 만든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인류진화학과 폴 멜러 교수팀은

6만 년 전 인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퍼져 나온 이유가 기후 변화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6월 미국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15만∼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현생 인류의 조상이 출현했지만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0만 년 뒤라는 것.

최근 미국지리학회와 IBM이 공동 추진하고 있는 ‘제노그래픽(genographic) 프로젝트’가 내놓은

연구 결과 가운데 하나다.

유전자(gene) 연구를 통해 인류의 지리학적(geographic) 분포를 알아낸다는 계획이다.

현대인 유전자샘플 분석 이동경로 밝혀

 
지난해 4월 출범한 이 프로젝트는 2010년까지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현대인 10만 명의 유전자 샘플을
분석해 인류의 기원을 찾는 것이 목표다. 인류의 아버지인 ‘아담’ 유전자와 어머니인 ‘이브’ 유전자를 찾아
초기 인류의 이동 경로를 찾는 것이 주요 과제.

멜러 교수팀은 6만∼8만 년 전 유전자 돌연변이가 급격히 늘었다는 사실과 도구의 발달을 이동의 근거로
내세웠다. 강수량의 급격한 변화로 식량이 줄어들자 인류 조상은 새로운 자원을 찾아 나섰고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도구를 개발했다는 것.

또 아프리카인의 세포에서 분리해 낸 미토콘드리아DNA(mtDNA)를 분석한 결과
집단 이동의 근거인 다양한 돌연변이가 출현했다는 증거를 포착했다.
인간 DNA의 99%는 핵에 있지만 1%는 핵 바깥 세포질의 미토콘드리아에 존재한다.

1만6569개의 염기쌍으로 이뤄진 mtDNA는 어머니에게서 자식으로 유전되며,
딸을 통해서만 다음 세대로 유전되기 때문에 모계 조상의 단서를 찾는 근거로 사용된다.
mtDNA의 염기쌍 중 일부는 세대를 거치면서 다른 염기로 바뀌는데
돌연변이가 일어난 선후관계를 따지면 그 조상을 추적할 수 있다.

최근까지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모계 조상은 16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 살았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영국 옥스퍼드대 유전학과 스펜서 웰스 교수는
“DNA는 인류의 이동 경로와 특정 지역에서의 집단 형성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유럽우주국(ESA)은 혜성 충돌과 같은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달에 유전자 보관소를
건설하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각 민족의 조상이 간직한 ‘마스터 유전자’를 찾아 저장할 계획이다.

“한국인, 아버지는 농사꾼 어머니는 기마민족”

한국인의 기원을 찾는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
10년 넘게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해 오고 있는 단국대 생물학과 김욱 교수는 “현대 한국인의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부계는 남방계가, 모계는 북방계가 주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남성염색체(Y염색체) 분석 결과 한국인 남성은 농경민족에게 많이 나타나는 ‘M122’와 ‘SRY465’라는 남방 계통 고유의 유전자를 가진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 Y염색체는 부계로만 유전되고 다른 염색체와도 섞이지 않기 때문에 ‘순수’ 부계 조상을 찾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모계의 경우 몽골과 중국 중북부 등 동북아시아에 분포하는 북방계 성향이 뚜렷하다.
mtDNA 조사 결과 한국인의 60%가량은 북방계 모계 혈통을 따른다.
한반도로 이동한 북방계 민족과 남쪽의 농경민족이 섞이면서 농경문화에 흡수됐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한국인 기원 연구는 한국인 특이 유전병과 맞춤형 의약품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박근태 기자, 2006년 07월 21일
 
 
 
 
 
 
 
 

한-몽골, 신석기부터 이미 다른 인종

 

 

 

한국인과 유전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인종은 누군가.

아마 상당수가 ‘몽골인’이라고 답할 것이다. 낮은 코, 광대뼈, 몽고반점….


하지만 한국인과 몽골인은 청동기시대 이전에 이미 유전학적으로 분리됐음이 드러났다.

