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서울역사박물관 기증유물전시실] 하늘과 조우하다(天文)

Gijuzzang Dream 2009. 11. 13. 10:21

 

 

 

 

 

 

 

 

작은전시

 

 

 

 

 

<<기증유물전시실 테마전시>>

 

 


 '하늘과 조우하다'

 

 

 

 

 

전시기간 : 2009-09-05 / 2010-09-05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증유물전시실

 

 

 

 

 

 

 

 

 

 

 

 

 

 

 

 

 

 

 

 

 

 

 

 

 

 

 

 

 

 

 

 

 

 

 

 

 

 

 

 

 

 

 

 

 

 
 
 

천지도

           <천지도>

해시계

         <해시계>

황도남항성도

    <황도남항성도>

 

전시장

 

 

 

기증유물전시실 테마전시는

시민들이 직접 기증한 기증유물로 특정한 주제를 선정하여 진행되는 작은 특별전이다.

이번 주제는 천문(天文)으로

하늘과 관련된 유물을 중심으로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天文圖)

천체의 운행에 대한 관찰과 관측기기에 대한 설명을 기록한 천문서(天文書),

그림자의 변화를 통해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발달된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천체 운행의 순환적 질서와 변화를 통해 '하늘의 뜻'을 찾고 공경하며,

당시의 사상을 담아 낸 동양천문학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해시계

 

천구를 가로지르는 태양이 만들어내는 물체의 그림자가 이동하는 것을 이용하여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한 도구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해시계는 신라시대 해시계로, 경주의 성곽에서 출토되었다.  

  

해시계에 대한 공식기록은 세종시대에 처음 나타나는데,

앙부일구(仰釜日晷) · 현주일구(懸珠日晷) · 천평일구(天平日晷) · 정남일구(定南日晷)와

규표(圭表)가 제작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많은 천문의기들이 손실되었으나

인조시대에 명나라에서 시헌력법(時憲曆法)에 기반을 둔 해시계가 전해졌다.

 

 

 

 

 

평면형태는 방형이며, 윗면에는 원형으로 십이지가 음각되어 있고,
중앙에는 영침(影針)을 꽂는 구멍이 뚫려 있다.

 

물체의 그림자가 햇볕에 의하여 생겼을 때 그 그림자의 위치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
휴대할 수 있도록 소형으로 간략하게 만든 해시계이다.
팔각형 모양의 작은 돌에 새긴 휴대용 해시계이다.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둥글게 파내었으며 가운데 부분도 약간 파여 있다.

중앙에 영침을 꽂을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다.

현재 영침은 남아 있지 않다. 윗면에는 방위명과 십이지가 음각되어 있으며,

측면에는 ‘三十九分之一十抄’가 음각되어 있다.

한양북극고도 37도 39분 15초의 위도 중 오(五)자를 생략하여 음각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해시계의 평면형태는 팔각형이고

가운데에 원형의 공간을 구획(區劃)한 후 반구형(半球形)으로 파여져 있다.

중앙에는 그림자를 만드는 영침(影針)을 꽂는 구멍이 뚫려있고,

그 둘레에는 십이지(十二支)가 음각(陰刻)되어 있다.

측면에는 '三十九分一十五抄(삼십구분일십오초)'라는 문구가 음각되어 있다.

 

거북이 형태로 휴대용은 아니지만 쉽게 옮겨 놓으면서 시간을 잴 수 있게 만든 앙부일구이다.

원래 거북이 등 부분에 지남침과 영침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몸체는 거북이 형태이나 머리는 보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이다.

반구형의 시반에는 간략화된 절기선과 시각선이 새겨져 있고,

경사면에는 영침을 세웠던 구멍이 남아 있다.

반구형의 시반 아래에는 지남침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통해 남북을 정해 정확한 시간을 잴 수 있게 하였다.

밑면에는 한양의 위도를 표준으로 하는‘北極出地三十七艮三十九分一十五抄’가 음각되어 있다.

예술적인 미감과 실용성을 가미한 독특한 해시계이다.

 
 
 
해시계는 천구를 가로지르는 태양이 만들어내는 물체의 그림자가 이동하는 것을 이용하여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한 도구이다.
이 해시계는 검은색 납석으로 만든 타원형의 형태이다.
윗면에는 두 부분이 반구형(半球形)으로 파여 있으며 현재 명칭은 남아있지 않다.
간략화된 절기선과 시각선을 음각하여 대략적인 시간을 알아보는데 사용하였다.
 
