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오딧세이]

[간도 오딧세이] 51. 청나라 사람들도 살지 못했다

Gijuzzang Dream 2009. 4. 23. 20:36

 

 

 

 

  

 

[간도오딧세이]  청나라 사람들도 살지 못했다 

 

 

 

 

   

 

간도로 이주한 조선족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간도영유권 주장과 관련해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주장이나 지식이 있다.

첫 번째가 고구려 시대 땅이니까 우리 땅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땅이니만큼 인연은 있지만 그것이 간도영유권 주장의 밑바탕이 될 수는 없다.

간도영유권의 문제는 1644년 만주족이 북경을 점령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17세기 이후에도 만주 지역에 만주족과 청인들이 정주해 살았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만주족이 엄연히 살았던 땅인데 우리가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나 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1644년 이후 만주족이 북경으로 이주하면서 간도 지역 전체가 텅텅 비었다.

 

청은 이곳을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봉금했다.

청의 행정력이 미친 곳은 오랄, 영고탑으로 표기됐던 현재의 길림과 두만강 오른쪽의 훈춘 정도다.

간도 지역은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지대였다.

이곳에 조선 백성들이 몰래 드나들었고, 19세기 후반에는 경작까지 했다.

세 번째로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은 무인지대로 들어간 조선 백성들만 처벌됐지

청나라 백성들은 마음대로 무인지대로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실록에는 청나라 백성 역시 간도 지역에 살 수 없었으며 조선이 엄중히 항의한 대목이 나타나 있다.


이조참판 권상유가 소를 올려 연석에서 진달한 말을 거듭 아뢰어 청하기를,
“청국(淸國)에 자문(咨文)을 보내어 경원 · 훈융의 건너편에 호인(好人)이 전지(田地)를 개간하고

집을 짓는 일을 금지하게 하여 앞날의 염려가 없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전석(前席)에서 이미 내 뜻을 효유하였고, 재자관이 오래지 않아 돌아올 것이니,

사정을 상세히 안 뒤에 이자(移咨)함이 완전할 듯하다.”
<숙종실록> 1714년 10월 28일


강희(康熙) 54년 상국(上國)의 백성들 가운데 토문(土門) 건너편 강가 근처에 집을 짓고

전지(田地)를 개간한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소방에서 자문을 올려 진달하자 성조 인황제(聖祖仁皇帝)께서 속히 철거시키라는 명을 내렸다.
<영조실록> 1746년 4월 19일


“청나라 백성 무단거주” 조선서 항의


<영조실록>에서 ‘강희 54년’이라고 나온 부분은 1715년이다.

<숙종실록>에 나타난 내용을 의미한다.

1714년 말 조선이 항의해 1715년 청의 강희제가

청나라 백성이 두만강 이북에 정주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보더라도 무인지대의 성격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물론 조선에서 이 지역에 들어간 조선 백성을 범월(犯越)죄로 다스려 처벌했지만

청나라 백성들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만약 청의 땅이었고 청의 마음대로 봉금한 땅이라면 조선에서 철거를 요구할 근거가 없다.

 

무인지대는 사실상 중립지대였다. 우리도 땅의 주권을 주장할 수 없었지만 청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빈 곳에 1870년대 이후 조선 백성들이 대거 이주해 벼농사를 지었다.

이런 역사적 상황을 살펴본다면 중립지대는 과연 누구의 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 2009 04/28  위클리경향 8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