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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킨 미술관 -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 허망한 영광의 알레고리

Gijuzzang Dream 2009. 4. 2. 00:59

 

 

 

 

 

 

 푸슈킨 미술관에서 만나는 프랑스 회화의 걸작

 

 

모스크바에 있는 푸슈킨 미술관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국립미술관으로서,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민족의 영웅인 시인 푸슈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모스크바 대학의 교수 이반 츠베타에프가 1898년 설립했다.

모스크바 대학 부설 기관으로서

처음에 미술관 이름을 제정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로 3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가

러시아 10월 혁명기에 알렉산드로 푸슈킨으로 이름을 개명했다. 
미술관 설립 당시에는 미술학도나 인문학도들을 위한 교육에 목적을 두어

고대와 중세의 조각 및 이탈리아 회화, 공예품들을 복제해 전시했다.

복제품 위주로 전시하던 미술관은 혁명 이후 변화를 겪는다.

혁명으로 개인 소장품들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푸슈킨 미술관의 소장품이 늘어나면서

모스크바 대학 부설기관의 지위에서 벗어나

러시아 내에서 서유럽 고전 미술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미술관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푸슈킨 미술관의 1층에는 고대 유물 수집품과 초기 유럽의 회화들을 전시하고 있고

2층에는 19세기 후반과 현대 회화 걸작들을 전시하고 있다.

 

 

 

 

 프랑수아 부셰 -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헤라클레스의 도발적인 모습

 


푸슈킨 미술관의 50만 점의 소장품 가운데 프랑스 회화의 걸작을 보여주는 작품이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 1703-1770)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Heracles and Omphale>다.

이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빌려서 육체의 탐닉을 표현한 것으로

당시에는 다루지 않았던 남녀 간의 정사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18세기 귀족층은 '식욕의 시대'에서 '성욕의 시대'로 넘어간다. 그래서 에로티시즘 기승을 부린다.

우리나라 조선후기 혜원선생의 '소년전홍(少年剪紅)'도 그런 분위기다.

부셰가 이렇게 정교하면서 관능적이고 호화스런 화풍을 일궈낸 것은 그 사회의 반영일 것이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는 한마디로 줄이면 노예와 여왕 간의 사랑얘기다.

여왕인 옴팔레가 그의 노예인 헤라클레스에게 오히려 반해 대담하게 그를 유혹한다는 내용인데

이런 스토리가 그의 화풍을 더욱 농염하게 한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Heracles and Omphale>

1732~1734년, 캔버스에 유채, 90×74 

 

 

부셰는 사랑의 테마를 주제로 로코코 스타일을 탄생시켰는데

우아한 신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 중에서도 이 작품이 가장 독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성격이 난폭했다.

어느 날 그는 화를 참지 못해 친구 이피토스를 때려 죽인다.

이에 분노한 아폴로 신은 헤라클레스에게 난폭한 행위를 속죄하라면서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의 노예가 되라는 형벌을 내린다.

옴팔레의 성적 매력에 빠져든 헤라클레스는 그녀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했다.

무려 3년 동안 헤라클레스는 노예로 살면서 옴팔레를 위해 여장을 하기도 하고

물레를 돌려 바느질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그녀를 등에 태운 채 기어서 궁전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옴팔레는 헤라클레스의 황금사자 가죽 옷을 입고 몽둥이를 들고 헤라클레스 위에 군림했다.

3명의 자식을 낳은 옴팔레가 헤라클라스를 놓아준 것은 성적 매력이 감소해서가 아니라

그의 신분을 알고 해방시켜 준 것이다.

이 작품은 부셰의 초기 작품으로 옴팔레와 헤라클레스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묘사했다.
옴팔레의 다리가 헤라클레스의 구리빛 허벅지에 얹어져 있는 도발적인 모습은

절정을 이루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완벽한 근육질의 헤라클레스는 정열에 못 이겨 우유빛의 탐스러운 가슴을 움켜쥐고 있어

남녀 간의 농익은 정염을 더 잘 나타내고 있다.

두 눈을 감고 황홀경에 빠져 있는 두 남녀의 관능적인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쾌락에 빠져 있는 귀족들의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부세가

더 적나라하게 남녀 간의 쾌락을 표현하지 못한 것은

그 당시 분위기가 음화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였기에 신화를 빌려서 남녀 간의 쾌락을 묘사했다.

프랑수아 부셰(1703~1770)는 로코코 회화의 절정기 화가다.

그는 루이 15세의 수석궁정화가로 로코코미술을 완성한 사람이다.

 

루이 14세 치세 기간은 관능적인 회화의 양식이 유행을 했다.

이 양식은 프랑스 궁중 사회에 인기를 끌었고 궁중의 은밀한 생활을 즐겨 그렸던 부세는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퐁파두르의 눈에 띄여 궁정화가로 임명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부셰의 회화는 가벼운 듯하면서도 경쾌한 색조가 특징이다.

 

 

 

 

 

 

 

 

 

 


 

 

 


 빌리허의 <허망한 영광의 알레고리>

 

 

푸슈킨 미술관에서 정물화로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빌리허의 <허망한 영광의 알레고리(Allegory of the Frailty)>다.

 

<허망한 영광의 알레고리>-1663년, 캔버스에 유채, 111×85 


 

이 작품에서 빌리허는 다양한 상징적인 모티브를 사용해 전형적인 바니타스의 장르화를 보여주고 있다

(바니타스: vanitas 는 17세기 초 독립된 회화의 장르 중 하나로서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상징하는 소재들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바니타스 그림들은 삶의 허무함을 다루기도 하지만 정치적 ·  종교적 의미를 담기도 한다.

생명이 없는 물체들을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표현하는 바니타스 기법은

화가들의 솜씨를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화면 오른쪽 나팔은 고대부터 승리, 영광, 소문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팔 가장 자리의 서명은 화가로서 발리허의 유명세를 나타낸다.

탁자 중앙의 해골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상징하며

은색 그릇과 돈지갑과 보석함은 전통적으로 부를 상징하고 있으며 현세의 부는 덧없다는 걸 의미한다.

칼 손잡이와 북은 전쟁에서 용맹과 영광을 상징하고 있으며

해골 뒤의 월계관을 쓰고 있는 두상은 예술과 그 영광을,

악기는 음악이 선사하는 짧은 순간의 기쁨을 상징한다.

화면 왼쪽 비눗방울은 인간 존재의 유약함과 단명함을 가리킨다.

 

즉, 해골은 죽음을, 물방울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풍요의 허무를 상징한다. 

결국 '소멸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폐허의 미학까지 낳는다.

알레고리의 뜻은 '우화, 우의'로 직접적으로 대상을 표현하기보다 우회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피터르 판 테르 빌리허(Pieter van der Willige, 1635-1694)의 이 작품에서

봉인 달린 종이에 부와 영광의 헛됨에 대한 교훈적인 시가 적혀 있다.

시에 완벽한 빌러허의 서명이 있는데 서명은 화가로서 자신의 명성이 헛되었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2009.03.31 [명화산책] ⓒ ScienceTimes