 
청화백자로 만든 휴대용 막대해시계로
요선양천척(曜仙�天尺)이라는 이름을 가진 막대해시계와 동일한 원리이다.
시각선과 24절기와 이에 따라 설치하는 영침의 길이, 구멍의 위치, 상혈과 하혈이
한 면에 모두 표시되어 있다.
절기에 따라 길이가 다른 영침을 옮겨가며 상혈과 하혈에 꽂아 시간을 잴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막대해시계로는 드물게 청화백자로 만들어졌으며,
이를 통해 당시 해시계 제작에 다양한 재질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요선양천척(曜仙量天尺)
요선양천척(曜仙量天尺)이라는 이름의 휴대용 막대해시계이다.
일종의 휴대용 규표(圭表)로, 원대 14세기 곽수경(郭守敬)에 의하여 건립된 관성대(觀星臺)에서
사용되었던 양천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막대 위에는 시각선을 그어 놓았으며,
한쪽 끝에 영침을 꽂는 상혈(上穴)과 하혈(下穴)이라고 부르는 2개의 구멍이 있다.
뒷면에는 24절기와 이에 따라 설치하는 영침의 길이 및 구멍의 위치가 새겨져 있다.
절기에 따라 길이가 다른 영침을 옮겨가며 상혈과 하혈에 꽂아 시간을 잴 수 있는 방식이다.
 

 

백자로 된 정방형 모양의 해시계이다.
비교적 작은 크기이므로 들고 다니면서 사용할 수 있는 용도로 제작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돌뿐만 아니라 상아, 금속, 나무, 도자기와 같이 다양한 재질로 해시계를 제작하였다.
가운데 부분이 오목하게 파여 있으며, 중앙에는 영침을 꽂을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다.
청화로 십이지와 눈금을 표시하였다. 해 그림자를 만들기 위한 영침은 남아 있지 않다. 

 상아를 깎아 정교하게 만든 휴대용 평면해시계이다.

미색 상아로 판을 만들고 윤도와 시반을 음각하였다.

해 그림자를 만들기 위한 삼각형의 시표와 방향을 측정하기 위한 윤도의 지남침은 남아 있지 않다.

표면에 음각된  ‘己巳仲夏上瀚姜健手製’는 1869년 강건(姜健)이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평면해시계가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어 이 해시계의 원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강건(姜健)과 강윤(姜潤) 형제는 조선의 전통적 해시계와 평면해시계와 같은 서양식 해시계를 만들어 낸

조선 말기 해시계 제작자로 유명하였다. 이 밖에 강건이 제작한 휴대용 해시계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보물 제852호) 해시계(1871년), 경기도박물관 소장 해시계(1873년) 등이 남아 있다.

 
 
앙부일구(仰釜日晷)
손바닥만한 크기의 직육면체에 수평과 방위를 맞출 수 있는 지남철과
오목한 반구형의 해시계가 함께 있는 휴대용 앙부일구이다.
휴대용 앙부일구는 여행이나 군사적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나, 종종 일상생활에서도 사용되었다.
앙부의 둥근 원을 따라 ‘北極高三十七度三十九分一十五秒’라고 표시되어 있다.
또한 윗면에는 ‘仰釜日晷’라고 새겨져 있고, 양 측면에는 24절기가 새겨져 있다.
밑면에는 ‘康熙二年戊申季冬上澣岐石山人海初姜文秀測定’이라고 새겨 넣고 있어,
1908년 강문수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측면에는 ‘田萬孝(?)子孫永寶’라는 전서체의 음각 글씨가 새겨져 있다.
강문수(姜文秀: 1862~?)의 자(字)는 원장(元章)이며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나아가
경원참봉(慶院參奉)과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강건(姜健: 1843~1909)과 삼촌 강윤(姜潤: 1830~1898) 또한
19세기 후반 해시계 제작자로 알려져 있고,
조부인 강이오(姜彛五: 1788~?)도 혼천시계를 제작했던 것으로 보아
이들 가문이 대를 이어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만든 해시계에는 공통적으로 제작연월일, 제작자의 이름, 낙관이 새겨져 있다.
 