이는 ‘한민족이 몽골인과 관계가 깊다’는 막연한 관념과

학계에서 주요 학설로 통용되던 ‘북방 단일 기원설’을 뒤집는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한민족 기원 규명 조사’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거주 고대 인류의 기원을 찾기 위해

고대부터 근대까지 한반도에서 출토된 고인골(古人骨) 유전자(DNA)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는 한민족 기원 규명을 위한 첫걸음이다.


이번 연구는 2006년 몽골을 시작으로 2007∼2008년 중앙아시아, 2009년 러시아, 2010년 일본,

2011년 중국, 2012년 서남아시아 지역의 고인골을 한국 고인골과 비교해

고대 한민족의 기원 및 이동 경로를 규명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국가 차원에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 고대인 뼈에서 DNA를 검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1차 연구에 참여한 국립문화재연구소 중앙대 동아대 등 국내 연구기관, 몽골국립대 몽골과학대는

한반도와 몽골 지역 고인골 DNA를 비교했다.

신석기부터 근세까지 한국 출토 고인골 427점, 몽골 출토 고인골 585점 중 일부의 DNA를 추출한 결과
반도와 몽골의 하플로그룹(같은 DNA 유전자형을 가진 그룹)이 서로 다르게 나왔다.

또한 형질인류학적 조사 결과 몽골 신석기시대 남성 고인골의 경우 머리뼈, 골반 등
한국인에 속하는 특징들이 나타났으나 그 이후에는 유사점이 사라져
신석기시대부터 한국인과 몽골인의 형질적 분리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책임연구자인 중앙대 이광호 교수는 “연구가 아시아 전체로 확대되면 한민족 기원과 이동경로가

규명될 것이며 앞으로 사이언스지에도 결과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국내외 연구진 80여 명이 참석했다.


그동안 한민족 기원에 대한 연구는

△‘북방기원설’

△구석기시대부터 한반도에 거주하던 고인류가 독립적인 집단을 형성했다는 ‘자체형성설’

△신석기시대 중국 남부에 거주하던 집단이 유입됐다는 ‘남방유입설’

△일부는 북방, 일부는 남방에서 왔다는 ‘이중기원설’ 등이 각축을 벌여 왔다.


연구에 참여한 동아대 김재현 교수는 “한국인의 형질과 기원이 과학적으로 구체화되면

막연한 몽골계 한국인 등의 표현을 넘어 황인종 안에 한국계라는 개념도 새로 생길 수 있다”며

“또 고구려인 인골 DNA 분석이 나오면 최근 동아시아 민족 간의 과거사 논쟁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김윤종 동아일보 기자, 2006년 12월 19일
 
 
 
 
 
 

한국남자 30%는 몽골계 유전자

 
 
 

민족이 형성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역사적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의 유전적 동질성과 언어, 문화 그리고 역사적 경험을 함께하는 집단으로 발전할 때

민족이 형성될 수 있다.


현대인(호모 사피엔스)은 개인 간에 유전적으로 99.9%가 동일하기 때문에

피부색이나 특정 형질로 인종을 차별할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엔 다르지만 유전적으로는 동질성이 높기 때문에

언어나 문화적인 요소가 민족을 정의하는 데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유전적 다양성은 유전자의 변이 때문에 나타난다.

여러 인류 집단을 대상으로 유전자(핵 DNA) 변이가 얼마나 있는지를 조사하면

전체 유전적 다양성의 약 85%는 개인 간의 차이로 인해 한 집단 내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다른 집단 간에는 약 5%, 대륙 간에는 약 10%의 차이를 보인다.


핵 DNA와 달리 Y염색체 DNA와 미토콘드리아 DNA는 대륙 간에 30∼40% 차이가 난다.

예컨대 백인과 동아시아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면 대륙별로 특이한 돌연변이가 나타난다.

이 돌연변이 유전자형으로 백인인지 동아시아인인지를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아시아 민족 집단(몽골로이드)은 같은 계통의 유전자형을 공유하기 때문에

유전자로 민족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공유하고 있는 유전자형을 실제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는 민족마다 다르다.


Y염색체 DNA를 분석한 결과 한국인 집단에서는 내몽골 또는 만주 집단에서 분화된 것으로 추정되는

O2b(SRY+465) 유전자 계통이 남자 10명 중 3명꼴(약 30%)로 나타난다.

