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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윤두서의 자화상.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실물 묘사가
단군 초상화들과 대조적이다.
다 : 이 영정의 실물은 입체(조각)다.
현정회에 그림 ‘나’와 함께 봉안되어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부드러운 인상의 미남형으로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평이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푸근한 할아버지 상이다. 사람에 따라 약간 비만형이라고도 지적하나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다만 귀가 기형적으로 길게 늘어진 것이 흠이다.
라 : 속세를 떠나 산중 생활을 하는 인물 분위기다.
길게 풀어 내린 머리카락과 지팡이 등이 그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문가들은 “삼성사의 단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얼굴은 이란, 이라크 등 서남아시아인의 생김새와 비슷하다. 냉철하고, 건강해 보이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인자하고 후덕한 느낌은 부족하다. 누가 언제 그렸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마 : 최근에 등장한 입체물로, 한국인의 얼굴 비례에 근접하게 제작하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홍익문화연대가 역사 바로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제작했다.
최근 전국의 여러 초등학교 교정에 설치됐다가 반대 여론으로 말미암아 일부 회수됐다.
중후한 인상을 지녔으나 입과 귀가 지나치게 길어 부담스럽다.
나뭇잎 의상은 꽉 끼는 듯 보여 지도자의 품위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그냥 평범한 노인으로 보이는 게 단점이다.
바 : 1949년 최초로 공인된 단군 영정. 대종교총본사에 봉안돼 있다.
국내에 통용된 기간이 가장 길어 60대 이상 노인층에게 비교적 익숙한 그림이다.
전체적으로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날카로운 눈동자에 대해서는 “강한 의지력이 엿보인다”와 “무섭다”로 평가가 엇갈린다.
초등학생은 대부분 검은 얼굴과 매서운 눈동자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이 영정을 표본으로 한 입체상도 있다.
“단군 할아버지 무서워요”
유한대 강사 김은희씨가 1998년에 쓴 논문 ‘아동의 단군 이해와 정서추론에 관한 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단군 초상화에 대한 정서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의 30% 이상이 “무섭다” “징그럽다” “슬프다” “이상하게 생겼다”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부정적인 반응의 단서로는 “귀신같이 못생겼다” “귀가 커서 징그럽다”
“이상한 표정이 무섭다” “얼굴 수염과 귀와 머리칼이 이상하다” “단군이 다 다르게 생겨 괴상하다” 등을 꼽았다.
성인의 경우 단군에 대한 50대 이하의 일반적인 의견은
“여러 갈래의 초상화가 나돈다는 것은 국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초상화를 단일화해야 한다,
고전과 현대의 초상화를 각기 만들 만도 하다, 함부로 못 쓰도록 통제해야 한다” 등이고,
60대 이상은 “단군 숭모사업을 국가 재정으로 지원해야 한다, 개인이나 특정 종파의 단군 그림
사용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단일화한 초상화 외의 그림은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 등이었다.
조선시대 초상화와 비교하면, 단군 초상화는 분명 친근감이 떨어진다.
조선시대에는 도화서를 두어 주요 인사들의 초상화를 국비로 그릴 정도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조선시대의 초상화 중엔 윤두서 자화상이 유명하다.
이 초상화는 기법이 서양화의 그것을 압도한다.
붓끝으로 호흡을 멈춰가며 한 줄, 두 줄 그려 나간 리얼리티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은 실물묘사가 잘 됐기 때문이다.
단군 초상화의 경우 실물 묘사 과정이 생략됐으니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단군 초상화에는 존엄성이 담겨 있는데,
인물화에서 친근감과 존엄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게 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
초상화는 인물화에 포함된다. 특정 인물을 그리는 것인 만큼 반드시 특정인의 모습이 담겨야 한다.
실제 인물과 닮은 정도가 초상화의 생명력이고,
따라서 세밀한 관찰과 치밀한 묘사가 요구되는 어려운 작업이다.
역사적인 인물의 초상화 중에도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것이 많다.
눈동자가 닮지 않았다느니 입이 잘못 그려졌다느니 하는 평가 때문에
크고 작은 수정 작업을 거쳐야 했다.
현충사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초상화도 당초에는 청전(靑田) 이상범이 1960년대에 그렸으나,
복장과 투구 등의 고증이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 이당 김은호가 다시 그렸다.
그런데 얼굴이 지나치게 곱고 여성스럽다는 지적이 제기돼 월전(月田) 장우성이 다시 그렸다.
월전의 충무공 초상화는 2~3회의 수정을 거친 끝에
1973년 10월30일에 충무공 표준영정으로 지정 공표됐다.
그전에 그려진 이당의 충무공 초상은 현재 한산도 영정각에 있다고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