 
  
 
 
  윤도(輪圖)
  

 

 윤도(輪圖)

윤도(輪圖)는 지남침(指南針)의 특성을 이용하여 방위를 측정하거나 집자리나 묘자리를 살피는데

사용되던 일종의 나침반으로 지남반(指南盤), 지남철(指南鐵), 패철(佩鐵) 등으로 불려졌다.

윤도는 중앙에 지남침을 두고, 그것을 중심으로 그려진 여러층의 동심원에 쓰여진 방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음양(陰陽), 오행(五行), 팔괘(八卦),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 및

24절후(二十四節候)등의 온갖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이 윤도는 청동에 은입사(銀入絲)로 새긴 것이다. 총 10층으로 되어 있는데

각 층에는 정침, 봉침, 천산 72룡, 240분금, 투지 60룡, 정침 120분금, 360도선, 28수도 등이 그려져 있다.

한가운데의 지남침을 꽂는 부분은 남아있지 않다.

 

 

 

태극을 중심으로 24방위를 기본으로 하는 여러 개의 동심원에

음양, 오행, 팔괘, 십간, 십이지가 들어 있으며, 총24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목판본이다.
1848년(헌종 14) 고유상(高裕相)이 만들었다.

 

크기가 다른 24개의 원이 그려졌고 제일 작은 원을 1층, 제일 바깥 원을 24층으로 명명하여

중앙을 1층, 외변을 24층으로 표기하고 1층부터의 내용은,

(1)태극(太極) (2)팔괘(八卦) (3)황천팔요(黃泉八曜) (4)입택문로(入宅門路)

(5)선천십이지(先天十二支) (6)봉침이십사산(縫針二十四山) (7)정침이십사산(正針二十四山)

(8)천성(天星) (9)태골룡(胎骨龍) (10)천산(穿山) (11)이백사십분금(二百四十分金)

(12)투지(透地) (13)절후(節候) (14)기갑자법(起甲子法) (15)관금급투지괘(管禽及透地卦)

(16)팔문(八門) (17)녹마귀(祿馬貴) (18)삼기(三奇) (19)육친(六親)

(20)봉침백이십분금(縫針百二十分金) (21)정침백이십분금(正針百二十分金)

(22)삼백육십도(三百六十度) (23)도수오행(度宿五行) (24)개희도이십팔수(開禧度二十八宿)의

순으로 되었다.

하늘의 원형을 상징하는 둥근 윤도에

240분금의 길흉표와 360도의 길흉(吉凶)표를 부호로 표시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서 (17)녹마귀는 천록(天祿), 역마(驛馬), 귀인(貴人)의 약칭이며,

(18)삼기(三奇)는 천상(天上), 지상(地上), 인중(人中)을 의미하고,

(19)육친(六親)은 오행(五行)에 의해 나눈 친분(親分)을 말한다.

 

좌측 하단에 써 있는 내용은,

 

二百四十分金吉凶標, 吉標•, 半吉半凶 -,

三百六十度吉凶標, 關煞標 ×, 差錯標 Ι, 小止標 工, 大止標 ○, 凶煞標 •,

道光二十八年戊申 本監 校著改刊

240분금의 길흉표 부호는 길(吉)할때 '•' , 반길반흉은 '-' 로 하였고,

360도의 길흉표 부호에서 관살표(關煞標)는 '×', 차착표(差錯標: 어긋나고 뒤섞임)는 'Ι',

소지표(小止標)는 '工', 대지표(大止標)는 '○', 그리고 흉살표(凶煞標)를 '•'로 각각 표기하여

알기 쉽게 하였다. 道光 28년 곧 1848년(헌종 14) 관상감에서 새롭게 간행하였다.

 

 

 

 

윤도판은 무덤 자리나 집터를 정할 때 풍수가(風水家)나 지관(地官)이 방위를 측정하는데 사용했던

나침반의 일종으로 방위를 측정하는데 사용했던 도구이다.

흔히 지남철(指南鐵) 또는 패철(佩鐵)이라고 부르며 쇠[鐵]라고 약칭하기도 한다.

윤도는 나침반 위에 있는 바퀴살 모양의 도표란 뜻이며 지남철의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윤도의 구조는 한복판에 나침반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커지는 여러 층의 원이 그려졌다.

이 원들과 바퀴살 모양의 직선들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방위표시의 한자(漢字)들이 깨알처럼 씌어 있다.