한국인 남자의 30%가 SRY+465 유전자형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동아시아 내에서 특징적으로 일본인 집단과 비슷한 수치다.


한국인 집단에서 SRY+465 유전자형을 가진 남자로부터 O2b1(P49) 계통이 분화된 이후

다시 이들은 O2b1a(47z) 계통으로 분화돼 약 2300년 전부터 수백 년에 걸쳐 일본으로 이주했다.

이들이 바로 일본에 농경문화와 철기문화를 가져간 야요이 족이다.

야요이 족은 일본 원주민인 조몬 족과 혼합돼 오늘날 현대 일본인 집단을 형성했다.

- 김욱 단국대 생명과학과 교수, 2007년 08월 17일 [생생생물학]

 

 

 

 

 

일본인 혈통 80% 한반도 등에서 유래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두고 아키히도 일왕이 고대 천황은 백제왕의 후손이라고 밝혀

'한일 간 핏줄 커넥션'이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인류유전학 권위자가

현대 일본인의 형성에 한반도 이주민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오모토 게이이치 토쿄대 명예교수(인류유전학)는 동아사이언스와 인터뷰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은 유전학적으로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고 밝혔다.

오모토 교수는 문부과학성의 지원 아래 지난해까지 4년 동안 100명의 학자와 함께 수행한

'일본인과 일본문화의 기원에 관한 학제적 연구' 프로젝트 총책임자이다.

그는 성신여대 박경숙 교수, 단국대 김욱 교수 등 국내 유전학자들과도 유전자 정보를 교환하며

민족집단의 계통 관계를 연구해왔다.

일본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주장이 많았다.

2차대전을 전후로 형성돼 나카소네 전 수상이 지지해온 황국사관(皇國史觀)이 대표적 견해.

이 사관은 일본인이 천황의 통치 아래 형성된 단일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오모토 교수는 "최근 아시아인의 유전자 비교 분석 결과가 나오면서 황국사관은 사실상 해체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본인은 한반도 중국 일본이 육지로 연결돼 있었던 빙하시대(2만년 전)에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선주민 집단과,

약 2000년 전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서 수백년에 걸쳐 대량으로 이주한 사람이 섞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는 것이다.

"선주민인 홋카이도의 아이누인, 오키나와의 류큐인 등은 주로 채취수렵 생활을 했다. 그런데 채취수렵시대인 조몬시대(기원전 300년까지) 말기에 화산활동이 증가하면서 날씨가 나빠져 인구가 줄었다. 이 때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서 전쟁을 피해 대량으로 '보트피플'이 들어왔다. 대륙에서 온 사람, 즉 도래인(渡來人)과 선주민 사이에 약간의 전쟁은 있었지만, 평화로운 융합이 이루어졌다."

오모토 교수는 "여러 학자들이 일본인과 한국, 중국 등 아시아 민족의 단백질과 미토콘드리아, Y염색체의 DNA를 분석한 결과 도래인이 전체 일본인의 80%를 차지할 만큼 일본인의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며 "특히 중국보다는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이 더 많았으며, 관서지방에는 한반도에서 들어온 사람의 후예로 추정되는 유전형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또한 본토 일본인은 아이누인, 류큐인 등 일본의 선주민보다 한국인과 유전적 거리가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는 것.

"도래인은 논농사 기술과 철기를 갖고 들어와 일본 최초의 농업시대인 야요이시대(BC 300년∼AD 300년)를 열었고,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AD 1년 무렵 사람들의 묘지가 있는 야마구치현 도이가하마 인류학박물관에 가면 당시 묻혀 있는 사람들의 머리가 모두 한국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야요이시대에 이어 정치권력이 탄생한 고분문화시대(300년∼700년)에는

백제 등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고분들이 일본에도 많이 들어섰다는 것.

 

오모토 교수는 "근세에 들어 히데요시의 한반도 침입과 한일합방 때문에 서로 민족감정이 나쁘지만,

월드컵 공동 개최를 계기로 고대에는 사실상 형제나 다름없었던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관계가

복원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동호 기자, 동아사이언스, 2002년 02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