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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오딧세이]

[간도 오딧세이] 50. 압록강 넘으면 범월죄(犯越罪)로 사형

Gijuzzang Dream 2008. 12. 20. 20:44

 

 

 

 

[간도오딧세이]  압록강 넘으면 범월죄로 사형 

 

 

 

 

 

동국여도. <규장각 소장>


 

 

조선왕조실록에 ‘犯越’(범월)이라는 한자 검색어를 치면 모두 177건(국역 부분)이 검색된다.

현종개수실록에 1건으로 처음 나타나더니 숙종실록에는 무려 63건으로 늘었다.

이후 경종실록에는 나타나지 않다가 영조실록에는 다시 81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이후 정조실록에 4건, 순조실록에 13건, 헌종실록에 3건, 철종실록에 7건, 고종실록에 5건이 실렸다.

범월(犯越)이란 국경선을 넘어가는 죄를 뜻한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간 조선 백성들은 범월죄로 사형에 처해졌다.

이를 방치한 관리에게도 엄격한 죄를 물었다.

처음 범월이라는 내용이 실린 1672년의 현종개수실록(1월 25일)을 보면

서 · 북 변경을 범월한 자에 대해서는 ‘삼진 아웃제’처럼

세 번 걸릴 경우 목을 매달아 효시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전에는 우두머리는 목을 매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군대에 부역토록 했으나

이들이 달아나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숙종실록에는 범월(犯越)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1680년 윤 8월 14일 기사를 보면 범월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는지 잘 나타나 있다.

임금이 남별궁에 나아가서 청나라 사신을 접견하고 사건 조사를 행하였다.

전에 온성의 유원진 사람이 나무를 하는 일 때문에 강계를 범월하였다가 영고탑 수장에게 사로잡혔는데,

이때에 이르러 청나라 사신이 그 임금의 칙서를 가지고 와서 드디어 사건 조사를 행하였다.

범월인 등은 사죄(死罪)로 처단되었으며,

본진의 첨사 한시호는 정배되고, 부사 이혜주는 파직되었으며,

본도의 감사 이당규와 병사 유비연은 5자급을 강등하였다.



간도는 삼 많이 나는 천혜의 땅


북쪽 변경 온성에서 백성이 두만강을 넘어가

청나라 관리에 붙잡혀 청나라와 분쟁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범월인은 사형당했고, 관리들은 유배 · 파직 등의 처벌을 받았다.

 

당시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무인지대였다.

청나라에서 만주족이 살던 곳이라 하여

한족은 물론 어느 쪽의 백성도 이곳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봉금했다.

심양의 동쪽에는 유조변이라는 버드나무 울타리로 청나라 백성의 출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곳은 삼(蔘)이 많이 나고, 나무를 마음대로 얻을 수 있었다.

곤궁한 백성들에게 간도는 천혜의 땅이었다.

이와 같은 현실 때문에 그 지역에 살고 있는 관리들은

처벌받는 위험을 무릅쓰고 백성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숙종실록에는 이 같은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기사가 있다.

1693년 12월 26일 기사를 보면 우의정 민암은 숙종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북도 어사(北道御史) 이우겸(李宇謙)이 삼수(三水)에 가서 인삼을 캐는 자 30여 인(人)을 잡아다

가두어 한 지경의 백성들이 전부 도망하여 피하므로 어쩔 수 없이 도로 석방하니

그제야 모두 되돌아와 일제히 호소했다 합니다.

이곳 백성들의 명맥은 단지 인삼을 캐는 데 달려 있어 인삼을 캐게 되면 살아가고

캐지 못하면 죽게 되는 것이므로, 국가에서 비록 이와 같이 금단(禁斷)하더라도

달리 생활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도 또 가서 캐려고 할 것이니,

만약 금하는 법을 늦추려고 하지 않는다면 삼수(三水)와 갑산(甲山) 한 지경은

반드시 모두 텅빈 땅이 될 것이라고 하였으니, 실로 잘 처리할 계책이 없습니다.”

다른 관리들도 이같이 아뢰자, 숙종은 “헤아려 의논해 잘 처리하라”고 명했다.

 

숙종실록의 또 다른 기사(1691년 11월 28일)에서

숙종이 “변방의 백성이 금령을 범하는 것은 실로 살 길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정상이 가엾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숙종 역시 국경 지역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실록에 나타난 것처럼 변방의 백성들은 ‘살 길’을 위해 처벌을 무릅쓰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나들었다.

-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 2009 04/21   위클리경향 8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