이 글자들은 동서남북 등 방향 표시의 글자가 아니라는 점이 일반 나침반과 다르다.

주역의 팔괘와 천간(天干)과 십이지(十二支)가 기록되었다.
즉 동(東) · 서(西) · 남(南) · 북(北)이란 글자 대신 진(震) · 태(兌) · 이(離) · 감(坎)자를 각각 쓰며

그 간방인 동남 · 남서 · 서북 · 북동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지점에

손(巽) · 곤(坤) · 건(乾) · 간(艮)이란 8괘 글자가 표기된다.

또 천간과 오행(五行)도 표기되는데

갑을(甲乙)은 목(木)으로서 동(東)에, 병정(丙丁)은 화(火)로서 남(南)에,

경신(庚辛)은 금(金)으로서 서(西)에, 임계(壬癸)는 수(水)로서 북(北)에 각각 배치된다.

이때 무기(戊己)가 빠지는 것은 토(土)로서 중앙에 해당되어 중앙은 방향 표기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윤도의 내용은 조선과 중국이 서로 달랐다.
이 윤도판은 중앙의 지남침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윤도판 중앙에 방향을 나타내는 지남침이 들어가 있던 내연을 중심으로 2개의 외연으로 구획을 나누었다.

윤도 중앙에 24방위를 돌려서 구획하고 가장 바깥쪽 외연을 다시 2로 나누었다. (신상정 기증유물)

윤도(輪圖)는 지남침(指南針)의 특성을 이용하여 방위를 측정하거나 집자리나 묘자리를 살피는데

사용되던 일종의 나침반으로 지남반(指南盤), 지남철(指南鐵), 패철(佩鐵) 등으로 불려졌다.

윤도는 중앙에 지남침을 두고, 그것을 중심으로 그려진 여러층의 동심원에 쓰여진 방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음양(陰陽), 오행(五行), 팔괘(八卦),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 및 24절후(二十四節候)등의 온갖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이 윤도는 나무에 옻칠을 하여 제작한 휴대용 윤도이다.

한가운데에 지남침이 있고, 그 주변에 2층의 윤도(輪圖)가 그려져 있다.

검은색 바탕에 흰색으로

제 1층에는 동서남북의 4방위, 제 2층에는 팔괘, 천간, 십이지로 구성된 24방위를 표시하였다.

윤도(輪圖)는 중앙에 지남침을 두고, 그것을 중심으로 그려진 여러층의 동심원에 쓰여진 방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음양(陰陽), 오행(五行), 팔괘(八卦),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 및

24절후(二十四節候)등의 온갖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이 휴대용 윤도(輪圖)는 한가운데에 지남침(指南針)이 있고

그 주변에 검은색 바탕에 흰색으로 팔괘, 천간, 십이지로 구성된 24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자오선(子午線)을 금속으로 연결하였고, 자(子)와 오(午) 방위를 붉은색으로 강조하고 있다.

 

뚜껑이 있는 원형의 휴대용 윤도(輪圖)이다.

한가운데의 유리판 안에 지남침이 있고, 그 주변에 검은색 바탕에 흰색으로 방위를 표시하고 있다.

모두 3층으로 제 1층과 제 2층에는

한글로 각각 춘하추동(春夏秋冬)의 4계절과 동서남북(東西南北)의 4방위, 24방위도가 그려져 있다.

제 3층에는 한자로 1월~12월을 표기하였다.

 

 

 

 

 

 천문도(天文圖)

 

 

혼천전도(渾天全圖)   

조선 후기에 서양천문학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신법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체제에 따라 하나의 원 안에
336개의 별자리와 1,449개의 별을 그려 놓았다.
이 중에는 북반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남반구의 별자리 121개가 포함되어 있다.
 
칠정주천도(七正周天圖)에는
해와 달 및 화성, 금성, 수성, 목성, 토성 등 5행성의 망원경 관측도가 그려져 있고,
일월교식도(日月交食圖)에는
각 행성의 크기와 지구로 부터의 거리, 일식과 월식의 원리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서양의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와 티코 브라헤(Tycho Brahe)의 우주 체계를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어 서양의 천문지식이 조선에 유입되어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망원경으로 관측한 해와 달 및 화성, 금성, 수성, 목성, 토성이 처음 소개된 천문도로

의의가 크다. 현재 국내에는 10점 정도 남아 있다.
이 혼천전도는 영조 대 후기에 관상감에서 만든 목판본이다.
 
 
 
 

 

황도남항성도(黃道南恒星圖)

  

조선 후기 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받아 민간에서 제작한 황도남북항성도의 남항성도이다.

17세기 중국에서는 서양인 선교사 탕약망(湯若望, Adam Schall von Bell : 1591~1666)과

대진현(戴進賢, P. I. Koegler : 1680~1748) 등이 서양천문학을 도입하여 새로운 천문도를 제작하였다.

이러한 천문도들은 숙종 34년(1708) 허원(許遠)에 의해 처음으로 조선에 소개되었으며

이를 기초로 여러 개의 신법천문도가 제작되었다.

이 황도남북항성도는 대진현이 작성한 황도총성도(黃道總星圖: 1723년)에 기초하여

민간에서 필사하여 만든 신법천문도이다. 은하수 부분을 제외하고 원안을 파란색으로 칠하였다.

 

 

황도북항성도(黃道北恒星圖)

 

조선 후기 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받아 민간에서 제작한 황도남북항성도의 북항성도이다.
왼쪽에는 황도와 적도가 서로 만나고 황도의 위도는 움직이지 않지만
별은 동으로 1년에 51초 변한다는 세차(歲差)의 원리가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 하단 : 大統斜分三周干支乾隆丙戌恒星黃極經緯天球北界總圖
왼쪽 하단 : 黃有赤交各宗其極黃緯.動星經東差歲五一抄赤緯甚變星經亦差歲自
 

 

 

 

 

 

  천문서(天文書)

 

 

■■경성(經星)

천문유초의 내용 중에 별자리 그림인 28수(宿)와 삼원(三元)만을 간추려 필사한 천문서이다.

목판본 천문유초와는 달리 별자리 주위에 사각형의 종이가 붙어 있는데,

여기에 각 수(宿) 주위의 대표적인 별자리 이름을 써 놓아

전체적인 별자리의 위치를 잘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일반적인 천문유초의 별자리 그림보다 더 자세하게 묘사하였으며,

각 수에 대한 설명을 제외하고 별자리 그림만을 모아 놓아 한 눈에 별자리를 볼 수 있게 하였다. 

 

<경성(鏡星)은 조선 철종 12년(1861)에 관상감에서 근무하던 남병길(南秉吉, 1820-1869))이 

편찬한 책으로, 성도(星圖)와 항성목록을 겸하여 건곤(乾坤)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병길이 편찬한 <경성(鏡星)>은 한양의 관상감에서 실지로 측정한 자료를

중국의 천문서들에 나타난 항성도(1844년 기준)과 비교하고 

여기에 서양천문학자들의 학설을 참조하여 만든 것이다.

 

<경성>은 예로부터 전해오던 중국의 별자리들을 새로 관측하여 별 목록을 만들었는데,

별 1,449개에 대해 세차운동을 보정하여 1861년의 위치로 옮겨 새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별목록 겸 별자리 그림책으로,

중국의 천문서적을 중심으로 하고 서양의 새로운 학설을 참고하여

별자리를 그림과 곁들여 설명해놓았다. 여기에 나오는 별자리 그림은 소위 신법천문도라 불린다.

곧 수천년간 내려오던 중국의 옛 별자리와 이름은 그대로 쓰고,

대신 별의 위치와 별자리의 모양은 당시에 새로 관측하여 수정한 천문도인 것이다.

 

남병길이 쓴 서문에 이어 자미원(紫微垣), 태미원(太微垣), 천시원(天市垣)의 3원과 

동서남북 사방7수(四方七宿),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안 보이는 근남극성(近南極星)의 순서로 

각 수(宿) 마다 성도와 7언의 설명과 궁도분초(宮度分秒, 적경)와 거극도분초(距極度分秒,

적위)를 기재하고 있다.

또 책 마지막에는 별의 밝기(성등․星等)별로 성좌와 별 번호를 기재하고 있다.

책의 끝 부분에는 그가 천문관측용으로 만들어 사용했던 적도의(赤道儀)를 그려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마지막에는 이준양이 쓴 후기가 자리잡았다.

 

하늘에는 수 천억 개의 별들이 있다. 그 중에서 인간이 살고 있는 지상에 조응(照應)하는 별은

해(日)와 달(月)을 비롯하여 금성(金星), 수성(水星), 목성(木星), 토성(土星), 화성(火星) 등과

자미원(紫微垣, 亥方), 천시원(天市垣, 艮方), 태미원(太微垣, 巽方)과 28성수(星宿)가 있다.

별자리와 1등성 16개, 2등성 51개, 3등성 159개, 4등성 349개, 5등성 399개, 6등성 343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28수(宿)는,

동(東) 청룡 - 각(角)․ 항(亢)․ 저(氐)․ 방(房)․ 심(心)․ 미(尾)․ 기(箕)

북(北) 현무 - 두(斗)․ 우(牛)․ 여(女)․ 허(虛)․ 위(危)․ 실(室)․ 벽(壁)

서(西) 백호 - 규(奎)․ 루(婁)․ 위(胃)․ 묘(昴)․ 필(畢)․ 자(觜)․ 삼(參)

남(南) 주작 - 정(井)․ 귀(鬼)․ 류(柳)․ 성(星)․ 장(張)․ 익(翼)․ 진(軫)

 

 

 

■■천문유초 (天文類抄)

세종 대에 이순지(李純之: 1406~1465)가 왕명을 받들어 편찬한 천문학의 기본서로

이 책은 인조 대(1623~1649)에 간행된 목판본이다.

상권에서는 28수의 순서에 따라 별자리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먼저 각 수성(宿星)에 대한 단원자(丹元子)의 <보천가(步天歌)>의 성도(星度)와 가결(歌訣)을

그대로 싣고 있으며 다시 세분된 각각의 성수(星宿)에 대한 점성학적인 주를 붙였다.

하권에서는 천지 ∙ 일월 ∙ 성신 ∙ 오행에서 기상현상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천문 이론을

국가의 안위와 민생의 재변(災變)과 연관시켜 전개하고 있다.

이 천문서는 이순지의 독창적인 저술이라기보다는 중국문헌과 『천상열차분야지도』등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천문학 이론을 편집하고 종합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관상감관(觀象監官)을 채용할 때는 천문학(天文學), 지리학(地理學), 명과학(命課學)의

세부서로 나누어 뽑았고, 그 중 천문학에서는 송(誦), 임문(臨文), 주(籌)라는 시험이 있었다.

『보천가』와『천문유초』는 천문학 시험 가운데 암송 시험에 들어가는 필수 과목이었다.

이 책은 조선 후기까지 천문을 담당한 관청인 서운관과 관상감 관리들의 필수 시험교재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 영조 대에 판목이 없어져 그 후에는 필사본으로 널리 유포되었다.

 

 

■■여지도 (輿地圖)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대표적인 목판본 지도책.

<함경도>에 1787년에 신설된 '장진부(長津府)'가 있고,

1800년에 개칭된 충청도의 '노성(魯城)'이 표시되어 있으나,

1822년에 설치된 함경도의 '후주부(厚州府)'가 반영되지 않아 19세기 초반에 제작된 지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미 18세기에 개칭된 평안도의 '이산(理山)'과 경기도의 '금천(衿川)' 등이

여전히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지명 표기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장책의 순서가 독특한데, 중국도, 일본국도, 유구국도, 조선전도인 '동국팔도대총도'에 이어,

팔도의 도별지도, 마지막에 세계지도인 '천하도'가 수록되어 있다.

팔도의 도별지도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배치해,

함경도 지도가 가장 앞에 수록되고, 전라도가 가장 뒤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서울이 위치한 경기도부터 시작되던 일반적인 도별 배치의 순서와는 매우 다른 점이다.

음각으로 인쇄되어 잘 눈에 띄지는 않으나 각 면의 바다 부분에는 쪽수에 해당하는 숫자가 새겨져 있어,

지도의 순서를 알려 준다.
지도의 전체적 윤곽 및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수록된

조선전도인 <팔도총도(八道總圖)>와 도별도 즉 '동람도(東覽圖)'와 유사하다.

그러나 조선전도인 <동국팔도대총>은 <팔도총도>에는 없던 묘향산(妙香山)을 크게 그리고,

각 도의 도명 우측에 소속 군현수(郡縣數)와 경지면적을, 좌측에 민호수(民戶數)를 기록해

더 많은 정보를 담은 점이 다르다.
또 '동람도'의 도별지도에서는 각 군현과 하천 · 진산(鎭山)만을 표시하고 있으나

이 지도에는 각 군현의 위계(位階)와 서울까지의 시간거리인 일정(日程)이 군현명 옆에 적혀 있다.

해안에는 포구(浦口) · 진보(鎭堡) 등도 수록되어 있다.

우역제(郵驛制)의 역도(驛道)를 직사각형으로 표시해 '동람도'보다 훨씬 더 자세하다.

'동람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17세기 이후에 설치된 군현인 칠곡(漆谷) · 영양(英陽) · 순흥(順興) ·

자인(慈仁) 등의 군현이 표시되어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도별도에서 특징적인 것은 우리나라의 각 지역을 28수의 별자리로 구분하여

영역의 경계를 선으로 표시하고 별자리의 이름을 기록한 점이다.

이는 동양의 전통적인 천문사상인 분야(分野)의 관념을 적용한 것이다.

하늘의 별자리와 땅이 나누어진 일정한 지역이 서로 대응해 짝을 이룬다고 보는 생각인 분야설은

하늘과 땅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으로 보는 천지상관적(天地相關的) 사고를 보여주는 점에서

동양 사상의 특징을 반영한다.

<천하도>는 상상적인 세계를 그린 원형 천하도인데,

수직, 수평으로 선을 그은 경위선망이 그어져 있는 점이 특징이다.

위선은 정사도법으로 그려진 지도의 경위선망과 유사하여

서양에서 제작된 세계지도를 보고 그려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서양의 지도 투영법은 지구가 둥글다는 관념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천하도에서 보여주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동양의 전통적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세계관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이 지도의 경위선망도 서구의 지도제작 기법인 투영법을 이해하고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이를 원형의 천하도에 그대로 그려 넣은 것으로 보인다.

또는 서양에서 지구 구형석이 들어옴에 따라 동양에도 세계를 둥글게 그린 지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원형천하도에 경위를 표시하였다.

 

 

■■제가역상집(권지일) 諸家曆象集(券之一)

세종 27년(1445)에 이순지(李純之: 1406~1465)에 의해서 편찬된 천문서적이다.

당시 중국에 전하여 내려오는 천문 ∙ 역법 ∙ 의상 등에 관한 지식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모두 4권으로,

제 1권「천문(天文)」편에서는 중국의 우주론을 해설하였으며,

제 2권「역법(曆法)」편에서는 중국 역대 역지(曆志)에 나타난 역에 관한 모든 문제와

고대로부터의 역법을 비교하여 논하였다.

제 3권「의상(儀象)」편에서는 중국 역대의 혼천의와 혼상 제작에 대하여 논하였고,

제 4권「구루(晷漏)」편에서는 물시계 및 혼천시계 등에 관해서 간단히 소개하였다.

이 천문학서는 중국의 천문학서와는 다른 체제와 서술방식을 갖고 있어

조선시대 천문학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시전대전(詩傳大全)

명나라 호광(胡廣)이 주축이 되어 <서경(書經)>을 주석한 채침(蔡沈)의 <서전(書傳)>을 기본으로 하여

여러 학설을 집대성한 주석서이다.

<서경>은 오경(五經) 중의 하나로 중국 상고시대의 정치 기록 뿐만 아니라

천문 ∙ 지리 ∙ 윤리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의 서두에 있는 선기옥형(璇璣玉衡)은 혼의(渾儀) 또는 혼천의(渾天儀)라고도 부르며,

고대 중국의 우주관이었던 혼천설에 기초를 두고 제작된 우수한 천문시계이다.

이것은 중국과 조선의 천문관측에서 가장 기본적인 의기(儀器)였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2세기경에 처음으로 제작되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세종 15년(1433)에 혼천의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처음으로 나온다.

『서경』에 나온 선기옥형도는 부품과 각 환(環)의 명칭이 잘 표시되어 있어

조선시대 학자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었다.

 

 

 

 

 

 

 

 

 

 

- Richard Addinsell - Warsaw Concerto for piano & orchestra

(for the film "Dangerous Moonlight(위험한 달빛)“ / Suicide Squadron)

장 이브 티보데(Jean-Yves Thibaudet, 1961.9.7~ ) piano/BBC Symphony Orchestra/ Hugh Wolff, co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